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이란게 원래 찾아볼수록 재밌는 것이 많사와요🎵 물론 품질도 천차만별이지만 말이어요……그 점은 조금 슬프답니다….. “
그래서 막상 괜찮아 보이는 걸 찾아도 리뷰 같은 걸 보고 나면 이걸 추천해야 하나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고 그렇습니다만, 아무튼간에 다림양께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좋으셨다면 그건 그거대로 안심이니까요. 제가 잘 고른 거 같아 안심이었습니다. 아, 립은 빼고요. 지금 립은 빼고요. 사실 속으로만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곳의 립은 솔직히 말해서 제 취향은 아니랍니다. 제 취향인 립은 방금 지나온 회색 로드샵에 대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다림양의 말씀을 조용히 듣다 말을 꺼냈습니다.
“그렇지요~? 이거 하나만 쓰기는 좀 그래서 솔직히 많이 아쉽긴 한 색이지 않난 생각도 했답니다…🎵”
베이스용은 모두가 다 마음에 들 수가 없기 때문에 저는 적당히 추천을 드리는 정도랍니다. 애초에 아주 엷은 색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럴 때 저는 꽤 짙은 색으로 그라데이션을 해 쓸 때가 많답니다. 그러니까 말이어요,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베이스에 불과하잖아요? 이거 하나만 쓰기엔 밍밍한 부분이 많다 그 말이어요. 돈가스나 오므라이스를 데미그라스 없이 먹는 것과 똑같답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후후🎵 바로 착색된 건 시간이 지나면 지워질테니 안심하시어요? “
클렌징워터로 바로 닦아내시려 하는 걸 보고 곧 지워질 것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다, 문득 두 군데 정도 돌아본 정도면 오늘은 충분히 돌아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조를 하루에 엄청 많이 보기엔 브랜드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래요, 초심자에게는 여기까지가 적당하지 않으려나 싶었습니다. 좀 더 본격적인 걸 보여드리고 싶지만 처음부터 그러면 금방 내려놓고 마니까요?
문자가 오기 무섭게 띠링, 하고 답장을 보냈답니다. 놀랍게도 빠른 속도이기에 뭘 하다 보냈다는 티가 났지요. 그도 그럴게 저는 옷장을 정리하던 도중에 연락을 받은 것이니까요! 바로 출발할 수는 있었습니다만 장소를 모르기 때문에, 답장이 오면 곧바로 출발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카페 탐방인가요~? ] [😃] [좋아요🎵 바로 가겠사와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갈거랍니다? 어디쯤으로 가면 될련지요? ]
머리가 울린다. 토악질을 하고 대충 소매로 입가를 닦자 얼굴에 흙이 묻는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는다. 이 곳은 전쟁터다. 어느 전쟁이든 다 비슷비슷하듯이, 지옥도가 따로 없다.
골통 속에서 여기저기 요동치다가 그제서야 미동이 멎은 듯한 뇌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게이트에 함께 들어선 파티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전장의 한복판에 떨어져 홀로 이 끔찍한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기엔 상당히 힘들겠지만.
이 게이트 내에서는 아군도 있고 적군도 있었다. 게이트 내에서 빚어지는 전쟁에 정말로 참전해버리고 만 상황. 아무리 봐도 이 교전을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게이트 클로징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허나 파도 소리가 폭발음과 총성에 묻혀 여기가 해변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잊게 만드는 절망적인 상황하에서, 단 한명이 전장의 판도를 뒤집어 엎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울것이다. 오히려 눈먼 탄환에 맞아 사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바닥에 떨어진 어느 병사의 머리에서 벗겨진 철모를 주워 쓰고서는 슬슬 내 쪽으로 빗발치기 시작한 탄환의 소나기에서 벗어나려 그 사각에 파고들었다.
모래알이 아닌 조약돌이 보이기 시작한 해변의 시작점. 보통은 이런 곳에는 절벽이나 다른 길이 이어지기 마련이겠지만 이 앞은 그저 회벽으로 만들어진 초소와 성게같은 전차 장애물 뿐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함께 엎드려있다시피 한 인물들 중 철모에 세로 막대기 표시가 되어 있는 인물을 찾기로 했다. 이런 때에는 장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테니까. 예상대로, 장교는 통신병이 메고 있는 무전기의 수화기에다 대고 뭐라고 악을 쓰더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다시 그것을 놓았다.
그는 내 모습에 대한 의문따위도 가지지 않은 채 손짓과 음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 옆의 우회로를 통해서 기습을 하고, 초소를 무력화시킨다면 증원이 올 수 있을것이라 했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대로 된 편제도 아닌 그 벽에 닿은 병사들로만 바리바리 모인 이 막되먹은 분대는 제각기 무기나 장비를 꼬나들고 그 장교 한명에게 의존할수밖에 없었다.
이 중에서 신체적 여건이 가장 나은 인물은 아마 내가 될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 전장은 적도, 아군도 그저 평범한 인간 선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건지도 모르겠다.
가디언이라면 긁힌 상처로 남을 총탄에 팔 근육이 찢어진 채, 흐르는 피가 질척대는 진흙바닥을 적시거나 폭탄에 맞고 사방팔방으로 파편을 뿌려대거나. 흘러나온 장기나 떨어져 나간 사지 한쪽 등을 찾으러 바닥을 뒤지고 다니다가 결국 또 다른 총알에 맞아 죽거나. 이게 진짜 전쟁이었다. 역사에 남은 전쟁은 이런 것이었다. 가디언들이라고 해서 상처를 입지 않는것은 아니었으나, 이 연약한 인류의 전장은 가디언들의 그것보다 더욱 치열하고 혹독했다.
그런 가디언으로써 선봉을 맡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기관총 탄이 피부를 스쳐지나가자 뜨거운 작열통과 피부가 찢어지는 통증이 함께하며 그 장소를 벗어나야 된다고 중추신경에 재빨리 경고를 울렸다. 기관총의 사격을 피해 바윗돌에 엄폐하고, 모두에게 멈추라는 수신호를 했다. 그리곤 침착하게 내 반자동 소총을 들어서 모래주머니로 이루어진 초소를 향해 조준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약간만 내뱉으면서 몸이 착 가라앉는 순간 호흡을 멈췄다. 가늠쇠를 통해 조준한 곳은 병사의 머리가 아니었다. 초소 자체를 무력화시키기에 좋은 곳은 역시 거치된 기관총 바로 밑이 좋겠지.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일어난 일련의 반응은 당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모래주머니가 터지고, 강한 충격력은 그대로 전해진다. 애초에 이건 평범한 총이 아니니까, 평범한 총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를 방해하던 요소는 하나 줄었다.
내가 먼저 길을 뚫어야만 했다. 말 그대로 초인적인 반사신경을 통해 내 옆통수를 뚫어버리려 조준하던 적 소총수 분대의 머리통을 차례로 날려주고서는 다시 엄폐물에서 기어나와 달렸다.
모두가 세상 처음으로 이렇게 달리는 녀석을 봤다는 듯이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전장에서는 놀랄 일이 수도없이 많이 생긴다.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이런 전장에서는 잠깐이라도 멈춰있다간 목숨을 빼앗긴다. 오래토록 놀라고 기절초풍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도 대강 우리 속셈을 알아차린듯 했다. 기관단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적 분대가 무어라 소리치며 내게 총구를 향했다. 의미없는 행동이었기에 다행이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내 뒤를 따른 병사들의 진격은 무산되었을테니까.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달리면서도 극도의 정밀함을 발휘해 견착만 한채 지향사격으로 저들을 제압하거나 사살하며 돌격해나갔다. 저들을 와해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목표가 내 뒤의 병사들이 될테니.
나를 눈으로 쫓느라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적 병사 한명의 턱을 개머리판으로 완전히 부서뜨리고서, 탄창에 남은 나머지 탄약을 발사해 두 명을 왼쪽부터 순서대로 사살했다.
다행히, 그리고 고맙게도 나를 따르던 병사들은 기회를 잡아내었다. 연막탄 두어 발을 먼저 벙커의 입구에 던져넣더니, 대응사격조차 하지 못하는 적의 초소에 불을 질러버렸다. 가스가 새어나오고 점화되어 마치 악마가 으르렁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불길이 타올랐다. 매서운 불길은 기관총좌가 있는 초소를 통해 쏟아져 나올 정도였고, 저마다 각양각색의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며 산 채로 불태워지는 적병들은 모두에게 희열을 전했다.
때마침 아군의 추가적인 증원이 해변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진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어찌되었든 모두가 해변에서 벗어나 좀전까지 자신들 앞에 우뚝 서 있던 해안 벙커를 밟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