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하게 답하고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비아의 시선을 일부러 회피했다. 속으로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이럴 기회가 얼마마다 있겠어.
"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는 좋지. 나까지 감화되어서 기분 좋아지니까. "
비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이 우울하면 덩달아 우울해지고, 주변이 떠들썩하면 덩달아 즐거워지는게 사람 심리였다. 그렇기에 그 역시 즐거워하는 분위기를 더 선호했지. 그리고 사비아가 재미있는 표정을 짓자, 자신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속으로 만족스러워하며 웃었을까.
" 그치만 나, 친구랑 호러 영화 한번쯤은 보러 와보고 싶어서..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 부탁하면 거절할 것 같아서... "
"역시 안 되는 걸까..." 라고 중얼거리며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표를 빤히 바라본다. 비아의 성격상 후배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받아줄 것 같았으니 그걸 이용하는 거였을까... 사실 비아의 반응이 보고싶어서, 라는 이유였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를테니 얌전히 시무룩한 기색을 내비치며 연기하기로 했다.
" 사람들이 폐 정신병원에 갔는데 귀신들의 장난으로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계속 도망다닌다는 내용? "
한마디로 말하면 갑툭튀도 잔뜩 나오고 영화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내고 심리적인 공포와 함께 사운드도 빵빵하게 틀어서 하여튼 엄청나게 무서운 영화라는 평가를 비아에게 그대로 말해준다. 포스터를 보고있는 비아의 옆에서 슬쩍 리뷰들을 읊어주며, 비아의 안색과 반응을 살피려고 했던가.
그 미소를 봤더라면 몇 마디는 해줬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도 설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3cm 차이 나는 후배의 눈높이에 맞춰 살짝 까치발을 들고 시선을 높인 다음 팔을 뻗어 머리를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쓰다듬으려 했다. 그 다음엔 "이번만 넘어갈게."라고 속삭이려 했다. 가끔은 알면서도 속아줘야 할 때가 있다. 그래도, 영악해...
" ... ..."
마침 시선을 돌리다가 발견한 화면에 나오는 영화 예고편까지 확인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청월 시험지(1학년)만큼 무섭다. ...그 정돈 아닌가? 아무튼 무섭다. 창문으로 밤의 어둠이 내리쬐는 폐병원의 복도를 드문드문 비추는 전등이 부딪치듯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스크린의 시야가 빼앗겼다 돌아오는 반복에 맞춰 조금씩 변하는 풍경이 시점에 맞춰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걸음마다 다른 세상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연출을 한다. 그리고 예고편이 끝나며 무거운 효과음과 함께 내리찍히듯 나타나는 영화 제목에 퍼뜩 놀랐다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간식 사러 가자."
이미... 넘어가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카라멜 팝콘에 콜라 정도면 괜찮을까. 줄을 서고 나서는 줄이 빠질 때마다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내 차례가 왔을 때 선수를 빼앗기지 않도록 먼저 칩을 내밀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호러 영화에 당했다고 해서 후배한테 민트초코팝콘과 펩시를 산다던가 하는 장난은 치지 않는다. 그리고 입장을 기다릴 때면 쿠션 의자 위에 앉아 목걸이를 쥐고 가만히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한테 기도하느냐 하면, 결국 나 자신? 딱히 신을 믿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