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춘심이가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순수하고 솔직했으며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어요. 살며시 몸을 일으켜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하루를, 춘심이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얼굴이 가까워지자 낯을 가리는 강아지처럼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은, 어린 남자애가 예쁜 여자애 앞에서 흔히 그러하듯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었어요. 하루가 춘심이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을 때에는 고개를 흠칫, 가느다란 어깨를 바르르 떠는 것이었습니다. 춘심이가 느끼는 감정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이어서, 하루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고, 친구를 제대로 사귀기 시작한 건 학원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였대요. 그래서, 그녀에게는 친구들이 정말로 소중한 존재이더래요. 그리고, 하루는 지금까지 춘심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매번 고민하고 있었대요.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만 내면서 얌전히 하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춘심이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요. 여전히 무심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울음을 참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어요. 코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숨결이 촉촉하게 젖어있어요.
"...!"
언니라는 말에 하루를 바라보는 춘심이의 눈이 동그래져요. 한동안 숨을 쉬는 방법도 잊고서 눈을 깜빡거리기만 해요. 춘심이의 가슴이 크게 뛰기 시작했을 때쯤, 조용히 숨을 내쉬면서 눈꺼풀을 나른하게 내리감아요. 그리고 제 뺨에 얹힌 하루의 손등을 두 손으로 덮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까닥여 그녀의 손바닥에 제 뺨을 문질렀습니다. 춘심이는 이것으로 "마음이 전해졌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고 싶었답니다. 춘심이는 하루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내려 제 허벅지 위에 얹어놓고서, 두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살며시 덮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눈을 피해서 시선을 내렸습니다. 춘심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조금 떨리지만 차분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오빠만 셋이고, 어릴 때부터 남자애들이랑만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지금까지 동성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어. 그 애들도 진짜 친구는 아니었고. 나도 너랑 비슷하게,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게 된 건 학원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가 처음이야. 그래서 아직까지도 동성 친구를 많이 어려워해. 여자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 지금도 이렇게 너랑 가까이 있으면, 부끄러워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단 말이야."
"그럼에도 너를 피하지 않는 건, 너를 동경하기 때문이야.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서. 너처럼 예뻐지고 싶고, 여성스러워지고 싶어서. 그러니까, 너랑 닮고 싶어서야. 그런 이유랑 별개로, 다정하고 상냥한 네가 좋아서이기도 해."
"사실, 복도에 걸려 있던 그림을 봤어. 그 아이는, 하루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지? 나에게는 내 남자친구처럼. 나도 하루가 정말 소중해. 좋아해.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근데, 너랑 어디까지 가까워져도 되는지를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 애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를 나는 몰라서, 항상 고민하고 걱정했어. 그래서 너를 대하는 게 더 조심스러웠던 거야."
"... 바보 같은 고민이었을까?"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서 하루의 금빛 눈동자를 힐긋하던 춘심이는, 다시금 아래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한쪽 손을 들며 입술을 작게 벌리고, 검지 옆부분을 앞니로 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춘심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 때, 하루는 춘심이 가느다란 어깨를 파르르 떠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건 자신과의 거리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춘심이 완전히 손길을 피한 것은 아니었기에, 하루는 살며시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며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지게 되었기에 차분히 말을 마친 하루는 상냥한 눈길로 춘심을 바라보았습니다.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를 내는 춘심의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내보낼 듯 그렁그렁 해진 상태였습니다.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에, 연민이라도 품게 된 걸까요. 사실 자신의 출신에 대해 말하면 언제나 돌아오는 반응 중 하나였지만, 왠지 춘심에게 그런 반응을 보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들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동감하고, 이해해주는 것은 좋지만 춘심이 그저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자신을 대하는 건 피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은 용기를 내서 춘심을 언니라고 불러봅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인생에서 언니라고 부른 사람은, 특히 학원섬에서는 춘심과 비아가 전부가 아닐까요.
" 후후, 언니의 대답은 꽤나 간질거리네. "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돌려주듯, 자신의 손등을 자그마한 손으로 덮은 춘심이 뺨을 문지르는 것을 바라보며 하루는 상냥하게 말을 흘립니다. 그 대답이면 충분하다는 듯 상냥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때때로 여러마디의 말보다도 한번의 행동이 더욱 크게 와닿는 법이니까요. 자신의 손이 춘심의 뺨에서 내려와, 그녀의 허벅지에 내려앉는 것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자신의 시선을 피한 체 손등을 덮은 춘심이 무언가 이야기를 할 것 같았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체 조용히 기다리는 하루였습니다.
" 있잖아, 언니. 고민에 있어서 쓸데없는 고민이란건, 바보 같은 고민이라는건 없어. 물론 남의 고민에 그렇게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 중에 그런 고민은 없다고 생각해. "
하루는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선 자신의 눈동자를 흘깃거리는 춘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비어있는 손을 뻗습니다. 그리곤 아래로 숙여진 춘심의 고개를 살며시 들어올려 눈을 맞추곤, 춘심이 물고 있는 검지를 조심스럽게 빼내며 천천히 입술을 엽니다. 춘심의 걱정을 부정하지 않는 이야기의 첫마디는 분명 춘심에게 온전히 향하는 하루의 호의였을 겁니다.
" 나도 그렇지만, 언니도 연애를 하는 것은 처음이니까 모든 것이 서툴고,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고, 헤매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 " 하지만 언니는 누구인지 모를 그 사람과, 내가 아끼는 아이를 걱정해주고 있는거잖아? 그렇다면 언니는 충분히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거면 충분해. " " 떳떳할 수 있는 정도... 그건, 그 사람에게 우리 둘이 오늘 시간을 보내면서 즐겁게 웃으며 무엇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래서 얼마나 즐거웠고, 또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전해줄 수 있는 정도면 되는게 아닐까? "
하루는 다림이 잘근거리던 검지를 부드럽게 매만져주며 상냥하게 말을 이어갑니다. 춘심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에, 그 걱정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은 듯 상냥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 나는 언니랑 보내는 시간을 내가 아끼는 그 아이에게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정도라면 언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야. "
기왕이면 언니랑은 더 가까워지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하루는 성숙했던 미소를 잠시 내려두곤 어린 아이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 자, 그러니까 그런 표정은 이제 던져버리고 편하게 즐기자. 기분좋게 웃으면서 보내는거야. 그게 파티잖아? "
하루는 검지를 매만져주던 손을 떼어내곤 장난스럽게 양팔을 벌려보이며 아름다운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 그리고 언니는 나만큼 예쁘고, 여성스럽고, 언니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 나같은걸 닮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구.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언니 참 예쁘다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