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동전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가디언 칩으로 동전 소리 무료 효과음을 내가 만족할 때까지 재생하고 있는 것 뿐이지만. 후후..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쓸까~ 오늘도 하염없이 걷는 시내의 상점가. 아이쇼핑을 잔뜩 해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파악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아직도 살 물건을 정하지 못했어... 슬슬 다리가 아파와서 근처 카페에 들려 음료를 주문하고 야외 좌석에 앉아 음료를 홀짝인다.
"킥킥... 평상시라면 제일 싼 메뉴를 고를까 말까 하다가 그냥 가게 바깥으로 나갔었는데... 지금은 아무 고민 없이.. 제일 비싼 메뉴를 주문할 수 있구나..."
돈이란 좋아... 하지만, 아직도 캐비어가 올라간 스테이크는 주문할 수 없어.. 반드시 캐비어가 올라간 스테이크를 먹으리...
그 곳에 내가 있었다. 웃고 있었다. 그 곳의 나는 행복하다는 듯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곤 내려쬐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행복하진 않지만, 언제나와 같았던 하루. 책상에 앉아 툴툴대며 책을 꺼내고 친구와 게임 이야기를 꺼내며, 으레 학생들이 그렇듯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짓는다.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며 짧은 수다를 떨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몸을 움직이고 다시금 수업을 마친다. 웃었다. 손을 뻗었다. 친구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친구들의 목소리가 점점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진현아. 규석아. 나야. 지훈. 같이.. 그 때처럼, 추억을 쌓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 끝에서 그 그림자가 흩어졌다. 웃고 있던 친구들이 사라졌다. 허망한 표정으로 손에 잡혔던 옷깃을 떠올렸다. 그리고, 웃었다.
“ 왜? ”
표독스럽게 웃고 있는 하얀 소년에게, 난 울듯 말했다. 내 꿈을 이뤄줘.
“ 정말? ”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웃음을 터트렸다. 곧 웃음은 해맑게, 즐겁게, 비웃으며, 내려깔며, 웃었다. 소년은 천천히 지훈에게 다가왔다. 천천히 지훈을 끌어안았다. 지훈의 세계가 흔들렸다.
... !!! .. 지훈!
“ 한지훈!! ”
진현은 지훈의 어깨를 흔들었다. 곧 고갤 흔들었다. 잠깐.. 졸았나 보다. 가볍게 고개를 투레질한 뒤, 칠판을 바라보았다.
“ 정신 차려 임마. 시험 망하고 싶나? ” “ 아.. 미안. 좀 졸린가봐. ” “ 또 새벽에 로그나 하고 있었겠지 ” “ 무시하냐? ”
지훈은 웃었다.
..
“ 사비.. 아.. 에.. 릭.. 화.. 현.. 다.. 림.. 아.. ”
거대한 그림자 위에는 두 눈동자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 우리 친구 맞지? ”
그림자가 일그러졌다.
“ 그럼 나 좀 잡아줄래. 몸이 너무 아파서 말야. ”
히죽.
" 망념화 반응 확인. 게이트 ' 혀 끝 '의 보스급 몬스터. 장산범을 확인하였습니다. 토벌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
나는 영혼이 나간 체로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러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어. 청월고교에서 도망쳐 성 아프락시아로 전학한 나는 지금, 한창 수련장 허수아비와의 대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허선생이었다. 의념기 세번 쓰면 성장한다던가 무성한 소문은 사실 먹이를 낚기 위한 그의 노림수가 아니었을까.
"........배고프다."
벤치에 앉아 쪼그려 앉은체 고개를 떨궜다. 돈도 없고 친구도 없고 실력도 없는 나는, 음료수에서 가장 열량 높은 음료를 뽑아 아껴서 홀짝거리는 수 밖에 없는거야. 얼마전 비아랑 레스토랑에 갔을 때 지불한 값이 아팠다. 열등생은 괴로운 법이다. 꼬르륵 소리가 울리지만 무시했다. 이 음료수를 마시면 다시 수련장에 가서 허선생님과 대련해야 된다. 아껴 마시자.
"..........."
내 시선은 자연스레 카페에 앉아서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던 아이에게 멍하니 향했다. 와. 여유있다. 그림이 된다. 저런게 흔히들 말하는 '인기 있는 사람' 같은걸까. 벤치에 앉아 주접이나 떠는 내 모습과 비교하니, 어쩐지 울적해졌다.
".....부럽다...."
학교 생활도 분명 잘하겠지. 친구도 많을거고. 의뢰도 잘 갈거고. 돈도 많을거고.......허수아비에게 5분동안 두드려 맞지도 않을거다.
춘심이는 종일 작은 공방에 틀어박혀 뜨거운 화로 앞에서 쇳덩이를 때리고 날붙이를 벼리니까. 머뭇거리는 목소리엔 앞말이 꽤나 생략됐다.
몸짓이나 행동이 나른한 춘심이에겐 느리게 걷는 일이 꽤나 편안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목에 둘러진 팔의 압박감에 묘한 안정감을 느끼는 춘심이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
춘심이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이건 간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똑같이 되읊었다. 여전히 느리게 걸으면서, 두 손을 들어 턱 밑에 있는 지훈의 팔을 가만히 받쳐 올린다. 그리고 입을 약간 벌리고 고개를 숙여 그의 살갗에 가볍게 이를 가져다 댄다. 마치 옥수수를 들고 한입 베어 무는 것처럼.
가디언 칩을 만지작거리며 더는 동전 소리를 듣기 싫어졌는지 동전 소리 재생을 끄고 툭툭 메신저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온 메시지는... 무려!! 찬후 선배에게 온 게 끝. 그마저도 내가 먼저 보낸 거. 이래서~~ 친구 많은 사람이란~ 바쁜 법이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료를 쭈욱 빨아마시고는 기지개를 켠다. 계속 시선이 느껴지지만 애써 무시.. 무시... 하려다가 눈이 마주쳤다..
"..."
음... 벤치에 앉아있네. 머리카락이 꽤 길지만... 환쟁이의 눈은 속일 수 없어 크크크.. 그보다, 왜 계속 바라보지..? 시선을 거두고 가디언 칩으로 퓨어퓨어보이스나 볼까... 싶지만 계속 신경쓰인다.. 음~! 할 수 없이 쟁반을 들고 컵과 쟁반을 카운터에 반납하고 카페 바깥으로 나와 벤치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리고 그에게
아련한 눈매로 소년을 계속 본다. 가디언 칩을 만지작 거리던 소년은 나와 달리 시원스레 음료를 다 마시곤, 느긋하게 기지개까지 피고 있었다. 와. 정말 행복해보여. 달디단 음료를 한모금 더 홀짝인다. 씁쓸한 가슴이 조금이나마 달달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긴 마실걸 다 마셨으니 더 앉아있을 이유는 없겠지. 이후엔 어디에 가려나.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지나쳐갈 생각이보다.
뭔가 시선이 날 보고 있는것만 같다. 착각이겠지.
이상하다 왜 이 벤치로 오는 것 같지? 앉으려고 그러나?
.......
"히에에에에에엑.....!!!"
나는 화들짝 놀라선 비명을 질렀다. 눈, 눈치 채였어!? 큰일났다. '날 봤으니 관람료를 내.' 라던가 말하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줄 수 밖에 없어...!! 그럼 다음 도전 이후엔 에너지 드링크 한캔도 못마시는 처지가 된다. 이럴 수가. 멋져보이는 소년을 바라본 대가는 비싸닷...!! 여기서 어설프게 변명을 했다간, 소년이 친구를 불러 '야, 너가 내 친구에게 직접거렸냐?' 같은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 이제 내 운명은 더더욱 고달파질 것이다. 우우....최대한 용서를 빌자. 어깨를 움츠리곤,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 미, 미안해! 굉장히 멋있게 커피를 마시고 있어서 그만. 나도 그 카페는 가본적 있어서, 조, 좋아했거든."
앞에가 꽤나 생략된 말에, 지훈은 굳이 이유를 물었지. 춘심이가 하는 일이 대강 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유를 직접 입으로 듣길 원해서였나.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느껴지는 자극이라던가, 편한 팔의 위치라던가... 잠시 후, 춘심이 혼자 읊조리자 고개를 갸웃거렸으려나.
" 그게 왜ㅡ "
뭔가를 물어보려는 순간 팔에 낯선, 어쩌면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살짝 느껴지는 통증.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 역시 친애의 표시로 이따금씩 비슷한 것을 했으니. 오히려 빠르게 진정하고는 살짝 가라앉은 기색을 내비쳤다.
" ...순간 목소리가 나올 뻔 했잖아. "
"경고도 없이 물다니, 짓궂기는." 살짝 투덜거리듯, 하지만 어딘가 짓궂은 구석이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머리 위에 입술을 살짝 갖다대더니, "더 세게 물면, 나도 장난칠 거다?" 라고 입술을 달싹였다. 물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라기보단... 자신도 똑같이 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에 가까웠으려나.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움찔.. 놀라고 말았다.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나처럼 힘 없고 연약한 서포터가... 사람을 패는 것처럼 보이나...? 어째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제 미간을 손으로 꾸욱 눌렀다. 이내 그가 하는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경청... 하다가 그만 한숨을 팍 내쉬고 말았다. 호탕하거나 이상하거나 귀찮음이 많거나..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꽤 많이 만나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소심한 사람은 처음이다. 아니, 뭐... 소심한 게 나쁜 건 아니지... 캐릭터 파악이 힘들어서 그렇지만. 어디보자.. 곰곰... 이런 캐릭터의 성격은.. 보통... 정에 약하다. 거절을 잘 못한다. 남들은 사소한 일이라며 넘어갈 일에 신경을 많이 써서 사려심이 깊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안 좋은 경우에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기에 뒤끝이 있다. 흠, 그러면...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으음~!! 신음을 흘리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답을 내렸는지 생긋 웃으며
"그래요? 우연히 들린 카페인데 꽤 좋은 카페였네요.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적당히 사람 좋아보이는 모습으로 코스프레를 하자!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은은한 웃음. 약간의 미소로 나는 즐겁다. 하는 것을 살짝 어필하며 벤치에 앉는다.
"제가 멋지다는 건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실례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