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이 아름답다는 건 상당히 널리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하루 두 번 배가 들어오는 관광섬. 서로 다른 종족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어떤 의미로는 이상향. 내가 이 섬, 이 마을(의 근처)에 자리를 잡은 것은 이런 요소들이 겹쳐서 나타난 운명 비스므리한 것이다. 자칭 서른이라는 열다섯 짜리 박식한 꼬맹이가 평온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그리 많지는 않았다. 둥그랗고 커다란 안경이 흘러내려 치켜올리고, 케인으로 바닥을 짚으며 걸었다. 오늘은 수업이 있던 날이다. 교사 자격 같은 건 없지만 지식은 있고, 이 마을에서 내가 그럭저럭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가르치는 것 하나하나 찾아보면 나보다 훨씬 잘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마을에도 있다(대표적으로 악기 가게를 운영중인 음악가 청년). 그래도 나 역시 헛산 것은 아니라 아는 것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도 숙지해두고 있었다. 의외로 평판은 좋은 듯 하니 나도 기뻤다. 다음 수업에 대해 조금 고민하며 걸어갈 무렵 멀지 않은 곳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관악기? 아, 오카리나? 재질, 혹은 제작 방식에 따라 음색이 다양해지기에 확신하긴 힘들지만 아마 오카리나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잠깐 보고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 그리 어둡지 않다. 잠깐 다른 곳에 들렀다 가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집에서 기다릴 레피가 떠오르지만 똑똑한 아이니까 내 걱정은 안할 것이다.
소리가 나는 곳은 해변가였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흘러가는 오카리나의 음색이 썩 듣기 좋았다. 소리의 시작 부근에서 보인 건 연한 푸른 머리카락의 엘프, 음 아니. 하프엘프였다.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종종 들르는 잡화점의 주인이니 모르기가 힘들었다. 말을 걸까 싶었지만 소리가 끊기는 것도 원치 않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아마 금방 눈치챌 것이라 생각했다.
도자기 재질로 된 푸른색 오카리나에서는 맑고 시원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푸른 바다가 철썩이는 것에 맞춰 시원시원한 음색이 만들어낸 것은 푸른 바다였다. 눈앞의 맑고 푸른 바다를 연상시킬 정도로 시원하고 철썩이는 기운을 오카리나로 연주하는 카시아는 눈을 감고 음색에 집중했다.
오늘은 잡화점을 하루 쉬는 날이었다. 아무리 잡화점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일주일 내내 가게를 열 순 없었기 때문에 최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은 쉬었다. 물론 그 외에 정말로 쉬고 싶을 땐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크게 불편함을 느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의 잡화점 말고 다른 잡화점도 있었으니, 사람들이 항상 자신의 가게로만 몰리는 것은 또 아니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연주에 집중하다 음을 끊고서 카시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나 그 순간 살짝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얼굴에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멈칫했다. 들은걸까? 들은거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는 괜히 빤히 그를 바라봤다. 물론 들어도 상관은 없긴 했지만 곧 흘러나오는 것은 괜히 툴툴거리는 목소리였다.
"뭐, 뭐예요. 거기. 무슨 구경났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요?"
혹시 무슨 볼일이 있다면 빨리 말하라는 듯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터벅터벅 걸어가 그의 근처에 멈춰섰다.
나는 빙긋이 웃었다. 저 푸른 바다 앞에서 연주하는 바다의 곡조에 귀를 기울였던 순간은 금새 아스라히 사그라지고 남은 것은, 그 음색의 주인이었으며 지금은 그걸 들켜 부끄러워하는 귀여운 하프엘프 한 명. 그러고보면 오늘은 쉬는 날이었나? 그는 쉬는 날이면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조금 궁금해졌지만 파고들 생각까지는 없었다. 조금 말고는.
"볼일은 없어요. 구경은 났지만요."
내 근처에 다가와 멈춰선 그를 향해 말했다. 현재 그는 연주가 끝나고 나서 보였던 부드러운 미소는 사라지고 다소 퉁명스러운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직감에 불과한데, 정이 많을 것도 같았다. 나는 슬며시 그가 가지고 있는 오카리나를 보고서는 아까 내 짐작이 맞았음에 몰래 기뻐했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바다 내음 나는 아름다운 노래에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요?"
이에 덧붙여 "기록에 남기고 싶은 연주였어요! 다음에는 녹음을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 당신만 괜찮다면요!"라고 했다. 조금 과장하여 금칠을 해주는 게 맞긴 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었다. 다음 수업 내용은 음악으로 하는 것도 괜찮을 성 싶었다. 악기도 어느 정도는 만들 수 있었고, 오카리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주법도 10, 아니 20.. ...50? 쯤 전에 배운 적 있고 그 뒤로도 종종 연주해왔으니 기초까지는 알려줄 수 있었다. 어느새 팔랑팔랑 날아가던 생각을 다잡고 나는 웃는 낯으로 말을 걸었다.
"하, 하프엘프는 구경거리가 아니거든요?! 섬 밖은 모르겠지만 여긴 구경거리 아니거든요?!"
물론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카시아는 괜히 그렇게 항변하듯 툴툴거렸다. 아무래도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창피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것을 숨기는 것은 아니었고 섬에 사는 이들 중에서는 그의 오카리나 연주를 들은 이도 많았다. 단지 처음 들려주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그런 감정이 있었던 모양이고, 그런 복잡한 심정을 그는 애써 감추면서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딱히 녹음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거든요? ...뭐, 그냥 듣고 싶으면 연주할 때 찾아와서 듣던가 하세요. 물론 다음에도 여기서 연주할진 모르겠지만."
물론 그가 주로 연주하는 곳은 해변가와 신수였으나 항상 그곳에서만 연주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강가에서, 때로는 숲 속에서, 때로는 등산을 하면서 연주를 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를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해변가와 신수 근처였다. 다음에 또 여기서 연주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연주할지는 그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좋은 날이냐는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면서 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주절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건 그렇고 언제봐도 신기하네요. ...아무리 봐도 성인 모습은 아닌데."
아무리 봐도 카시아의 눈에 그는 성인 느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별별 이들이 다 있으니 이런 이가 하나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시각적인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는 탓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어느 귀한집 도련님 같은 열다섯 꼬맹이가 순수 인간인데 서른이라고 해서 그랬던거였지. 나도 내가 묘한 시선을 받은 이유는 내 언행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까지 했는데 눈에 띄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내가 나를 인간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일이긴 했다. 물론 이 섬은, 그런 특이성도 대략 사흘만에 그냥저냥한 일이 되었다. 그 점이 좋았다.
"..와. 카시아씨는 귀엽네요."
행동이, 뭐라고 해야 적절한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귀여웠다. 솔직하지 못한 사춘기 소년을 보는 느낌이라고 하면 분명 화낼 것 같았다. 지금 발언에도 충분히 높은 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높은 목소리 대신 맑고 청량한 오카리나 소리가 들리면 그 곳으로 발을 돌리자. 녹음기를 들고 평온한 날 교재를 만들며 들을 음악을 늘리러 갈 때는 분명 기분이 좋을 것이다.
"음, 봐요. 방금도 구경거리가 됐네요!"
나는 장난스럽게 외치고는 부드러이 미소지었다.
"뭐 그렇죠. 당신은 내가 몇 살로 보이나요?"
보이는 것으로는 열다섯. 주장하기로는 서른. 실제로 살아보면 그 이상이라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다. 오래 살아봤자 기껏해야 세자릿 수도 못 채우는 게 대부분인 인간이다. 외형도, 내부의 장기나 특징도..인간이에요.
"왜 그걸 저에게 따지는 거예요? 구경거리라고 한 이에게 가서 따져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물론 속으로는 신기하다고 생각을 했으나 적어도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항변하며 카시아는 딱 끊어서 대답했다. 허나 그 와중 귀엽다는 그 말에 순간적으로 카시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무슨 말이냐는 듯이, 마치 속도 마법이라도 건 것처럼 그의 머리가 정말로 빠르게 양 옆으로 선을 그었다.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갑자기 왜 그런 결론이 나와요?! 귀엽다는 말을 다른 종족은 다르게 쓰는 거예요?! 아니거든요?! 절대 아니거든요?! 죽어도 아니거든요?!"
왜 그리 항변하는지는 스스로 알 수 없었으나 어쩌면 성인 나이가 된 하프엘프로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정말 많이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하프엘프 속마음이라는 것이 꽤 복잡한지라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좀 더 머리를 도리도리 휘젓다가 겨우겨우 멈췄다.
한편 자신이 몇살로 보이냐는 그 말에 카시아는 가만히 아인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정말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카시아는 목소리 톤을 살며시 낮췄다.
"잘해봐야 학교 다닐 나이? 인간의 나이 기준법은 잘 모르니까 뭐라고 하기 힘든데, 적어도 성인 모습은 아니거든요. ...동안. 그러니까 젊어보인다라는거죠? 엘프는 젊음이 오래 유지되는 종족이어서 뭐라고 하기 힘들긴 하지만 부러워할 이는 부러워하지 않겠어요? 물론 저에게도, 그게 통용이 될진 모르겠지만."
자신은 순수 엘프가 아니라 하프 엘프였다. 필시 엘프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날 것 같진 않다고 생각을 하며 괜히 오른쪽 뺨을 손으로 긁적이던 카시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이 쪽이 미안해졌다. 게다가 카시아 씨는 표정이 굳어있는 경우가 많았고 초면에서는 성격 같은 것도 잘 몰랐으니까 자신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쓴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에서는 평소에 굳어있기에 오히려, 변화가 극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 같은 상황 덕분이었다.
"귀엽다는 말에는 종족 구분이 없다구요? 상당히 대중적인 칭찬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또한, 카시아 씨는 귀여운 게 맞아요. 응. 부정할 거라면 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게 방법일 거에요?"
키득거리는 웃음일 저절로 나왔다. 생각보다 반응이 격하고 또 재미있었다. 어린 나이가 아니라서일까, 하프 엘프 기준으로도 성인인 나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런 성격인 것일까.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내 판단을 굳건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직 앳된 기색이 남아있어서 귀엽네요! 반응이 더 그렇고요!..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내 질문에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열다섯, 한창 학교에 다닐 나이라고 하면 그렇고, 동안이라고 쳐도 한계가 명확한 인상. 카시아는 부러워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젊음의 지속은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었고 나 역시 그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사실 부럽다고 한 사람들이 쪼오끔 있긴 해요. 이거 때문에 실험체 취급 받은 적도 있어서 그렇지. 그리고.. ..으응. 이건 말 안할래요!"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의 목소리는 토라진 톤으로 바뀌었다. 괜히 입술을 삐쭉 내밀지만 그래도 금방 다시 안으로 집어넣으며 카시아는 꾹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그 관련으로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일부러 오른손으로 입을 꽈악 막아보이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그는 손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한편 실험체라는 말이 나오자 카시아는 눈을 꾹 감으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의 입이 열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심정은 조금 복잡하다는 듯, 고개를 괜히 젓던 카시아는 곧 눈을 떴다. 이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 그를 눈에 담으면서 입을 열었다.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 캐는 취미는 없거든요. 정보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잡화점 주인일 뿐이에요. 실험체 취급이라는거, 당해본 적은 없지만 그다지 유쾌하진 않을 것 같고 됐어요. 그런 거 말 안해도. 적어도 여기선 그런 일은 없을테니까."
말을 마친 그의 시선은 곧 저 바다로 향했다. 저 너머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이 가르드 섬을 앞으로도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굳히면서 그는 곧 피식 웃어보였다. 아홉살 여자애라니. 그 정도 나이라면 누구나 멋져보일 거라고 생각을 하며 그는 괜히 자신의 어깨에 올려둔 묶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이야기했다.
"원래 그 정도 나이에는 누구나 다 멋져보이는 법이거든요? 기왕이면 아홉살이 아니라 좀 더 나이가 있는 제 또래의 여성 하프 엘프에게 그런 말을 들어보고 싶네요. ....아니. 조금만. 진짜 조금만. 정말로 조금만."
곧 말을 정정하면서 괜히 다른 쪽을 바라보며 그는 입을 꾹 다물다가 삼 초 정도 지난 후에 숨을 약하게 내쉬면서 괜히 발로 모래를 긁었다.
처음에는 반 정도만 진심이었다면 지금은 5분의 1정도가 진심이 되었다. 생각보다 그의 행동이 귀여웠던 탓이다. 손으로 자신의 입을 꽉 막아보이는 모습에 무심코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알 것 같아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귀엽다는 말을 더 하진 않았다. 원래 이런 건 어느 정도 했을 때 멈추는 거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터트리는 거지. 함정이란 연이어서 까는 것 보다는 생각에서 잊혀졌을 거라 에상될 부근에 설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쵸! 여긴 평화로우니까요. 모든 이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어떤 의미로는 이상향이죠! 저도 이 섬, 좋아해요."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흩날리는 백색 머리카락을 매만지고선 저 너머 수평선을 보았다. 섬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벽. 저 너머에서는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을 것이다. 평온을 바란다면 이 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도 방법일테다.
"그래도 뭐, 저는 언젠간 떠날테지만요. 휴가 삼아 온 거라."
하지만 그렇기에 존재하는, 바다 너머 세계의 놀라움이 있다. 불행과 행복은 거울에 비치는 것과 같아서 어느 것 하나만 있을 순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통과 공포, 잔혹한 세계의 틈새에는 기적과 희망, 찬란한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는 하프엘프 여성이 몇 있는데 소개해줄까요?"
아홉살 여자에가 아니라 인간 기준 열아홉살 하프엘프가 있었다. 그 외에도 몇 명 아는 이들이 있다. 연락하면 와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카시아의 이상형의 편린을 알게 된 나는 언젠가 누구 한 명 초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하프엘프생이 얼마나 긴데.. 사랑 한 번은 해봐야지..
"그거 이제 알았어요?"
인기왕이 맞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여태껏 살면서 받아온 고백의 수를 합치면 양 손이 모자랐다. 이게 인기가 좋아서인지 오래살아서인지는 나도 헷갈렸다.
"피, 필요없거든요?! 뭔가 이성을 소개해달라고 하는 것 같잖아요! 그, 그런 것은 아무래도 조금 뭔가, 그러니까, 그게..."
점점 변명하듯 그의 목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운명이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잖아요 등등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면 어쩌면 그건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던 카시아는 두 손을 올려 자신의 뺨을 강하게 치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톡 쏘아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개를 받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우와. 살면서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이는 처음 봤는데."
이제 알았냐고 하는 그의 말에 카시아는 정말 대단하다는 듯이 자신도 모르게 질린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물론 조롱이나 경멸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이를 본 적이 없기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는데 저 정도의 뻔뻔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말해두는데 이상한 짓 하지 마요. 괜히 상대에게도 민폐고.. 아니. 애초에 제가 연애를 하고 싶은 것처럼 되었잖아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절대 오해하지 말라는 듯 그는 고개를 크게 휘저으면서 두 손도 휘저었고 이내 그에게서 떨어진 후, 모래밭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철썩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