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이라도 저희에게 인자하게 웃어줄 것만 같은 작은 체구의 노인을 보고 춘심이의 마음이 무뎌집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게이트의 이방인이자 침입자, 그들에게 있어서는 괴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만 돌아가라 조용히 경고하던 노인의 힘없이 쳐져 있던 눈꺼풀은 곧 매섭게 치솟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낙뢰가 내리칩니다. 눈부신 번개가 스쳐 뺨이 따끔하고 뜨겁고, 따라서 심장도 덜컥 내려앉습니다. 번개의 신 히칼. 마지막 남은 히칼의 대사제. 강윤은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았고,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진화가 한 팔로 춘심이를 감쌉니다. 그리고 커다란 방패를 지면에 내리꽂습니다. 부동일태세. 절대로 뚫리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싸움은 진화와 춘심이가 간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강윤이와 저 노인의 싸움을 얌전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춘심이는 고민합니다. 자신의 의념을, 누구에게 써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강윤이의 검을 벼려주기엔, 진화가 저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제 친구 강윤이의 강함을 믿고, 진화의 방패가 저희를 지켜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강윤이가 안심하고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저희가 안전하게 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춘심이는 강윤이를 믿고 진화를 믿고 진화의 방패에 자신의 의념을 불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을 두려운 눈에 담고 다시없을 경험을 가슴 깊이 새기려고 했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문자 그대로 '수준에 맞지 않는' 것이 뭔지 온 몸으로 체감한다. 나는 단순무식하거나, 겁 없는 용맹한 인간이 아니다. 두렵다. 쉴새 없이 울리는 경종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나 내 품에 끌어안은 그녀의 온기가 느껴질 때, 나는 웃었다. 상쾌했을진 모르겠지만 가능한 부드럽게 웃었다. 울고 싶어도 해야만 할 땐 웃어야 한다. 그녀를 끌어안은 팔을 더욱 강하게 쥔다. 나에겐 지켜야만 하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의념기를 당장 써도 괜찮은걸까, 그런 고민도 잠깐 스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금 그가 가볍게 날린 경고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겐 죽음의 일격에 가까웠다. 전력을 아까다는 판단은, 이 장소에서 우리에겐 오만이다.
"후우...."
여러가지 망념이 담긴 한숨을 길게 내쉰다. 스스로가 완벽하다고는 생각해본적 없다. 오히려 너무 부족하다고 울던 나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한가지만을 떠올라다. 그래.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
내 이상, 나의 꿈. 그 모든 것을 지금 현실 시킨다. 무겁더라도 좋다. 버겁더라도 좋아. 전부 감당해보일테니, 제발 나에게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힘을 다오. 얼마전 스스로의 의념에 대해 고찰하던게, 문득 떠오른다. 내 의념, 영웅. 솔직히 말해서 아직 잘 모르겠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되는가? 그 힘이란 어떤 것인가? 수 많은 의문과 고찰속에서 나는 대답을 맞추지 못했지만. 단, 한가지는 안다.
이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조차 지키지 못하는 녀석이 다른 사람을 지킬 수 있을리가 없잖아.
이를 악 물고 자세를 유지해라. 더욱 견고하게 해라. 뇌전이 흘러와 마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건강을 높여라. 영혼을 불태워라, 스스로의 이상을 향해 손을 뻗어라. 내가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해라.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한가지 내세울만한 장점이라곤, 언제나 이 필사적임 하나 밖에 없었다.
그녀를 지킬 수 있게 해줘.
나는 내 의념에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어쩌면 간절히 부탁하듯 애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의념이 갑작스레 대답해오는 것은 아니겠다만, 그래. 적어도 나에게 한걸음 나아갈 용기와 버티고 서있을 힘 정도는 줄 것이다. 부디 부탁한다.
#부동일태세를 유지하면서 의념기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를 사용. 번개가 직격했을 때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강도 망념을 쌓아서 강화합니다.
>>299 지훈은 검을 붙잡습니다. 오늘따라 유독 잡념이 많습니다. 검을 휘두르는 것에 있어서, 잡념은 없어야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말이죠. 지독하게도 많은 생각들, 못 해내면 어쩌지. 그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 속에 파고듭니다. 손에 쥔 검이 원래의 검이 아니라, 한참이나 열화된 검이라는 감각 역시 지훈을 괴롭게 합니다.
검劍 그 물건의 가치를 지훈은 잘 모릅니다. 이제 갓 들기 시작한 검의 가치를 아직 알지도 못했으며, 검념을 읽어내고자 하지만 검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형태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는지. 이러한 검에 얽힌 이야기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검념을 읽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합시다.
지훈은 몸을 당깁니다. 검집을 당겨 자세를 잡습니다. 흔히 일본도를 뽑아낼 때와 같은, 오니잔슈에 익숙한 발도의 자세입니다. 여전히 지훈의 손은, 익숙한 오니잔슈의 감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검사가 익숙한 검을 찾아가지 못하는, 미련일 뿐입니다.
프하아.............
속에 꾹꾹 눌러놨던 숨을 토해내고, 검을 쥔 손에 터질 만큼의 힘을 줍니다. 그 의지에 반응하여 온 몸을 타고오르던 의념은 끓어오르듯 넘치려 하고, 푸른 눈동자는 한 순간 백색으로 물들어갑니다.
웅 웅 웅 거대한 힘을 검에 담아낸 채. 지훈은 검을 붙잡고, 단 하나의 생각만을 자신이란 호수에 띄워냅니다.
벤다.
의념기
한지훈의 검은 뽑혀듭니다. 하늘 높이 향했던 검이 사선으로 틀어 휘두르고,
일섬一閃
카가가가가각!!!!! 그 한 점에 닿아, 살벌할 만큼의 소음을 발생시킵니다. 최소한의 보호?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무가치할 만한 폭력을 그대로 받아내면서도, 엘로앙은 창을 붙잡습니다. 하루의 방해? 그런 것은 통할 레벨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 힘에 대응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높은 기술의 경계를 이루었던지. 아니라면, 의념기를 사용해야만 할 것입니다.
엘로앙은 천천히 창을 뻗습니다. 창은 천천히 원을 그려냅니다. 아주 미려하게 뻗은 선이 하나의 점에서부터 이어져 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거대한 불길이 원을 가득 채워냅니다.
불. 열사의 동화 속, 아이들을 이루었던 불. 아름다운 왕국을 지키는 기사단의, 불. 모든 것을 태워냈던. 모든 것을 지켜냈던! 그 왕국을 위해 모든 것을 태워냈던!! 왕국을 수호하는 창의 불길!!!!!!!
아르키우시스 사막의 봉화.
자! 받아보십시오! 한 왕국의, 최강의 창! 레베논 왕국. 국왕을 지키던 최강자들의 창을 견뎌내어. 그대들의 의지를 세우십시오!
에릭. 에릭 하르트만. 에릭 하르트만! 에릭 하르트만!!! 받아낼 준비는 되었습니까?
영웅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묻겠습니다!
에릭은 스스로의 의념을 끓어올립니다. 영혼을 두드리고, 자기 자신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약해빠진 마음을, 망가진 감정을 두드립니다. 그를 통해 이루어내는 것은 완성된 갑주.
에릭 하르트만을 이루는 강철의 갑주를 만들어냅니다!
이 갑옷은, 에릭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투박하고, 아름답지 않은 외관일지언정. 단 한 사람.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그 사람을 위한 갑옷입니다!
의념기
그녀를 지키겠다 말하고 있습니다. 에릭 하르트만은, 단 한 사람만의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berserkr(베르세르크)
온 몸을 뒤덮은 갑주를 쓰고 에릭은 검을 붙잡습니다. 타오르는 것만 같은 고통을 감수하고 에릭은 두 사람을 자신의 앞에 세웁니다.
엘로앙의 창에 거대한 원을 관통하고, 불길은 그대로 응축되어 거대한 창을 만들어냅니다. 사막의 열기를 담은 창. 그 창이 에릭에게 쏘아집니다.
끓어오르고, 불타오르고 있으며, 온 전신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창을 마주한 순간. 에릭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러날 수 없다.
거대한 충격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불태우고, 그 불길은 지상을 태워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 땅에 남는 것은 한 줌 물도, 곡식도 없이. 단지 거대한 사막만이 남을 것이기에. 에릭은 견뎌냅니다. 그 불길에 팔이 불타 가루가 되었음에도, 발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음에도. 에릭은 의념의 힘을 끌어올려 불길의 진행을 멈추고 스스로를 혹사해냅니다. 지킬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어째서. 그는 저렇게까지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까요. 하루는 에릭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워리어의 싸움일까요? 이것도, 카사가 겪어야만 하는 싸움일까요? 그 작은 아이의 팔이 불타고, 녹아내리는 것을. 저런 고통을 겪어내는 것을 자신은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하루의 몸이 앞으로 쓸리려 하는 것을, 지훈은 검을 찍어 막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바라봅니다. 이것은 우리가 관여할 것이 아니기에.
창. 초원의 모든 것을 불태울 사막의 불길을,
방패. 단지 한 줄기의 물줄기가 막아냅니다.
마침내 불길이 끝난 직후. 이미 오른팔은 재가 되어 사라졌고. 발은 타버려 재가 되었지만. 에릭은 그 자리에 서서 엘로앙을 바라봅니다.
보아라.
에릭은 휘청이지 않고 자세를 취한 채. 오직 엘로앙에게만 눈을 두고 있습니다.
워리어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지키며.
검을 붙잡고, 흩어지기 시작하는 갑옷 따위에 신경을 잊은 채.
적과 맞붙는 방패이다.
엘로앙을 향해 언제라도 달라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뒤에는 하루가, 지훈이 있으니까요. 자신이 다치더라도, 자신을 치료해줄 동료가 있으며. 자신이 아니더라도, 적을 베어줄 검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크리티컬 어택!
지훈의 공격이 마침내, 엘로앙의 부위를 파괴해냅니다.
[ Guardian Call ]
세 사람의 가디언 칩이 붉게 빛납니다.
[ Project ] [ Destroyer ] [ Install ]
선언하십시오. 세 사람의 힘을 하나로 합쳐. 그 일격을 적에게 새기십시오.
자, 영웅의 시간입니다. 숭고한 영웅의 마지막 일격을, 보조할 시간입니다!
자 영웅! 에릭 하르트만! 그대의 불타버린 육신을 버틴 채. 영웅의 일격을! 재현하십시오!
모든 것을 파괴할 재앙의 일격을 말입니다!
갑옷은 흩어져 에릭의 검에 달라붙습니다. 거대한, 하나의 대검을 이뤄냅니다. 남은 것은 선언하고, 휘두르는 것. 그 뿐입니다!
" ..... 저런 모습으로 혼자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뛰어든거니까요. " " 흔들리지 않아요. 저런 모습에. " " 그리고 아직 제가 있으니까, 에릭은 죽지 않아요. "
하루는 몸을 추스리며 두손을 가슴팍에 모읍니다. 하늘에 있을 신을 향해, 자신을 바치려는 것처럼 하루는 새하얀 빛을 뿜어냅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 오오, 주여. 제게 적의 날카로운 창을 막아내는 위대한 전사에게 대지를 굳건히 디딜 수 있는 힘을 주도록 당신의 은혜를 내려주소서. " " 부족한 당신의 종이, 이렇게나마 당신께 제 마음을 담아 청하노니. " " 부디 같은 하늘 아래 당신의 종들이 구원을 찾을 수 있도록 당신의 빛을 내려주소서. "
하루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를 올렸고, 그 기도가 만들어낸 빛이 에릭을 향해 비춰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