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어장은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카톡방과 영웅서가의 크로스오버 어장입니다. * 크로스오버 기간은 7/10~17일까지입니다. :) * 멀티를 뛰는 사람이 있더라도, 크로스오버가 끝나면 모르는 척 합시다. * AT필드는 누군가를 상처입힙니다. * 가급적이면 누군가가 찾아오면 인사를 하도록 합시다. * 잡담을 할 때는 끼어들기 쉽고 소외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합시다.
아무리 파인애플로 정신데미지를 입어도 절대 못 잊는 것들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다른 차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가 만들어주기로 한 당근 케이크나, 새로운 당근 디저트 같은 것들이 그 분류에 들어갔다. 파인, 아임 파인, 땡큐. 아이 라잌 캐롯 케이크. 땡큐. 속으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카페 앞에 다다랐다. 가는 길을 잊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계시나요-?"
마침 배도 슬슬 고파오고, 친구도 보고 싶던 참이니까, 하고 작은 변명을 스스로에게 늘어놓았다. 심호흡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카페 문을 똑똑하고 두드렸다. 미리 온단 이야기를 안 한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긴 했다. 사실 많이 걸렸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저번에 납치 예고도 있었고.
"케이크! 먹으러 왔는데요!"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가 카페에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면 부끄러워서 죽어버릴래. 응. 죽어버릴거야.
감사는 내가 해야지. 기특한 아가라고 생각하며 짖궃게 머리를 헝클어뜨린 그가 깔깔 웃었다. 아가랑 있는 시간이 못내 즐거워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네.
"세상에, 새파랗게 어린 아가잖아."
아니,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그가 다시 한 번 제 눈 앞에 있는 아가를 훑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어쩐지 엄청 조그맣고 귀엽고 예쁘고 다 해먹는 아가더라. 속으로 오두방정 주접을 떤다.
"신기해, 아가? 아가가 그렇다면 나도 좋아. 그런데 그것보다 아가 다리는 안 아파? 어떻게 그런 작고 가느다랗고 인형처럼 말랑하고 금방 바스라질 것 같은 다리로 그 많은 거리를 걸을 수 있었던 거야? 역시 내가 들어서 옮겨줘야.."
결국 속에서 하던 주접을 입 밖으로 흘려보내기까지 한 그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리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내가 배려가 부족했네, 미안해 아가. 공주님 안기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어쩌면 아가는 그런 걸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좋지. 조현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팔을 애매하게 내밀었다.
"역시 안길래, 아가? 아니다, 지금 도착했으니 금방 음식 사고 오리배 탄 후 피크닉 하면서 쉬자."
그나저나 진짜 예쁘네. 벚꽃호수를 보며 감탄한 그는 아가가 원하는 건 전부 사자면서 가리켰던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리고 포장마차에 도착한 후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조현이 물었다.
"한 메뉴에 두 개씩 총 얼마에요? 아, 그리고 옆의 아가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 메뉴는 아가가 원하는 만큼 더 주세요."
....파인애플의 밤이 지나갔다. 열심히 씻어도 어쩐지 몸에서 달콤한 과일향이 짙게 배어든 것 같아, 개인적으론 복잡한 기분이다. 향기 자체는 불쾌하지 않으나, 그게 어느 의미론 학살의 증거인 피비린내라고 생각하면...아냐아냐. 그만 생각하자. 파인애플은 이제 끝났고, 내 인생은 이후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엄..."
카페에 출근한 나는 만들어본 여러 시험작을 보고 조금 고민했다. 당근을 좋아하는 귀여운 이차원의 친구를 위해, 요 근래 연습하고 있는 메뉴들이다. 가디언넷에서도 몇번 맛있다고 얘기해준게 무척 기뻤기에, 나름 공들여서 준비하고 있다.
"앗, 어서와!"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 문이 두드려지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리기에 나는 앞치마를 멘 차림으로 서둘러서 마중나갔다. 반가웠기에 활짝 웃는 미소로 마주한다.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닌걸요." "정말 새파랗죠?" 머리카락도 새파라니 그렇다는 농담으로 슬쩍 받으며 다림은 놀란 눈의 조현을 봅니다.
작고 가느다랗고 말랑하고 바스라질 것 같은 다리... 음. 생각해보니 다림이 상당히 말라있는 느낌이니까 맞지 않을까. 하는 것은 넘어갑니다. 다림은 이런 다리라도 구성이 튼튼한 편이니까. 잘 돌아다닌 게 아닐까요? 라고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들어서 옮긴다면 생각보다 무거워서요. 라는 농담을 하고는 아..아닌가요? 라고 고개를 기울입니다. 팔을 애매하게 내밀자 조심스럽게 손을 잡으려 시도합니다. 마치 부탁하는 것처럼?
"언니랑 오리배도 타고 피크닉을 하면 즐거울 테니까요." 설마 오리배를 타는데 무슨 일이 생기겠나요? 라고 말하며 포장마차로 향하고, 두 개씩 얼마냐는 질문에 너구리가 -다구리! 라고 설명합니다. 관광지 물가인 걸까. 아니면 나름 합리적인 가격인걸까. 좋아하는 걸 더 달라는 말에 다림은 손사래를 칩니다.
"무엇이든 좋아하니까.. 언니가 좋아할 만한 걸 더 사는 게 어떨까요?" 사실 저도 먹어본 적 없어서 먹어봐야 알 수도 있으니까요? 라고 웃습니다. 그리고는 오리배를 보면.. 다행히도 페달형은 아니구나. 자동운행이 되어있다니.
연락이라도 할 걸 그랬어, 연락 없이 찾아가면 무례한 거라고 누가 그랬었는데, 그게 왜 지금 생각났지... 등등의 생각을 하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다행히도 문이 열렸고, 제 친구가 눈 앞에 있었고, 잔뜩 긴장했던 기분은 앞치마를 한 제 친구를 보자마자 한 순간에 날아갔다. 안도한 마음을 한껏 담아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그,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해!"
신 메뉴란 말에 주책없이 웃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 나.. 기대돼서 죽을 것 같아."
간식이 너무 설레요. 메뉴는 비밀인걸까? 나 눈 가려? 숨도 살짝 참을까? 신나서 떠들어대다가 일순 표정이 살짝 굳었다.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양 진화에게 조용히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그, 점장님은.. 없지?"
방패로 뚝배기를 깬다는 이야기와, 자루 준비하란 이야기가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점장님의 뚝배기가 깨질까봐 걱정하는 건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으응~ 하고 잠깐 고민하다가. 앗, 하고 메모장에서 개인 아이디를 적은 쪽지를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생각해보니 가디언넷(카톡)으로는 평범하게 연락할 수 있었으니까. 원리는 모르지만 연결 되있다면, 아이디를 알면 개인 메세지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간식에 귀를 쫑긋 거리며 기뻐하는 그녀를 보면, 나도 보람차서 무심코 즐겁게 따라 웃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그러고 보니 음료는 어떤게 좋아?"
일단은....달콤한 메뉴들이 많으니까, 그것을 중화해줄 밸런스를 잡을만한 음료. 요컨데 시원한 커피라던가, 혹은 녹차라떼를 준비했는데. 그래도 본인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는게 낫겠다 싶어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카페인 만큼 사실 어지간한 음료는 준비할 수 있다.
"아....응, 에릭은 지금 없어. 듣기론 의뢰 간다던데..."
요 몇일 기운이 없더니 다시금 기운을 차린....것 같기는 하다. 그게 정말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파인애플의 날 눈 앞의 친구를 납치하자는 제안을 했던 그에게, 광기에 젖어 있던 나는 거의 30마리 가량의 파인애플을 집어 던졌다. 그도 조금 질색하는 기색이었으니 당분간은 그런 헛소리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물론....그 진상을 알면 순한 성격인 토순이도 나에 대해 겁을 먹을지 모르니까, 그 부분은 함구하도록 하자.
"....괜찮아! 그래보여도 정말 나쁜 애는 아니니까. 그리고 어제 내가 '잘' 얘기해뒀어."
녀석도 씻으면서 달콤한 파인애플 냄새에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도, 친구를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
사실 단체 톡방에서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조금 들기도 했다. 하지만 태연하게 개인 연락처를 받을 만큼의 뻔뻔스러움은 흉내낼 수 있었다.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두세 번 꾹꾹 눌러담듯 읽었다. 차원 간 연결이 끊기면, 이 연락처도 더 이상 못 쓰겠지. 눈을 꾹 감아 슬픈 생각을 몰아냈다. 아직은 시간이 많다. 많이 남아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응! 나중에 찾아오게 되면 여기로 연락할게."
새끼손가락을 한번 흔들어보였다. 음료까지 준비했다는 말에는 조금 놀랐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던 탓이다. 습관적으로 녹차라떼를 떠올렸다. 나 그거 좋아하는데, 응. 카페인 문제는, 원래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체질이니 상관없었다. (결국 본질은 항성인 탓이 크다)
"나, 그거 좋아해! 녹차라떼! 어, 어.. 돈.. 내야 되면 얼마든지 낼게, 응."
나름 양심의 표현이었다. 너무 얻어먹기만 하면 또 예의가 아니라고 마을 이장님에게 국자로 까앙!을 당할지도 몰랐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또한 없잖아 있었다.
"아, 점장님은 가셨구나. 다행.. 이라고 말하면 안 되지만 다행이다, 응."
'잘' 이야기해뒀다는 말 뒤로 엄청나게 길고 심오한 사정이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 직감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넣고 가둬버렸다. 넌 들어가 있어, 자물쇠 세 개 잠그고, 열쇠는 연못에 던져버리기. 테이블 앞에 냉큼 앉으며 파인애플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순간 등골이 싸해지는 것 같았지만, 파인애플 냄새에 집중하기보다는, 차라리 간식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평소에 궁금하던 걸 묻기로 했다.
어째 연락처를 받는 모습에 조금 서글픔이 묻어 나와 있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작게 기울였다. 무언가 슬플만한 이유가 있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그녀가 다른 차원의 인물이란걸 깨달았다. 그렇구나. 이렇게 만나고 있는 시간이 특별한거지, 본래에 우리는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교류를 위한 게이트가 닫히면, 내가 건네준 아이디는 연락이 아닌 그저 문자의 나열로 의미가 옅어질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나도 조금 서글퍼졌다.
"후후. 취향이 나랑 맞네. 실은 내심 어울릴거라고 준비해둔 음료중 하나야."
카페에서 자주 주문되는 메뉴기도 한지라, 나는 능숙하게 녹차 라떼를 만들기 시작하며, 그녀에게 대접할 디저트들을 플레이팅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리 오래지나지 않아서 지난번에 그녀가 무척 좋아했던 당근케이크와, 녹차의 향이 기분좋게 우러난 녹차 라떼. 그리고....귀여운 토끼 모양으로 구워낸 당근 쿠키가 예쁘게 담긴 접시를 들고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돈은 괜찮아. 친구에게 이런걸 대접할 정도는 있는걸. 굳이 보답하고 싶다면.....가디언넷에 맛있다고 칭찬해준거, 무척 기뻤어. 이번에도 그걸로 받고 싶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다가도, 뒷부분을 얘기할 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져서....트레이를 앞에 두손으로 모아잡은체 얼굴을 붉히곤 수줍게 얘기했다. 누군가에게 칭찬 받는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이차원에서 넘어온 친구에게라면, 더더욱 그렇다.
<clr cornflowerblue>그녀, 아니, 그것, '별'은 차원을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차원 이동은 상당히 특별한 케이스에 속했다.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진 순간, 그 때 본능적으로 '아니'라는 대답을 이끌어냈던 때의 슬픔. 그러니까 이번 이별은 아마 그것에게 있어 처음으로 겪는, 죽음을 제한다면, 영원한 이별이다. 슬퍼지려는 것을 고개를 흔들어 참았다. 미래의 슬픔이 지금의 기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24시간 카페에서 이것만 줄창 마셨었어."
다른 메뉴는 시도하기 너무 무서워서! 고백하듯 말하곤 웃어버렸다. 의자 밑으로 다리를 흔들며 간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림의 결과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한 것들이었다. 토끼 모양 쿠키라니, 세상에. 잘 먹겠습니다, 말하곤 쿠키를 한 입 먹었다. 얼굴부터 먹는 건 너무 잔인하니까 귀부터.
"맛있다!"
자연스러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진짜, 진짜 가디언넷에 자랑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으면, 응, 이 정도 쿠키라면... 채팅방 닉네임을 토순 드 바비 당근쿠키라고 바꿔야 할 수도.."
퍽 진지한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누가 디저트 맛있는 카페를 물었었는데, 앞으로는 꼭 이 카페를 추천해야겠다.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하는 편이니까! 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더군다나 친구의 이야기라면 더욱 사양할 이유가 없다. 녹차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제발 해주세요, 하고 웃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