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한테 문자를 보내는데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혹시 어릴 적에 왜 제가 사격을 배우지 않겠다고 말했는지 기억나시나요? 저는 기억난답니다. '아빠보다 누나가 더 멋지니까 사격은 안 배워!' 하고… 누나에 대한 걸 저에게 알려주지 않으신 건,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절 걱정하셔서겠죠? 배려에 감사드려요. 앞으로는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는 아들이 될게요. -사랑하는 은후가.] 로 끝나면 어쩌니 은후야 사격 배우고 싶다는 내용은 어디간거야
모든 소리들은 그 곳에서 사라집니다. 거대한 무대 위로 수 명의 사람들이 걸어나옵니다. 각자가 모두 미남, 미녀라 하기에 모자람 없는 사람들이지만 고개를 돌린 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 모두들 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천천히 주위의 풍경들이 물들어가고, 거대한 고성이 만들어집니다. 고성의 망루 위,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던 여인은, 천천히 아래를 내려봅니다.
기억하나요 우리의 성 밤과 나들이 잃어버린 단지 무서운 밤에 나타난 어스럼 성의 이야기
천천히 고갤 돌려, 레베카는 무대를 바라봅니다.
은색과 적색. 두 개의 색은 각기 모여 두 개의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흠뻑 젖은 은하수를 지나, 옅게 흩어지는 유성우를 늘여트린 채. 붉게 물든 태양과 달을 두 눈동자에 심은 것 같은 눈빛이 가장 먼저 우리의 눈에 들어옵니다. 키는 170에 가까운 듯 했고, 살짝 끌어올려진 입꼬리에선 행복함과 기쁨의 여러 감정이 뒤섞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입술은 연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 색과 눈동자, 얼굴의 모든 것들이 뒤섞여 가벼운 숨이 오가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생각을 잊은 채 빤히 움직임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누구에게라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외모입니다. 눈을 뜨더라도, 감더라도, 하물며 귀를 막고, 눈을 막는다 하더라도 느껴지는 아우라와 광휘는 사람을 끌어당겼고 아련하게 부르기 시작한 구절은, 추억을 노래하는 사랑스런 소녀의 이미지로 변하다가도 성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순간 어린 소녀와, 성숙한 여인과, 매혹적인 중년의 부인의 느낌을 모두 뒤섞었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섞여들어와 단 한 순간도 목소리의 긴장을 놓칠 수 없게 합니다. 피부는 백색으로 하얀 편이었는데,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창백한 백색과는 거리가 먼 살아있는 혈색이 도는 백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얀 손과 어울리지 않는 붉은 손톱이 천천히 움직일 때면 사람들의 시선을 움직였고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끌어당기듯 우리들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들은 몸을 기울인 채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밤이 온다. 저 새벽 너머 잊혀진 귀신이 온다. 홀로 외로이 죽은 소녀가 이번에는 너를 찾는다.
이번에는 덤덤하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곧 성의 망루에서 내려와, 긴 계단을 타고 천천히 내려와 무대 위를 천천히 걸어나옵니다. 마이크도, 무엇도 없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는 그녀가 어째서 사람들의 열광을 끌어모으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무대의 끝.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관중들의 틈에 휩쓸려 다칠지도 모르는 곳에서 레베카는 누구의 호위도, 보호도 받지 않고 관중들을 천천히 바라봅니다. 꽤 긴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여전히 노래를 하고 있음에도, 그 눈은 모든 사람들을 흩어 지나가다가 곧 성현의 눈에 닿습니다. 눈을 맞춘 채 방긋 웃고 가볍게 몸을 움직였을 때. 그녀가 입고 있던 화려한 드레스는 고딕 풍의 드레스로 변화했고 그녀의 등에는 작은 박쥐 날개가 솟아났습니다. 입에는 작은 송곳니가 드러난 채. 레베카는 다시금 공연을 이어갑니다.
노래는 이야기를 넘어, 이제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밤의 너머, 당신이 나에게 들려주었던 사랑의 이야기에 빠져버린 소녀가 헤롱거리듯 그대에게 안겨 낮이 오는 것마저 잊은 채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인간이었더라면, 그대의 사랑을 해가 진 순간이 아니라, 해가 지고, 달이 뜨고, 해가 뜨고, 달이 지는. 하루 온전한 사랑을 모두 가질 수 있었더라면.
레베카의 얼굴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집니다. 그 눈물은 천천히 뺨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집니다. 곧 드레스는 불길에 휩쓸리고, 레베카는 하늘을 바라본 채. 천천히 불타오르는 자신의 몸을 두고, 두 팔을 크게 벌립니다. 이 낮에도, 비록 자신이 불타 사라진다 하더라도. 나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는 듯. 밤의 소녀는 낮의 그대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대의 불이 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