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친구가 아니라고 하기엔 꽤 가까운 느낌이고 옛친구라고 인정하면 혹시 모를까. 하는 느낌에 가깝지 않았을까. 느릿느릿하게 있었던 일 몇 가지(별로 특별한 건 없었을 것이다. 그냥.. 놀이터에서 좀 놀다가 키득거리며 웃던 그런 타입?)를 생각하며 초대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주방보조를 하다가 춘덕이가 누군가를 맞이한 게 보이자 주방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밉니다.
"안녕하세요 은후 씨." 지금 계란 한 판을 다 깨서 머랭치고 있어서요. 곧 머랭치기는 마무리되니까 바로 갈게요. 라면서 품에 안은 머랭 볼을 봅니다. 계란 한판을 다 머랭치기를 수제로 한다니. 이 전기값 아까워하는 악덕점장(아닙니다.) 그리고 춘덕이는 머랭치기가 끝난다면 마카로나주를 해야 한다구리! 근데 이게 힘들어서 내가한다구리! 같은 말을 합니다. 저 안에서는 마카롱이 만들어지고 있나봐요.
"혹시 좋아하시는 맛 있으신가요?" "나중에 몇 구 챙겨드릴게요. 대신 맛보시고 솔직한 평가는 필요하지만요..는 농담이에요." 뚱카롱이 아니라 라뒤레풍 정통 마카롱이라서 막 슈팅스타맛이나 찰떡아이스(쑥맛일부함유)나 뚱뚱한 조개롱같은 건 없지만요. 라고 말하며 테이블로 안내하려 합니다. 연애상담용으로 만들어진 조금 분리된 공간입니다. 요즘 딸기 제품이 시즌이라. 먹고 싶은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라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딸기라떼, 딸기에이드, 딸기파르페, 딸기와플, 딸기 티라미수, 딸기주스 정도가 시즌으로 올라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딸기모찌는 떡을 하는 게 곤란하기에 탈락했지만요.
인테리어에 대한 감상을 속으로 하고 있던 청년과 주방에서 얼굴을 내민 소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주방 안에 있었구나- 같은 재미없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그는 어색하게 오른손을 다림을 향해 흔들어 보인다.
"...안녕."
어-색 머랭 치기가 마무리되기까지 잠깐의 시간 동안, 청년은 소녀에게 말을 걸면서 방해하기보다는 눈앞의 귀여운 너구리랑 이야기하는 것을 택하였다. 달걀 한 판을 손으로 직접 머랭을 친다니, 개인 카페라 그런지 전통과 정성을 우선으로 하는군요! 대단하네요! 같은, 다림과 카페의 사정은 전혀 모르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착한(?) 춘덕이는, 점장에 관한 이야기는 그에게 하지 않았다만.
"어, 그럼 난 딸기 맛! 맛 평가가 필요한 거라면, 실험적인 맛 몇 개 정도 넣어줘도 괜찮아. 정말로."
이윽고 주방에서 나온 다림을 보고, 춘덕이에게 마카로나주에 대한 설명을 다 들은 차인 그는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팔랑팔랑 소녀의 안내대로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특별한 테이블이라는 건, 그의 성질상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만-. 아르바이트생의 손님이니 그런 거겠지. 시원스러운 감상이었다.
"음료도 딸기 투성이구나- 음. 음료는 홍차, 얼그레이로."
시즌 메뉴가 잔뜩 적혀있는 메뉴판 위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흘러간다…. 딸기 티라미수, 딸기 와플, 딸기 파르페라…. 하고 중얼거리던 그가 메뉴판에서 시선을 떼고 다림을 올려다보았다.
인테리어는 모던한 듯 아기자기한 포인트를 잘 잡은 것입니다. 조금 분리된 듯한 공간은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방음이 좋은 곳이네요. 몇 군데 이런 곳을 만들면 혼자서 조용히 공부하는 걸 즐기는 이들도 이런 자리를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딸기 맛에 춘덕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딸기 필링을 부드럽게 발라놓고 가운데에는 잼을 넣는 사양으로 만드는데. 실험적인 맛은.. 아마도 민트초코 맛이나. 샴페인 맛 같은 것이 있을 겁니다. 딸기, 사과, 민트초코, 샴페인 맛, 절인 체리를 잘라넣은 초콜릿 가나슈를 샌드한 마카롱.. 같은 걸 챙겨주려 할 겁니다. 이런 디저트를 실ㅎ..아니 시식해주실 분은 귀하다고요?
"네에. 역시 딸기 시즌이니까요. 시즌이 지나면 산딸기나 블루베리류... 그리고 여름 과일로 넘어가겠지만요." 음료를 듣고는 세부사항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냥 스트레이트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얼그레이.. 런던 포그(우유+바닐라시럽)로요 스트레이트인가요? 아니면 우유를 곁들이실 건가요?" 티를 그다지 많이 취급하지 않지만 얼그레이는 모든 브랜드에서 취급하니 그정도는 있습니다. 그리고는 디저트를 정하려는 은후가 고개를 들자 고개를 갸웃하다가 정해달라는 말에 조금 고민합니다.
"얼그레이랑 어울리는 디저트는 역시 생크림 케이크나 타르트류를 추천드려요. 시즌이라면 딸기 생크림 케이크나. 딸기타르트가 가능하고요." 얼그레이가 향이 강하다 보니 크림의 맛이 마시기 전이랑 후가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는 다림입니다.
이 테이블, 자리가 약간 떨어져 있다 수준이 아니라, 방음조차 좋은 것 같다는 판단이 청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단순히, 점장이나 아르바이트생의 손님맞이용은 아닌 것으로 보였으나- 그건 지금 이 순간에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춘덕이, 이윽고 무언가를 챙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그의 눈에 띄었다. 이미 만들어 둔 마카롱을 챙기는 듯싶었다. 원한다면, 망념을 쌓아 시력을 강화해, 미리 만들어 둔 마카롱이 어떤 맛인지 당장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챙겨준 것이 무슨 맛인지 나중에 직접 먹으면서 고민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 것이기에 굳이 그런 시도를 하진 않았다.
"블루베리, 좋네! 하지만 여름 과일은 딱 하고 오는 게 없는데…. 수박일까? 수박 화채라면, 카페에서는 잘 다루지 않으니, 경쟁력이 있을 법도 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적인 프렌차이즈 카페에서는, 보통 여름 시즌엔 빙수를 취급하니 말이다. 물론, 화채가 취향인 사람들은 아주 많지 않겠으나….
"런던 포그에 우유라…. 개인 카페라 본격적인 느낌이구나. 스트레이트로 부탁할게."
개인 카페라 본격적인 게 아니라, 다림이 있어서 본격적인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까지 그는 소녀를 알지 못했다. 10여 년 전의 이야기다. 놀이터에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키득거리던 아이들은 이미 자랄 대로 자랐으며, 이 두 사람을 먼발치에서 늘 지켜보던 사람도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