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릴리는 그가 이야기하는 연금술사의 정의에 대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표정을 보아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무언가 말을 얹고 싶은 부분이 있는 듯한, 알쏭달쏭한 표정. 쓰고 있는 왕관의 끝에 매달린 도금된 은 장식이 반짝거린다.
“그렇지. 하지만 보다 큰 단위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납을 황금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일종의, 영적인 성장 과정이야. 두 개를 서로 떼 놓고 생각할 수는 없어. 결국 연금술이란, 어떻게 더 높은 경지로 영혼을 이끄는지에 대한 퍼즐과 똑같으니까. 진정한 연금술사는 자기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까지도 높은 단계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뜻하고…… 이러쿵저러쿵…….”
그렇게 장황한 전문용어를 주절주절 이야기하더니, 잠깐 뒤에 크흠 하면서 목을 가다듬은 다음, 릴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나는 납을 금으로 바꾸는 걸 연구하는 연금술사야. 나랑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도 소수…… 있는 모양인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연금술은 암호 맞추기’라는 거야. 겉보기에는 평범한 도서나 다름 없는 책이라도, 복잡한 연금술의 상징으로 해독해야 겨우 내용을 찾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또, 때로는 정말로 평범한 도서라도 우연찮게 우주의 진리에 대한 암호가 담기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러고는 무릎 위에 얹은 책을 톡, 톡 두드린다.
“이번에는 그 중 하나로 지목된 책이 이거야. 특정한 방법론으로 읽어 보면 수은을 붉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해설이 된다는 소문이 있지. 이걸 쓴 양반이 의도했든 안 했든 말이지. 그래서 정말인가 하고 확인해 보려고 한 건데……. 난 당신도 동업자인 줄 알았지 뭐야.”
그와 가까운 쪽 다리로 책등을 옮겨서, 그가 잘 읽을 수 있는지 살핀 다음에 책장을 넘긴다.
그녀는 자기 분야의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능숙하게 설명해나갔다. 한, 전체의 3분의 1까진 이해가 됐는데 이어지는 말들은 그녀와 같이 그 분야의 사람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도 대충 이해한 바로는 연금술사는 타인까지 이끌 수 있는 사람 이라는 것. 정도?
"흐응. 대충은 알 것 같네."
나는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흘려들은 것은 아니다. 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을 뿐.
"즉 너는 진짜 '연금술사' 라는거구나. 연금술이 아직 실존하고 있는지는, 몰랐는걸."
화학의 기초가 되는 것이 연금술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금술은 헛발질.. 이라는 것이 기존의 교육이었으니 말이다. 나도 그정돈 알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세계에선 기존의 법칙같은건 절대적이지 않기도 하고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은 한정되어 있으니. 나는 귀를 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우주의 진리, 라."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다. 하지만 연금술사의 소설 속 스승은 말했다. 진리란 모래알갱이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는 그런 말일까. 어쩌면 그녀가 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그녀는 책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수은을 붉게 만들어서 어디에 쓰는데?"
수은의 색을 바꾸는 것 만으로도 무언가가 변하는걸까? 단순히 색을 변하게 하는 것이라면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하는 의문을 품고 그녀에게 질문한다.
"아냐. 나는 단지.."
동업자인줄 알았다는 말이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애초에 이 책, 정말로 내가 찾던 책인가? 왠지 조금 다른 것 같단 말이지. 실수를 했나? 그런 실수를 할리가.. 이제와선 크게 상관 없는 얘기지만. 어쩌면 이 책에 이끌린 것일지도. 아무튼,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정말 그녀가 말하는대로 수은을 붉게 하는 방법이 적혀있는지 굉장히 신경쓰인다. 나는 책으로 시선을 고정한채로 그녀가 책장을 넘기는대로 책의 내용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