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땀에 젖어 허수아비, 아니 허선생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꽤나 긴 시간 어울리고 있다. 허선생에게도 의념이 있다면 이런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슬슬 정이 들 것만 같다. 합격도 받았으니 이대로 떠나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조금만 더. 내가 우연히 합격했다는게 아니라, 제대로된 기본기를 갖추게 되었단걸. 어쩐지 허선생님에게,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아까전이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아득바득 달려들었다면, 이제는 차분하게. 복습해보자.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
"첫째. 상대의 공격을 제대로 분석할 것. 어떻게 막을지, 흘릴지, 반격할지. 공격 패턴과 유형을 보고 판단해 읽어낼 것."
그저 단순히 막아내기만 해서는 안된다. 방패를 꿰뚫는 공격은 얼마든지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진동을 크게 울리는 타격계는 나의 지구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방패를 들기만한체로 견뎌서야 당연히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는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뿐. 상대의 공격의 위력을 감소시켜라. 유형에 맞는 대응을 해라. 말은 쉬운 이야기다. 그럼 그 대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되는가?
"둘째. 요소요소의 간격을 메꾸기 위해 신체를 강화하여 공격을!"
공격을 위해 팔이 뒤로 제껴질 때, 총구가 발사전에 겨눠질 때, 창이 충분한 거리로 뻗어나오기전에, 무기와 무기의 전환, 공격과 공격의 사이. 상대의 모습에 틈이 보인다면, 과감하게 신체를 강화해서 방패와 함께 몸을 던져 부딫힌다! 묵직한 중량에 더해 강해진 신체로 들이받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격이 될 수 있다! 방패는 수비만 해야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상대의 공격을 흐트려 캔슬시키는 것이, 때로는 더더욱 여력을 아끼게 한다!
"셋째. 강력한 공격을 받아낼 땐, 건강을 강화한뒤 충격을 분산시켜서 받아낸다!"
위협적인 공격을 흐트리지 못할 것 같을 땐, 건강을 강화시켜 여력을 강화시킨다. 또한 그것만이 아니다. 강화된 건강에서 더더욱, 내려치는 해머를 방패를 끌어안듯 잡아 전신으로 충격을 분산시켜 피해를 줄이려고 시도한다. 거대한 포탄이 쏘아질 땐 서서 정면으로 받는게 아니라 한쪽 무릎을 굽혀 앉은 자세로, 방패를 자신의 머리 위로 비스듬하게 치켜 막는다. 포탄이 부딫혔을 때 경사를 타고 빗겨나가고, 굽힌 무릎을 스프링처럼 완충제로 쓰며, 땅에 붙인 다리를 통해 좀 더 안정적으로 지지하며 충격을 분산시켜 흘려낸다. 날카로운 찌르기를 받아낼 땐, 충격 직전 방패와 몸을 조금 옆으로 틀어 점의 충격을 온전히 받지 않고 옆으로 흘려내는 형태가 되도록 시도한다.
....어깨가 무겁다. 평소엔 자주 쓸 일도 없는 의념기를 이렇게 연속해서 써보는 것은 처음이다. 낯선 경험이다. 무겁다. 답답하다. 그러나 이것은 영웅이 견뎌야만 하는 기대이며, 희망이다. 계속해서 의념기를 지속하는 와중, 생각이 스친다.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는 내게 엄청난 방어력을 제공하는 대신, 그 무게를 감당하느라 느려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게 정말 그저 '단점' 일까? 장점이 뛰어나기에 붙은 단점, 그 외엔 아무 의미도 없단 말인가? 의념기란 그렇게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는가? 이를 악문다. 애초에 '영웅' 에게 있어 이 무게란 단순히 '짐' 이란 말인가? 그럴리가 없다.
나는 싸움이 싫다. 무섭다. 두렵다. 스스로 특출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임하고 있는가? 바로 내 마음속에 무겁게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대학살속에서 본 처참한 광경, 살고 싶어 소리친 절망, 구원 받았을 때의 안도감,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러한 광경의 반복을 막고 싶다는 결의. 그 모든 무거운 마음이 날 이끌고 있다. 진정한 영웅들의 어깨엔 도대체 얼마나 수 많은 생명이 걸려 있었을까. 그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러나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히 '짐'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한 영웅으로써, 한계를 넘은 사투를 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건 하늘과 땅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워리어라는 포지션인 이상.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싸움에 나서는 이상. 이 무게는 내가 감당해야하는 것이며, 또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 '무게'는 단순한 '단점' 이 아닌 '특징' 이다. 인식했다면 살려라. 무겁다는 것은 무게 중심이 온전하다는 것이다. 자세를 잡을 때 그걸 인식해라. 무게를 확고히 해라. 무겁다는 것은 짓누를 수 있단 것이다. 부딫힐 때 좀 더 체중을, 무게를 실어라. 힘겨루기를 할 땐 방패를 조금 위로 들춰,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을 수 있도록 해라.
주변에서 코웃음을 치더라도, 비웃더라도, 조롱하더라도, 내 의념과 목표는 '영웅' 임을 이 무게를 통해 항상 인식해라. 기본기를 잊지 마라. 그러면서도 이상의 꿈을 단념하지 마라.
비록 망가지고 비틀려 무시받고 깔봐져서 도망쳤던 인생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
#망념항아리에 쌓인걸로 망념을 초기화한뒤, 의념기를 키고, 허수아비에게 도전합니다. 여태 배운 교훈대로 상대의 공격 패턴을 읽어 틈새는 신체를 강화하여 들이받는 것으로 흐트려서 공격을 취소시키고, 강타는 건강을 강화한뒤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지 않고 흘리거나 분산시킬 수 있는 자세를 취하는 방식으로 임합시다.
허수아비의 인정과 함께,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하지만, 만약 진화가 원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허수아비의 수준은 '생도' 레벨입니다. 만약 이것을 정규 가디언 수준으로 끌어올려 성공할 수 있다면? 아니면 적어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막아낼 수 있다면? 그만한 보상이 따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865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현은 청월의 선도부로 끌려옵니다.
" 어디 보자.. 이성현 씨. "
안경을 쓴 채 서류를 뒤적거리던 남학생은 성현에게 말합니다.
" 의념 각성자. 그것도 가디언의 경우라도 사과가 잘못이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너구리가 겁을 먹은 상황에서도 사과를 한다고 수 바퀴를 뛰어 사과를 하는 등. 비 각성자가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
만약에 내가 태양왕 게이트를 겪기 전에 이곳에 들어왔다면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겠지요? 일류무사님을 상대하고 수많은 게이트들을 닫고 오기 전의 나는 10레벨도 되지 않는 약한 아이였으니까요. 그래요. 이곳에서 그림자란 곧 강함입니다. 크고 강한 그림자를 가진 자가 그보다 작은 그림자를 가진 이들을 지배하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재현형 게이트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큰 그림자를 가진 자답게 그에 맞는 연기를 할 필요가 있답니다.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속이며 몰입하여 어떠한 역할을 연기하는 것. 그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랍니다. 한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왜 큰 그림자를 가진 이들은 꼭 지배하고 억눌러야만 하는가. 이겠지요. 큰 그림자를 가졌다고 지키는 것은 할 수 없는 걸까요?
"두려워 하실 거야 없답니다. 저희들은 그저 지나가던 길이었으니..."
아무튼 저는 천천히 촌장님께 다가가, 최대한 저를 숙이는 태도로 정중하게 말을 이어나가려 하였습니다.
"소녀와 일행분들은 이 주변을 여행하던 중에 쉴 곳을 찾던 길이었사온데, 우연히 이 마을을 보게 되어 잠시 이곳을 찾게 된 것이랍니다. 결코 여러분들을 해코지하거나 할 마음이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사오니 걱정하지 마시어요. "
방금 전까지 묶여 있었으면서 태연히 여행을 하던 길이었다 거짓을 고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는 연기중이니까요. 제게 목숨을 구걸하는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애로운 지배자를요.
"그러니 촌장님, 부디 몸을 일으켜 주시겠는지요? "
부드러이 웃으며 저는 촌장님께 시선을 두었답니다. 번역되기 쉽도록 최대한 보편적인 말씨로 말씀드리고 있는데, 말이 잘 통할지 모르겠네요!
>>440 큰 웃음소리에 순간 놀랐고, 즐거운 미소에 안도감을 느꼈다. 좋은 무기. 필요하다. 가르침. 흙바닥에 머리를 찧어서라도 빌어 한 줄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돈. 다른 두 선택지에 비하면 한참 못해 보이지만 이것도 배기운 님의 손에서 빠져나온 금이라면 무엇이든 부족할 리 없다. 하지만, 좋은 무기도 돈도 언젠가 얻을 수 있고, 가르침은 귀하지만 미약한 성취로 다 삼킬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지금의 내가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걸음. 걸음. ...멎음. 그리고, 곧음.
" 그대가 제대로 된 영웅이 되어, 가르침의 입장이 되기 전까지. 이 배기운. 이 청월의 교장으로서 이 자리를 지키도록 하겠다! "
라고.
" 그러니. 늦지 않게 따라오라. 이 노구의 몸이 이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즉! "
가슴이 뛴다. 심장이 뛴다. 마음이 뛴다. 무엇에 닿으려고 그렇게 바쁘게 뛰어가는가? 그 아래 무엇이 보이기에 뛰어내리려고 안달을 하는가? 고개를 숙이자, 땅을 파헤친 창의 끝이 눈에 들어왔다. 아.
" 날 뛰어넘어, 청월의 장이 될 마음을 가지라! 그것만이 진정한 영웅. 그대의 미래에 어울리는 꿈이 될 것이다! "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고, 은은한 열이 떠오르는 걸 눈치조차 채지 못했던 뺨에 한 줄기 바람이 스쳐 뒤늦게 열을 자각하게 된다. 어떤 감정이 온몸에 뜨거운 피를 팽팽 돌게 만들었다. 그래, 즐거움이다. 지금 나, 너무 즐거워.
" ...너무 늦지 않게 올게요. "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뺨을 붉히며 눈을 반달처럼 둥글게 굽히고, 눈동자 속엔 호승심 많은 소년처럼 탁탁 부딪쳐 발화하고 폭발할 듯한 전기 같은 열정을 담고, 자신감만큼 끌어올린 입꼬리로 마주보는 미소를 자아낸다. 지금의 나를 시적으로 묘사한다면 그런 한 문단이 완성될 것이다. 얼굴 없는 영웅의 형상에 한 사람의 형상이 깃들어, 언뜻 그렇게 가라앉아 사라진 것처럼, 하지만 확실하게 색을 남기고 사라졌다.
" 충분하고말고요. "
나는 정중하게 깊이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어디로든 일단 가고 싶고, 무엇이든 일단 하고 싶다는 고양된 마음을 억누르며. 갈 곳도 없는데 다리를 움직이려는 나를 애써 억누르며. 그저 미소지었다. # 크흑... 감사합니다 센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