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기분 나쁘다. 에릭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는 동안에도, 하루가 공통되게 생각한 결론이었다. 눈 앞의 에릭이 카사와 좀 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직감으로도 알 수 있었다.
" 진짜로, 정말로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에릭 하르트만. "
아마도, 당신과 만난 이래 처음으로 이렇게 당신을 부르는 것이겠죠. 하루는 빛이 번뜩이는 금색 눈동자로 에릭을 바라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를 낸다. 더이상 상냥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이 말을 도로 집어넣지 않는다면 한동안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 당신 지금 굉장히 음침하고, 징그럽고, ... 혐오스러워요. " " 혹시 당신 주인공 병이라도 걸린거 아니에요? "
주변에 빛무리를 반짝이며 하루는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이지, 자기 손으로 누군가를 쥐었다 폈다 하려는 그 마음가짐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네가 뭔데, 그 아이를 강제로 원치 않는 무대 위에 올리려 하는건데?
" 당신과 카사에게 무언가 있다는 건 알아. " " 내가 만나지 못한 연결고리가 둘 사이에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는데. " " 이건 선을 넘은거야, 에릭 하르트만. "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있던 다리를 꼬고 앉은 하루는 천천히 머리를 쓸어넘기며 차갑게 대답했다.
" 난 그 아이가 원하지 않은 무대에 올라서는게 싫어. " " 그 아이는, 그 아이가 바라는대로 살아갈 자유가 있어. 그걸 네가 멋대로 다른 무대 위에 올려두려고 하다니. " " 굉장히 건방지고, 오만하고, 방자한 생각이야, 에릭 하르트만. " " 너... 정말 최악이구나? 네가 뭐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거야? "
하루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태양같이 화사한 미소가 아닌, 어딘가의 눈폭풍을 불러올 것만 같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체, 에릭을 내려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 선을 넘지마, 에릭 하르트만. 이건 경고야. " " 이건 카사와 같은 학교의 학생으로서, 같은 가디언 후보생으로서, 그리고... 그 아이의 연인으로서 하는 경고야. "
이 선을 넘으면, 어떻게 해서든 널 끌어내려주마. 조용히 덧붙여진 말과 함께 차갑게 가라앉은 금빛 눈동자가 에릭을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