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눈이 번쩍 뜨이는 광경이었다. 귀여운 생물들이 정교한 춤을 추는 모습. 레오는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을 더 다가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자리를 잡고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 마리 데려가서 키우고싶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전에 보았던 크날도 그랬지만 이 녀석은 더 귀여운 것 같아. 레오는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문카프가 사라지고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교수님의 경계하는 모습. 레오는 뭐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저기 누가 오고있는것 같은.. "
말을 마치지 못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라면 잘 알고있다. 임페리우스 저주. 다른 사람을 뜻대로 조종하는 세뇌의 저주. 크루시아투스 저주. 온 몸의 세포가 불타는 고통을 주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고문의 저주. 그리고 살인의 저주 아바다 케다브라. 그 중 두개가 눈앞에서 시전되었고 그 중 하나는 직접 몸으로 겪어본 것이었다. '크루시오'라는 말을 듣자마자 레오는 지난 날의 고통이 오버랩되었다. 숨이 가빠진다. 시야가 흐려진다.
" 히이- 히이이.. "
답지않게, 레오는 주저앉았다. 도망쳐야해. 저렇게 아픈건 감당할 수도 없고 두 번 다시 겪고싶지 않으니까, 도망쳐야해.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레오는 천천히 몸을 뒤로 밀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멀어지려했다. 주먹을 꽉 쥐어 바닥의 풀이 뜯겼다. 레오는 높고 거친 숨소리를 흘리는 수 밖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문카프들을 발견하고 그 춤을 구경하는 것까진 아무 문제도 없었다. 이대로 무사히 관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걸까. 기숙사로 가면 조금 놀자고나 할까.
그런 느긋한 생각들이 무색해지게 불길한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끌리는 소리. 옷이 끌리는 소리 같진 않다. 소리 다음은 악취, 그 다음은 흉측한 몰골의 불청객이 그 앞에 나타났다.
"선배!"
불시에 저주를 맞은 윤을 보고 그녀는 쓰러지는 윤의 몸을 받아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와중에 누굴 감싼건가. 우왕좌왕 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체 같은 마법사를 본다. 어둠 속에서 금안이 시리게 반짝인다. 입김이라도 나올 듯 찬 목소리가 주문을 읊는다.
한참 춤사위를 벌이던 문 어쩌고가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들리는 이 불길한 인기척 때문인건가? 심상치 않은 기운에 미리 머리를 묶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 들어왔을 리가 없다. 그냥 숲도 아니고 무려 금지된 숲인데.
달빛 아래로 꽤 기괴한 마법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봐도 산 사람의 꼴은 아닌데도 움직이는 게, 설마 아까 길을 잘못 들어버려서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주었다. 분명 뒤를 잘 따라왔으니 그건 아닐 터였는데. 그렇다면 저건 도대체?
"와~ 냄새 봐. 청이가 일주일동안 안 씻어도 너보단 향긋하겠다~"
말이 통할지 안 통할지도 불분명한 상대에게 도발을 거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서 지팡이를 들었다. 어지간하면 뒤로 내빼서 무기 사감님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겠으나 또 다시 주변 사람들이 저주 마법에 맞는 광경을 본 이상 가만히 있는 건 주양이 아니었다. 눈빛이 순간 희번득해졌다. 오냐. 저 모양을 하고서도 결국엔 어둠의 마법사란 말이지. 그렇다면 산 사람의 꼬락서니가 아니라고 해도 그냥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달빛이 찬란하게 내려쬐는 하늘 아래서, 신비한 동물들의 춤사위 뒤로 이어지는 혈투라. 꽤 아찔했다. 지팡이를 들고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겨누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잠시간 인지부조화를 느낀 것인지 잠시간 눈을 끔뻑이지만 이내 상황이 이해가 된 것일까, 그는 순식간에 지팡이를 꺼내들고 숨을 골랐다. 괜찮아, 문제 없어. 그냥 저번과 같이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숨을 내쉰 뒤 그대로 돌맹이를 들어 올린다.
"피안토 듀리(Fianto Duri)-잉고르지오(Engorgio)"
동시에 돌멩이를 던지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돌맹이가 보통사람의 3배 크기의 바위로 변하였고, 그는 그 바위를 향해 한번 더 마법을 날렸다.
"봄바르다(Bombarda)!"
동시에 한번더 폭팔이 일어나고, 그 폭발을 추진제 삼아 바위가 둔중한 소리와 함께 마법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후속타가 필요하다는 것일까, 그는 바위가 날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혜향 교수님의 반응에 단태는 윙크를 했다. 자연스럽고도 뻔뻔스러운 태도였다. 문카프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이였는데 불길한 기척이느껴졌다 싶었을 때, 문카프들이 자취를 감췄다. 뭔가 오고 있다는 결과에 이르고 단태는 만지작거리고 있던 지팡이를 빼들었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라고 생각했디ㅣ. 백궁 학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어봤던 금지된 저주가 단태의 귀에 꽂혔다. 임페리우스 저주. 뒤이은 건- 경험해봤던 고문 저주였다. 호기심에 반짝거리던 암적색 눈동자가 암암리에 가라앉는다. 단태는 아무 표정 없이 앞으로 고꾸라진 윤을 향해 지팡이를 움직였다.
"인카서러스."
.dice 1 2. = 1
통했는지 통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정신은 없었지. 완화는 되었을지 언정 완전히 사라져버린 건 아니었으니까. "오늘이 보름이라서 다행이야." 무자비한 고통을 주는 고문 저주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게 뭐. 주단태가 히죽- 웃었다. 피골이 상접한, 마법사를 향해 한걸음 내딛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그저 기분 탓이라 여기기에는, 언제부턴가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감각이……. 그것이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흐르다 멎어버린, 고인 피가 썩어버린 듯한 악취가 느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꺼내들었지만 그것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런 도중에도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려서,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하마터면 저를 도와주려던 학생을 밀쳐버릴 뻔할 정도로. 다행스럽게도 혼란한 상황에서도 엘로프가 신경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 엘로프는 목표지점을 제대로 조준한다.
"스투페파이."
썩은 내가 난다 한들 그것이 생사에서 벗어난 듯한 상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 리 없다. 저것이 과연 기절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지난번과 같은 수순을 밟을 수밖에.
민은 비명처럼 외쳤다. 임페리오니, 크루시오니 금지된 저주의 마법이란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민의 얼굴의 핏기가 사라졌다. 후들거리는 손끝에 겨우 지팡이가 잡혔다. 한계점에 다다른 것같은 이성과 다르게 손은 착실히 움직였다. 첼이 윤을 받아내는 것을 확인한 민은 혜향 교수님 곁으로 뛰어갔다. 혜향교수님의 앞을 가리며 지팡이를 겨누었다.
"스투페파이"
공격 주문은 놀라울만큼이나 쉽게 나왔다. 분명 머뭇거릴 것이라 평생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문카프의 춤사위를 흥미 하나 담기지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동물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들의 사랑스러움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겠지만, 글쎄다. 아까부터 등이 오싹거렸다. 마치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대다수 이런 불길한 느낌은 들어맞는 법이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문카프가 이미 도망친 걸 보니 보통 겁이 많은 녀석들이 아니겠거니 했다. 한 쪽 다리를 질질 끄는 모습과..시취인가? 그의 코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죽었군."
아니면 그 직전의 상황이거나. 그가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저 사람은 곧 죽을 지도 모른다. 그의 감이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 할까 구경하던 그가 임페리오 저주에 미소를 지었다. 환한 미소다. 그 마법사와 한 사람이 겹쳐 보인다. 어머니다. 그가 조용히 누군가를 향해 다가간다. 현궁에는 눈이 좋지 않은 학생이 있다.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주며 그가 홀로 중얼거렸다.
"살아있는 것은 맹목적이긴 하지만 언젠가 변하고 말지. 그렇지 않나?"
팔을 들어주며, 목표를 조준하도록 도와주려 한다. 그리고 그 시체에 가까워지는 자를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이 상황을 보고 잊지 말아야 하네. 현무는 죽음을 관장한다 하지 않나. 우리는 마땅히 이 상황을 인지하고, 죽음은 인간에 의해 비롯되는 법이네."
그는 지팡이를 들지 않고 검지를 들어 마법사를 향해 선을 그어낸다. 안 봐도 알 것이다. 그가 극에 달한 마법은 섹튬셈프라니 말이다.
바위 투척의 파편의 뒷편으로 그가 뛰쳐나온다. 애시당초 접근전으로 가자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코를 찌르는 시체 내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애시당초 이 상황까지 오게 된거 자체가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와중에 한번 더 윤에게 마법이 날아간 상황, 그는, 상당히 짜증이 난 듯 이를 갈아붙였다. 그래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거지?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기민하게 다가선다. 확실한 일격티 필요하다, 거리가 멀면 확실하게 노리기 어려우니, 작에게 공격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확실히 급소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시체, 그렇다할 급소가 없는 상황.
"그렇다면....."
그의 지팡이가 그대로 그의 팔 부근에 다가선다. 영거리 마법이라 실패하면 바로 반격 당하기 딱 좋은 상황, 하지만 일석이조다. 실패하면 자신에게 어그로가 끌릴 것이고, 성공하면 공격 수단을 봉쇄할 수 있다.
그럼 더 좋지. 온갖 마법들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지팡이를 다시 드는 마법사를 향해 단태는 들리지 않을 말을 재잘거렸다. 슬그머니 단태의 눈동자가 윤에게 향했다.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려서 포박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발버둥을 친다면 포박은 오래 가지 못할텐데. 임페리우스 저주를 푸는 방법이- 외부 충격을 가하면 풀린다고 했지. 저 치도 마찬가지일까. 단태는 자신의 지팡이를 돌려서 고쳐쥐고 바닥을 차며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혹시 한대 맞는다고 쓰러지지는 않을테지?"
그럼 재미없어. 자기야. 주단태는 둔기로 사용할 예정인지 지팡이를 쥔 손을 마법사의 턱을 노리고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주문이 오가는 상황속에서 민의 얼굴이 굳었다. 민은, 정말로 이 상황이 싫었다. 몹시 싫었다. 풍겨오는 죽은자의 향에 잠시 비틀거렸으나 쓰러질 정도로 정신이 갉아먹힌 것은 아니었다.
혜향 교수님이 일어난 것을 확인한 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발자국 뒤로 빠졌다. 교수의 안색을 살피는 민의 낯짝이 여전히 창백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까하는 공포에 단단히 질린 것 같았다. 그러나 공황에 질린 얼굴은 금세 화로 돌변했다.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둠속에서 민의 눈이 일렁거렸다. 민은 손을 상대에게 고정하고 다시끔 주문을 외쳤다.
이거 참. 루나틱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어둠의 마법사가 되려면 일단 광기를 탑재하는 것은 기본 옵션인가? 아니. 광기 이상의 무언가였을 것이 분명하다. 오로지 그것 뿐이라면 저렇게 움직이며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진 않을 것이다. 배후가 있다. 그렇다면, 그 배후는.. 안 봐도 뻔할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저 지경인 상태로 움직이는건 참 악질이지 싶었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그. 임페리오 저주라는 것은 시체에게도 먹히는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직접 써본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지금 꼴을 봐서는 그런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에라, 한방 더 맞아라~! 인센디오!"
말이 안 통한다면 도발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더 뭐라뭐라 할 시간에 공격부터 하는게 낫겠다 싶었기에 다시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끝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릴 그 때까지, 계속 한 없이 타올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