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화끈해진 뺨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받은 가르침을 거듭 마음에 새겼다. 그래... 지금의 나는 의념이 있지만, 의념이 없었을 때도 아무것도 못한 건 아니었잖아. 그렇게 생각하지만... 생각하지만... 지금은 동경하던 사람과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생각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기에 기쁘다.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같은 위치에 서려면 지금보단 더 열심히 해야겠지. 어쩌면 평생 노력해도 닿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 언제나 사람이 같은 모습일 수는 없고, 언제나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어. 그저 1년의 시간 동안 네가 배운 것이 있었겠고. 1년의 시간동안 네가 바뀐 것을 알았으면 된 거야. "
하나미치야는 미소를 짓습니다. 과자를 사서 오라고 하며 에릭을 방에 끌어들였던 일, 만석과 에릭이 다시금 만날 수 있도록 했던 일, 같이 의뢰를 나가며 에릭의 변화를 확인했던 일. 그런 일들이 모여 하나미치야는 에릭의 변화를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미치야의 손이 천천히 에릭의 손을 붙잡습니다. 하나미치야는 미소를 짓습니다. 얼굴에 떠오른 순수한 미소가, 마치 아무 악의도 없는 듯한 미소가 에릭을 꿰뚫고 있습니다.
에릭은 스스로를 고독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자신은 재능이 없었고, 자신은 능력이 없었으며 이따금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던 목소리들은 에릭을 짓밟았고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에릭을 미친 사람으로 만들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릭은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했고 자신의 재능을 찾고자 하였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재능을 응원하는 더 뛰어나다 생각했던 이들에게 질투심을 느꼈고 그들에게 험한 말을 하며 멀어지려 했지만 그들 역시도 선하고, 착한 이들이었기에 선하고 착한 당신의 본성을 알아차리고 당신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진실을 아는 법도 있습니다. 큰 벽에 가로막혀 넘을 수 없을 줄로만 알았던 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허물고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었고, 비록 부족한 재능이라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알고 보니 허물을 벗어가는 과정임을 안 뒤에야 에릭은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에겐 재능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은 가디언으로서의 재능이 아니라, 사람의 선함이나 감정을 읽는 재능이었을겁니다. 단지 하나미치야도, 만석도, 당신보다 먼저 당신의 감정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의 선함을 알았기 때문에 웃어 넘기고, 당신을 기다리며, 이따금 당신이 보이는 원래의 모습에 기뻐하고, 돌아온 당신을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바보같은 사람입니까. 그러나 다행인 점은 그 긴 시간과 다르게, 깨달음은 짧았다는 것이고 변화는 가까웠단 것입니다. 에릭은 스스로를 피와 철로서 다듬고자 하였습니다. 피는 곧 '분노'를 말하며 철은 곧 '냉정'을 말합니다. 에릭은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재능에 대한 냉정을 보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에릭 하르트만의 속성인 철혈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스스로의 세계에 빠진 채로, 스스로의 재능의 벽을 그리며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면. 그 벽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스스로 엄격한. 철혈의 사내가 되는 수밖에 없었겠지요.
의념 속성의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미치야 이카나의 '구미호' 속성의 영향을 받아 '연단鍊鍛'으로의 의념 속성의 변화를 관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질문은 잠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아직 마쳐지지 않았으니까요.
하나미치야는 에릭을 바라봅니다. 연붉은, 살짝 둥근, 그러면서도 불안해 보이는 눈이 천천히 에릭을 담아냅니다. 에릭은 그 눈을 피하지도, 마주하지도 못해 흔들리는 눈으로 단지 하나미치야를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하나미치야는 방긋 웃으며 말합니다.
" 내가 그랬으면 너도 날 전력으로 말려줬을테니까. "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지만, 어쩌면 가장 어울릴 그 대답을 하며 하나미치야는 웃습니다.
" 그래서 믿었고, 기다렸고, 알았을 뿐이야. "
헤실. 맑은 미소 속에 하나미치야는 에릭을 바라봅니다. 살짝 붉어진 얼굴은 여전히 사랑스럽습니다.
파티는 천천히 안으로 향합니다. 지나는 길에 수많은 산적들을 보았지만 모두 세 사람의 그림자. 그 중 유우토의 그림자를 볼 때마다 경악하여 도망가는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마을로 향하였을 때, 세 사람이 마을에 들어가기도 전에 늙은 몸을 이끌고 한 사람이 뛰어나와 급히 무릎을 꿇습니다.
" 허, 허, 여기는 지배하실 것도 없는 작은 마을입니다! 저희들도 그저 평범한 마을 노인네들일 뿐이고요. 제, 제발 지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
촌장의 토로를 들은 유우토는 에미리와 진석을 바라보며 턱짓합니다. 어디. 마음대로 행동해 보란 의미로 보입니다. 단,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든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55 두 사람은 그렇게 느긋한 걸음걸이로 교무실로 향합니다. 많은 학생들의 눈길이 배기운을 향할 때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천천히 고갤 숙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그를 안내하고 있는 사비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곤 합니다. 어쩐지 어깨가 올라가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천천히 사비아는 자신의 역할을 다합니다. 곧 넓은 청월의 부지를 다 돈 뒤에 교무실에 도착한 배기운은 문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 배기운이오. 안도. 거기 있는가? "
곧 교무실의 문이 열리고, 순백색의 무녀복을 입은 소녀가 천천히 걸어나옵니다. 소매로 입가를 살짝 가린 채, 살짝 몸을 굽혀 절을 올린 교감. 안도 츠요리는 그를 향해 말합니다.
" 결정하셨는지요. " " 그렇소이다. 아무리 그래도 짧게나마 가르침의 온정을 받았음즉, 온정을 갚고자 하여 이곳에 왔소이다. "
그 말을 듣고 기쁜 분위기를 풍기던 안도는 천천히 사비아를 바라보고 옷깃을 내립니다. 연한 미소가 떠오른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 고생하였어요. 이 분은 배기운이라 부르는 분으로 청월의 새로운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되셨답니다. "
그 말을 들은 사비아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깃들기도 잠시. 배기운은 사비아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갚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니. 혹 바라는 것이 있는가? "
>>156 다림의 심상 속에는 커다란 판이 있습니다. 이따금 다림이 의념기를 사용하려 하면 그 판에는 수많은 패가 올라와 천천히 움직이곤 합니다. 다림은 손을 뻗어 돌아가던 판을 멈추고, 툭 튀어나온 패를 붙잡습니다. 그 패를 열었을 때 적힌 것은.. 아군의 방어력 증가입니다! 허수아비에 의념이 스며들고 허수아비는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