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아이는 커서 소년이 되었다. 제 또래에 어울리는, 그러나 평범한 구질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잘생긴 소년으로 자랐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비가 사람들은 다루는 위치에 있었던 것처럼 소년도 아이들을 따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구질은 그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아이가 자라나, 무사의 꿈을 꾸고, 관직에 나가려 할 때. 구질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아이를 가르쳤다. 재능이 있었는지 무사부의 오류 무사 자리에 운이 들어갔을 때. 구질은 마치 제 자식이 관직에 들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 스승님. "
운은 오늘도 구질과의 수련을 마치고 대자로 뻗은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수백 번은 겨루었고 수 번의 손속을 나누었지만 운에게는 스승을 이긴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 스승님은 어째서 그리 강하십니까? " " 나는 별로 강하지 않다. " " 말도 되지 않습니다. 무사부에서 제 또래에 저를 이길 아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스승님과는 아무리 많이 겨루고, 배우지만 스승님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 " 아직 네 수련이 부족한 탓이란다. "
구질의 딱딱한 대답에 운은 말 대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뭉게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커다란 구름이 지나가고 나면, 그 뒤를 따라 작은 구름들이 졸졸 그를 따르는 모습이 퍽 귀엽기도 했다.
" 내 위로도 수많은 강자들이 있다. " " 예? "
진심으로 놀란 표정으로 운은 구질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스승은 이 성에서도 유명한 무사였다. 한때는 일류 무사가 될 수 있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이 성에 남았을 만큼,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스승보다도 수많은 강자들이라니. 운은 예상도 가지 않았다.
" 가장 먼저는 힘의 강함으로 논할 수 없는 우리의 주군이 계시다. 그 분께서 명한다면 누구라도 죽음을 맞아야만 한다. 그 뒤로는 주군을 지키는 삼언자가 있다. 천도를 읽는 자, 왕국에서 가장 강한 자, 모든 주술을 모으는 자. 그 아래에 수많은 일류무사들까지. 그 모든 이들이 나보다 강할 것이다. " " 하지만 스승님께서도.. " " 나라고 하고 싶지 않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내 능력에 닿지 않는 것을 탐하지 않았을 뿐. "
구질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말했다.
" 나라는 울타리에 너의 한계를 규정하지 말거라. 운아. 네 재능은 절대로 나보다 적지 않다. 오히려 뛰어나다면 뛰어날 것이다. 그저 지금의 정체에 두려워 말고, 네 한계를 위해 뛰어오르거라. "
그 얼굴에는 즐거운 미소가 남아 있었다.
" 그 날에는 네가 왕국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어, 왕의 앞을 지키게 될 것이라 누가 예상하겠느냐. " " 그렇겠지요. 스승님? "
해맑게 웃는 운의 미소에, 모르는 척 일어나 구질은 방에 들어갔다. 그 얼굴에는 흐릿하지만, 즐거운 미소가 남아 있었다.
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세를 잡습니다. 손 끝에 스며든 피는, 자신이 지키려 하는 것의 가치에 논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죽어서라도 그 아이를 지킬 수 있다면 구질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한없이 급한 마음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바라봅니다. 손을 길게 내뻗고, 격투 자세를 취한 채. 구질은 천천히 상대를 살피며 내려둔 손을 말고 자세를 취합니다.
" 본관은 태양국 이류무사 구질이라 하오. "
그 거래가 이뤄지기 위해선, 구질은 이 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아직 가르칠 것이 수도 없이 많은 그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명예와, 신념마저 짓밟은 채 수많은 피를 손에 젹시고 있습니다.
퉁.
땅을 밟은 순간, 수 개의 조각이 비산합니다. 곧 그가 내뿜은 기운이 조각들을 조금도 남김 없이 흩어버렸을 때.
"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그대들을 치지 않겠소. 아니. 부탁드리오. 이 손에 더 많은 피를 뭍히고 싶지 않소이다. "
피로 흥건한 손으로 그 아이를 볼 낯이 없기에. 구질은 천천히 여러분에게 물어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역시 가디언.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기에 물러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결국 구질은 고개를 잠시 숙인 채. 고민에 빠져 있다가 천천히 고갤 들어올립니다.
" 하나. 단 하나만은 약속드리겠소. 적어도 그대들을 죽여야 한다면 고통은 없을 것이니. "
쾅. 강대한 힘이 땅에 스며들어 퍼지고, 구질은 여러분을 바라봅니다.
" 그 모든 전력을 다해 나에게 부딪히라! 무사의 본분. 지킬 것이 있는 자들끼리. 어디 손을 겨루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