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같은 건 모른다, 시험 같은 건 난 모른다, 시험 따위…. 같은 생각을 무한히 반복하며 은후는 걷고 있었다.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3일! 공부 한 분량은 80페이지가량! 남은 3일 만에 나머지 공부를 다 하는 미래를, 가능성을 영성S라는 스텟을 써 계산해 보고, 의념까지 써서 찾아보았지만,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영성이 유독 높은 편이라 낙제는 가까스로 면할 수 있을 거란 건 잘 알고 있지만, 처참한 성적으로 집에 돌아가서 방학 내내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니- 오늘은 은후의 이 방황을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아무튼, 그리하여 한 청년은 항구를 걷고 있다. 시험이 정말 코 앞이어서 그런 걸까? 날씨가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조용한 것도, 나쁘진 않네…."
권역 쟁탈전이 시작된다면, 이곳은 세 학교의 싸움터가 될 것이다-. 지금 여유를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판단을 내린 은후는 그 자리에 서서 방파제를 바라보았다. 방파제 끝에 있는 저 회색 등대와…. 사람 하나. 비교적 독특한 차림새에 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바로 못 알아봤지, 하는 의문을 가지며 도수 없는 안경을 습관적으로 고쳐 쓰려는 찰나 세찬 바람이 불었다.
"어, 어라…."
이렇게 바람이 불면, 저 모자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다림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마녀 모자가 떠나기 전에, 반쯤 직감적으로 그것을 눈치챈 은후는 맥빠진 소리를 내며 저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예상 지점은…. 달리면서 계산하면 된다!
시험기간.. 3일 남았는데 다림이가 가능할 것인가.. 다림주는.. 글쎄요.. 근데.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스테이터스 B와 A와 S는 드는 망념량이 다를지도 같은 생각을 하는데. 스테이터스 S기준으로 청월 4학년이 1350이면 완전 망한 걸지도.. 물론 캡피셜이 아닌 다림주의 농담같은 아무말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회색 등대를 올려다봅니다. 망토가 움직임에 흔들거립니다.
"아?" 바람이 갑자기 확 불어서 그다지 단단하게 얹어져 있지 않던 마녀모자가 휙 날아갑니다. 조금 반응이 늦었기로서니 이렇게 휙 하고 날아갈 일인가? 이 모자 생각보다 무게감 있는 편인데..(물론 그 바람이 어느 풍 속성 학생의 연습바람이 휘이이익 올라간 것이었다는 점은 다림도 은후도 모르겠지..) 하면서 모자를 쫓아 달려갑니다. 낙하지점이 다행히도 육지 쪽입니다.
만일 바다 쪽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바다에 몸을 던졌을 거니까. 다행인가? 그리고 본인보다 먼저 다다라서 모자를 집어든 이를 바라봅니다.
"모자.. 주워주신 건가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꾸벅입니다. 다림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엉망이 되어있네요. 숨이 찬 모양인지(의념을 쓸 생각도 못한 건지) 어깨를 좀 들썩이면 망토 밑자락이 흔들거립니다.
동생들…? 이 있으시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선배님께서는 동생들과 상당히 사이가 좋으신 분 같았답니다. 저만 해도 그런 건 절대로 생각 못해서 따로따로 사고 있는데 말이어요. 이게 신한국? 의 형제사이 라는 걸까 싶었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가 옷을 보려 하였답니다. 그리고 다짐했지요.
“역시~ 죄송해요~! 가족과 세트로 사기엔 오라버니들께서 같이 입는 걸 싫어하실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
마음을 굳히며 유감의 뜻을 표하려 하였답니다. 오라버니들과 커플 운동복이라니 죽어도 사양하고 싶답니다!!!!!!! 특히 유우토 오라버니와는 절대로 사양하고 싶사와요!!!!!!!!! 이런 식으로 적혀있는 건 사양이와요!!!!!!!!!! 그날이 제가 부끄러워서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는 날이랍니다!!!!!!!!!!
“저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아니어요? 이 디자인이 무척 저는 마음에 든답니다? 다만 같이 입는 걸 저는 좋아하지만 오라버니들은 아니시란 거였사와요? “
실제로는 저도 아니고 오라버니들도 아니시겠지만 최대한 가게 직원님들의 기를 살려드리고자 한 마음에 애써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보려 하였습니다. 죄송해요....죄송해요 이름모를 선배님....!
후아, 하고 숨을 진정 시키면서 힘 없이 대답한다. 평소엔 어쩐지 움츠러들어 있으니까, 누군가 건드리면 깜짝 놀라서 히에엑 하고 놀라버리는 내가 슬프다.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천성인지라 그렇게 쉽게 고쳐지지는 않아.
".....에, 음....고, 고마워?"
나이 어린 후배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면서 귀엽다라고 칭찬 받는 남자. 다들 어떻게 생각해? 그 와중에 일단은 칭찬이라 기쁜게 참으로 나 답다. '하지마.' 라고 말하면 그만 둘 것 같았지만, 어쩐지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느껴져서 결국 나는 귀엽다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머리를 맡겼다. 그래. 지훈이도 별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이겠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더니 어쩐지 편해져서(자포자기 한걸지도 모르지만), 볼을 긁적이며 베시시 웃었다.
"그럴까? 지훈이는 옷 잘 입으니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멋있는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태 간편하거나 귀여운 옷 위주로만 골라왔다. 정장이라던가는 솔직히 잘 모르고, 어쩐지 옷 입는게 능숙할 것 같은 그가 도와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선 모자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주인도 (당연히) 모자를 줍기 위해서 달려온 주인을 향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은후는 다림을 향해 모자를 건네었다.
"이런 거로 뭘요. 그냥 지나쳤다면, 나중에 시험보다 더 신경이 쓰일 거에요."
물이라도 따로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같은 혼잣말을 하며, 청년은 소녀의 흐트러진, 독특한 빛의 파란 머리카락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다시 이 모자가, 이전보다 더 단단히 주인의 머리에 얹어지기 전에, 어째서 자신이 저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는지 생각해 볼 유일무이한 기회였다-…. 적어도 오늘은.
"들어보니 보기보다 무거워서 깜짝 놀랐지만 말이죠! 이런 게 휙, 하고 날아오다니. 놀라서 저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지 뭐에요. 아, 이런 걸 날린 바람에 더 놀라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만, 저 밑으로 가라앉은 기억은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금세 푸른색을 떠나, 갈 곳 잃은 시선이 다림의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로 옮겨갔다가, 다시금 불어오는, 이전보다는 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망토로 옮겨졌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바람이라고, 옷을 더 챙겨입고 나올걸. 하는 후회를 안고서.
"시험보다 신경이 쓰이실 건가요?" 그 정도는 아닐텐데.. 라고 생각했다는 양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은후의 발치를 쳐다보던 고개를 들고는, 천천히 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깁니다.
"그래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부드럽게 웃으며 묻었을지도 모르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려 합니다. 머리카락도 손으로 살짝 정리하려 하네요.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쓸리며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마치 낮의 바다의 수면이 흔들리는 것 같은 빛이 흩어질까요.
"그러게요. 누가 일부러 만든 바람처럼 세게 와서 놀랐어요." 날아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요. 라고 말하는 다림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익숙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소개받지도 않았으면서 만난 적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실례지요. 다림은 은후를 올려다보면서 어딘가에서 만나본 적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끼워맞춰 보다가. 너무 정보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훑어보듯 보진 않아서 다행일 거야.
솔직히, 뭐라 말하곤 싶었지만 오라버니 얘기를 꺼내시는 것에는 “그러게 말이어요…..다른 집도 다 이런 건 역시 아니겠지요~? ” 라고 끝을 흐리며 답해보일 뿐 특별한 대답은 없었답니다. 사실 우리들이 거의 다 성년에 가깝거나 이미 성년은 한참 된 나이인지라 그정도 나이쯤 되었으면 맞춰입는 건 진작에 졸업할 법 하니까요. 본인들끼리도 서로 그렇게 입는 걸 싫어하는 게 당연한 것이랍니다. 남매끼리 옷 맞춰 입는건 어린애일 때나 하는 것이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글쎄요~? 지금은 없사와요? “
에미리는 연애는 당분간 조금 쉬고 싶으니까요~ 라고 애써 부드러이 덧붙였습니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는 거랍니다. 아무튼 없사와요. 정말로! 신경쓰인다거나 그런 사람이라던가 절대로 없으니까요?? 정말이니까요????? 거짓말 아니니까요????? 하늘에 맹세코 정말이랍니다????
“어라🎵 깔끔한 게 괜찮아 보인답니다! 가격이 어느 정도 되련지요? “
뭐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요. 세트가 아닌 걸 권해주시는 걸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답니다. 적당히 수련실에 갈 때 입기 좋아보였습니다.
두 손가락을 맞대어 꼼지락 거리면서 작게 얘기한다. 귀엽다 귀엽다 연호 받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엉망진창 부끄럽다. 그런건 주변에 있는 수 많은 귀여운 여자아이들에게 하면 좋지 않을까. 아, 이미 하고 있나...?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 다만 우호적인 표현을 강하게 내치기도 어쩐지 미안해서, '칭찬이면 뭐.....괜찮지만....'하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덧붙이는 것이다.
"그, 그래."
직설적인 화법에 당황하면서도 조금 고개를 끄덕인다. 속으로 내심 이 애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겠네~ 라는, 친구가 많지 않은 사람 특유의 미묘한 질투나 부러움이 피어온다. 저렇게 스트레이트하게 호감이나 의견을 전달하는건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 만큼 진심으로 솔직하거나, 혹은 그 만큼 전부 거짓말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야 말이야.
"그런.....가? 외출은 자주 하는 것 같길래."
생각해보면 지나가다가 언뜻언뜻 그를 봤던 적이 있던 것 같다. 여자아이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어서 그다지 인사를 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꽤 친화적인 성격이고, 친화적인 성격은 옷을 잘 입는다(편견).
"응!"
정장부터 보자는 말에는 긴장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한테 어울릴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입어볼 수 밖에 없다. 만약 여기서 예상 외의 반전 매력이라도 나온다면, 감정 표현이 조금은 서투른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결의를 가지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1등 할 자신은 전-혀! 없지만, 낙제하지 않을 자신은 있어서 말이에요."
물론, 학생 평가도 시험 성적과 같이 떨어지겠지만…. 그 청월에서 낙제하지 않는 게 어디인가? 그렇기에 은후는 다시 표정을 관리하며 어느 때나 다름없는 표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언제나 성적이 좋을 순 없는 거니까요. 때론 떨어지고, 때론 예전보다 오르고…. 이번에는 그냥, 떨어질 차례인 거로 생각해요."
이런 세상의 흐름을 굳이 꼬아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기에, 청년은 성적표보다는 눈앞의 흔들리는 푸른빛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치, 여주대교에서 내려다보던 낮의 남한강 표면처럼 일렁이는 그것은- 단순히 내려다보던 수면과는 무언가 달라, 신비로우면서도 낯설음 속의 낯익음을 선보였기에.
그렇기에 그의 집중력은 처참하게 거푸거푸 흩어졌다. 평소라면, 호기심이 동해 정말로 이 바람이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 찾아볼 생각도 해 볼 그가, 누가 일부러 만든 바람처럼 세게 왔다는 다림의 말에,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내리고 멍청한 얼굴로 웃을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저는 신 은후에요. 그런데 아버지는 문 씨."
사실 통성명에 시현의 성은 필요 없지만, 은후는 굳이 장난스러운 투로 아버지의 성을 덧붙였다. 하지만 웃기지 않으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성이 다, 고 이름이 림은 아닐 거 아니에요?"
요컨대- 성씨까지 알려달라는, 일종의 항의였다. 기다림이란 세 글자는 결코 사람의 이름으로서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다림이라는 두 글자는 평범하여서.
"1등 할 자신은... 없네요.." 하긴. 본인이 공부한 부분만 나온다고 하여도 그건 힘든 일이지. 정확하게는 다림은 수재적인 건 얼추 가능해도 천재적인 건 아니고, 가장 큰 원인은... 다림주가 영성 -라서...
"그렇지만 1학년 첫 시험부터 떨어지다니. 저는 조금 슬퍼질 거에요." 이 말에서 다림이 1학년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을 올리려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은 다림에게는 약간의... 변명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열심이니... 같은? 그러다가도 눈썹을 내리고 잘 모르겠다는 듯한 웃음을 짓는 걸 바라봅니다. 저런 표정을 어디서 또 본 적 있었을까?
희미하고 가물거리는 기억 저 너머에서 동명을 찾아내면 흑발이었지 않나..? 싶은 은후 입장에서는 미묘한 눈빛의 갸우뚱거림이 있을 겁니다. 도망치듯 떠나가면 보통은 좀 친한 편에 속하는 이들만을 묻어두는 편이라서. 다림은 스스로가 파헤쳐낸 것을 직시하지 않다가. 성이 다 고 이름이 림이 아닐거라는 말에 까르르 웃었습니다. 차가운 표정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부드럽고 가볍다니.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겠지요.
"다가 성씨로 없을 거라고 단정하시는 거에요?" 다림주의 참고로.. 2015년에 다 씨가 7명 등장했다고 한다.(아마도 귀화인으로 추정한다고) 그렇지만 진짜 뾰로통하거나 감정이 상한 게 아닌. 그저 농담식의 말에 가까웠을 것이다. 목소리도 상쾌한 편이겠고.
"기...라고 등록은 되어 있어요." 라고 눈을 살짝 피하며 고개를 조금 숙이듯 기울인 뒤 말하는 다림은 모자를 품에 안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