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제가 잘못한걸요. 오히려 무례를 저지르기 전에 편하게 받아주시거나, 무슨 용건이냐고 여쭤보시던 말투는 상냥하셨어요. 그리고....이건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누군가를 지키는 부의 부장님이 나쁜 사람일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건방진 소리일까요? 하고 볼을 긁적였지만, 그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사실 냉랭이라곤 해도 잘 따지고 보면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고, 그렇게 폭언이란 느낌도 없었고. 사과 드리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더 뭐라하지 않고 나가셨고. 충분히 많이 참아주신 것 아닐까.
"네에, 춘하....봄여름 선배님! 헤헤, 아까부터 신경써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까부터 좋게 좋게 말씀해주시고 중재도 해주는 정말 듬직하고 멋지고 상냥한 선배님이다.친근하게 부르고 싶다면~ 이라는 말에 냉큼 그 호칭을 쓸까 했지만, 또 어쩐지 선배님에게의 예의는 지키고 싶었음으로, 결국 친근한 별명과 정중한 호칭을 합쳐 봄여름 선배님이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일단, 부활동에 열심히 참여 해보겠습니다!"
친근한 호칭이 어쩐지 즐거워 몇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활짝 웃으면서 의욕을 드러냈다. 방금 '열심히 활동할게요~' 해놓고 활동도 안하고 쓱 빠져나가면 무슨 생각을 하시겠어. 이후에 할 일도 있겠지만, 일단은 부활동부터 해보자.
게다가 무엇보다 나는 실제로 누군가를 '지킨다' 라는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초조함을 느끼는 이유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최고의 문제점도 바로 그런 부분인 셈이다. 공격을 '막는 것' 과 누군가를 '지킨다' 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여기서의 경험은 분명히 도움이 될거야. 허수아비를 통해 '막는 법' 에 대한걸 조금 감 잡을 수 있었으니. 이 다음엔 경호부에서, 누군가를 '지키는 법' 을 철저히 배우도록 하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험 기간인데, 시험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은후주의 타이밍 탓으로... 메타 발언은 이 정도 선에서 그만하도록 하자. 물론, 은후 스스로 생각해 보았을때, 수업은 착실하게 들었다고 자신할 순 있다. 하지만 공부는, 단지 수업 시간에 한 번 듣고 끝내는 것만으론 되지 않는다. 배운 것을 복습해보고, 스스로 응용해보고, 모르는 부분은 따로 찾아봐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여기가 청월이기 때문에 더더욱!
"하아..."
남들보다 느릿느릿 가방을 정리하던 은후는 창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지만.
"덱을 마도로 만들어서..? 뽑아서?" 덱에서 원하는 걸 뽑는.. 샤이닝 드로우? 드로! 몬스터 카드. 드로! 몬스터 카드...? 생각해보니 주사위 굴리는 것도 마도로 구현한 거였죠. 초조하긴 할 겁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이 별 효용이 없었던 것 같음은.. 그렇지요.
"아. 이건 진짜.." 의념기 한번 더 가나요?
아군의 공격력 증가 / 아군의 방어력 증가 / 아군의 스테이더스 증가 / 아군의 망념 수치 감소 / 아군의 체력 회복 / 적군의 스테이더스 감소 / 적군의 공격력 감소 / 적군의 방어력 감소 / 적군의 상태이상 악화. 일단 의념기 설명을 생각해보고는 허수아비를 또 봅니다.
아니, 이렇게 정보 제공자를 바로 날려버리시다니...?? 조금 많이 어벙해진 얼굴로 목이 날아간 시체와 유우토 오라버니를 번갈아 지켜보다가, 일단 의념을 끌어올려 제가 할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뒤의 중요한 두 질문을 대답하지 못하신 무능한 촌장님이시지만 아주 중요한 정보를 말씀해주셨으니까요.
"이렇게 바로 날리실 것 까지야 없사온데.....감사드리와요 오라버니🎵"
붉은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는 걸 느끼며,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로 하였습니다.
자아, 그럼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정리해보도록 할까요. 태초에 선과 악의 대립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선의 신인 마흐누라가 악의 신 에카히론슈트라를 죽이고 그 시체 위에 땅을 세우고, 생명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의 신에게 우주가 시체의 땅 위에서 언젠가 악의 후손이 탄생할 것이라 예언하였는데 이를 경계한 선의 신은 태양이 악을 가진 자들의 깊이를 보이고, 경계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게이트의 인간들은 선에 가까워 질수록 그림자가 점점 옅어지고, 악에 가까워질수록 그림자가 짙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곳의 수도자들은 악인들을 잡아다 신께 바쳐 일종의 제사를 지내고 있구요. 추측을 해봅시다....과연 이 그림자가 정말 악한 이들만 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까요? 정말 죄악을 범하지 않았는데도 단지 그림자가 짙단 이유로 목숨을 잃은 이들 역시 많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이 곳의 귀신님은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넋을 위로해주길 원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답니다. 귀신님께서는, 자기와 똑같이 누군가가 이곳에서 제물로써 죽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눈에 생기가 없어지고 뺨에 핏기가 없어지는 가설이기에, 저는 아니기를 바랬답니다.
망치로 있는 힘껏 검날을 두들겨도 쇳가루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시도가 잘못되었던 듯싶다. 나는, 근본적인 수리 작업도 시도해보지 않고 무엇부터 하려 했는가. 지나가던 소가 웃겠다.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검날이 상한 것 같다.' 날붙이의 날이 상하면, 벼려야지.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어야지. 연장의 정보를 읽을 수 없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용자가 이상을 느꼈다면, 연장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날을 벼릴 뿐이 아니라 연장을 사용자에게 맞도록 최상의 상태로 조정해 주는 것이 대장장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마침 야금술을 공부하며 불을 피워둔 화로가 있다. 작업복을 단단히 차려입고, 모루를 준비했다. 진중하고 자신있게 작업을 시작하자.
먼저, 커다란 가위 모양의 집게로 검신을 붙잡았다. 이어서 뜨거운 화로에 검신을 달구기 시작했다. 검신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얼마큼, 얼마나 달구어야 할까. 달아오르는 검신을 눈으로 보고, 쇠붙이가 내는 소리를 귀로 듣고, 그 미세한 떨림을 집게를 잡은 손으로 느껴보자. ... 충분히 달구어졌을까.
화로에서 빼낸, 충분히 달구어진 검신을 모루 위에 올렸다. 이어서 벼림망치를 손에 쥐고 검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하지 않게, 일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때리는 세기가 너무 약하면 소용이 없고 너무 강하면 검이 망가진다. 달아오른 열이 식어도 문제가 된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듯이, 어긋난 뼈를 맞추듯이 섬세하게 검날을 두드린다.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줄 때, "물 온도 괜찮으세요?" 하고 묻듯이, 경락 마사지를 받을 때, "너무 아프지 않으세요?" 하고 묻듯이 조심스럽게, 또 강단있게 쇠붙이의 울림을 듣고 느끼고 따라본다.
끝으로, 담금질로 마무리를 해주어야지. 머리를 다 감기고 드라이를 해주는 것처럼, 격한 운동을 끝내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너무 뜨거울 때 갑작스레 식히면 구조가 상하고, 자연풍에 너무 식어버려도 두드림의 의미가 사라진다. 식어감에도 여전히 뜨거운, 쇠붙이가 내뿜는 열기를 피부로 느껴보자. 마지막으로 검신을 천천히 물에 담근다. 너무 갑작스럽지 않게, 또 너무 늦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