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운 것은 잘 모른다. 7살까진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로서 살아왔고, 그 사건이 있은 후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그저 죽길 바랬다. 그리고 은후에게 구해져 그 이후로 아직까지도 난 그 이유와 만나지 못했다. 누군가 삶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초콜릿 상자 속에 여러 초콜릿이 들어가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고 했을 때 좋아하는 걸 자꾸 먼저 먹어버리면 그 다음엔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된다고. 하나는 삶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을 얻게 될지 모른다고. 어쩌면 나는 그 초콜릿 상자를 다 먹기 전에 버리려 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쓴 맛을 먹고 그 다음 초콜릿이 두려워졌기 때문에. 간신히 버리지 않고 양 손에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초콜릿을 먹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상의 쓴맛을 입에 대게 될까봐.
삶이 초콜릿 상자라고 했을 때, 그것은 분명 각양각색의 초콜릿이 들어있는 상자일 것이다. 죽기 전까지 그 초콜릿을 다 먹지 못하는 사람도, 나처럼 쓴 맛에 질려 그 초콜릿 상자를 버리는 사람도, 버리지 못하더라도 더이상 초콜릿을 먹기를 주저하게 되는 사람도, 그리고 쓴 맛도 단 맛도 모두 자신만의 초콜릿 받아들여 먹는 사람도. 난 쓴 맛은 싫어한다. 잘 먹지 못하거든.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지금 내 눈 앞의 초콜릿은, 단순히 단 맛이 아닌 달콤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절제된 약한 쓴맛과 고소한 너트까지 들어있어 절대 잊지 못할 맛이라고. 그리고 그 맛은 입에 대는 순간 그 사라지지 않는 달콤함과 부드러움에, 앞으로 그 어떤 쓴맛의 초콜릿을 먹게 되더라도 그것 덕에 먹을 수 있게 되리라고.
분명 지금까지의 나는, 초콜릿 상자를 단지 '쥔' 상태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다르다. 아마 이제부터 난, 그 어떤 맛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내가 모든 인생의 초콜릿 박스를 먹기 전까지 함께할 그 끝나지 않을 달콤함과 함께.
"........."
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상냥한 장난기 섞인 그 말에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것마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나의 고장난 머리가 그 어떤 명령도 내리지 못하는 사이 릴리는 남아있는 피자를 모조리 흡수했고 61분만에 피자를 전부 해치울 수 있었다. 난 거의 아주 살짝 거든 수준이었지만.
그녀는 급박한 식사에 숨을 몰아쉬곤 얼굴을 감싸더니 스스로 자기 앞머리를 헝크러트렸다. 너무 많이 먹어서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엔 서로의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채우는 것 일수도, 그것에 상처를 내는 것 일수도 있다. 채운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채워지는 것도 아닌, 마음이라는 병엔 여러 방이 나뉘어 있어서, 한 사람이 상대방의 모든 빈 부분을 채우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 일부분을 채워보기도 했고, 혹은 한순간 채워진 것 같은 감각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아 금방 말라버리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것이, 이번엔 확실하게 달랐다. 이것은 그 빈 부분에 채워넣은 것이 아닌, 그저 거대한 바다에 내 작은 병을 던져놓은 꼴이었으니까. 바다 속에 빠진 병은 점점 가라앉고, 구멍난 부분을 한순간에 파고들어 꽉 채워버린다. 아니, 표현이 옳지 않겠지. 병이 채워진 것이 아닌 그저 바다에 던져진 것이다. 넓고 끝 없는 바다 속에. 그저 그대로 계속 깊이 잠수해 가듯이.
구멍난 병을 채우랍시고 바다에 던지다니, 룰 위반도 이런 룰 위반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것이 룰 위반이든 어떻든, 병을 가득 채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아주 길게 내쉬었다. 역시 급박한 식사에 조금 체한 것일까? 그렇다면 100% 나의 탓이다. 데려와놓고 제대로 먹기는 커녕, 그녀가 전부 해결해 주었으니까. 이내 고개를 든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이전에 나와의 음악 승부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수줍어하는 얼굴이었다. 타인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고, 지금의 릴리는 나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겠지. 그렇다면, 나의 마음도 정확히 똑같이 비추어지고 있을까? 내가 바라는, 생각하는 그대로? 이렇게 타인의 반응이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 싫으면 싫은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했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눈 앞의 문이 올바른 곳으로 이어지는 문인지, 이 곳을 연 뒤엔 무슨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도 없으며, 내가 원하는 풍경이 아니라면 열기 싫을 정도로 두렵다.
허나 그 방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나는 스스로 인식하지 않은, 그저 몸이 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다.
"릴리. 나-"
그렇게 머릿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단어라고도 할 수 없는 말을 나열하려고 했을 때에-
"È bello, È bello!"
옆에서 지켜보던 쉐프가 콘서트에 열광하여 앵콜을 하듯 눈물을 흘리며 크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 impressionato!"
그 목소리도, 박수소리도 어찌나 큰지 레스토랑 내의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거구의 쉐프가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리고 연신 감동하고. 남자는 일어서서, 앉아있는 여성의 손을 잡고 있는 그런 모습을 모두가 보고 있었다.
"제가 커플 푸드 챌린지를 연 것 또한, 이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야 말로 진정 제가 원하던 사랑하는 사이의,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분에겐 한 달이 아닌 이 레스토랑이 끝나는 그 날까지 무료로! 피자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Sono rimasto davvero colpito!"
쉐프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앞치마로 닦더니 연신 박수를 친다. 그 소리에 주방의 쉐프들도 나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뭐지? 이게 그 인간의 사회성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다른 커플들도, 커플이 아닌 손님도 어리둥절해 하더니 그 자리에서 점차 박수소리가 나오기 시작해, 이내 점내의 모든 사람들이 서있는 가쉬와 앉아서 손 잡힌 릴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사실 위에 좀 고민했어요. 아래 병 부분은 조금 과한가 싶어서 뺄까 했는데, 그런 것보다 가쉬의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쓰는게 낫지 않을까 해서 과할지 몰라도 남겨뒀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