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고개를 잠시 돌려 달력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날짜를 세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더니, 끝내는 고개를 책상 바닥으로 돌리고 푹 한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오른팔의 위에는, 가디언 칩의 힘으로 간단한 화면이 떠 있었다. 며칠 전, 게임장에서 만난 정훈이 헤어진 직후에 보낸 메시지였다.
아직도 답장을 못 했어.
굳이 답장할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다만, 청년으로서는 딱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이 학원도의 모두는 가디언 후보생이고, 졸업 후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가디언 아카데미의 누구에게나 정중히 존댓말을 해오던 그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런 내용을 정중히 풀어쓰고 양해의 답장을 보내면 될 터였는데. 선물 받은 장갑이 문제였다.
결단보다, 다시 하나의 메시지가 그에게 날아오는 것이 더 빨랐다. 예상치 못한 메시지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청년은 어쩌지도 못하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두었던 하얀 장갑을 손에 낀다.
이왕 만나게 되는 거, 답례로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 들고 가자. 고급스러운 선물은 분명 거절당할 것이니, 적당한 가격대의 물품을 거절하진 않을 정도로 구매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화사한 봄날과는 전혀 맞지 않는 계산을 내리면서 청년은 식당가로 빠른 걸음으로 향하며 답장을 보내었다.
[ 앗, 저는 만나는 거 대환영! ( •̀∀•́ )✧ ] [ 그런데, 지금 뭐 하다 기숙사로 하려던 참이었기에 (>_<。)💦 ] [ 일단 식당가에서 보자고 하는 건 조금 곤란… 할까요? (*´⌒`*) ]
무엇을 사는 게 적당할지 이것저것을 머릿속에서 계산하며, 제노시아 기숙사와 식당가가 차로는 몇 분 걸릴지 계산해본다. 약간의 신속 강화마저 사용해서, 청년이 먹을 것을 잔뜩 샀다면 아슬아슬하게 익숙한 브루터메니스의 외형이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준명이에겐 이전에 난파선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었죠.. 지금 꽃구경을 가자고 제의하는건 나 자신에게 조금 부끄러울지도! 다림이는 아직 그때의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을 것 같고요.. 그럼 이것도 결정!
[ 은후야! 우리 학교에 벚꽃 예쁘게 피었는데 같이 놀러갈래? ] [ 캠핑카가 있어서 돛자리도 필요 없는데! ]
기숙사에 들어가며 메시지를 보낸 후 곧장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합니다. 수련 끝난 몰골로 놀러갈 순 없으니까요 그렇게 씻는데 도착한 은후의 답장에 정훈은 약간 미간을 좁혔다가, 뭔가 고민하다가 잠시 뒤 고개를 끄덕입니다.
[ 그럼 제가 식당가로 갈게요! 거기에서 만나죠! ]
그렇게 답장을 한 뒤 샤워를 마치고 옷장에서 익숙한 교복을 꺼내다가 잠시 멈칫. 어째선지 한쪽에 걸려있는 다른 옷이 눈에 밟힙니다. 무난한 청바지에 간단한 문양이 그려진 흰 티셔츠와 특색없는 하늘색 셔츠, 이것도 준명이가 다른 옷 하나정도는 사두라고 해서 사뒀던건데 말이죠.
잠시 뒤 브루터메니스가 식당가에 도착하고, 저 멀리 은후가 보이자 정훈은 브루터메니스에게 주차를 부탁한 뒤 평소와 다른 옷을 한번 더 내려다봅니다. 거의 안 입어봐서.. 잘 입은건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준명이가 무슨 옷을 그렇게 입는거냐고 탄식했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지만 조언해줬던 내용들은 진흙 아래로 가라앉은 듯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상하다고 웃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잠시. 브루터메니스가 주차를 마치자 정훈은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의 고민을 가볍게 정리하며 차 문을 경쾌하게 열며 은후에게 인사합니다.
"맞아요. 클로징을 해야 시시비비를 가리죠." 이 돌던지는 9짤과 맞고 있는 9짤을 보는 서포터 어머님같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보조해줘야 합니다(대체) 신체 위주로 강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의념충격상은 보스가 나오면 하는 게 아닐까.. 일단 준비 자체(의념충격상을 생각해놓기)는 해둬야 합니다.
"홉고블린 둘 정도는 충격상 없이도 가능할 거라 믿기는... 해요" 아마도. 라고 말하면서 본인은 신속을 강화해서 고블린들의 공격을 피하려 하는군요. 본인이 다쳐서야 도루묵이라고요. 그리고 에릭의 미어캣을 인테리어 담당이라던가 그런 말을 하자 에릭을 쳐다봅니다.
"와아..." 그렇지만 그 뒤에는 홉홉고블린같은 게 보이자 ...이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에릭 씨. 이거 다음에 뭐 더 있으면 망하는 거 아닌가요?" "있으면 그것보다 에릭씨 머리를 한 대만 때릴 거니까요." 일단 의념충격상 계산은 할 테니까 저.. 저.. 고블린 킹 같은 거나 좀 때려봐요. 라고말합니다. 정훈에게도 화살로 견제 하는 건 어떨까요. 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 그래요 급소 위주로 사격하는 것을 보고는 질린 표정을 짓습니다. 어쩌다 여기에 잡혀서.. 같은 생각을 하기는 하는군요. 쭉 밀려나는 에릭을 보며 옅게 혀를 찹니다. 맞아서 나가떨어졌다는 말을 진화 씨에게 하지 말라는 것에 다림의 눈이 샐쭉해집니다. 역시 에릭이었어..
"의념충격상...계산 완료에요!" 에릭씨의 말은 일단.. 어쩔 수 없지요. 구해야 완료인데 구한 걸 가지고 이런저런 걸 걸 수도 있죠. 다림이가 에릭에게 물들어버린 거야...? 아니야! 아직 안 물들었어!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것 뿐이지.
"에릭 씨... 의념충격상 계산 대신 하주실 거 아니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걸 추천해요.." 일단 의념충격상 계산이 끝났으므로 충격을 주..겠죠? 생각해보니 플레이어캐가 의념충격상 계산하는 거 지금이 처음 아닌가(대체)(일상이라 진짜로 카운트되지는 않겠지만)
"의념기 뭐 원해요. 셋 중 하나에요" 아군의 공격력 증가 / 아군의 방어력 증가 / 아군의 스테이더스 증가 / 아군의 망념 수치 감소 / 아군의 체력 회복 / 적군의 스테이더스 감소 / 적군의 공격력 감소 / 적군의 방어력 감소 / 적군의 상태이상 악화. 라고 주루룩 읊습니다. 저 뒤에 뭐 있으면 그 때는 진짜 화낼 거에요. 라는 말을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다림은 그렇게 화 못 내요.
이제는 익숙한 오프로드 카의 외형이 보이자, 청년은 제법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며 남은 손을 정훈에게로 흔들어 보인다. 한 번도 껴보지 않았던 새하얀 장갑이 그 스스로에게는 아직도 살짝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절대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선, 총총걸음으로 걸어와 브루터메니스의, 정훈의 앞에 선다.
"안녕하세요! 보면 아시겠지만, 사실 지난 법 답례를 포함해서 같이 먹을 걸 좀 샀어요."
그런데, 왜.
정훈의 존댓말을 듣고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생각과는 달리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타면 되는 거죠?" 하고 물어보았다. 자연스럽게 겉과 속이 다른 탈것의 내부로 들어온다면 상대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슬쩍, 식당가에서 먹을 것을 산다고 확인하지 못한 답신을 보았을 것이다.
"아…."
처음부터, 뭔가 틀어지는 느낌이다. 본격적으로 변명을 하기 전에, 우선 뭐라도 정훈의 입에 물릴 작정으로 은후는 비닐봉지에 손을 넣어 에너지바를 꺼내 상대에게 건네었다.
"자, 운전하신다고 고생하셨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드세요! 네?"
브루터메니스가 자동 운전이 가능하다는 걸 잊은 것은 아니었기에, 청년은 자신이 건넨 말에 기어코 실소를 짓고 말았다. 좀처럼 시선을 정훈에게로 고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차 내부를 둘러보다가 한 손을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겨우 본론을 꺼낸다.
"정훈씨, 그…. 편하게 반말하셔도 전 괜찮아요. 제가 정훈씨를 어색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저희는 가디언 후보생이잖아요? 나중에 같은 곳에서 일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사람에게 편하게 대하면 나중에 공적으로 만날 때 제가 풀어질 것 같아서 존댓말을 계속 쓰는 거니까요."
내용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잘못한 강아지처럼 상대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은 교복이 아니라, 편하게 사복 차림으로 나오셨는데 존댓말 하는 것도 좀 웃기잖아요?"
그런 말을 하는 본인도 언제나 입던 것과 같은 사복 차림이긴 했지만…. 하지만 여러분, 들어보세요. 권역 쟁탈전이 아니라도 요즘 학원도 분위기에서는 다른 학교에 교복 입고 들어가기 그렇다고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