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는 지독할 정도로 학생간의 분쟁을 금지했다. 선도부에 의해 학생들의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대련의 경우에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서로간의 대련을 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권역쟁탈전의 가치는 높다. 학생들의 제약을 풀어준 채 원한을 풀 기회를 줌과 동시에 무력을 이용하였을 때에 생겨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권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개중 일부는 다른 학생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에 집착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서신혜는 후자에 속했다. 그는 알 수 없는 폭력적인 충동을 자주 느끼곤 했다. 그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게이트를 돌며 폭력을 분출하곤 했지만 이따금 부족한 때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권역쟁탈전은 합법적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폭력을 분출할 수단이었다.
셋. 많지는 않았지만 적지는 않은 숫자였다. 머더러의 눈에는 세상은 망가진 유화처럼 보였다. 짓눌린 물감들과 어지러운 색채. 그 틈 속에 선명한 것은 오직 생명을 띈 생물 뿐. 신혜는 숨을 죽였다. 의념보를 응용해 벽을 타고 올라가며 스스로의 기척을 죽였다. 천천히 주위와 동화되었다. 저들은 긴장한 티를 냈지만, 두려운 티는 없었다. 슬쩍 느껴지는살냄새로 추측하건데 레벨은 14? 가장 강한 냄새가 그정도였으니 딱히 특별한 이도 없었다. 그들이 상점가의 경계를 지나 골목길로 들어왔을 때, 신혜는 그대로 의념보를 해제한 채 바닥에 떨어졌다. 널부러지듯 내려오면서도 한 명의 어깨를 끌어안고 경동맥에 정확히 칼을 찔러넣으며 망가진 유화에 자신만의 색을 입혔다.
" 꺄하하!! HI-LLO? 얘들아 어디가? 어디가? 어디가어디가어디가??? "
즐거웠다. 놀란 학생들이 소리지르는 목소리는, 그림에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대로 기어 움직이듯 상대에게 다가간 신혜는 발등을 칼로 찍고 팔을 뻗어 다리를 붙잡았다. 의념을 통해 도망치려는 녀석을 잡아 힘으로 천천히 끌어당기면서 히죽. 히죽. 웃음을 지었다.
" 나아는 말야아아아 날 미친년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을 싫어해에에에. 난 저얼대로오오 미치지 않았는데에에 "
푹, 푹, 푹, 곧. 쓰러진 학생들이 빛무리에 휩쓸려 사라졌다. 전투 불능에 빠지면 자동으로 가디언 칩은 학생들을 각 학교의 보건부로 소환했다. 사라진 친구들을 찾으며 손에 흠뻑 묻은 피는 무시한 채,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 후아아~ 개운한걸~ "
유독 상쾌한 표정으로, 신혜는 골목 바깥으로 총총 걸어갔다. 아직 권역쟁탈전은 길었다. 싸울 기회도, 길었다.
냉철하려고 노력하지만 절대 그렇지 못한 자, 즉 겉멋 든 녀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하드보일드의 하위 개념처럼 보이지만, 하드보일드 개념 자체를 잘못 받아들인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일종의 캐릭터 특성이다. 하드보일드는 건조하며 진지한 작품을 일컫는 문학용어인데 반해, 일본에서는 하드보일드 = 냉철의 의미로 일종의 이음동의어로서 잘못 사용되었다. 때문에 하드보일드(완숙)이 아닌 하프보일드(반숙)인 캐릭터를 지칭하는 단어가 생긴 것.
이들은 냉철함을 동경하고 있으므로 냉철한 캐릭터의 특성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가면라이더 W의 히다리 쇼타로가 진짜 하드보일드였던 나루미 소우키치의 대사를 따라한다든가, 책에 나온 멋있는 대사를 혼자 중얼거리는 것처럼.
냉철한 캐릭터 치고는 정이 많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구석이 있고 어설픈 캐릭터를 일컬을 때 많이 사용된다. 중2병과는 달리 적어도 선의로 시작하는 행동이 많기 때문에 민폐 속성이라고 취급하기엔 묘한 타입. 그렇기에 미워하고싶어도 미워할수없고, 미워하더라도 나중에는 미운정이든다.
그리고 이게 '하프보일드' 란 캐릭터성에 대한 성격이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유형이다. 그지.
그래도 변호해주려고 했는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나쁜 애는 아닐 것이다. 조금 어설프거나 글러먹은 면이 있는 녀석이라서 그렇지....사실 난 그래서 좋다. 오히려 너무 잘난 사람은 위축되니까 말이야. 에릭에게 유독 편하게 대하는 것도, 어쩌면 동류끼리의 친근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그도 중요한 순간에선 필사적일 것이다. 모자라고 서툴지만 마음 만큼은 필사적인 사람. 나는 좋아한다.
"OwO쨩은 알아? 최근 그 애의 조언대로 부장님에게 선물을 해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시더라구. 정체는 불명이지만, 흥미로운 정보를 상당히 많이 가져오는 애니까...은후는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취재와 분석에 대한 능력이 있다면, 한번쯤 OwO 쨩의 정체에 대해서 찾아달라고 의뢰해보고 싶은 마음조차 있을 정도다. 가끔 상당히 뜬금없이 나타나 온갖 정보를 알려주곤 하는데, 그 내용은 꽤나 자세한데다가 들리는 소문 치고는 상당한 신뢰성을 자랑한다. 심지어 어느날은 나에게 개인 메세지로 조언을 해줬을 정도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얘기하다보니 무척 궁금하네.
"에헤헤....그래? 고마워. 단거만 먹으면 조금 물릴테니까, 이것도 같이 마셔."
칭찬에 그제서야 조금 안도하면서 베시시 웃어보인 나는, 그에게 진하게 탄 아메리카노를 한잔 건네주었다. 겸사겸사 나도 한잔 타서 홀짝이고. 일개 점원이 이렇게 시원스럽게 대접해도 되냐 싶을테지만, 애초에 점장인 에릭도 적당적당한 녀석이고, 다림씨의 지인이라고 말하면 알아서 납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