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책을 두자 그녀는 너무나도 귀엽게도 내 예상대로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일부러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기다려 책을 홱 당겨 그녀의 손 멀리서 책이 저 멀리 달아나는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짜릿해! 즐거워! 최고야! 명백하게 놀리는 듯한 장난에 그녀는 이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아니. 어떻게 해서든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나에게 책을 살거냐고 물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은 프로 장난러(그런건 없지만)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아, 미안미안. 응. 나도 사실 이 책을 사려고 서점에 온거거든. 그런데 마침 한 권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고, 마아아침 나와 똑같이 이 책을 노리는.. 꼬마 아가씨가 있었네?"
나는 순순하게, 정보를 - 정보라고 할 것도 없지만 - 그녀에게 말 해주었다. 이것으로 어느정도 화가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의 가학심은 다음 계획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마냥 나쁜 사람은 아냐. 우리 꼬마 아가씨가 이 책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주 자아아알 알겠어. 필사적으로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었으니까 말이지?"
왠지 꼬마라고 부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는 것이 너무나도 재밌어 '일부러' 그녀를 부르는 호칭을 꼬마 아가씨로 해 그녀를 부른다.
"하지만 나도 이 책을 저어어엉말 갖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꼬마 아가씨가 이 책을 갖고 싶다면. 으~음..."
나는 고개를 돌려 "으음..." 하는 생각할 때의 낮은 신음을 흘렸다. 나의 장난 회로가 16기통 엔진으로 돌아가며 이 상황에서 가장 재미있을 만한 것을 떠올리려 했다. 길지 않은 시간, 나는 다음 장난을 떠올리고 가볍게 책을 '통' 하고 주먹으로 쳤다.
" 두 주먹을 쥐고 턱 밑으로 모은 자세로 아주 자아아알생긴 오라버니. 부디 오라버니께서 들고 계시는 책을 저 [꼬마 아가씨의 이름]에게 건네주실 수 없으신가요? 하고 말하면 생각해볼게. 어때?"
그렇지만 바닥에 콩, 하고 떨어지는 릴리의 구두 뒷굽 소리는 이미 ‘충분히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고 광고해 주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릴리는 명석한 두뇌를 발휘하여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이 곤경을 분석해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지금 이 상황은…….
…… 이건 시험이다.
샤르티에 집안의 비전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인생은 언제나 시험받는 것의 연속이고, 자기가 처한 시험과 함께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늘 명석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진리로 향하는 길이라고…….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가…… 가져가지…… 그…… 래……!”
그렇다! 연금술의 해법 일부가 들어 있을 법한 책을 흔쾌히 포기할 수 있는가? 책과 글은 어디까지나 보물상자를 여는 열쇠이며 진리는 자물쇠의 너머에 있다. 지금 저 책을 구하는 데 눈이 멀어서 무슨 일이든지 했다간, 처음 보는 인간한테 망신만 산 채로 진리에서 멀어지는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 유의 시험이겠지!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 부실한 건물처럼, 릴리의 애써 지은 웃음은 화산 폭발 현장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릴리의 표정 요정(가상의 존재)들에게는 이미 대피령이 내려지고도 한참 지났다.
“나는 당장 읽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헤헹……. 그으…… 그으렇게 읽기를 원하신다면야…… 나야 물론 흔쾌히 넘겨 드리지……. 이런 데서는 양보하는 게 도덕 아니겠어……? 자, 얼른…… 가져가시라구.”
이것이 릴리가 생각해 낸 답안이었다. ‘어때? 이번 시험은 통과겠지?’ 그러고는 머릿속의 헤르메스한테 한 방 먹였다는 듯이 마음속으로 메롱을 날렸다. 하지만, 하지만……!
이미 그녀의 행동으로부터 이 책을 노리고 있다는 것 쯤은 눈치를 밥 말아 먹은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온 몸으로부터 '저는 그 책이 필요합니다.' 오오라를 뿜고 있었으니까. 나는 마음 속에 기대를 잔뜩 품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뭐라고 할까? 흥칫뿡하며 '그런 책 필요 없어! 흥!' 하고 돌아갈까? 아니면 부끄러워하며 못하겠다고 할까? 아니면 부끄러워 하면서도 결국 내가 제시한 행동을 취할까? 자, 보여줘. 너의 해답을 보여줘 꼬마 아가씨! 그러고보니 아직 이름도 듣지 못했네.
이내 그녀가 취한 행동은, 내가 예상했던 몇 가지 행동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녀는 온갖 힘을 짜내어 평정심을 유지하려 하며 나에게 책을 '양보' 했다. 물론 그녀의 행동으로부터 유츄해봤을 때,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양보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각오' 한 것이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양보할 '각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신념? 아니면 지기 싫다는 마음? 어찌됐든, 흥이 깨졌어. 솔직히 조금 미안해졌다. 사실 양보보단, 저 곧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에 내 가학심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
나는 아주 약하게,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약하고 부드럽게 톡 하고 그녀의 머리 위로 책을 올렸다.
"소유권은 넘길게. 다만.. 나도 궁금하니까.. 같이 읽는건 어때? 그러고보니 이 주변에 벤치도 있었고.."
나는 조금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서야 착한 오빠 흉내를 내봤자 통할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축산물상가의 시뻘건 조명이 좀 켜져 있는 곳을 걷고 있었는데 어디서 끼얹어진지 모를 피를 뒤집어쓰고 대체 뭐야! 하면서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경찰입니다. 하고 혈흔이라는 것에 이야기하고는 수상한 거 못 봤냐는 것에 못 봤다고 한 뒤에 체포된 걸 보니 그 경찰이 범인이라는 이야기라던가(대체)(*쌩 지어낸 이야기)
귀신.... 귀신 먹이려고 혈안된 사람도 있을 거고. 귀신에게 시험해볼 게 많은 분도 있을 거고.. 귀신은 원래 화력을 잡는 거라며 총을 난사할 분도 있을 거고 귀신을 방패로 찍어버리는 분도 있을 거고.. 귀신이 들러붙으면 제 것이와요 하면서 메리가 이하생략도 있을 것이다...(아무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