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가디언 칩에 띄워진 주소를 찾아 기숙사를 나와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거진 10여 년 만에 만난 옛친구-그를 과연 상대가 옛 친구라고 생각할지는 둘째치고-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이다. 간단하게 그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자신이 일 하는 카페에 오지 않겠느냔 이야기였고, 어쩌면 그것을 다른 이들은 초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페, 그는 청월 근처의 카페라면 여러 번 가 본 적이 있었다. 청월은 매달마다 시험을 치니, 언제나 도서관의 자리는 만석인 경우가 많았기에. 유감스럽게도, 청년의 성적은 1학년 때부터 늘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만…. 아무튼, 그런 그에게도, 가디언 칩을 통해 보이는 주소는 낯선 곳이었다. 가디언 넷을 통해 확인해보니, 이곳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개인 카페인듯싶었다. 과연, 검색 결과를 보고 은후는 그답지 않게 단번에 자신의 호기심에 대한 답변에 이해를 하고 만 것이다.
"안녕하세요…?"
어떤 손님이 가게에 들어가면서 인사를 한다만, 청년은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사람이 적은 내부를 바라보았다. 곧 통통 튀는 작은 너구리 한 마리가, 계산대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서 와라, 구리!" "어…. 혹시 여기 다림씨 계시나요?"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잠시 감도는 것 같은 건, 청년의 착각이라고 해두자.
"아, 아하하…. 저 다림이 친구인데요.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초대받아서요. 지금 잠시 자리 비웠나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춘덕이를 향해 양손을 내저으며 자신이 이 카페에 온 이유를 밝힌 은후는, 그제야 카페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뭐라도 사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약간 뒤늦게 몰려왔다.
옛친구가 아니라고 하기엔 꽤 가까운 느낌이고 옛친구라고 인정하면 혹시 모를까. 하는 느낌에 가깝지 않았을까. 느릿느릿하게 있었던 일 몇 가지(별로 특별한 건 없었을 것이다. 그냥.. 놀이터에서 좀 놀다가 키득거리며 웃던 그런 타입?)를 생각하며 초대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주방보조를 하다가 춘덕이가 누군가를 맞이한 게 보이자 주방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밉니다.
"안녕하세요 은후 씨." 지금 계란 한 판을 다 깨서 머랭치고 있어서요. 곧 머랭치기는 마무리되니까 바로 갈게요. 라면서 품에 안은 머랭 볼을 봅니다. 계란 한판을 다 머랭치기를 수제로 한다니. 이 전기값 아까워하는 악덕점장(아닙니다.) 그리고 춘덕이는 머랭치기가 끝난다면 마카로나주를 해야 한다구리! 근데 이게 힘들어서 내가한다구리! 같은 말을 합니다. 저 안에서는 마카롱이 만들어지고 있나봐요.
"혹시 좋아하시는 맛 있으신가요?" "나중에 몇 구 챙겨드릴게요. 대신 맛보시고 솔직한 평가는 필요하지만요..는 농담이에요." 뚱카롱이 아니라 라뒤레풍 정통 마카롱이라서 막 슈팅스타맛이나 찰떡아이스(쑥맛일부함유)나 뚱뚱한 조개롱같은 건 없지만요. 라고 말하며 테이블로 안내하려 합니다. 연애상담용으로 만들어진 조금 분리된 공간입니다. 요즘 딸기 제품이 시즌이라. 먹고 싶은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라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딸기라떼, 딸기에이드, 딸기파르페, 딸기와플, 딸기 티라미수, 딸기주스 정도가 시즌으로 올라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딸기모찌는 떡을 하는 게 곤란하기에 탈락했지만요.
인테리어에 대한 감상을 속으로 하고 있던 청년과 주방에서 얼굴을 내민 소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주방 안에 있었구나- 같은 재미없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그는 어색하게 오른손을 다림을 향해 흔들어 보인다.
"...안녕."
어-색 머랭 치기가 마무리되기까지 잠깐의 시간 동안, 청년은 소녀에게 말을 걸면서 방해하기보다는 눈앞의 귀여운 너구리랑 이야기하는 것을 택하였다. 달걀 한 판을 손으로 직접 머랭을 친다니, 개인 카페라 그런지 전통과 정성을 우선으로 하는군요! 대단하네요! 같은, 다림과 카페의 사정은 전혀 모르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착한(?) 춘덕이는, 점장에 관한 이야기는 그에게 하지 않았다만.
"어, 그럼 난 딸기 맛! 맛 평가가 필요한 거라면, 실험적인 맛 몇 개 정도 넣어줘도 괜찮아. 정말로."
이윽고 주방에서 나온 다림을 보고, 춘덕이에게 마카로나주에 대한 설명을 다 들은 차인 그는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팔랑팔랑 소녀의 안내대로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특별한 테이블이라는 건, 그의 성질상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만-. 아르바이트생의 손님이니 그런 거겠지. 시원스러운 감상이었다.
"음료도 딸기 투성이구나- 음. 음료는 홍차, 얼그레이로."
시즌 메뉴가 잔뜩 적혀있는 메뉴판 위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흘러간다…. 딸기 티라미수, 딸기 와플, 딸기 파르페라…. 하고 중얼거리던 그가 메뉴판에서 시선을 떼고 다림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