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니라, 정말로 늑대잖아. 손전등은 오면서 꺼놓긴 했지만, 달빛에 비친 저 모습은 누가 봐도 거대한 늑대였다. 태양빛에 비하면 작으나 그 태양빛을 반사해 빛을 내는 달빛, 늑대인간을 깨우고 인간을 광기에 미치게 하는 빛으로 여겨졌던 보름달의 달빛이 털을 반짝이며 밤공기를 집어먹은 맹수처럼 늑대의 기세를 부풀렸다. 그야말로, 위 풍 당 당 !
생체연성이든 뭐든, 어떤 이유로든 저런 늑대가 제노시아에 있는 건 위험하다. 소재에 미친 장인들이 남획(?)해버릴지도 모른다!! 미친 학생은 그렇게 생각하며 언덕 위에서 하울링를 외치는 카사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털 견적을 재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가까워지니까 더 잘 보여서 그만. 아무튼 저 늑대를 제노시아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 저 정도 크기의 늑대를 나이젤이 힘으로 제압하긴 무리고, 싸워서 쫓아보내는 거면 좋으려나?
하지만, 고점을 유지한 상대와 싸우는 건 힘들다. 이럴 땐, 채찍을 써서 끌어내리는 게 좋을지도? 그치만, 늑대의 다리를 다치게 하면 안 되는데. 나이젤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즐거운 밤을 보내고 계신 듯한 모양이네요."
혹시 미어캣처럼 말 통하는 동물일 수도 있으니까, 너무 다가가지 않으면서 말 먼저 걸어본다. 학원도에 평범한 동물은 없... 없... (※채집부) 있을 수도 있지만! 학교에 있는 동물이니까!
밤에 심취한다, 밤에 취한다! 뒤늦게 찾아온 중2감성! 이제야 빛을 발한다! 카사, 멋들어진 모습으로 달빛으로 비추어지는 시야를 감상한다. 늠름한 자태. 거대한 그림자. 꼿꼿히 핀 가슴팍. 거기에 오늘따라 털이 윤기나게 좌르르 흐른다. 그야말로 퍼펙트! 완벽하다! 그야말로 신성의 대명사, 쿨-한 늑대의 우상! 그야말로-
"흐억 미친 깜짝아!!!!!!!! 누구여!?!"
신성한 늑대가 욕설을 내뱉는다. 그러다가 보이는 인간의 실루엣에 딱딱히 굳는다. 제노시아는 위험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게 있다. 바로 그 안에 존재하는 학생들!
...안그래도 최근 주변에 트랩이 늘어났다. 오늘 길에도 누군가가 막대기로 바구니를 올린 트랩이 있었다. 아니, 아무리 영성 D라도!!! 카사라는 어엿한 학생이!!! 걸릴리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안에 누가 족발을 접시에 올려놨다. 그것도 맛있게 보쌈 해먹으라고 쌈장이랑 상추랑 젓가락이랑 고히 접힌 냅킨도 세팅 해놨다. 아니 솔직히 이건 참을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다. 카사의 잘못이 아니다. 어차피 바구니 정도야 유유히 탈출했으니 괜찮다. 멍청이가 바구니에 수상할 정도로 강한 결계를 씌어났긴 했는데 땅에는 별 짓을 안해서 그냥 굴을 파 나올수 있었다. 역시 인생은 미쳐야 본전이다. 아니, 밑지고 본전이다였나?
하여튼, 결론은 제노시아 학생들은 다 미친 놈이란 말이다. 이 녀석도 허울대 멀쩡하게 생겨도 결국엔 제노시아인일테다. 역시나 뭔가 익숙한 냄새이긴 한데..... ....잘 안 보인다. 역광이 장난하니다. 눈 부셔.
"그- 그래. 달이 아름다운 밤이군."
머리를 굴린다. 무슨 말을 해야 쎄보일까. 기억해라! 어릴적 롤모델이자 장래희망이자 아이돌! 투명 드래곤을 생각하는 것이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서 너는 내 얼굴을 보며 옅게 미소지었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 네가 있던 자리에는 은은한 꽃의 향기와 내가 네게 선물해 주었던 끈 장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증거였다. 만약 너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끈장식을 다시 네게 돌려줘야지, 분명 그렇게 다짐했는데 너와 만나지 못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네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가 않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서 모두 잊혀질 너를 나는 무슨일이 있더라도 꼭 기억해 준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다시 돌아와서 내 손을 잡고, 이름을 다시 알려줘..
문득 산들바람 사이로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를 부르는 네 작은 목소리.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릴까봐. 네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조용히 너를 부른다. "기다림, 거기 있어?" "응, 여기 있어."
>>91 다림이랑 벛꽃...ㅠㅠㅠㅠ 기억과 다림이의 여운이 잘 어울린다.... >>92 (격렬히 보고싶음) >>93 마법사 지아ㅠ.... 쿠루링고의 마지막 원더랜드가 생각난다... '기다림은 언제나 설레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주식 ;) ) >>94 체온이 차가운 지훈이! 웃는 얼굴이 귀여운 지훈이! >>95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하루우우유ㅠㅠㅠㅠ바다의 인어 하루... 치명적인 사이렌 같은 하루.......
체온을 잃고 차가워진 창백해진 네 손 위에 손을 겹쳤다가, 이내 깍지를 껴 꼭 잡는다.차가웠다. 죽음의 온도는 이렇게나 차가웠던걸까. 네가 임종 직전 흘린 눈물에 네 체온이 담겨서 그렇게나 따뜻했던 걸까.갈라지는 목소리로, 네 이름을 한 번 불렀다가 다시 조용히 울음을 삼켜낸다.
너와 처음 만났던 그 자리에 갔다. 네가 여전히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늦어버렸네. 쉴 틈 없이 흐르는 눈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어떻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을 수가 있는지.
나를 부르는 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덕에, 무척이나 희미하게 들렸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네 목소리라고.
네 목소리를 그저 헛것으로 치부하고, 돌아간다. 그럼에도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마침에 뒤를 돌아보자 먼지처럼 파스라지고 있는 네가 나를 보며 밝게 미소지어보이곤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제야 네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나를 찾아왔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 서서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