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야, 그렇게 치자면 나도 예~전에 여보가 병동 데려다줬을 때, 다친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냥 크루시오를 두 방 연속으로 얻어맞았을 뿐이었지! 그래도 얌전히 안겨서 가줬잖아~"
그러니까. 여보도 불평은 그만!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마무리했다. 어느새 아까의 울분은 싹 가셨는지, 다시 평소처럼 당신의 페이스에 어우러지게 반응하면서 킥킥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둘이서만 돌아갔다면 분명 또 서로 투닥거렸을테니, 당신의 재잘거림으로 분위기를 완화시켜준다는 것은 꽤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친 친구와 투닥거리는건 조금 그랬으니까.. 라고는 해도. 이미 어느 정도 그러고 있기는 하다만.
"하. 그래~? 썩 운이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우리 꼬맹이가 놀리는 건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려나?"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운이 좋다. 확실히. 아무런 공격도 맞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으나 그에 비례하게 자신 역시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으니. 결국에는 쌤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의 결과는 꽤 신경을 긁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기숙사로 돌아가면, 진짜 그땐 나뭇가지나 잔뜩 꺾어버리면서 울분을 삭여야겠다. 지팡이 앞에서 꺾을 것이다. 또 내 말을 안 듣는다면 다음에 부러지는 건 나뭇가지가 아니라 너가 될 거라고 협박도 좀 하고.
"어머나~ 과찬이어라. 우리 여보야가 더 멋졌는걸? 으.. 음. 여보가 그렇게 가는 걸 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 그보다, 나 이제는 키티로 호칭 고정이 되어버린걸까나..~"
들려오는 호칭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대답 후 멋쩍은 웃음이 뒤를 이었다. 역시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것. 기분이 완화되기 전에 들었을 때와 완화되고 나서 들었을 때의 반응이 다른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땐 차마 고려하지 못하고 있던 호칭이 훅 치고 다가왔으니까.
바로 반응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아. 차마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 했는데. 조금 더 참아줬다면 좋았으련만. 이렇게 약한 아이였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주양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크루시오, 섹튬셈프라. 그 짧은 시간동안 꽤 이런저런 많은 공격을 받았으니 그럴 수 있었다. 아파하는게 당연하다. 늘 그랬듯. 그런 당연한 것들을 깨닫기까지 주양은 꽤 긴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 꼬맹이.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렇게 착한 년이 아니야. 그러니까, 일단은 아파도 좀 참고 있으라고. 하여튼. 이제 좀 어때! 흐릿해지던 정신이 확 깨지 않아~?"
조금 걸리는 일이었으나 주양은 이번에도 자신이 악인이 되는 방향을 택했다. 당장 아프다고 도닥거려주고 있게 된다면 분명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지. 그동안 피를 꽤 많이 흘렸을테니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건 좋은 선택지가 못 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안고, 다른 사람을 등에 매달리게 한 채 나아가는 것은 부축하며 걸음을 맞추고 나아가는 것보다 한층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지금만큼은 평소 체력을 단련해두던 게 아쉽지가 않았다. 역시 잘 벼려둔다면 분명 언젠가는 그것을 사용할 날이 온다니까.
"집?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대신. 여기서 너네 집으로 방향을 튼다면. 너 진짜 죽는다? 나 너네 집 어디인지도 몰라서 가는데 한 세월 걸려도 상관 없나? 그런 게 아니라면, 아프더라도 꾹 참아. 정 못참겠으면.. 내 어깨라도 세게 움켜쥐던가."
애석하게도 주양 역시 다독이고 달래주는 것은 영 소질이 없었다. 다만. 조금 참아달라는 뜻을 전하며 발걸음을 적당한 속도로 유지했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 아프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아프다고 속도를 늦춘다면 영원히 아프지 않게 되어버릴테니. 아직 내기도. 라이벌 의식도. 그 어느것도 끝을 본 것은 없었다. 그러니. 절대 먼저 당신을 놓지 않을 생각으로 주양은 씩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뒤도 살짝 돌아보고.
"아무튼~ 우리 여보야는 그러고 있는 거 안 불편해? 만약 불편하다면 언제든 이야기해줘! 팔 하나 남으니까. 이걸로 우리 여보야도 한번에 안고 갈 수 있다구~? 전에는 여보가 우리를 그렇게 하고 데려갔으니까 이번에는 나도 그렇게 해 주고 싶기도 하고~"
은근슬쩍 사심을 밝히며 아하핫 하고 경박하게 웃어댔다. 사심이라고는 해도 그렇기 불건전하거나 한 것은 아니기는 했지만.
안된단는거 알고 있잖아. 레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있었다. 떠지지 않던 왼쪽 눈이 떠지자 레오는 그 와중에도 안심했다. 시력을 잃은게 아니었구나 하는데서 오는 안도감. 안도감이 찾아오려하면 금새 다시 다친 자리가 욱신거리면서 아파왔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욱신거리는 것이 참을수가 없다. 차라리 기절하고싶은 느낌. 레오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어떻게든 버티자는 생각 뿐이었다.
" 알,지. 너 세상에서 제일 개나쁜년인거 나도 아는데.. "
이 정도로 무력해진건 처음이다. 아니, 오랜만이라고 해야하나.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계속해서 아파오니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어쩌면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몸이 이렇게나 다쳐버려서 뇌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건지도 모르지. 한 차례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나니 조금은 속이 개운했다.
" 아이씨.. 나 진짜 아프다고.. 진..짜.. 아프다고 나.. "
할 수 있는거라곤 그런것 뿐이었다. 아프다고 말하거나 지금 상태가 어떤지 말하는 것. 그 정도로 무력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앞에서 그걸 다 맞아주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덜 다치고 더 많이 공격할 수 있었던건 아닐까. 그리고 다들 무사히 돌아오기도했고. 그런거라면 나쁘지 않을수도 있지만 문제는 어째서 레오였냐는 것이다. 그런 질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못참겠으면 움켜쥐라는 말. 평소였다면 레오는 자기를 개밥으로 보는거냐며 때려줬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레오는 손을 들어 주양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남은 손이 한 쪽 뿐이어서 그건 좀 아쉽게 됐다만, 잡을 수 있는 최대한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확실히 조금 나아지는 기분.
" 너 임페리오 맞은거, 기억 안나지? "
레오는 뭐라도 주제를 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여기말고 다른곳에 집중할 곳이 있다면 좋을테니까. 별 다른 의미없이 단태에게 한 질문이었다. 앞으로 걸어나와 자기 목을 졸랐던 것.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싱거울만큼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을 것이고 기억하고 있다면 팔에 힘좀 기르라고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양 쪽 모두 사실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거나, 힘이 약하다고 느꼈다는건 주관적인 것이었으니까. 정말 큰 일이 있었고 목이 졸려 기절할뻔 했었더라도 레오는 '뭐야 별 거 없네' 하고 치부했을 것이다. 레오는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강하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동시에 그런 말로 안심시키려는 의도마저도 있었다. 나쁜 사람은 못되겠네-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 ...옷 더러워진건 미안하게 됐수다. "
베인 상처가 한 둘이 아닌어서 피칠갑을 한 건 둘째 치더라도 지금도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꼭 붙어있다보니 본의아니게 다른 사람의 옷까지 핏물을 들게 만들게되었다. '미안하게 됐수다' 하고 말은 했지만 정말로 미안하냐고 묻는다면 레오는 '아니? 하나도 안미안한데?' 하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정신을 붙잡고 있기 위해서 무슨 말이던 하고 있는 것이니까. 정신을 잃는다면, 그리고 잠든다면 정말 그걸로 끝인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