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는 ‘대부분’의 책이 있다. 대부분이란 곧 모든 책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고, 낡고 낡아서 ‘이쯤 되면 도서관에 기증해 버려도 아깝지 않겠다’고 생각될 법한 책과, 아주 드물고 드물어서 경매 사이트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표를 달고 팔릴 엄두도 내지 않고 있는 책 중에서는 후자가 더욱 적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렐리 샤르티에의 『책사냥』의 날.
청월의 도서관에는 시류가 반영된 학술적인 서적은 많이 있지만, 반대급부로 문학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마니악하고 세심한 컬렉션을 구비하고 있지는 않다. 더구나 귀하고 드문 책을 구비해 놓느니 다른 베스트셀러를 들여 오는 것이 도서관 운영에 있어서도 합당했으므로, 지금 릴리가 찾는 책은 이 ‘책의 던전’이라고밖에는 묘사할 길이 없는 서점에서 찾는 것이 빨랐다.
“…… 이렇게 생긴 책 못 보셨습니까─!”
그도 그렇고 정말 던전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몇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건물에서 얄팍한 책 한 권을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약간 쉬운 정도에 불과하니 말이다. 릴리는 서가 앞에 놓여 있는 계단을 올라, 인식표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마침내 찾은 한 권으로 손을 뻗는다.
도서관에는 '대부분' 의 책이 있다. 어쩌면 내가 찾는 책이 있었을지도. 하지만 문제는, 나는 '도서관 출입 금지' 라는 것이다. 영원히까진 아니지만, 거의 근 한 달 간의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했다. 이유? 우선 잦은 책 연체가 있겠군. 내킬 때 느긋하게 읽는 성격인 나는 곧잘 반납일을 잊고 대여한 책을 오랫동안 갖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이곳 저곳 싸돌아다니는 탓에 도서위원에게 잡히지 않는 점도 있고. 그리하여 도서위원에게 "가쉬씨! 이제 대여는 금지입니다.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에서 읽으세요!" 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책을 읽다 심심해서 하모니카를 불어 연주를 한 탓에 그나마 도서관에서는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아예 출입 금지가 된 것이다.
'억울하다.'
'난 나쁘지 않아.'
'나쁜건 세상이야!'
그렇게 속으로 투털거리며 나는 시내의 서점으로 향했다. 마침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는 날이기도 하고, 꽤나 인기가 있는 탓에 어쩌면 재고가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1달쯤 기다리면 다시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지 몰라도, 궁금해서 한 달을 어떻게 버텨! 거기에 웹서핑을 하다 스포일러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궁핍한 사정에도 나는 책을 사기로 했다.
"이 책 나왔죠?"
나는 서점의 안내원에게서 책의 위치를 물어 해당 책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요즘 세상엔 책이 너무 많아. 반쯤은 불살라 없어져도 상관 없을텐데. 그렇게 혼자 금기와도 같은 생각을 하며 인식표를 손으로 짚으며 걷다 마침내 찾은 한 권으로 손을 뻗는 도중, 나와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손을 뻗는 한 아이가 있었다.
초등~중등생으로 보이는 키에 핑크빛 머리의 귀염상을 한 꼬마아가씨였다. 아무래도 이 한 권 밖에 남지 않은 책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 꼬마야. 책은 전쟁이야.(?)
나는 아마도 키가 닿지 않을, 까치발을 해도 닿지 않을 그녀 대신에 홱 하고 책을 뽑아든 뒤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 사람이 손이 닿지 않는 책을 책을 뽑아 준 덕에 책의 표지를 조금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연금계에서 요즘 핫하다는 바로 그 책. 마도서일 가능성이 제기되어, 상징 해독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지만 연단연금부에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그 책이었다.
재고는 한 권 뿐이에요─. 하고 점원이 호들갑을 떨어 가며 위치를 안내해 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책…… 살…… 읽을…… 거냐…… 요……?”
애써 웃음을 유지하며 릴리는 물었다. 그래, 릴리 본인의 키가 작은 것은 사실이니까, 어디까지나 책을 대신 꺼내 주기 위한 선의로 저 책을 꺼낸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그런 것치고는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각도가 낮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도 있지만 말이다.
“아, 인사 먼저……. 안녕하시온지 아룁니다. 그 책, 사실 건가요?”
웃고 있는 입꼬리는 상당히 떨리고 있지만 애써 기품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이런저런 서점에서 모조리 절품이었으니, 저 책을 놓치면 막차를 보내고 까치밥을 따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놓치고 싶지 않다……! 싱긋 웃음짓고 있는 눈동자에서 조용히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깡총 뛸 줄도 모르는 땅콩인 줄 알고 꺼내 주었다고 해도…… 지금 넘겨준다면 넘어가 줄 수 있어……!’
보아하니 인상도 선하고 잘생기고 훤칠…… 까지는 모르겠지만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니 성격도 쾌남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음! 그 정도라면 릴리는 자기 키에 대한 컴플렉스 정도는 얼마든지 넘어가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책을 살거냐고 묻는 꼬마 아가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거기에 마치 눈 앞에서 먹이를 빼앗긴 것과 같은 아기고양이와 같은 표정! 곧 울 것 같으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나의 가학심을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응응. 나는 안녕해, 꼬마아가씨. 그리고- 이 책 말이지?"
나는 일부러 살거냐는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책을 쥐고 몇 번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물론 이 책을 찾으러 여기까지 온 이상. 그리고 이것이 유일한 재고인 이상 살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을 굳이 지금 곧바로 저 소녀에게 밝힐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놀리듯 책을 살펴보다, 힐끗 그녀를 보니 아까와 같이 울먹거리는 듯한 눈이 이젠 눈 앞의 먹이를 빼앗으려는 맹수와도 같이 불타기 시작했다. 호오, 호오. 도망치지 않는 것인가?
나는 말 없이 책을 그녀쪽으로 건네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폴짝 뛰면 닿을까 말까한 아주 절묘한 위치로 책을 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 책을 쥐기 위해 점프하면, 그것과 동시에 나는 책을 다시 내 쪽으로 당겨 그녀가 쥐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내가 노리는 것은 마치 고양이를 쥐모양 장난감으로 데리고 노는 것과 같았다.
진정해라 오렐리 샤르티에! 키가 작으면서도 떳떳하게 훌륭한 가디언 후보생으로 활약하고 있기에 더더욱 대단한 것이다! 아버지도 그렇게 말했고 말이지! 범인들이 겉모습만 보고 착각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고! 그리고 저렇게 선뜻 건네 주는 걸 보면 착한 사람인 건 맞잖아! 그러니까! 분노를 거두어 오렐리!
라고 릴리는 내면의 자신에게 마음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아, 감사히……. 좋은 책이지, 그거.”
그렇게 애써 억누른 분노는, 이윽고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팔이 닿지 않는 거리라 까치발을 들면, 까치발을 들어 키가 늘어난 만큼 책이 도망갔다. 참매가 허공에서 사냥감을 낚아채듯 멋있게 뛰어서 책을 잡으려고 해도 책은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기다린다. 몇 번 깡총대던 릴리는 이제 명백히 파들파들 떨리는 안면 근육을 억지로 웃는 방향으로 고정하면서, 떨리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물어보았다.
“…… 그 책 말인데, 살…… 거야? 당신?”
후후후. 이렇게 웃는 얼굴로 물어보는데 대답하도록 해. 마치 그렇게 강짜를 놓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전혀 위압감은 들지 않았지만) 릴리는 계속해서 뛰면서 책을 향해 팔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책을 두자 그녀는 너무나도 귀엽게도 내 예상대로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일부러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기다려 책을 홱 당겨 그녀의 손 멀리서 책이 저 멀리 달아나는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짜릿해! 즐거워! 최고야! 명백하게 놀리는 듯한 장난에 그녀는 이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아니. 어떻게 해서든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나에게 책을 살거냐고 물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은 프로 장난러(그런건 없지만)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아, 미안미안. 응. 나도 사실 이 책을 사려고 서점에 온거거든. 그런데 마침 한 권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고, 마아아침 나와 똑같이 이 책을 노리는.. 꼬마 아가씨가 있었네?"
나는 순순하게, 정보를 - 정보라고 할 것도 없지만 - 그녀에게 말 해주었다. 이것으로 어느정도 화가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의 가학심은 다음 계획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마냥 나쁜 사람은 아냐. 우리 꼬마 아가씨가 이 책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주 자아아알 알겠어. 필사적으로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었으니까 말이지?"
왠지 꼬마라고 부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는 것이 너무나도 재밌어 '일부러' 그녀를 부르는 호칭을 꼬마 아가씨로 해 그녀를 부른다.
"하지만 나도 이 책을 저어어엉말 갖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꼬마 아가씨가 이 책을 갖고 싶다면. 으~음..."
나는 고개를 돌려 "으음..." 하는 생각할 때의 낮은 신음을 흘렸다. 나의 장난 회로가 16기통 엔진으로 돌아가며 이 상황에서 가장 재미있을 만한 것을 떠올리려 했다. 길지 않은 시간, 나는 다음 장난을 떠올리고 가볍게 책을 '통' 하고 주먹으로 쳤다.
" 두 주먹을 쥐고 턱 밑으로 모은 자세로 아주 자아아알생긴 오라버니. 부디 오라버니께서 들고 계시는 책을 저 [꼬마 아가씨의 이름]에게 건네주실 수 없으신가요? 하고 말하면 생각해볼게. 어때?"
그렇지만 바닥에 콩, 하고 떨어지는 릴리의 구두 뒷굽 소리는 이미 ‘충분히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고 광고해 주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릴리는 명석한 두뇌를 발휘하여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이 곤경을 분석해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지금 이 상황은…….
…… 이건 시험이다.
샤르티에 집안의 비전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인생은 언제나 시험받는 것의 연속이고, 자기가 처한 시험과 함께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늘 명석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진리로 향하는 길이라고…….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가…… 가져가지…… 그…… 래……!”
그렇다! 연금술의 해법 일부가 들어 있을 법한 책을 흔쾌히 포기할 수 있는가? 책과 글은 어디까지나 보물상자를 여는 열쇠이며 진리는 자물쇠의 너머에 있다. 지금 저 책을 구하는 데 눈이 멀어서 무슨 일이든지 했다간, 처음 보는 인간한테 망신만 산 채로 진리에서 멀어지는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 유의 시험이겠지!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 부실한 건물처럼, 릴리의 애써 지은 웃음은 화산 폭발 현장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릴리의 표정 요정(가상의 존재)들에게는 이미 대피령이 내려지고도 한참 지났다.
“나는 당장 읽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헤헹……. 그으…… 그으렇게 읽기를 원하신다면야…… 나야 물론 흔쾌히 넘겨 드리지……. 이런 데서는 양보하는 게 도덕 아니겠어……? 자, 얼른…… 가져가시라구.”
이것이 릴리가 생각해 낸 답안이었다. ‘어때? 이번 시험은 통과겠지?’ 그러고는 머릿속의 헤르메스한테 한 방 먹였다는 듯이 마음속으로 메롱을 날렸다. 하지만, 하지만……!
이미 그녀의 행동으로부터 이 책을 노리고 있다는 것 쯤은 눈치를 밥 말아 먹은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온 몸으로부터 '저는 그 책이 필요합니다.' 오오라를 뿜고 있었으니까. 나는 마음 속에 기대를 잔뜩 품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뭐라고 할까? 흥칫뿡하며 '그런 책 필요 없어! 흥!' 하고 돌아갈까? 아니면 부끄러워하며 못하겠다고 할까? 아니면 부끄러워 하면서도 결국 내가 제시한 행동을 취할까? 자, 보여줘. 너의 해답을 보여줘 꼬마 아가씨! 그러고보니 아직 이름도 듣지 못했네.
이내 그녀가 취한 행동은, 내가 예상했던 몇 가지 행동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녀는 온갖 힘을 짜내어 평정심을 유지하려 하며 나에게 책을 '양보' 했다. 물론 그녀의 행동으로부터 유츄해봤을 때,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양보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각오' 한 것이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양보할 '각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신념? 아니면 지기 싫다는 마음? 어찌됐든, 흥이 깨졌어. 솔직히 조금 미안해졌다. 사실 양보보단, 저 곧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에 내 가학심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
나는 아주 약하게,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약하고 부드럽게 톡 하고 그녀의 머리 위로 책을 올렸다.
"소유권은 넘길게. 다만.. 나도 궁금하니까.. 같이 읽는건 어때? 그러고보니 이 주변에 벤치도 있었고.."
나는 조금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서야 착한 오빠 흉내를 내봤자 통할지 어떨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