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땅땅- 쇠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뜨거운 화로의 열기가 식을 날이 없는 곳, 제노시아의 공방이었습니다. 한쪽에 마련된 휴식용 테이블에는, 제작자들의 땀을 식혀줄 작은 선풍기가 몇 대 마련되어 있습니다.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선풍기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춘심이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느리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춘심이를 부른 이는, 같은 2학년이자 옆 반 친구인 정훈이네요!
"안-녕."
춘심이는 손을 들어 올릴 기운도 없었는지, 기우뚱, 고개만 옆으로 기울이며 말을 잔뜩 늘려놓습니다. 빠르게 걸어오는 정훈이를 따라서 춘심이의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리를 쭉 뻗어서, 스툴 하나를 발등으로 제 앞까지 끌어당깁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선은 여전히 정훈의 얼굴에 향해있던 춘심이는, 그에게 앉으라는 듯이 고갯짓으로 의자를 가리킵니다.
방금까지 화로 앞에서 쇠를 두들겨서 온몸이 달고 힘이 쭉 빠지긴 했지만, 이러는 건 일상이니까요. 선풍기 앞에만 있으면 괜스레 몸이 늘어지게 됩니다.
"그치."
춘심이는, 선풍기의 방향을 슬쩍 틀어놓는 정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직한 손길로 바람이 아예 정훈이를 바라보도록 선풍기를 돌려놓습니다. 저는 더위에 익숙하지만, 정훈이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별로 구경할 건 없는데."
무심한 투로 중얼이며 주위를 슥- 둘러보는 시늉을 합니다. 생각보다 넓은 공방에는 군데군데 화로와 작업대가 자리해 있고, 조금은 어수선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작업 공간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눈으로 보는 건 괜찮아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할 곳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아까부터 무언가 들어있는 듯이 우물거리고 있는 입. 춘심이는 주머니를 뒤적여 은박으로 싸인 사탕을 하나를 꺼내 정훈이에게 내밀어 보입니다. 목이 시원해지는 캔디네요! 정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이거 먹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 물어보라는 눈치입니다.
괜찮다는 서희의 대답에 그-런가 라고 말을 늘어뜨리면서 대답하다가, 서희가 선풍기 방향을 자신에게 돌리자 잠깐 고민합니다. 고맙긴 하지만.. 서희도 더울텐데 자신만 바람을 쐬고 있을수는 없죠! 정훈은 선풍기 몸체의 버튼을 눌러 선풍기가 회전하도록 바꾼 뒤 다시 서희를 바라봅니다.
" 구경할 게 없다니, 이것 저것 다 신기한데! "
물론.. 모르는 사람의 작업 공간을 막 찾아가는건 실례니까 멀찍이서 눈으로만 슬쩍 봐야하겠지만요. 혹시 눈으로만 보는것도 실례일까요? 장인의 비전이라거나.. 그런 느낌으로요
" 앗, 고마워. "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희가 목이 시원해지는 캔디를 주자 정훈은 감사를 표하며 받은 뒤 바로 포장지를 벗겨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립니다. 어릴 때 국궁장 어르신들이 주셔서 많이 먹었었는데 학원도에 온 뒤에는 오랜만이네요!
" 음음. 갑자기 왜 찾아왔는지 말해야겠네! 얼마전에 궁도부에 가입했는데 거기 선배들이 신기한 도구들을 이용하시면서 수련하는걸 봤거든! 그래서 그런 도구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건지 궁금해서 찾아왔어 "
용건을 밝힌 정훈은 이어서 자신이 궁도부에서 봤던 신기한 도구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활시위와 활촉을 쥐는 과정을 생략하게 해주는 도구라던가, 시위에 장착되어 화살을 쏘아낸 다음 새로운 화살이 활대를 타고 올라오게 하는 등. 물론 가장 멋진건 부장의 변신장갑(?)이었다던가 하는 설명이요
자신만의 기술이나 작업 방식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작업물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의뢰자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이도 분명 있을 거예요. 보는 이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신뢰를 심어주는 가장 투명하고 떳떳한 방법이니까요. 보편적으로는 제작물의 품질과 성능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곤 하지만요. 정훈이 걱정하는 것이라면, 그런 이들이라면 이렇게 공개된 곳이 아니라 개인적인 공간에서 몰래몰래 작업하지 않을까요? 눈으로 보는 것은 괜찮으니, 공방의 분위기에 괜히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예요.
춘심이는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훈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보았던 도구들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 어쩐지 들떠 보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열고 있는 춘심이도 조금은 기분이 들뜨는 것 같습니다. 춘심이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제일 즐거워요.
"사용자에게 어떤 부분에서 보조가 필요한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만 충분하다면,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구상한 것을 짜임새 있게 설계하는 게 어려울 뿐이지."
설계도만 있으면 어느 물건이든 못 만들 것도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느긋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던 춘심이는,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여서 턱을 괴고 정훈이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