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쉽게 내쳐지자 받아내는 선생님의 팔. 감사인사를 전한 겨를도 없이 다시 제 다리로 선다.
으르르... 보호구. 보호구가 문제다. 활을 쓰는 것을 방해하고 싶다. 팔은 무리지만 남은 부분은.
날선 눈빛으로 지긋이 바라보는 것도 잠시. 다시 한번 튀쳐나가는 짐승은 적의 눈을 노리고 있었다.
#시야를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뛰쳐나간다. 눈을 노려 적어도 시선을 나머지에게 돌리게끔한다.
//지아 족족 동료를 노리는 필중의 화살, 뚫리지 않는 갑옷. 처음 느껴보는 막막함이었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을까? 어쩌면 저 갑옷을 뚫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문득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이게 갑자기 왜?"
무의식, 아니 본능에 가까운 무언가가 책의 첫 장을 펼쳤다.
#히어로모먼트 개봉합시다.
//에미리 무례에 대해 말씀하신 거에 대답하려는 찰나, 화살에 손이, 손이, 새빨갛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이 다시금 붉어지려고 합니다. 그것만은, 그것만은 안되는데 말이어요. 에미리의 동료분들이 다치시는 걸 눈앞에서 지켜만 볼수는 없답니다.
# 치료(C)를 이용하여 화현의 손을 치료하려 시도합니다!
//화현 "악!"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고통, 그리고 시선. 자신을 바라보는 그 차가운 시선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몸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제 오른손을 바라보자 화살이 손에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쥐고 있는 샤프를 놓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으나, 샤프를 쥔다는 감각 대신, 고통만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하하... 하... 헛웃음이 나온다. 나를 노린 이유, 그것은 명백하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쪽. 즉, 이타적인 사람.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묻기를, 너는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거 아니야? 좋은 사람이라면 왜 지금까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그건, 네가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야. 일반인이었을 시절에도 그랬잖아. 단순히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기 위해 남을 배려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남을 위로해주는 척을 했을 뿐이지. 가디언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금은 어때, 찬후 선배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미술부에 혼자 있는 모습이 가여웠잖아. 그래서 미술부에 가입했지? 사실은... 찬후 선배의 백에 대해 더 관심 가진 거 아니야? 실제로, 그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지 않아? 혹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동정하는 게 좋았던 거야? 그때도 그래. 그때도, 그때도. 분명, 널 위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났을 텐데... 넌 그들을 거부하고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만 보여줬지? 걱정하지 마. 난 널 혐오하지 않아. 나 자신을 누가 혐오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자기 나름대로 고민해서 한 말들이 알고 보면,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 시답잖은 위로라서 마냥 기뻐하지도 않았잖아. 기뻐하는 척하고 있진 않은지 의심이 들어서 말이야. 결국, 혐오하지 않는 상대는 자신뿐이잖아? 가장 잘 아는. 결국, 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몰라 조금씩, 조금씩 피하게 됐고, 거리를 뒀고, 끝끝내 혐오만 남았지.
이런 악순환의 고리. 매일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고찰할 때마다 드는 이 생각들을 잊기 위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청망, 저 존재는 알까? 몰라, 신경도 안 쓰겠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 타인이니까. 자신의 세계로 들어온다고 한들, 섞여봐야 탁한 색만 나올 뿐이니...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거기에 두거나 배척하겠지. 그러니까... 나도 신경 안 쓸래. 나중엔 몰라도, 지금은 그냥... 이기적으로 굴 거야. 저놈이 이타적인 사람만 노린다니까, 겸사겸사 생존도 하고 말이야. 하!
"그거 알아요? 활잡이 씨? 당신,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아요.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데..."
왼손으로 제 품속에 넣어둔 책 한 권을 꺼낸다. 이 책의 효과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바로 옆에서 이 책으로 가능성을 덧씌워 새로운 색을 발한 사람을 봤으니까. 그리고, 그 색은 너무나 아름다웠지. 내가 보았던 만화책의 주인공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희생하여 타올라 가장 밝은 빛과 색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난 다시 그 색을 볼 거야. 나 자신에게 불을 붙여, 주위의 모든 것에도 똑같이 불을 붙이겠어. 그들이 타오를 때 내는 빛과 색을 보고 내 욕망을 채우겠어. 탁한 색이 나오더라도 좋아. #AaBbCc(무채색)보단, 낫잖아?
>>815 그러니 전투는, 처절함 그 자체입니다. 저릿한 몸을 이끌고 에릭이 움직이려 하더라도,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겨우 한 사람이 낸 목소리에, 에릭은 저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비틀고 있었을 뿐입니다. 영웅건은 여전히 어깨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저 한 소녀의 마음을 담은 선물에,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에릭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왔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에릭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능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에릭 하르트만은 누구보다 겁쟁이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 꼬맹아. 언젠가는 너도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아브엘라는 어린 에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합니다. 이 때의 에릭은 갓 아홉살이 되었던 때였을겁니다. 천천히 좋은 집을 찾아 떠났다는 아이들의 소식을 들으며 자신은 재능이 없어서, 특별하지 않아서 떠나지 못했다고 자조하던 에릭에게 아브엘라는 거친 손갈로 에릭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습니다.
- 운명은 언젠가 순응하게 된다고 말야.
에릭은 아브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니까요. 어떻게 운명에 순응해야만 하나요? 언젠가 다가올 운명이 불행하다면요? 그 순간에도 나는 받아들여야만 하나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릭은 저릿거리는 몸을 이끌기 위해 억지로 이를 꽉 물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다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지훈은 검을 들어올립니다. 가람이도 함께입니다. 두 사람은 찰나를 노리고 빠르게 질주하여 구변무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두릅니다. 가람의 검에는 황색의 뇌전이 깃들어 있고, 지훈의 검은 무엇이라도 베겠다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변무는 가볍게 몸을 흔들어 지훈의 검을 피해냅니다. 갑작스럽게 비어버린 몸을 당황하기도 잠시 구변무의 팔에 잡혀버린 지훈은 그대로 빙글 돌아져 가람의 검에 베여집니다. 따끔한 충격에 몸이 자극되는 동시에 구변무는 그대로 던져버립니다. 너무나도 간단히 던져진 지훈의 몸이 가람을 휩쓸고 날아갑니다. 던져진 지훈을 받아내긴 했지만, 가람은 겨우 지훈을 받아냅니다. 방해된 시야를 끝으로 무언가가 달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곧 거대한 도끼 하나가 가람의 시야를 가득 매우자 급히 검을 들어올립니다.
판 위의 지휘자
하얀 실 하나가 가람의 몸을 그대로 뒤로 빼버립니다. 도끼는 허공을 갈랐지만, 흉흉한 바람이 가람의 얼굴을 스치고 날아갑니다. 풍압만으로도 가공할 법한 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훈은 몸을 끌어 바닥에서 다시금 일어납니다. 베인 상처는 깊진 않지만 꽤나 시큰거립니다. 지릿한 감각을 느낀 지훈은 설핏 가람을 바라봅니다.
댕댕?
딱히 모르겠단 표정입니다. 하루는 흘러나오는 피에 치료를 시전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치료되지 않습니다. 망념을 20정돈 소모하여야 회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나이젤은 급히 가람의 신속을 강화해줍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건강 강화가 좋을 것 같네요.
구변무는 손을 들어올립니다. 바닥에 내려졌던 도끼는 천천히 횡을 그리며 다시금 구변무의 손으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