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Kitty~ 나 멀쩡하게 걸을 수 있는데? 난 심하게 다치지도 않았구, 공격을 받지도 않았는걸? 이쯤되면 행운의 여신이 나를 굽어 살피는게 아닐까?"
단태는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평소와 같이 뻔뻔하리만치 능청맞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상처라고는 같은 기숙사의 남자인 친구에게 세게 맞은 얼굴과 그 친구가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리는 바람에 붙잡힌 목에 남아있는 아주 흐릿한-사실 그렇게 흐릿하지 않을- 손자국 모양 그대로 남아있는 멍뿐이었다. 갑작스럽게 숨통이 트여서 콜록거리느냐고 목소리가 쉬어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주단태는 상당히 멀쩡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짝의 부축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붙잡힌 이상, 꼼짝없이 그 손에 부축되어 걷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어서, 대신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나는 괜찮다라던가, 차라리 지금 다른 팔로 부축하고 있는 사람을 제대로 부축하는 게 어떠냐라던가.
종국에는- 샐쭉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 자기- 힘도 세지." 하는 감탄사를 늘어놓는 것으로 그 재잘거림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나를 걱정하는 것보다 자기를 걱정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달링. 자-, 이거 몇개로 보여?"
괜찮냐고 묻는 레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암적색 눈동자에 느물한 웃음기가 한껏 담기고 부축을 받은 상태로 레오의 앞에 손가락 두개를 펼쳐서 확인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미 단태에게 방금 탈들이 있었던 상황 같은 건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일단, 레오의 반응을 보니 단태는 레오가 주양과 사이가 묘하게 좋으면서도 또 묘하게 안좋은 걸 꽤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었다. 저런, 이거 완전히 중간에 끼어버린 입장인데. 멍이 들어있을 자신의 목 위에 손을 올리고 잡혔던 그대로, 남아있는 흔적을 따라 손끝을 움직이던 단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혼잣말처럼 질문을 던지는 레오를 향해 시선을 떨어트렸다. 끝났냐는 질문의 주어는 무엇인가. 지금의 상황이 끝났냐는 물음인가. 아니면 탈들의 공격이 완전히 끝났냐는 물음인가.
아니면 둘 다 포함되는 질문인가.
"쉿, 자기야. 지금은 다 괜찮을테니 크게 마음쓰지마."
상황이 모두 끝났을 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던 것처럼 주단태의 손이 레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했다.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평소와 똑같이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말하는 단태의 표정은 아주 잠깐, 슬그머니 웃음기가 사라진 표정이었다. 자연스럽게 단태는 주양에게 부축되어 있던 자세를 풀고 주양의 어깨에 팔을 둘러서 기대려했다. "난 이게 더 편해. 자기야~" 하고 덧붙히는 목소리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그것도 아주 듬뿍.
"와~ 도와주는 사람한테까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아주 멀쩡하고 팔팔한가봐? 응? 확 그냥. 이대로 놔버릴까보다~ 아무튼! 당연히 난 괜찮지. 한대도 안 맞았으니까~ 조금 불공평하게도."
물론 말이 그렇다 뿐이지 진짜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다만. 베인 상처는 움직인다면 더더욱 벌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언가에 크게 베여본 적은 없었으니까. 크루시오에 당해봤다면 당해봤지, 놀랍게도 주양은 아직 물리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적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그 사실을 왜곡해서 해석하는 것도 주양의 쓸데없는 능력이었다. 왜일까. 그렇게 진심을 다해 공격했음에도 상대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짜증으로 다가왔다. 물롬 그렇게 된 것에는 몹쓸 지팡이가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로 다가왔다. 마지막에 터지면 무엇 하나. 이미 상황은 끝나버린 뒤인걸.
"어허. 그. 그러면 여보야의 목에 남은 자국은 여보야가 그린 문신이라도 되는거야~? 그런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일단 부축받는게 어때? 전에 병동까지 데려다준 보답이라고 생각하자구~"
이윽고 주양은 제 단짝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다시 예상치 못한 호칭이 훅 들어온다. 주양의 시선이 살짝 떨렸으나. 지금은 그뿐이었다. 당신의 말에도 고집을 부리며 부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손자국 모양의 멍도 멍이었고. 아까 임페리오에 걸렸을 때 패대기 잘 치는 현궁 친구에게 맞았던 것도 그렇고. 제 라이벌만큼 심한 부상을 입은 건 아니었다만 그래도 마음이 안 쓰일수 없었으니까. 제아무리 임페리오 저주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는 하나, 마음에도 없던 도발을 했던 건 찝찝하기도 했고.
이윽고 들려온 지적 아닌 지적에 주양은 어쩔 수 없겠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부축 만으로는 불안하게 걸음을 유지하는 제 라이벌을 다 커버할수 없다고 느꼈다. 이대로 간다간 부축이 소용 없게 되어버릴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주양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가 슬쩍 자세를 낮추었다.
"꼬맹이. 아픈 건 이해하지만~ 잠깐만 참아줘~? 분명 이게. 너한테는.. 아까 전보다는, 나을 테니까! .. 그리고 괜찮아. 이젠 다 끝났어~ 안심하라구?"
그리고 단짝이 제 라이벌을 쓰다듬는 동작이 멈출때 즈음, 가벼운 기합을 주며 당신을 한 손으로 번쩍 안아들었다. 아아. 싸울 때 못 써먹엇던 힘을 이럴 때 써먹는구나. 저게 가능한가? 싶은 모양새가 되었으나 주양은 멀쩡했다. 이래뵈도 곤 사감님 기숙사에서 지낸 세월이 쌓이고 쌓여 벌써 5년이다. 이 정도는 너끈했다. 맨날 주궁 사람보다는 청궁 사람에 가까운 면모만 보여줬으니, 이젠 주궁 이름값을 좀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도 제 어깨에 둘러지는 팔에, 약간의 미소를 머금었다.
"하여튼. 우리 여보야는 못 말린다니까~? 편하다면 그렇게 하고 있어도 괜찮지만~ 그건 안 돼. 지금은 여보도 내가 부축해줘야 할 사람중 한 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난 걱정 안해도 돼. 이 정도는 가뿐해~"
이것도 못 한다면 자신은 진작 청궁에 몸 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청궁 사람들이 연약하다는 의미냐고 한다면 또 그것은 아니었지만. 주양 나름대로의 고집이 발동된 나머지, 또 여보가 안는다는 이야기 하면 여보야도 나한테 안기게 될 거야? 하고 배려 아닌 배려를 하는 것은 덤이었다.
" 하나.. 아니, 두개..? 아니다 한개.. 아, 두개야. 응. 두 개야... 하나, 둘. 두개.. "
평소였다면 장난으로 세 개라던가 열 개라던가 하고 이야기했겠지만 지금 레오는 장난을 칠 기력도 정신도 없었다. 들려오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답하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정말로 한개로 보였다가 두개로 보였다가 했었다. 흉터가 나있는 왼쪽 눈은 떠지질 않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눈은 충격탓인지 조금 흐리게 보였으니까. 그래서 레오는 제대로 떠지지 않는 오른쪽 눈으로 그 두개의 손가락마저 하나, 둘. 하고 세어가며 답할 수 밖에 없었다.
" 끝났구나. 끝난거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
사실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르지. 레오는 단태가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쓰담아주었을때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손이 닿는 순간 몸을 움찔하고 몸을 뒤로 살짝 빼려했으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거기까지는 무리였다. 그나저나 호칭이 영 신경쓰이는데. 레오는 온 몸이 아파 정신이 오락가락한 와중에도 그걸 생각할 여유정도는 있었다. 거리감이 어떻게 된 녀석이니 이 사람 저 사람 전부 그렇게 부른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불편해. 레오는 따질 기운도 없다는 듯 다리를 절며 비틀비틀 앞으로 가며 숨을 푸 - 하고 내쉬었다.
" 불공평..좋아하네.. 운이 좋았던거 다행으로 여겨.. 나 대신 네가 이 꼴이 났으면 진짜 엄청.. 놀렸을건데.. "
심장이 뛸 때마다 온 몸의 상처들이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더 걷는 건 무리일지도 몰라. 레오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싶었지만 부축받고 있는 데다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을 쥐어짜서 말했는지도 모르지.
" 서주양.. 나 못걷겠어.. 그만.. 멈춰봐. "
잠깐 쉬었다가거나 아니면 그냥 이 자리에 두고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다시 와서 마법으로 옮겨줄 수 있다면 그걸 기다리는 편이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는 없는게 이미 피를 너무 흘려 몸이 추울 정도였고 이 정도 상처로 밖에서 오래 뒹굴었다간 2차 감염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건 빨리 돌아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라는건 레오도 알고 있었다.
" 아, 잠깐, 야, 하지마! 서주양! 그만! 그만! 아....! "
몸이 들어올려지자 레오는 숨이 넘어가듯 비명을 질렀다. 목이 무언가에 막혀 소리가 제대로 나오진 않았지만, 비명을 질렀다. 온 몸의 상처가 벌어지는 느낌. 한 번 아프고 이후로는 더 편해질지 모르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엄청나게 아팠으니 비명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 레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있었다.
" 나, 그,그만.. 할래.. 이제 그만..하고싶어.. 집에 갈래. 서주양. 나 집에갈래.. 주단태.. 나 그만. 그만 하고싶어.. "
자. 오늘도 당과점에서 부인이 시켜두었던 초콜릿을 들고 올 시간이다.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 몰래 하나 쏙 빼먹어버린다면 분명 신뢰도가 깎이고 말겠지. 그럼에도 은근슬쩍 집어먹고 싶어지는 것은, 그저 가벼운 장난기 탓이었다. 주양은 고개를 세게 저으며 잡생각을 떨쳐버렸다. 전에 애 울음소리 듣고 홀려서 숲으로 들어간것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나. 가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날이 있었다. 물론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은.
>>348 끄아아악 그치만 나도 마지막을.. 마지막 체력을 불태우던 중이었...! (파르르)(추욱)(?) 어나더 레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그냥 잠이 심하게 없는것에 가까운 쪽이라서 어나더 레벨이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고..! :p 후후 아무튼 두려움에 떨어라 렝주~! (???)
더위는 죽기보다 싫은 그녀가 다시 물을 얻으러 현궁으로 가는데는 큰 이유가 없었다. 그냥 마땅히 할게 없으니까, 였다. 별궁에 틀어박혀 역사서를 뒤적이거나 그를 찾아가 놀아달라 하는 선택지도 있긴 했지만. 그 전에 좀 움직이고 싶어서 말이다. 몸이 살짝 뻐근하달까 뻑뻑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기에.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현궁까지 찾아간 건 좋은데 이번엔 기타도 안 들고 왔고 뭘 해야겠지 모르겠단 거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현궁의 후원으로 장소를 옮겨달라 말한다. 가는 길에 한가해보이는 현궁 학생 하나를 붙잡아 도우미로 데려와, 후원 한쪽 끝에 그 학생을 세워두고 손을 아래로 해서 도움닫기를 부탁한다.
"자, 그럼."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심호흡을 한 뒤 묘기를 선보인다. 핸드스프링, 일명 덤블링을 휙 하고 세바퀴를 돌아 손받침을 하고 있던 학생의 앞까지 가서, 그 손을 사뿐 딛고 공중 백덤블링으로 한바퀴 돈 뒤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한다. 마법사가 아니라 전문 체조인 같은 묘기를 선보인 뒤 깔끔하게 인사까지 하고 웃으며 말한다.
오늘의 초콜릿 상자는 한 박스. 그렇다는 것은 부인에게 좀 더 빠르게 가져다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처럼 맨 위에 있던 초콜릿 박스가 행여 떨어지기라도 할 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니까. 당과점 밖으로 나갈 때 까지는 여유를 유지하던 주양은,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학교를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는 기분은 언제 느껴도 상쾌한 것이었다.
"짜잔~ 부인. 오늘도 요청하신 초콜릿 가져왔답니다! 늘 신속하고 정확한 주양퀵을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데헷. 하며 한쪽 다리를 살짝 접어들고 마찬가지로 팔도 살짝 접어서 든 채로, 선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눈 옆에 가져다대며 세상 발랄한 포즈를 내보였다. 아. 이 엉성하면서도 의미없는 머글 따라하기. 의외로 재미있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