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친구들한테 실수로 애인이 있다고 말해버려서... 라던가, 정말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고백해서 거절했는데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며 달려들고 있으니 거절하기 위해 잠시 도와줄래... 같은 게 아닐까요. 어느 쪽이건 '얘가 걔를 좋아한다니까 애인대역이 애인 되는 대작전을 펼치자' 라는 친구의 흉계같은 일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이라고 연애뇌가 돌아가는 참치가 말했다.) 애인이니까 괜찮아-라는 걸로 생각하고 부끄러워도 스킨십은 임시해제지만, 애인 관계에서 뭘 해야 할지 정확히 몰라서 스킨십이 엄청 진하다던가 찰싹 붙어다닌다던가. 거리조절 실패? 나중엔 받아줘서 곤란했을텐데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연애뇌로 생각하면 사랑의 씨앗이 촉진됩니다! 두근두근, 설렘, 사랑스러움, 애정, 독점욕, 보호욕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사랑 포인트 2점을 얻습니다! 의 계기가 되었을지도요.
다림이만 없는 앨범부터 찜찜함이 시작됐다가, 페이지를 안 넘기고 있길래 아는 사람이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죽은 사람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거나... 옆에 앉아서 같이 페이지 넘기다가 살며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 할지도 모르겠네요.
기대하고 기대하던 여자친구가 입장했을 때,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평소(라고는 해도 두번이긴 하지만)에는 작업을 위해 티셔츠와 바지 차림이 기본이던 그녀가, 블라우스에 플레어스커트라는 그야말로 데이트에 어울리는 복장 조합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평소 차림도 분명 시원털털한 매력이 있는 그녀였지만, 저렇게 꾸미고 나니 평소에는 알기 어려웠던 매력들이 더더욱 돋보이면서 훨씬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내 가슴을 흔든건, 그런 그녀의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복장이 다름 아닌 날 보여주기 위해 준비 되었다는 부분이겠지. 그녀의 이런 차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걸 느끼며, 그녀에게 인사하려고 했는데....
^ o ^
망 했 다.
이럴 수가. 그녀가 나를 보았을 때, 나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 모습을 인식한 직후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경악에 물들고, 마치 정지 버튼이 눌러진 비디오 마냥 행동이 완전히 정지 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서 방금전까지 느껴졌던 두근거리는 설렘은 어디가고, 몹시 당황한 역력이 나기 시작했다. 내 복장이 잘은 몰라도 뭔가 문제가 있었음에 불구하다. 지훈아....어울린다며...(분노). 가디언넷에 평소처럼 [처음 데이트 나갈건데 무슨 옷이 좋아요?]라고 질문 했어야 했나?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한거지? 갑자기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라,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고 옆에 준비 되어 있던 음료를 집어 한모금 마셨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경직된 동작으로 내 맞은편에 앉았다.
평소답지 않게 입술을 꾹 다물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그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엔 몹시도 귀여웠으나, 그 원인이 무언가 치명적으로 오류를 범한 내 복장에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에 돌을 맞는 느낌이다. 최근 에릭 점장의 의념기를 맞아 관통 당할 때에도 이 정도로 마음이 아프진 않았는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당장에서라도 '미안! 어울리지 않지!?' 라고 자폭하며 당장에라도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옷도 갈아입고 오고 싶다. 하는김에 말하자면 나가서 우에에엥, 하고 이 실패감을 울면서 시원하게 토해내고 싶다.
그렇지만 그래선 안되겠지. 아무리 바보라도 안다. 여기서 저 경악한 반응에 움츠라들었다간, 그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를 뿐더러, 지금 이 순간의 만남이 엉망진창 뭉개질 것이다. 그녀의 복장을 보건데, 분명 상대쪽에서도 기대하고 나왔음이 분명하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뭐? 이미 망친거 아니냐고? 제발 좀 닥쳐줘.
"....안녕, 서희야. 오늘 옷, 무척 잘 어울려. 그.....귀엽다고 생각해."
따라서 나는 어색하게나마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다. 분명 예전 가디언넷에서 보건데, 여자친구와 만났을 땐 그녀를 관찰하고 제대로된 칭찬을 하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이번 선택은 틀리지 않았기를 빈다.
아무튼... 이번 앵커의 테마는 「좋아하는 너의 모습(연인 Ver.)」였습니다. 지켜진 건 처음 두 번뿐이고 나머지는 깨져버리긴 했지만요...? 솔로의 생존방식이라고 했으니 커플은 제외!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 그리고 커플은 아니지만 지훈이는... 너... 너는 안돼...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