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건 싫다는 이야기에 주양의 표정이 느글느글 풀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이전까지는 여보자기 하며 동등하게 대하고 있었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마치 슬하에 동생이라도 둔 사람마냥 헤벌레하게 풀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을 아래로 본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친구는 친구이지 않은가. 어려 보인다고 얕잡아보는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동생같다는 느낌이 안 드는것도 아니었기에. 주양은 미소를 지은 채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픈 건 싫다는 당연한 말 한 마디가, 당신을 귀여운 동생으로 보이게 만든 것은 그저 주양이 자애로울 뿐이었는가. 아니면 그것 역시도 어딘가 살짝 어긋난 주양의 애정표현 중 하나였는가. 자애로움은 주양과 거리가 굉장히 멀테니 후자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으구. 우리 여보야가 그렇다면 아프게 안 할게! 볼 꼬집는건 안 할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어, 웃음을 터트리는 평소의 당신다운 모습에 곧 풀리기는 했다만 다정하게 달래주듯이 말하는 모습은 꽤 숙련된 것이었다. 자신과 꽤 안 어울리는 모습을 한번 내비치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오호라~ 너무 잘 알고 있는건가? 기쁜걸! 물론 너무 많은 걸 알면 다친다지만.. 우리 여보야한테는 좀 다쳐도 상관 없을것 같아. 나도 여보야한테 듬직한 사람으로 남고 싶으니까, 같이 힘내보자?"
스위티. 생각해보니 이것도 평소 자신에게는 쓴 적 없는 호칭이었나. 깊이 파고들지 않은 채 주양은 슬쩍 팔꿈치로 당신을 콕 찔렀다. 세게 찌르는 것이 아니라 살살, 친구끼리의 장난에서 으래 그랬듯이 취하는 제스쳐 중 하나였다. 매번 바뀌어가는 호칭을 들으며, 그 상황에 맞게 자신의 반응을 은근슬쩍 바꾸어 보여주는 것 역시 이 상황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한 일종의 변칙성과도 같은 일이었으니, 괜히 심오하게 굴어봐야 이득은 없다. 친구끼리의 사이는, 가볍고도 편하게 즐길수 있는 게 나았으니까. 물론 무거운 걱정거리가 있다면 그 짐을 덜어주는것도 친구로써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긴 한다만.
"궁금해지기는 하니까! 만약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여보야가 하는 일인데 내가 이해하지 못 할 리가 있을까~? 좀 더 파고들자면 그 생각을 한 여보야의 모습이 보고 싶은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전부 자신의 흥미 위주일 뿐이었다.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미래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 뒷일에 대한 걱정은 눈꼽만큼도 남아있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당신에게서 비쳐 보이는 미안해보이는 기색에 주양은 괜찮다며 당신의 어깨에 슬쩍 볼을 부볐다. 어차피 자신은 굳이 반응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의미 없는 잡담만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게다가 이렇게 멋진 밤하늘이라면 잠시 대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본래 밤산책을 나온 목적대로 바람을 쐬며 여운을 남겨도 괜찮겠지 싶었다.
"이런이런. 들켜버렸네~? 거기까지 알아챈 이상 절대 중간에 돌려보낼순 없지. 여보야는 꼭 나랑 같이 기숙사까지 가줘야겠어!"
손을 토닥거려주니 이번에도 자신이 동생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같이 기숙사까지 이동한다면 쌀쌀했던 기분도 조금은 풀릴 것이며, 자신이 기숙사로 돌아오고 당신도 당신의 기숙사로 가는 동안 자신에게 방해받았던 밤 산책을 조금이나마 더 즐길수 있을거라는. 나름 획기적인 플랜을 떠올리고서 마음에 들어하며 속으로 그런 자신에 대한 자화자찬을 이어가는 중이었으니, 지금만큼은 반응이 오래 걸려도. 어린애 취급을 받아도 상관 없겠다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좋아! 여보야가 허락도 했겠다, 이번 행선지는 주궁! 주궁입니다~"
어디서 주워들은건지 꽤 경쾌한 목소리로 전철 안내방송. 혹은 어디 시골버스에서나 들릴 법한 안내방송을 따라하며 주양은 뿌듯하게 웃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여기서 주궁까지 가려면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 시간을 걱정할 일도 없었다.
디멘터의 키스. 그녀는 몇 번의 키스가 예약되어 있었을까요. 그걸 당한 적이 없던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 심화? '
되묻던 버니는 곧이어, 굉장히 뒤틀린 미소를 지었습니다. 금지 된 저주를 가르쳐달라니, 그녀가 재미있다는 것처럼 푸흐흐 소리를 내며 웃었습니다.
' 진심이야? 미리 말해두는데, 난 실습 위주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 중과 저 학교 사람들을 버니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기쁜가봅니다. 그녀는 레오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전부 엿먹일 수 있어 ' 레오, 너도 그 저주들을 써야 한다는 거야.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안 가르쳐 줄 거야. '
특별하게 생각해준다는 것이 과연 좋은 방향일지, 그저 순수한 마음일지. 한번쯤은 의심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그 말을 믿는다는 전제가 붙었을 때의 가정일지니. 그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의심도 무엇도 필요하지 않을거다. 뿐만 아니라 어떤 말도 더는 의미가 없어지겠지.
그 날의 상황을 기억하냐는 물음은 말만 놓고 보면 별 의미 없어보인다. 어째서 기절하게 되었는지도 확인차 묻는구나 싶게 보인다. 별거 아닌 말이 기묘한 분위기에 물들어 조용히 의미가 변질되어간다. 그 물음의 대답을 들으며 그녀는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렇군요."
구구절절한 설명 끝에 그녀가 내놓은 말은 그게 다였다. 짧고 간결한 한마디는 윤이 한 말을 납득한 것처럼 보였을거다. 하지만 스물스물 움직이는 손이 과연 정말 납득한걸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하얀 손이 윤의 등을 자근자근 짚으며 움직인다. 손끝이 옷 위를 꾸욱 꾸욱 누르며 위치를 바꾸는 걸 선명하게 느껴지게 한다. 한 손은 허리로 내려가 감싸고 또 한 손은 위로 올라와 윤의 뒷목에 손끝을 짚는다. 옷 위, 혹은 살갗이 닿는 부분을 느릿하게 쓸어내리는 손길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팔을 움직임으로써 자세가 바뀌어 더 달라붙은 모양새로, 어느새 윤의 어깨에 턱을 기댄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중얼거렸다.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선배는 거기 왜 나왔던 거에요?"
거리가 좁혀진만큼 음량을 줄인 목소리는 바닥을 기는 안개 같다. 쓸어내렸던 손을 올려 윤의 붉은 머리칼을 살살 어루만지며 재차 묻는다. 그 날의 신탁을 떠올리며.
버니가 가까워지는만큼 레오는 뒤로 물러났다. 레오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알고있다. 금지된 저주를 배우고싶다. 사용하는걸 들켰다간 아즈카반에 직행하는 그것을 배우고싶다. 레오는 그런 말을 했다. 공격을 위하거나 정말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배우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방어를 위해서. 또 그것들이 쳐들어왔을때, 또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사용했을때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기뻐보이는 미소다. 그 주문을 써야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가르쳐주지 않을것이다. 레오는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며 버니를 응시했다.
" 으으.. 으으으... Fuck!!!!!!!!! 그래!! 좋아! 쓸게! 쓰면되잖아! "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바위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아즈카반에 갈 각오까지는 하지 못했다치더라도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각오정도는 하고있었다. 애초에 여기서 버니와 어울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저번에 데이트아닌 데이트를 했다는것만 치더라도 아즈카반에 끌려가거나 최소 학원에서의 퇴학은 각오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절실했다. 또 그들이 쳐들어오면 누군가는 일어서서 막아야하니까. 누군가는 맥없이 쓰러져선 안되니까. 레오는 매번 쓰러졌고 매번 겁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시당하는 자신이 싫었다.
특히나 지난번의 그 녀석은, 내 친구들을 쓰러트리고 교수님에게 저주를 걸고 즐거웠을 현장학습을 망쳐놓은 그 시체같았던 녀석은. 아, 정말이지 죽여버리고 싶었어. 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말하는 꼴을 보고싶었어.
레오는 주먹을 쥐고 자기 가슴팍을 두어번 쿵쿵, 하고 치고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주변을 몇 번인가 서성이다가 버니앞에 서서는 이히히, 하고 웃어보였다. 여유가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싶었으니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여유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얕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납득했구나, 싶었던 윤이 당혹감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손길에 여간 당황한 게 아닌 모양입니다.
' 저기...?! '
움직임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몸을 살짝 틀던 그는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습니다.
' 그야, 교수님이 부르셨으니까..? '
나간 이유는 그러했죠. 당신도 알다시피, 윤이 두 눈을 깜빡였습니다. 이어지는 물음에는 잠깐 생각에 잠긴 것 같습니다.
' 그 이 쪽 저 쪽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이 쪽이고 싶은데 저 쪽일지도 몰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게 존재하잖아? '
어딘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하던 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 우리 집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냥 [윤]으로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게 이 쪽이라면, 내가 속해있는 우리 집과... 그것으로 날 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나는 저 쪽. 오히려, 그게 내 본질이라고 느낄 때도 많아.' 거짓말쟁이 그는 가만히 일어서려는 것처럼 움직였다가 다시 멈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