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하늘을 보았을 때 그 생각을 했었지. " " 언제고 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 전에 누군가를 잃진 않을까. 아니면, 나는 그만큼 부족한 사람이니까. 그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 " 웃기게도 난 두려워하고 있더군. 나라는 인간은 사실 별 것 없는 껍데기란 사실을 들키진 않을까 해서 말야. " " 그런데 그런 껍데기마저 사랑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 " 내 이름은 이진석. 적룡제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신 한국의 국방차관보이다. 지금부터 변명도, 대답도 허락하지 않겠다. 오직 내가 허락한 것만이 이 자리에 남을 것이다. " - 폭룡왕 이진석, 게이트 '재앙악면'에서 각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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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 메리의 붉은 입꼬리. 아니, 여왕의 연분홍빛으로 물든 입꼬리를 바라보며 에릭은 알 수 없는 황홀감을 느낍니다. 거대한 바다 위, 조용한 파도에 휩쓸려 한줌 혈수가 되어 그녀의 하나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아름다운 기억이 될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에릭은 천천히 손을 뻗습니다. 상처 하나 없던 손을 꿰뚫고 선명히 흐르기 시작한 선혈은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옳을 땅을 울리며 천천히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붉은 피의 바다의 여왕의 미소가 천천히 퍼지고 에릭이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낄 즈음.
" 역겹군. "
'그 존재'는 그 모든 제약을 빗겨가 이 자리에 섭니다.
" 그렇게 얻은 힘에 무슨 가치가 있지? "
에릭은 그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아봅니다.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무채색의 검은 빛은, 이 붉은 세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은 채로 에릭을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에릭은 자신의 팔에 흐르는 피와, 장난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붉은 피의 바다의 여왕과, 그를 바라봅니다.
" 자신의 모든 가치를 버려서까지 영웅이 되겠다.. 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네 선택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군. "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그는 걸음걸이를 옮깁니다. 널부러진 기숙사 방의 의자를 꺼내어 앉은 그는 손을 휘적거리며 자신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듯 말하고 있습니다.
" 에릭 하르트만. 혹시 내가 사람을 잘못 봤냐? 아니면, 넌 아직 사람이긴 해? "
그는 빙긋 웃습니다. 뭘 알겠습니까.
- 글쌔요.
여왕은 이 분위기를 깨버린 불청객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 당신 정도의 힘이 있다면 모르지 않을까요? " 어. 넌 입 닥치고. "
유찬영은 고개를 들고 에릭을 바라봅니다.
" 그거. 계속 해도 상관은 없거든? 근데 괜찮겠냐? 안 그래도 계약 직후에 기절한 녀석이 이번에는 계약이 끝났을 때 가만히 눈을 뜨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
그 말에 에릭은 머릿속을 꿰뚫는 충격을 느낍니다.
" 맞아 병신아. "
그는 간단히 말하고 있습니다.
" 너 지금 사기 계약 당할 뻔 했다. 안 그래? " - 아쉬워라.
붉은 피의 바다의 여왕은 방긋 웃습니다.
- 조금만 더 있으면 넘어올 수 있었는데 말이죠. " 역시 혈해 놈들 인성 더러운 거는 지 주인 닮아서 그래요. "
진절머리 난다는 듯 귀를 후비던 유찬영은 천천히 에릭에게 다가옵니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요람. 피와 살을 이룬 바다. 그 바다가 무너지고 천천히 한 사람의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오직 그가 원하는 길 앞에는 승리만이 남아 있으며, 그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에릭이 보고 있는 것은 그 길입니다. 패배란 것은 상정되지 않은, 올곧은 일직선의 길.
주인공. 유찬영의 세계는 그만큼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비록 그가 어떤 고난을 겪었던, 어떤 삶을 살았던. 그는.. 지구의 영웅이니까요.
그리고, 그 영웅은 다시금 에릭에게 손을 뻗습니다.
" 원래라면 그냥 죽이려고 했다. "
그렇게 무서운 말을 꺼내면서도 유찬영의 의념은 천천히 에릭의 몸에 스며듭니다.
" 원래라면 죽이는 게 맞다. 네 녀석이 하려고 했던 행위는 이 땅을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행위였으니까. "
에릭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봅니다.
" 하지만 그 개같은 면상으로 우는 꼬라지는 보고 싶지가 않으니까. 그리고 내 감이 말하고 있으니까. 이번 한 번은 내가 구원해주도록 하지. "
유찬영은 에반에게 말합니다.
" 단 한번이다. " - 불청객이네요.
" 내 의념을 심어주지. 단 한번이라도 좋다면 네녀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마. " - 저는 그대로. 거인의 군대를 지배할 힘을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