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고 있는 남자-진화에게 조심성 없이 몸을 가까이하고 필요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행동들에 대한 자격지심이라고 정리해두자.
나는 막내 오빠와 세 살 터울, 그 위로 오빠가 둘이나 더 있다. 부족함 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것과는 별개로, 남자 형제만 셋씩이나 되었던 탓에 학교생활이 순탄치만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남자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여자아이들과 거리를 두었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잠시 따돌림을 당했으며 그 이후에는 자연히 말수와 감정 표현이 줄어들었다.
또래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은 더 이상 순수하고 솔직하기만 한 행동이 아니게 되었다. 이미 먼 길을 돌아버린 탓에 여자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질 못했었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음에도 다가와 주는 아이들이 몇 있기는 했었지만, 남자아이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내 행동들이, 내가 사춘기 소년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만만한 아이 취급을 받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실은, 그때쯤부터 인간관계라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외로움이 그다지 아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만 있으면 된다고, 이루고 싶은 소중한 꿈 하나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원도는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푸른 봄철을 내바치는 이들로 가득했다. 똑같이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소녀들이었지만, 그들 앞에서는 나를 감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서로를 동경하고 의지하고 함께 나아가는 관계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더 이상 행동이 조심스럽지 못한, 겉으로만 순진한 척하는, 쉽게 대해도 괜찮은 아이로 비치지 않게 되었으며, 비로소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여, 내가 그에게 필요 이상의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직까지도 이성 친구라는 존재가 심적으로 더 편안하다는 방증이며,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매료되는 것은 내게 없는 여성스러움을 동경함에 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감정을 전달하려는 습성은, 매사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버릇이 굳어진 탓이기도 하다.
그는, 내 것도 충분히 부드럽다고, 장인으로서 계속 노력해온 증거가 아닐까- 하고 말해주었다. 그야 당연하지. 그냥 손가락과 손바닥에 가슬가슬한 굳은살이 조금 박였을 뿐인걸. 별로 내 손이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부러움을 느꼈던 건 아니다. 그저 그의 손이 예뻐 보여서, 부드러워서 무심결에 그랬을 뿐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에 속으로 웃음이 났다. 그는, 손을 잡는 것 하나만으로 내 손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 내 노력을 빛내준다. 최고의 장인이 되고 싶은 내게 있어서는 더없이 황홀한 찬사였다.
나는 그의 상냥함이 좋았다. 따듯한 말 한마디에 코끝이 시려온다. 그래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멈출 줄 몰랐던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깍지 낀 손을 끌어당기며 뒤늦게 한 걸음을 내디뎌 그를 마주 볼 수 있도록 몸을 돌려놓았다. 그리고 자유로운 손을 그의 겨드랑이 아래로 밀어 넣으며 몸을 바짝 붙이려고 했다. 고맙다는 말 대신, 가벼운 포옹으로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고마운 말을 듣고도 아무런 대답 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옆얼굴이라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포옹을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를 끌어안은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서로의 배가 맞닿을 정도로 인사가 깊어졌을까. 고맙다는 말이 입속에서 뱅글뱅글 맴돈다. 결국 입안에 모아두었던 침을 꼴깍 삼키는 것밖에 들려줄 소리가 없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이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해주면 좋으련만.
제노시아는 정기시험이 적은 대신 그 시험이 중요하고, 다른 실기 등등이 많은 느낌입니다. 다림주가 개인적으로 생각했기에...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된 책상을 보며 뿌듯해질 때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하루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듭니다.
"안녕하세요 하루 양?" 늦지 않았어요. 공부하기 전에 한 잔 마시려고 받아왔어요. 라면서 잔을 들어올립니다. 상큼한 복숭아 아이스티입니다. 하루 양은 무슨 음료를 원하시나요? 냉장고에 들어 있는 건 먹어도 된다고 하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오렌지주스.. 아이스티, 알로에 주스.. 조금 더 돈을 내면 제작도 가능하다네요." 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에 홀려서 공부를 안 하면 곤란하겠지만. 그러다가 약간 갸웃하고는 하루 양이 뭔가 달라진 것 같지만 뭐에 의한 건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