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59253> [현대판타지/학원/육성]영웅서가 - 128 :: 1001

◆c9lNRrMzaQ

2021-06-12 16:13:46 - 2021-06-13 01:20:15

589 ◆c9lNRrMzaQ (ooSeOaq/U.)

2021-06-12 (파란날) 22:49:21

비가 내립니다.
수없이 살을 두드리는, 학원도의 긴 빗발은 닮은 빗줄기를 동반하여 하념없이 내려옵니다.
에릭은 상처 투성이의 상태로 자리에 쓰러진 채. 웃음을 짓습니다. 맥스는 하늘로 날아버렸으며, 사람들은 자신을 두고 떠났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기에 길에 누워 빗발에 이른 망념을 씻어내며 에릭은 마음을 다잡습니다.
흘러내리는 비 속에 마음은 많이도 담겼을까요. 아니면 아픈 마음과 여러가지들로 혼란스러운 마음에 무엇이 남았을까요. 그 빗소리에 가려져 웃음을 터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웃고, 자신의 처지에 눈물을 흘립니다.
봄입니다. 학원도의 두 번째 봄. 바뀐 것은 너무나도 많았고, 아픈 것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에릭은 한숨을 토해냅니다. 식어버린 온기에, 차가운 입김이 불어나옵니다.

뚜벅 뚜벅.
긴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곧 긴 비가 우산의 그림자에 가려져, 우산을 씌워줍니다. 백발의 머리카락과 눈. 여우를 닮은 그녀. 하나미치야가 에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 화현이한테 들었어. "

하나미치야는 손을 들어올려 에릭의 뺨을 내칩니다.
뜨거운 통증이 뺨을 타고 흐르지만, 에릭은 말 없이 그 손길을 받아냅니다. 사실, 조금의 건강만 강화한다면 있지도 않을 통증이지만 고통을 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 대신. 하나미치야는 우산을 씌우고 그 자리에 천천히 앉습니다. 빗물로 발이 더러워지건, 아니면 빗방울에 옷이 젖어버리건,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전처럼 약을 꺼내고, 에릭의 몸에 약을 발라주고, 입에 약을 흘려넣고, 부적을 꺼내어 온기를 더해줍니다. 에릭은 그 행동에 가만히, 몸을 움직이지 않고 받아냅니다.

봄입니다. 겨울에 마른 대지에 생명이 불어넣는 봄입니다.
무가치했고, 손을 뻗었고, 불어넣었고, 만들고자 했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비뚤어지고 있었고, 망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미치야는 에릭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 그냥. "

내 영웅이 되어주면 안돼?

하나미치야는 방긋 웃습니다.

" 맞아. 사실 나 너 좋아해. 그런데 네가 좋아한다고 해도 받아줄 수 없니, 혼란스럽니. 그런 말 해서 미안해. 그래도 난 바보같이 올곧았던, 영웅을 꿈꾸었던 순수한 네가 좋았지 영웅을 만들겠니, 영웅이 되어 동료들을 이용하니. 그런 영웅이 되길 바라지 않아. 그런데 네가 그런 영웅이 되고자 한다면. 난 너를 더 이상 좋아하기 힘들지도 몰라. "

용기.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용기를 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미치야는 용기를 내어 에릭을 붙잡고자 했고, 에릭은 이제 선택해야만 할 것입니다.
홀로 온전한, 영웅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단 한 사람만의 영웅이라도 되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 말해줘. "

묻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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