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어장은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카톡방과 영웅서가의 크로스오버 어장입니다. * 크로스오버 기간은 7/10~17일까지입니다. :) * 멀티를 뛰는 사람이 있더라도, 크로스오버가 끝나면 모르는 척 합시다. * AT필드는 누군가를 상처입힙니다. * 가급적이면 누군가가 찾아오면 인사를 하도록 합시다. * 잡담을 할 때는 끼어들기 쉽고 소외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합시다.
(비아의 말을 듣다가 눈에 띄게 동요한 것은 전장이란 말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전쟁을 이유로 상처에 익숙해지는 건 옳지 않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게 믿었다. 제 유일한 가족 중 하나는 용병이었고, 종종 다쳐왔고, 그래서 그것은 전쟁과 상처에 더 예민했다.) 아니야, 그런 말은 옳지 않아. (비아의 몸에 손바닥을 댈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낫게 해주세요, 하고 소원을 빌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전장 맨 앞에 서더라도 아픈 건 아픈 거야. ...그리고, 사비아 씨가 그런 말을 하면, 비아 씨를 아끼는 사람이 아주 슬퍼질 테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손바닥을 떼고 웃었다.) 우리, 처음 보는 사이지만 말이야. 정작 내가 다치게 한 주제에 잔소리가 너무 많았나, 응..
이상한 인연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거 같은 두명이, 우연스럽게도 공통점이 있는 일도 상당히 잦은 경우고. 하지만 이 경우엔 어떨까.
"저기, 신... 아니, 코르부스씨. 맞으시죠?"
강단있게 들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겁에 질려 살짝 위축된듯한 말투의 미묘한 언밸런스가 느껴지는 음성에 남성은 뒤를 돌아 그 근원을 돌아보았다.
"그래. 그런데... 어, 너 그때 거기 있었지? 왜, 강의라기보다는 거의 아무말 대잔치였던 그거 말야. 뭐 너한테는 아무 질문도 못 받았지만."
"...그때는 엄두가 안나서."
내성적인 사람은 그럴수도 있지. 아니, 오히려 수업 중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녀석이 대단한게 아닐까. 수환은 살면서 수업이든 강의든 도중에 손 들고 질문을 해 본적이 없었다. 나쁜 학생이어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그럴 수 있지. 그러면, 지금은 용기가 좀 나서 그래?"
팔을 벌려 일부러 약간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며 소년에게 물었다. 아직까지는 소년이라 불러도 될만한 나이의 진석을, 수환은 가볍게 대해주기로 했다. 나도 저 나잇대쯤에는 저랬... 아니, 저거보다 더 했지.
"비슷해요. 그냥, 토론이라도 좀 할까 싶었죠. 공교롭게도..."
그리고 소년은 허리춤에 있는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들어,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고 한바퀴 돌린 뒤 제대로 파지하여 수환에게 내보였다.
"...가디언들은 다 원시인마냥 구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 들 만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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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놀랐어. 뭐든지 자기 능력과 재량에 따라 무기로 쓸 수 있다 해도, 총기류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거든."
아, 아이스크림은 잘 먹을게. 라고 덧붙인 남성은 금세 빙과류의 포장을 뜯고 한입 베어물었다.
"흔하진 않아요. 이걸 써서 유명해진 영웅들도 있긴 하지만, 의념 자체가 총기 같은데 실어넣기엔 까다롭거든요. 상성도 별로일 가능성이 있고."
GP따위 없는 이세계 출신은 철면피를 깔고 학생에게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기로 했다. 아직 봄이지만, 오늘따라 날씨가 좀 더웠다.
"그럼 네 의념은 총이랑 상성이 맞아?"
"그런 편이죠. 폭발이거든요. 한번 보실래요?"
소년은 손가락으로 청년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수환은 자연스레 그 빙과류를 멀리 감췄다.
"어... 사양할게. 내가 슈팅스타는 좋아하는데, 말 그대로 폭발하는건 별로 안 좋아해."
좋아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묻고싶었던게 대체 뭔데?"
코르부스는 자연스레 벤치의 등받이에 한쪽 팔을 걸치며 물었다. 짧은 이야기가 아니었어도 괜찮았다. 그에게 있어 지금은 굉장히 오랜만에 겪는 여유로운 시간이었으니까.
"이것저것이죠. 그쪽 세계에서 총기류의 위상이라던가, 총격전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던가, 혹은 그 외 팁이나 노하우라던가..."
"혹시 내 머리에다가 전극 연결해서 컴퓨터에 연결해볼 생각은 없어? 난 그 편이 좀더 명확할거라 보는데."
그렇다고 해서 말을 너무 오래 하는것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돌리지 않고 말해서 '그걸 앉은자리에서 다 말해주기는 곤란하다' 라는 것이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강해져야만 할... 이유가 있거든요. 그래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수환씨같은 사람의 조언이 필요해요."
간접경험도 결국 경험이다. 그리고 힘이 필요하다. 간접 경험으로 쌓은 지식도 힘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진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왜?"
"네?"
"힘에 집착하는 이유라도 있어?"
코르부스도 종종 봐 왔다. 힘을 추구하다가, 잘칫 잘못해서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을. 자신이 살던 곳은 의념이라는 미지의 힘이라는게 없다. 결국 힘이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체력, 재력 등이었지만... 그 마저도 너무 추구하다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물며 의념이라는, 정신의 힘은 어떻겠는가.
"그러지 않으면 저는 인정받지 못할테니까요. 힘이 모든것인 가디언 아카데미예요. 어중간해서는 그냥 낙오자일 뿐이고요. 그리고..."
소년은 잠깐 말을 끊고, 이어질 말을 내뱉는 것을 망설였다.
"그리고?"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강해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랑은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요."
"어이쿠, 잠깐. 내가 연애 상담해준다고 했던가?"
"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코르부스는 피식 웃었다.
"걱정 마, 짜식아. 내가 이래뵈도... 어, 잠깐. 나 너보다 연애 많이 못 해봤을수도 있겠다."
"...쓸모없네요."
"연애 상담 아니라며!"
발끈하는 남성에게 농담이라고 한 뒤, 소년은 다시 진지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뭐든 좋아요. 전 강해져야만 해요."
"번짓수 잘못 찾았어."
그런가. 결국 이 사람도 가르쳐 주지 않을건가. 소년은 실망한 표정을 뒤로 한 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 말이야. 내가 의념 같은건 없거든? 근데 감각은 꽤 예민하단 말이야."
소년은 가만히 다음에 올 말을 기다렸다.
"너, 내가 보기엔 그냥 자신이 없는거 같다. 힘은 그 다음이야!"
"알아요. 하지만..."
"힘이 있어야 그 자신을 가진다고? 그럼, 니가 지금 가지고 있는건 뭔데. 스테이터스가 아니라 상태이상이냐?"
어느새 나무 막대만을 앞니로 물고 있는 남성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 상태로는 아무리 힘을 추구해봤자 소용없어. 너 밑 빠진 독이라는게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아무리 힘이 있어도 있어도 모자라다 생각하는 놈들은 내가 본 적이 있어. 다 그렇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맨날천날 먹기만 했지. 자기가 얼마나 많이 먹어댔는지도 모르고, 만족할줄도 모르고."
남성은 괜히 배가 고파졌다. 그러나 그 생각을 쫓아버리고 다시 입을 움직였다.
"근데 최소한 지가 여태 뭘 먹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맛있고 배가 챠는지 아는 놈들은 참았어. 하지만 그러지 못한 놈들은..."
그러면서 주먹을 펼쳐, 터져버렸다는 듯 손짓을 했다.
"그렇게 되지 마. 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어. 근데 내가 보기엔..."
내가 보기엔 충분해 보여. 그 말을 마치지 못하고 코르부스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그 바람에 나무 막대가 입에서 떨어져 버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저기 저거. 여기 토착 생물이냐?"
"어떤거 말하는거예요? 갈매기? 다람쥐? 미어캣? 아니면 혹시 저..."
척 봐도 흉물스러운 거무튀튀한 피부. 뿌리처럼 뻗어나간 근섬유에 바로 이어진 금속의 칼날. 뒤틀린채 움직여대는 기분나쁜 경련...
"...그래. 저 괴물."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괴물의 떼는 빠르게 쇄도하여 둘이 앉아 있던 벤치를 반으로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스파크조차 튀지 않고, 마치 완벽한 무언가로 절삭해버린 듯 보였다.
둘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구른 뒤, 각기 총을 뽑아 들었다. 코르부스가 먼저 기관단총을 세발씩 점사하여 놈들의 머리로 추정되는 부위를 꿰뚫었다.
"조심하세요! 게이트 너머에서 온 녀석들인가봅니다!"
"뒷산에서도 게이트 열린다는게, 이 정도였나?!"
진석 또한 권총을 들고서 자신도 세 발씩 끊어 놈들을 사격했다. 그러나 조금 흔들리는 총구 탓인지, 한발은 어깨 위로 스쳐 지나갔다.
"젠장. 식전 운동인가? 밥맛 한번 끝내 주겠군!"
엄폐할 구석도, 의미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개활지에서 빠르게 기동하여 적의 공격을 피하며 싸우는 수 밖에. 잠깐의 여유라도 벌어서, 거리를 벌려야 한다. 총싸움에 막대기를 들고 오는 놈들을 상대하는 기본 수칙이다.
코르부스는 망설임 없이, 반쪽짜리 벤치를 적에게 차 날렸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사격은 그가 아닌 진석의 것이었고, 괴물은 경련하며 총알을 그대로 받아내곤 뒤로 뻗었다.
"좋아. 잘 피하면서, 견제 좀 해달라고!"
그는 대답조차 듣지 않고 달려나가, 괴물들의 틈으로 검은 안개가 되어 스며들었다. 진석은 이제 놈들을 독대해야만 한다. 그러나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약실과 총구를 벗어나 의념을 담은 탄환이 괴물들의 몸뚱아리에 박히고, 마침내 회전식 탄창이 텅 비어버리자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짧고 강하게, 기합처럼 내쉬자 박혀있던 탄환들이 일제히 폭발하여 사방에 시커먼 육편을 휘날렸다.
"그런걸 할 수 있으면서, 자신이 없었다고?"
적진 건너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면서도 목소리 자체는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곧 이어 커다란 파열음과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빈 산탄 쉘의 소리가 거진 동시에 울려퍼지자, 게이트 너머에서 온 괴물들도 허물어지며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아군 오사 같은거 신경쓰지 말고 맘껏 쏴."
"안그래도 그럴 예정이예요."
십자포화 아닌 십자포화가 검은 살점들을 갈갈이 찢어낸다. 권총에서 튀어나온 탄환이 적을 관통하고, 또 그 탄환이 닿기 직전에 남성의 몸은 안개로 변하여 그 탄환을 흘려낸다. 그러나 점점, 발 밑을 타고 그것들은 한쪽 구석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두 사람이 알아챘을 때엔 이미 그것들이 한데 모여서 꾸물거리며 무언가로 합쳐졌을 때 쯤이었다.
"너넨 언제나 이런 역겨운거랑 싸우냐?"
"대부분은요."
"우리 차원이랑 별 다를 바 없네."
검고 흉틱한 거수가 휘두른 팔이 둘이 서 있던 자리를 강타한다. 보도 블럭이 깨지고 그 파편이 튀며, 먼지를 일으켰다.
거수의 주위를 빙빙 돌며 산탄총으로 살더미를 찢고, 깎아내어가지만 괴물의 움직임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기세 좋게 내려찍은 거수의 팔을 가까스로 안개화로 흘리는게 아닌 산탄총을 들어 막아낸 코르부스가 이를 악물었다.
괴물도 승리를 직감한 듯, 또 다른 팔을 들어 그의 허리께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차마 그 공격이 닿기 전에, 눈부신 섬광과 지축을 울리는 폭음이 괴물의 심장부에서부터 터져나왔다.
"잭팟."
그게 그 게이트 너머의 괴물이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으며, 그것이 빠져나온 게이트 너머에서 들렸을 마지막 소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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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떤거 같아?"
"아직 모르겠어요."
"자신감을 가져. 방금 그걸 마무리 낸 것도 너잖아."
"하지만 코르부스씨가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과연 제대로 의념을 집중해서 그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내가 밥 먹듯이 훈련을 해 봐서 잘 아는데, 내가 보장해. 아마 해냈을거야."
날 믿어라. 그런 표정을, 평소라면 그다지 미덥지 않아보일 남성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막힌 것이 뚫려버리진 않아도, 조금 그 벽에 금이 간듯한 느낌을 받은 소년은 살짝 가벼운 표정으로 그의 말을 더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참, 수업료는 아이스크림으로 쳐도 되죠?"
"뭐? 이거 그냥 사주는거 아니었어? 아니 뭐 어른이 되어가지고 애한테 그냥 얻어먹는것도 좀 그렇긴 하다만..."
소년은 좀전에 남성이 그랬듯 피식 웃었다.
"농담이예요."
남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저도 수업은 그냥 얻어들은걸로."
"뭐? 야, 그거랑 이건 가치부터가 다르지!"
잠깐 농담을 주고 받다가, 남성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뭐, 좀 배운거 같아?"
"많은걸 배웠죠."
다행이네, 라고 중얼거리듯 대답한 남성은 발을 돌려 또 어딘가로 걸어가려 했다.
"다음에 보면 그땐 아이스크림보다는 더 비싼걸로 준비할게요."
"됐네요."
잠깐 서로 갈 길을 걸어가다가, 둘은 거의 동시에 멈춰섰다.
"또 볼 수 있겠죠?"
"아마도."
화약의 진한 내음만이 아직 감도는 그 자리를 뒤로하고, 두 남자는 서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