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문을 보고 느낀건데 전류가 바닥을 타고 흐르는걸 봐선 이걸 무시하고 전력질주 하려면 건강도 좀 강화해야할듯. 열심히 뛰려면 신속도 당연히 강화해야하고. 우리끼리 싸우면 죽는다고 캡틴이 확실히 언급한거 봐서 강윤이가 사지로 내몰았다기 보단 포위당해서 우릴 지키느라 기술 펼치기 어렵기전에 뒤로 빠지라는 의미 같아.
지금 고민인건 왜 '두 눈 꼭 감고'라는 표현을 썼냐는거심. 그냥 다른 생각말고 뛰라는 비유적 표현인게 일반적이지만 어제 묘사된 강윤이 의념은 별이었단 말이지. 스타폴처럼 강렬한 섬광을 주변에 뒤덮는 기술을 쓸 생각이라면 섬광에 휘말리지 말라고 문자 그대로 눈감고 뛰라는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부붕...
천천히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을 때, 춘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말소리에, 하루는 화답하듯 낮지만 따스한 웃음소리를 흘립니다. 마치 자신이 바라는대로, 춘심이 즐기고 있다는 증거를 보기라도 한 듯, 다림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는 손길은 한없이 따스해져갑니다. 분명, 다림은 자신의 머리카락에 내려앉는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손길이 점점 더 세심하고 따스해져가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 말했듯, 같은 향기를 공유하면 좀 더 가까워진다고 했던가요. 뽀송하게 말라가는 머리카락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두사람의 곁을 감도는 향긋한 향에, 자연스레 취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말로 술에 취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느 감각을 춘심에게도 선사해줬을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 틈새를 놓치지 않고, 하루는 부드럽게 손을 움직입니다.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말려주는 것은 이미 숙련이 된 듯, 그 손길은 거침이 없었고, 춘심의 머리카락이 어딘가 꼬인 곳 하나 없이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비단처럼 흘러내리도록 쓸어내려줍니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춘심의 자세가 불편하지 않게, 오히려 그냥 앉아있을 때보다도 편하게 느껴지도록 해주는 것은, 자신의 집에 놀러온 춘심에게 친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어느샌가 멍하니 자신의 봉사에 푹 빠져있는 춘심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지만, 그 꿈에서 잠시 머물 수 있게 해주려는 듯 소리를 내지 않고 웃어보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열기와 바람은 머릿결의 적이기에, 춘심이 바라는만큼 오래도록 이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머리를 말리는 것이 끝났다는 말을 상냥하게 건낸 하루는 자신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춘심과 눈을 맞추곤 눈웃음을 지어보입니다.
" 예뻐요, 춘심. 역시 머릿결이 좋네요. "
하루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져보는 춘심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내어주며 그 모습을 지켜봅니다. 춘심의 커다란 눈망울이 부디 자신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오래도록 담아두길 바라는 듯 얌전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는 모습에 조금은 의아했지만, 여전히 하루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인 체로, 고개만 살짝 기울인체 춘심의 입술이 열리길 기다렸습니다. 춘심은 그렇게 푹신한 이불 위를 귀엽게 앙금앙금 기어가 무릎을 꿇고 마주보고 앉았고, 그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왠지 등 뒤로 이리저리 기분좋게 살랑거리는 꼬리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를 기세좋게 뛰어다니고 있을 소중한 아이와 겹쳐보이는 것은 그저 기분탓일까요?
" 왜 잘해주냐구요? "
하루는 입이 열리고 흘러오는 춘심의 말에 기울어졌던 고개를 되돌리곤 느릿하게 눈을 깜빡입니다. 어딘가 새치름한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것이 춘심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일어나기라도 한 것일까요? 하루는 물끄러미 춘심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까전까지 지어보이던 상냥한 미소로 도로 돌아옵니다.
" 그거야 어려운 이유도 아닌걸요? 춘심이 제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몇명 없는 동성의 친구 말이에요. "
하루는 어렵지 않은 질문이라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돌려줍니다. 정말로 망설임이라곤 하나도 없는 태연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 그것에 이어진 것은 하루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살며시 몸을 일으켜 조금씩 조금씩 춘심이 했던 것처럼 움직인 하루는 정말로 춘심의 가까이 다가갔고, 상냥하게 춘심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줍니다. 하루의 손을 거쳐서, 비단결처럼 흘러내리는 그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어루만져준 하루는 금빛 눈동자를 춘심의 눈과 맞추곤 말을 이어갑니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한, 맑고 고운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 있잖아요, 춘심. 저는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라서 제대로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요. 물론 고아원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친구라기 보다는 가족과 같은 아이들이에요. 제가 친구를 제대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여기 학원섬에 온 후, 그리고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을 때부터에요. 그러니까 제게 친구들은 정말로 소중한 존재들이에요. 실망을 주더라도, 다투더라도 다시금 그 관게를 회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존재들. "
하루는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다, 잠시 눈을 내리깔면서 이야기를 멈춘다. 친구란 것은 싸우더라도 결국에 화해를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던 하루는 이내 다시 금빛 눈동자를 춘심에게로 되돌리며 상냥하게 입꼬리를 올려보입니다.
" 그중에서도 춘심은 제게 몇 없는 소중한 동성친구잖아요? 게다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내가 무엇을 하면 춘심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하면 춘심이 좋아할까... 나는 사람을 사귀는데에는 서툴어서 매번 고민하고 걱정을 해요. 그래서 제가 제일 잘하는 걸 해주기로 한거에요. 돌봐주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도와주고... 그게 제일 잘하는거라서요. "
" 그러니까, 춘심언니. 이제 제 마음이 조금은 전해졌을까? "
하루는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던 손길을 천천히 춘심의 볼에 얹고는, 성숙한 미소가 아닌 어린 소녀와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살짝 혀를 빼물어보입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죠? 하고 묻는 듯한 그 개구쟁이 같은 시선을 춘심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