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친구야, 엄마."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두 뺨은,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상기되어 있었다.
🏵 이름: 서영혜
🏵 성별: 女
🏵 나이: 17
🏵 외관: 176cm. 체형은 슬렌더. 전반적인 인상은 수수하고 무덤덤하며, 만듦새는 몹시 곱지만 아주 조금 차가운 여학생. 어딘지 무심하고 세상 모든 것이 따분하다는 것처럼 졸린 듯한 눈매다. 낮게 깔린 짧은 눈썹은 처음 그녀를 보는 이들에게는 다소 다가가기 어렵다는 인상까지도 자아낸다. 실제로 성격이 그런 탓도 있지만······. 그러나 어떤 친구의 앞에만 서면 그 무심한 눈매 사이로 눈동자가 조용히 반짝인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도 제법 있다. 그럴 때는 차가운 무표정이 어떻게 감정을 드러낼 줄 몰라 쩔쩔매는 무표정으로 바뀌어 보이기도 한다나. 물론 그 당사자가 그것을 깨닫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라나는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늘상 대충 묶어 뒤로 넘겨 놓아서, 대개 희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드러내고 다닌다. 때로는 똬리를 지어서 연필로 비녀를 꽂거나, 고무줄이 없어서 이어폰 줄로 묶어 두거나 하는 등. 그런 목 아래로 이어지는 신체의 선은 가늘고 호리호리하다. 패션 따위는 개의치 않고 대충 옷을 주워 입어도 어느 정도 스타일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 가느다란 선의 진가가 드러난다. 굴곡은 희미한 편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그녀를 더욱 기다랗게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아울러 그녀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가꾸어진 외모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다지 관리가 되어 있지도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도 나타나는 내재적인 아름다움의 아우라 때문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소꿉친구와 단 둘이서 놀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주 엷게 화장이 되어 있거나 리본 머리핀을 끼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기분 탓일까.
🏵 성격: 천재라는 말은, 그 재능의 출처가 '하늘에서 받은 것'이라고밖에는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 특출나지도 않은 집안 출신에 무언가에 노력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녀는 이미 대부분의 것을 파악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으며, 마음먹기에 따라 어지간히 능숙한 사람만큼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고방식이 '시간과 공을 들여 무언가를 습득한다'는 일반적인 학생의 것과는 사뭇 다르며, 시험기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사색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것으로 보낼 뿐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또래가 얼마 없었기 때문에 과묵하다. 사회적 관계의 필요성 자체는 이해하고 있지만, 수다떨기보다도 그 시간에 차라리 책을 읽거나 소꿉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그리고 낯도 상당히 가리기 때문에) 친구는 적다. 아니, 거의 없다. 고독하게, 심하게 말하면 냉랭하게도 비치는 이런 성격은,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누군가의 앞에서는 조금 바뀐다. 그녀의 소꿉친구 앞에서는. 과묵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것은 떠오르는 여러 말 가운데 어떤 말이 곱고 예쁜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서이며, 조금 무뚝뚝하게 시선을 살짝 돌리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주볼 때 떨리는 눈동자와 상기된 목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다.
🏵 특징: 1. 마찬가지로 집안의 외동딸. 가정 형편은 완전히 서민적이다. 방임주의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는 무관심 속에서 자랐으며, 이로 인해서 지나치게 발달한 독립성과 혼자서도 무엇이든 해내는 재능이 맞물려 타인과 섣불리 가까워지기 힘든 성격이 형성되었다.
2. 물론, 그런 독립적인 성격에는 반대급부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 필요했으며, 그것이 바로 어린 시절에 만난 소꿉친구였다. 타인에게 하고 다니는 말에 따르면 '단짝'이지만, 사실은 의존하고 있다.
3. 부모님 두 분 다 키가 크고 겸연쩍은 성격. 가족사진을 보면 꼭 고딕 양식의 성당 같은 느낌이다.
4. 연애에는 천재가 아닌지, 반 친구들의 연애담 자리에 대뜸 머리를 들이밀고는 아무 말도 내뱉지 않으며 주의 깊게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추궁하는 질문에는 끈질기게 침묵하며 말수가 평소의 0보다도 내려가 마이너스가 된다.
안착이야! 그리고 0레스가 너무너무 완벽하다...(입틀막) 영혜의 물음도 귀엽고 수아가 비 내리고 있으니 그 밑에서 우산 펼쳐 쓰는 것도 너무 귀엽고...! ㅋㅋㅋㅋㅋ 그리고 오타 낸 영혜주도 귀엽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트에는 제대로 기재되어 있으니 괜찮을거야!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영혜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다가 갑자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맞다 그리고 첫 일상이나 그 외의 설정이라던가, 아무튼 의논이 필요할 것 같아 보이는 부분은 내일 마저 진행해도 괜찮을까? ㅠㅠ 원래는 더 늦게까지 깨어있긴 하는데 오늘은 월요일이라 그런가 평소보다 일찍 졸음이 와서...
아하 그러고보니 리얼타임제로 할지 아니면 따로 시간선을 잡아야 할지도 중요하겠네! 일단 나는 리얼타임제보다는 새학기 시작하는 시간대로 잡는 것도 괜찮다 싶었는데 리얼타임제로 하면 이제 곧 방학이라 방학 동안의 이벤트를 할 수도 있을테고... 으음 고민이네... 영혜주는 어떻게 하고 싶어?! 일단 나는 기본적으로 전자의 경우를 생각 중이었는데, 그러다 중간에 뭐 하나씩 넣어서 터트려줘도 될 것 같아! 다만 그런 사건을 넣으려면 아무래도 일단 일상도 몇 번 돌려보면서 서사를 쌓은 뒤에야 가능할테니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네!
꼭 리얼타임제로 하지 않고 새학기부터 시작하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방학은 찾아오니까, 신학기라는 설정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입학 직전의 겨울방학 말미부터 출발한다거나! 사립고일 테니까 고입 합격발표도 있을 테고 배치고사, 반 배정 같은 이벤트도 있으니 말이지. 두 사람한테는 매년 3월이 서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기니까 나름대로 이야기할 개연성도 있을 것 같고!
좋아 좋아! 겨울방학 중부터 시작한다면 살짝 프롤로그? 도입부 같은 느낌이 되겠다. 어느 쪽이든 편한 설정으로 시작하면 될 것 같아! 합격발표 이전이라면 혹시나 둘 중 누가 2순위로 가게 될까봐 몰래 불안해하는 영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지금 바로 시작하는 거면 선레를 정해 볼까!!!
그렇군! 사실 나도 기억이 안 난다... 너무나도 까마득한 옛날인걸 ㅠㅠ 음~ 겨울방학 도중이면 아무래도 인터넷에서 확인하는 편이 가장 무난하려나? 아 그러네 학교 이름! 학교 이름도 꽃 이름을 따다 짓는 편이 좋으려나? ㅋㅋㅋㅋㅋㅋ 정 생각이 안 나면 일단 XX고 같은 식으로 대충 얼버무려두고 나중에 정해도 될 것 같긴 하지만!
창에 부딪친 빗발은 흘러내리지 않고 그 자리에 맺힌다. 서영혜는 베란다에서, 살짝 김이 서린 창문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수아와는 어제도 연락하기는 했지만, 신새벽에 일어난 지 두어 시간이 된 지금까지도 목소리는커녕 문자로 된 인사조차 읽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은 동이 트지도 않았으니까, '안녕?' 하고 문자를 보내기도 무엇해서다. 단 하루라도······ 하루라도 정수아라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면 자신은 어떻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영혜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 버린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비 오는 새벽은 좋아했지만.
날이 갈 수록 조마조마해지고 있다. 합격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영혜가 아닌 수아이겠지만, 내심으로 더욱 초조한 것은 영혜일지도 몰랐다. 가슴이 베란다 밖 난간의 철봉에 부딪친 빗방울처럼 콩닥하고 튀어오른다. 지금까지 일곱, 여덟 해도 더 되는 기간을 함께 있었지만, 3월이 될 때마다 반이 달라진다거나 학교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이유로 가슴을 졸이는 것이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는데 특히 졸업과 입학의 사이에 위치하는 열셋과 열일곱의 3월은 크나큰 고비라고 할 만도 했다.
고개를 돌려서, 아직 어스름 말고는 빛이 차지 않아 어두운 거실을 본다. 새로 걸어 놓은 달력에는, 말일에 가까운 한 날짜에만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동그라미를 그린 것은 영혜였지만, 그 밑에 XX고등학교 배정 발표일, 이라고 엄마가 써 놨다.
혼자였기에 아무런 감상도 내뱉을 수가 없어, 영혜는 입을 다물고 곧바로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이 지나가 깨끗하게 된 선에 다시 성에가 앉아서 흐릿해져 있었다. 그렇게 선 자리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영혜는 손가락으로 수아의 얼굴을 떠오르는 대로 그려 보고,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다가는 그 옆에 '수아'라고 바른 글씨로 써 보기도 하고, 또 한참 그것을 바라보다가 창에 그려진 수아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갖다 부딪힌 채로 멍하니 있기도 했다. 수아의 이마에 찧인 자국이 생겼다.
······ 일곱 시가 땡 하자마자 '잘 잤어?' 하고 문자를 보내야겠어. 그렇게 다짐한 채로 영혜는 베란다에 서서 무작정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꼭 침대 위도 아니고 소파도 아니고 베란다인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비 오는 새벽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시기. 누군가는 기대에 차올라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안에 차있을,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을 복잡한 시기이다. 수아는 확실하게 후자의 경우였다. 성적은 높은 편인데다 시험 역시 잘 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자꾸만 스멀스멀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혼자 2지망으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을 지닌 채 잠에 들어봐야 깊이 잠들 수 있을리가 없다. 일찍이 깨버린 것도 어쩌면 정해져 있는 결과였으리라.
이른 아침. 비가 오는 날씨. 집안의 공기가 서늘했다. 일순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유혹이 들었지만, 이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수아는 부엌에서 따듯한 커피 한 잔을 타온 뒤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요한 아침에 잠을 깨기 위한 그녀의 절차였다. 반 잔 정도를 마셨을까,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어 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수아의 핸드폰 화면에는 어제의 문자내역이 떠 있었다. 자신에게 불안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주는 참으로 특이한 사람. 스크롤을 올려가며 잠시 어제의 대화내용을 훑어보았다.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했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를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연락을 해볼까 싶었다가도 괜한 자존심 때문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만 불안해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괜시리 자존심이 상했다. 오전 7시. 깨끗하게 비워진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이른 아침부터 연락을 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아니다 다를까, 알림에는 수아에겐 이미 가족만큼이나 익숙한 이름이 걸려 있었다. 수아는 '잘 잤어. 너는?' 이라고 답장하려다가 한숨과 함께 내용을 지우고 다시 작성했다. 얘한테 숨겨서 뭘 어쩔 거야.
[불안해서 잘 못 잤어.] [영혜 너는? 잘 잤어?]
컵을 가볍게 헹군 뒤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눕고 싶다는 기분을 이겨내고 책상 앞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사람이 나태해져 버리니까, 잠 잘 때 말고는 일어나 앉아있는 게 좋겠지.
고맙고 미안하다!! ㅠㅠ 정신 차려야지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그리고 답레를 쓰자마자지만 내가 오늘 새벽까지 조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미안하지만 다음 답레는 내일 줘도 될까? 틈틈히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랬다간 답레가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서 이왕이면 자리 딱 잡고 쓰고 싶네...!
······ 의외로 금방 답장이 왔다. 말인즉 수아는 영혜의 문자 알림에 잠이 깨어 버렸거나(이 경우 영혜는 엄청나게 초조해질 것이다, 아니 이미 초조해하고 있다) 이미 깨어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런 것보다도 영혜는 방금 수아와 오늘의 첫 대화를 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오늘 수아와 한 첫 번째 대화인 동시에, 오늘의 첫 번째 대화가 수아라는 사실. 두 가지 모두가, 작은 기쁨이었다.
대답이 될 만한 말을 찾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올린 영혜는, 사진기 앱을 켰다. 때로는 여러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을 더욱 선호하는 것이 영혜의 의사소통이었으니까.
이윽고 수아에게 돌아온 답장(그러니까 사진) 한 장은 영혜가 사는 아파트의 베란다 창문을 안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구름과 빗방울에 조금 젖어 있는 창문 안쪽, 창문을 화폭처럼 써서 드넓은 통유리를 가득 메운 그림들은, 성에에 손가락과 손톱으로 그린 선 위에 다시 성에가 앉아서 오른쪽으로 갈 수록 희미해져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가장 왼쪽, 바로 아까 영혜가 이맛자국을 낸 수아의 얼굴이었다.
잠시 뒤에 영혜는 글자로 된 답장도 썼다. 점점 밝아 가는 창문 안쪽에 그려 놓은 그림이, 기온의 상승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새벽 다섯 시쯤에 깼어] [다시 자려니 잠이 안 와서 이거 하고 있었어]
그러고 얼굴을 붉히면서, 문자 상으로는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보내고 나니까 새삼 자기가 소꿉친구의 얼굴까지 그리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오늘'이라는 날짜가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에서 시동이 걸린 자동차 한둘이 헤드라이트를 켠 채로 빠져나간다.
거실로 돌아와 낡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휴대폰을 소중히 낀 채로 웅크리며, 영혜는 그 다음 내용을 궁리했다. 위로해 줘야 해. 왜냐면······ 수아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소중한 사람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는, 위로해 주는 거랬지.
[너무 불안해하지는 마] [수아라면 잘 될 거야]
그렇게 연달아 보내 놓고, 자기 딴에는, 괜찮은 위로가 되었겠지 하며 쿡쿡 웃는다. 실제로 수아가 이 문자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완전히 미스터리였지만······. 한참 낙서하던 와중에 부모님이 이미 출근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홀로 식사를 하려고 부엌으로 발을 옮기면서도 영혜는 혹시나 무슨 톡이 오지나 않을까 뚫어져라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의자에 앉은 채 팔만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켜고 있었더니 금새 답이 돌아왔다. 베란다 창문을 찍은 듯한 사진 한 장. 영혜가 답장을 구구절절 길게 보내기 보다는 차라리 사진을 보내는 일이야 낯선 경험도 아니었기에 수아는 그러려니 하며 보내져온 사진을 확인했다. 이런저런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답장을 하려다가 수아는 고개를 갸울이며 다시금 사진을 확인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는지 흐릿해져가는 그림들 속 가장 선명한 그림이 하나.
[일찍 깼네.] [귀엽다. 그런데 왼쪽에 저 그림, 나야?]
바로 앞에 작지만 이름도 써져 있는 듯 보였다. 사진 너머로는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왜 그린 걸까. 그보다 저기 자국 같은 게 남아있지 않아? 아무래도 좋으려나 싶어 수아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공책을 펼친 뒤 필통에서 샤프펜슬을 꺼냈다.
이후에 수아가 다시 답장을 하기 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다곤 해봐야 5분 가량이긴 했지만. 수아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작게 앓는 듯한 신음성을 흘렸다.
[응. 물론 붙을거야.] [너랑 같은 학교에 가려고 엄청 노력했으니까.]
영혜가 느끼기에는 조금 미묘한 답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해 하고 있대서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돌아오는 게 자신감 넘쳐 보이는 말이라니. 실상은, 영혜가 아닌 자기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인지도 몰랐다. 내 노력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남들보다도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불안해 하고 있는 건,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해 끝없이 불안해 하는 것이 사람의 천성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아는 영혜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한 손으로는 샤프펜슬을 쥔 채 공책 끄트머리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된 것은 영혜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었다. 사이즈도 작고, 몇몇 포인트만 살아있는, 극단적일 만큼 간단한 그림이었다. 수아는 그 옆에 작고 반듯한, 다소 딱딱해 보이는 글씨체로 '영혜' 라는 이름을 적어넣었다. 자기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남에게로 보내는 문자로 통해 실체로 남아내어 마음을 다스린 뒤, 수아는 저가 그린 사진을 찍어 영혜에게 보냈다. 아까의 답례...라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별다른 설명은 덧붙히지 않았다.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를 젓가락으로 가르며, 영혜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발을 얕게 동동 굴렀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기쁘다. 유일한 친구. 소중한 친구. 영혜의 모든 것. 귀엽다는 시시콜콜한 칭찬조차도 그저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말처럼 들렸다. 영혜는 지금 깨진 노른자처럼 무방비한 상태였다.
언제나 노력하는 모습만을 보이는 사람이면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재능을 지닌 자신을 전력으로 따라와 주는 사람. 평생을 또래들보다 수 년은 앞서나간 고독 속에서 살아 왔던 영혜이기에, 수아는, 소중하다. [나와 다르게 너는 똑똑하니까 나는 안 될 거야. 잘난 너 혼자서 잘 해 봐]가 아니라, [반드시 이겨 주겠어]라는 반응······ 분명히 이건 수아가 영혜를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그런 착각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설거지를 하다 보니, 어느새 사진 한 장이 도착해 있었다.
"이건······ 나구나."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느긋하게 쌓인 설거지를 마치기까지 3분.
그 3분이 지난 뒤에야 텅 비어 있었던 영혜의 프로필 사진이 수아가 보내 온 그림으로 바뀌었다. 서로의 얼굴을 그려 주다니, 굉장히 '친구' 같은 일을 한 기분이 들어서, 영혜는 티내지 않고 기뻐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바뀌어 있는 프로필 사진이 영혜의 답장이나 다름없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서 이런 선물을 받다니.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공책 끄트머리에 그린 것을 사진으로 찍어 보낸 뒤, 수아는 문제집에서 간단한 문제들 몇 가지를 선정해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복잡한 수식의 문제를 풀어본들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일단은, 뇌도 활성화 시킬겸 간단한 것으로 시작한다.
한동안...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지만 잠시 동안 핸드폰은 잠잠했다. 답장이 없다는 의미였으나 수아는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아했다. 상대는 원체 특이한 사람이기도 하고, 여하간 서로서로 하루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수 분이 지난 뒤, 수아는 문득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별다른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영혜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었다는 건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나도 바꿔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영혜가 보내준 사진은 온갖 그림들이 다 집합해 있었으므로 그만두기로 했다. 수아는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손 위에서 샤프펜슬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이내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영혜의 옆에서 교감 선생님은 멋쩍게 웃었고, 겸손한 말투로 거만을 떨고 있는 고등학교의 장학사는 영혜가 아니라 자신이 들고 온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런 올림피아드, 저런 경시대회 우승, 무슨무슨 최우수상 입상. '이렇게 훌륭한 학생'이라는 건 맞은편에 따분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영혜가 아니라 차트 위의 서영혜를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 만약에 이 사람한테 부탁하면,' 중학교 교복을 입은 영혜는 생각하고 있었다. '수아와 같이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는 중학교지만 전교 2등까지 치고 올라오기도 하고, 영혜와 함께 출전하지 않은 대회라면 금상을 충분히 타 오는 수아라도······ 충분히 '이렇게 훌륭한 학생'일 텐데. 교감 선생님은 장학사와 동석하는 것은 전교 1등인 학생뿐이라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장학사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로 보였다. '정 그렇게 영광이라면 지원해 드릴 테니, 수아도 함께 다니게 해 주세요.' 그렇게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으려고 영혜는 침묵했다. 말이 없는 것은 평소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시선을 끌지 않았다.
저랬을 때가 두 달은 지난 것 같은데, 이제는 배정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렇게나 칭찬이 자자했으니 자신이 합격하는 것에는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수아는······ 수아는 어떤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입학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과 본인의 강한 의욕으로 상의 개수 자체는 영혜보다 많을 것이었으며, 그녀도 나름대로 우등생이었으니까. 인근 지역의 모범생들이 수없이 흘러들어 온다는 점은 있을지라도 수아가 그들에게 꿀릴 것은 없을 것이라고 영혜는 판단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잖아······.'
수아의 생각과는 달리 하루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기만 하는 영혜는,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하루 중 어느 때에 수아의 연락이 도착할지를 알 길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째선지는 몰라도 불합격이야. 그럼 안녕.' 이런 문자를 끝으로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그런 끔찍한 순간까지 상상하니 몸서리가 일었다. 합격 발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선은 학교 홈페이지보다도 카톡 화면에 가 박혀 있다.
합격발표 날, 수아는 자신의 랩탑으로 학교 홈페이지를 바라보며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이제 곧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에 가슴의 떨림이 강해져만 왔다. 수아는 고개를 한 번 젓고는 평소와 다를바 없는 반듯한 자세로 앉아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인가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 내쉬기를 반복하자 아까보다는 가슴의 떨림이 진정된듯이 느껴졌다.
아마지만,결과는 합격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성적으로만 치자면 비록 영혜보다 뒤떨어지지만 영혜를 제외하면, 제 앞에는 그 누구도 없다. 전교 2등. 1등을 제치지 못했다 뿐, 수아는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단 한 번도 2등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영혜가 1등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듯이. 성적 뿐 아니라 생기부도 화려했다. 영혜에게 밀려 아쉽게 1등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던 대회나, 그 외에도 당당하게 금상을 타온 여러 대회들. 수아네 집에는 수아가 타온 상들과 상장들을 진열해놓는 전시대가 따로 존재할 정도였다.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학교 내에서의 여러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 바른 생활태도 등...
그러니,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합격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학교에서도 잘난 애들이 잔뜩 온다고? 그래서 뭐? '영혜의 바로 옆에서 몇 년이고 근성 있게 노력해 온 나' 가 다른 이들에게 뒤쳐질 것이라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건, 영혜와 같은 학교에 입학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같이 가고 '싶다'가 아닌 같이 가야'만 한다' 였다. 갈망이 크기가 거대하니 0.01% 확률마저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 가라앉히기를 반복하다 도달한 합격발표 시간. 수아가 확인한 결과는 아니다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합격이었다.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졌었던 몸이 안도감과 함께 나른해졌다. 수아는 영혜에게 문자를 하려다 말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통화를 받는다면 수아는 평소처럼 차분한, 하지만 안심했음을 감출 수 없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영혜는 수화기를 받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으니, 할 말도 영혜가 아닌 수아에게 있을 것이었다. 무슨 말이 전파 너머로 다가올 것인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되든 받아들여야 한다.
짧은 확신이 스친다. 성공했기에 전화했으리라는 것. 만약 하루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영혜는 곧장 수아의 집으로 뛰어가서 그녀의 상태를 알게 될 테니까, 수아가 불합격해서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해 봤자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
하지만 그 뒤로는 불안이 밀려온다. 만에 하나. 억에 하나. 천재인 자신조차 불만을 지니고 있는 이 세상의 부조리가 수아를 덮쳐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는다는 경우의 수. 걱정은 인간의 본연적인 기능이고, 영혜 역시 인간이었다. 영혜는 지금 당장 수아가 대문을 쿵쿵 두드리고 뛰쳐 들어와 자기를 껴안으며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다고 외쳐 주기를 바랐다. 당연히 그럴 확률은 전혀 없었지만, 적어도 전화 상으로나마 전해지는 그런 안심이 간절히 필요했다.
계속하여 침묵.
영혜는 수화기를 거머쥔 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는 말 대신 떨리는 숨소리만 가늘게 새어나갔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옅은 숨소리 뿐. 휴대폰을 귀에 바짝 대고 있어서인가, 떨리는 듯한 상대방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아는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떨어뜨려 놓은 뒤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합격했어."
그리도 간단한 말 한마디에는 온갖 감정들이 죄다 뒤섞여 있었다. 그 감정 중 가장 도드라 지는 건 역시나 안도감과 기쁨이었겠지만.
"영혜 너도 보나마나 합격일테고."
수아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영혜가 불합격일리가. 수아는 다시 한 번 상반된 감정이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것을 느꼈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적지만 불합격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존재했는데, 정작 영혜에 한해서는 확신 밖에는 들지 않았다. 너는 언제나 내 머리 꼭대기 위에 고고히 서있다. 그렇지만 그 말인즉슨 내가 겨루는 사람이 이렇게나 잘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래 내가 라이벌이라 여기는 자가 잘나면 잘날수록 저 역시 잘난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중학교 3년은 내내 2등인채 지나갔지만 고등학교 3년은 안 질 거야."
수아는 당당하게 선포했다. 어쩌면 남은 3년이 아닌 평생토록 남은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원래 꿈은 높게 잡으라 하였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제간 한 번쯤은 순위를 뒤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그런 희망을 품어본다.
# 답레 올려두고 가볼게! 그리고 오늘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저녁에 못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미안해 ㅠ 그때까지 상태가 괜찮아지면 좋겠지만 말이야. 일대일 구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 한가했는데 요새 갑자기 왜 이러나 모르겠네. 아무튼 이만 가볼게! 좋은 히루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