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세 사람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갑니다. 의념의 흐름이 흐르며, 세 사람의 기억 속에 스며듭니다.
그 곳에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불타버린 성의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오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푸른 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은, 불길과 연기에 의해 붉고 어두운 색으로 변하였습니다. 말이 내달리는 모습, 수 명의 기마병이 검과 둔기를 휘두르며 아이와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죽여 쓰러트리고, 그 시체 위에서 수를 세며 자신들의 공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너지고 있는 레베논 왕국의 모습입니다.
하루는 손을 뻗어 사람들을 치료하려 하지만 닿지 않습니다. 마치 이것이 흘러가야만 하는, 바꿀 수 없는 흐름이라는 듯. 오직 여러분에게 기억의 형태로, 재현의 형태로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성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자도 있었습니다.
아르키우시스 스피어. 레베논의 국왕 호위 기사단의 말석이었던 사내. 엘로앙은 홀연히 창을 들었습니다. 피와 전쟁, 전란으로 혼란스런 순간에 분연히 일어나 병사들을 몰아내었으나. 수없이 침공이 이어졌고, 자신이 지키던 이들에게 배신당해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쓰러졌음에도 엘로앙은 일어났습니다. 성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멸망해버린 레베논의 성. 그 자리에는 여전히 백성을 지키는 한 자루의 창이 있습니다. 비록 지킬 것은 잃어버렸지만, 이제 지킬 것조차 남지 않았지만.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죽음에서 돌아온 그를 이제 해방시켜야만 할 순간이 온 것입니다.
자, 그대들에게 말하겠습니다. 그가 눈을 감고 쉴 수 있도록. 이제 그에게 안식을 줄 차례입니다. 무기를 들어올리십시오.
엘로앙은 뼈만 남은 팔을 들어올리고 창대를 회전시킨 뒤, 바닥에 긴 선을 그어내리고 여러분을 바라봅니다. 인사와 동시에 이 선을 넘어온다면, 바로 싸우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제작물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기분만은 좋았더랬다. 어설픈 졸작이라 할지라도 내게서 모자란 부분을 하나하나 되짚어볼 수 있는... 뭐 그런 거지. 나름대로 소중한 결과물이라 이거다. 도검은 관상용이 아니지만, 이 아이는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보관해야지 싶다. 나는, 검 두 자루를 나란히 겹쳐 품에 안고서 공방을 빠져나왔다.
짭벌백계 아쉽다...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만들었기에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못한 상태가 된 건가... 담금질을 하면서 소재의 밀도를 한계까지 단련해서 내구도가 크게 저하된 것 같아서 아쉽네요... 으음.. 춘심주! 동아리나 혹은 창조와 의념의 관계 주가명 선생님을 찾아가서 한 번... 검을 만들 땐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같은 걸 여쭤보는 건 어떨까요? 화현이도 찬후(미술부 부장)에게 그림을 어떻게 하면 잘 그리는지 그리고 높은 등급이 나오는지 여쭤 본 경험이 있고, 해당 질문의 답변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역작을 만든 적이 있으니 한 번 해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124 " 그렇다면 나는 미식부나 봉사부, 재난지원부 쪽을 추천해. 미식부의 경우에는 몬스터의 식용화나 가디언의 식량화를 위해 움직이는 녀석들이니. 아마 너랑 맞을 수 있을 거야. 봉사부는 원래의 목적이 있다니까. 재난지원부는 타인과의 접촉이 많기도 하고, 게이트 사태 이후의 위험 지역에 파견되기도 하는 만큼. 너에게 잘 맞는다고 판단했는데. 어때? "
꿈이란 게 마냥 좋은 꿈만 꾸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을 때 나는 안좋은 꿈을 꾸곤 합니다. 학원도에 와서는 일본에 있을 적처럼 크게 안 좋은 일이 없었기에 그동안 꾸지 않은 것이지, 언제쯤이면 이 지독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만 꿀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또, 또 익숙한 풍경입니다. 천장에서부터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고, 먼지와 비명 소리가 주위에 자욱한, 그 날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는데도 나는 그날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괜찮아…., 에미리. 아니야,아니야,아니야,그말하지마,그말하지마요,그 말 하지 마시어요. 제발. 네? 그 가녀린 팔로 저를 감싸고,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했어,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내가,내가 다 잘못했으니까,전부 다 내 잘못이에요, 떨어지는 것들을 막으려 하며,
-네가, 무사하면……그걸로, 다행이니까. 괜찮으니까. 뭐가 괜찮다는 거에요, 내가 안 괜찮아요! 내가, 내가 안 괜찮단 말이야. 그러니까.... 붉어지고 있음에도 애써 괜찮다는 듯 웃으며 저를 바라보던,
-그런, 얼굴로…….보지 마, 응…….? 돌아와. 돌아오라구요. 바보 요이치. 에미리가 잘못했어요....... 지겹도록 익숙했던, 절대로 잊을 수 없던 그 풍경.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그’의 모습을, 나는 여전히 꿈 속에서 보고 있습니다. 왜 이 악몽이 그 날의 모습만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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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이번에는 확실히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막혔다가 간신히 풀려난 사람처럼 숨을 쉬며 나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비명을 질렀을까요, 애원을 했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잘못했다고 빌었을까요. 뭔가를 굉장히 열심히 소리내어 외쳤던 느낌이 있었습니다만 기억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외치다가 중간에 씹었는지 피가 나는 혀가 아려올 따름이었습니다. 가쁘게 숨을 고르며 제 목을 쓸으려 했습니다. 가느다란 그것은 제 한 손으로도 거의 다 감쌀 수 있었습니다. 타인의 눈으로 보았다면 확실히 붉은 자국이 역력했을 것입니다. 꿈을 꿨습니다. 지독한 악몽을 꿨습니다. 학원도에서는 한번도 꾸지 않았던 꿈이었습니다. 다시 그 꿈을 꾸기 시작한 이유는 어째서일까요. 어쩌면 그 웃음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창살 때문일수도 있고, 어쩌면……
.......자. 그럼 이제 어쩔까. 어쩐지 요 근래 막막한 기분이다. 부장과 선배들이 어디에 갔는지도 궁금하고, 이 기술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그러나 나에게 그런걸 물어볼 인맥 같은건......고민하다가 앗, 하고 떠올린다. 애초에 이 동아리 추천을 누구한테 받았는데! 그래, 시험도 끝났고 담임 선생님을 다시 만나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