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돌려준다. 확실히 알바를 하는 것이 하우스푸어인 것과 연관이 아예 없냐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대한 이유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사실 돈만 생각한다면 의뢰를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뻣뻣하게 웃고 있는 릴리가 귀여운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하루의 얼굴에 더욱 해맑은 미소가 지어진다.
" 별로 안 바뻐요. 한참 한가할 시간이기도 하고. 그럼, 카페오레 주문 받았습니다~ "
창가쪽으로 향하는 릴리의 뒤를 따라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간 하루는 의자에 앉은 릴리의 주문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점원의 멘트를 날린 하루는 다시 우아하게 돌아서 주방으로 향한다. 주방으로 가서 춘덕에게 맛좋은 카페오레 뜨끈한 것을 부탁을 하곤 기다리던 하루는 릴리의 시선이 자신이 서있는 주방으로 향하자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 자, 주문하신 카페오레 나왔습니다~ 손님~ "
하루는 만들어져 나온 카페오레를 쟁반 위에 올려놓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와 릴리의 앞에 조심스럽게 놓아준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던 하루는 다른 손님이 오려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는지 천천히 건너편 의자에 앉아 릴리를 바라본다.
" 왠지 되게 얼떨떨해보이는 표정이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
릴리의 그런 반응이 자신을 보고 나오는 것이라곤 생각을 안 하는지, 걱정스러워 하는 눈으로 릴리를 바라보며 물음을 건낸다.
청천은 또 잠자코, 진화의 말을 들으며 달립니다. 어느 새 둘은 공원에 들어와서 공터를 빙빙 돌고 있네요. 더 이상 한심한 모습으로 있고 싶지 않다...라.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다가도...전투 중 평소와 달라질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잠깐 멈춰서서 당시 그의 행동을 재현하는 진화의 행동을 지켜보고는 말합니다.
"진짜요? 아...그런 거 있죠!"
크로스백 속에 있는 미니 실크햇을 떠올리며, 그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청천은, 뭔가 나설 때, 누군가와 맞서 싸울 때, 게이트에 들어갈 때 미니 실크햇을 쓰곤 헸지요.
"저는 사실 한 반쯤은 일부러 그러는 거지만요. 저도...한심해 보이고 싶지 않고, 강해보이고 싶고, 실제로도 강해지고 싶으니까요."
처음 그 모자를 쓰고 달릴 때 그는 스스로 다짐했었지요. 강해지자고요. 더욱 강해지고 빨라져서, 언젠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붙잡히지 않는. 그런 헌터가 되자고요. "그래서 이런 걸 쓰고 다니게 된 건데..."라면서 청천 또한 미니 실크햇을 꺼내 씁니다. 미니햇에 달린 핀이 딸깍, 하고 닫히는 소리가 작게 퍼집니다.
"몰입하다 보면 뭔가, 평소나 각성 전이라면 못할 과감한 행동도 가끔 나오고, 그렇더군요. 형님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황에 몰입하니까 더 진지해지고 용기가 생기는, 그런?"
둥글게 말려 있는 털뭉치에서 두 눈이 빼꼼 하고 튀어나와 깜빡깜빡하더니, 이윽고 벌떡 일어났다.
“잘못은 무슨 잘못이냐아─!?”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주변 환자들이 깨어날 법도 하지만, 기력이 다 빠진 릴리의 목소리는 사실 다림에게 들릴 만큼 소리를 내는 것만 해도 한계였다. 풍선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성량으로 외치고 나서 릴리는 다시 털썩 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다림의 이름은 인식표를 보아서 이쪽도 이미 안다.
“저기, 기다림 씨?”
고개를 돌릴 기운도 없어 천장을 바라본 채 말한다.
“나는 그냥 어떤 양반이 누굴 제압하는 걸 좀 도와 달라고 하길래 의뢰를 받고 출동한 것뿐이야. 덕분에 훌륭한 전리품도 얻었고. 부상은 입었지만 은원관계 때문이라기보다는, 숙청여제를 토벌하는 도중에 발생한 자연스러운 신체적 피해지…….”
누워 있는 릴리가 오른다리에 찬 깁스를 들어 보여 준다.
“…… 따지고 보면 나는 레이드를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숙청여제에 지배당한 게 당신인 줄 몰랐어. 그게 기막힌 인연일 수는 있어도, 나는 결국 내 일을 한 것뿐이야. 어때, 내 말 틀리지 않았지? 고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당신한테 묻겠는데…….”
그런 다음에 릴리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다림에게는 알 턱이 없었겠지만, 그것은 사실 고개를 돌리기 위한 기력을 충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오고 나서야 릴리는 고개를 다림 쪽으로 돌렸다.
“『잘못은 무슨 잘못』이지? 그걸 확실히 하도록……. 나는 누가 실패하거나 치명적으로 실수했다고 해도 딱히 나무라지 않는 성격이니까. 만약 당신이 나한테 사과해야 할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건 과연 무엇 때문이지?”
"어.. 레이드를 하게 만든 것 자체가요...?" 다림 입장에서는 홀리지 않고 티아라를 거절했으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니었을까. 같은 후회를 할 수 밖에 없기는 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치부하겠지만요.
"그..그리고 그냥 다림이라고만 불러주셔도 좋아요." 성까지 붙이면 기다림이니까 묘한 기분이라고요. 라고 웅얼거리듯 말합니다. 하염없이 계속 기다리는 걸 다림은 조금.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그건..." 천재의 논리 앞에서 다림같은 운 좋은 것 밖에 없는 이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불합리한 논리의 폭력이 다림을 덮친다..(?) 다림이 생각하기로는 그냥 지배당한 것 자체라던가. 지배에서 풀릴 수도 있던 상태에서 두려움이나 패닉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한 거라던가. 상해를 입힌 것 자체가 다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하나하나 말하면 다 반박당하겠지...
"제가...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레이드의 대상이 된 것 자체가..." 잘못인걸요.. 학원도에서마저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쳐버리고 마는 걸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려 합니다.
당장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릴리는 금방 나와 펄펄 끓는 카페오레를 한 모금 삼킨다. 그리고 식도가 불타는 것을 느끼며, 변명거리를 구상한다. 하루는 지나칠 정도로 잘 하고 있다. 그런 하루에게 ‘세놓고 살면 평생 불로소득이 가능한 것 아니야?’라고 조언하는 것은 속물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릴리는 잘 안다.
“설마…… 혹시 그 정령들한테 급료를 지급해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 순간 릴리는 하루가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을 확률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선량하다. 계약서에 적힌 부당한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가능성보다도, 그런 악독한 거래를 제안하는 상대방에게 동정하여 스스로 일해서 메꿔 주면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하지만 기우일 것이다. 세상에 그런 답답한 일이 생긴다면 릴리는 정상적인 혈압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천하에 그런 몹쓸 인간이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번개를 맞아서 바삭바삭하게 구워졌을 것이다.
“……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니까 좋아서. 나는 백수니까, 지금……. 그래서 어쩌다가 이런…… 데서 일하게 된 거야……?”
걱정이 무럭무럭 커진다. 설마 지금 이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부당계약에 의한 것이 아닌지. 최대한 그 걱정이 드러나지 않게 말하고는 있지만…….
반쯤 잠에 취한 듯한 목소리. 힘이 없던 이유를 알 것 같네. 뜨긴 했지만 약간 가물거리는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던가. 이렇게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는 말에
" 그때는 불가항력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어. "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스레 넘기려고 했으려나. 그렇게 넘기나 싶었어도 역시 마음에 조금 걸리는지 조심스레 "설마 진짜로 내 탓이야..?" 라며 물었으려나. 다림을 바라보는 눈빛이 사뭇 진지한 걱정을 담고있었을지도 모른다.
" 친구끼리 뭘. 됐어. 그정도는 민폐 축에도 속하지 않아. 사정을 듣고보니 너도 피해자였던 것 같고. "
에릭이 벌였던 일에 비하면 이정도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그렇다고 해서 에릭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때 너무 세게 때렸나 싶기도 해서 살짝 걱정하고 있었으려나? 하여튼 웅얼거리는 다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한번 꾸욱 누르려고 시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