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렸다. 두 세계가 이어졌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두 세계의 사람들은 손을 뻗었다. 작은 문을 두고 두 사람의 손가락이 닿았다. 떨어졌다. 문 밖에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색의 눈, 그와 비슷한 머리카락. 그러나 동양인의 외형을 하고 있는 사람.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한 사람.
- 공원 이용 안내 - - 이 공원은 모든 시민이 사용하는 여러분의 소중한 휴식 공간으로 이용시 지켜야 할 사항을 안내하오니.... - 화단에 들어가지 마세요 - - 잔디 보호 -
흘끗 주변을 둘러보자 이런저런 팻말이 눈에 밟힌다. 갈 때는 연초 생각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돌아가는 길에 다시 보니 이곳은 아마 공공 정원과 같은 장소이리라. 여기서 조금만 쉬다 갈까. 마침 여기저기에 걸터앉을 수 있는 긴 의자들이 있다.
이미 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푸른 머리, 실눈, 그리고 사슴뿔. 하하, 사슴뿔이라니 별나구만.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슴뿔의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걸어온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 다른 의자는 어디있지? 초면에 옆자리에 앉기는 불편한데.
"사슴뿔..?"
하지만 그녀는 몇 초 지나지 않아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사슴뿔..그래, 사슴뿔인데.. 저 뿔이....
그것은 어떤 확신이라기보단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직감과 같은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고,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녀를 끌어당기는 듯한 이 묘한 기운은...
기묘한 생각에 빠져버린 그녀는 저 푸른 머리의 여성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얼음처럼 굳게 선 채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게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도 하지 못 한채로.
나름 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바다는 당당히 정정해 주었다. 그렇게 인간이 되고 싶었는데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강제로 드러내는 뿔이 용이 아닌 사슴이라고 오해받는 것은 꽤 싫은 모양이지. 그리고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상대는 그대로 얼음처럼 얼어붙어서, 눈도 깜빡이지 않은 체 자신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뭐지? 무림인 특유의 ' 칼을 뽑아라 너와 나는 이 자리에서 생사결을 낼 것이다 ' 감수성인가? 하는 오해도 잠시. 뿔뿌리 끝에 가벼운 간지럼증처럼, 묘한 감각이 와닿기 시작했다. 이전 일과 비교되지는 않지만 마치 용과 직면했을 때와 같은.
디저트. 달고 비싸지만 딱히 필요하진 않은 요리. 하지만 수요는 차고도 넘쳐흘러, 이 학원도에서도 어딜 가나 먹을 수 있는 것. 그런 디저트...? 라고도 부를 수 있을 법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나이젤이 고민하고 있었다.
첫입부터 맛없었다.
아무거나 손에 잡혀서 산 거였는데 맛없는 것도 모자라서 하나 사면 플라스틱 케이스에 두 개로 나누어져 담겨 있는 형태의 아이스크림. 나이젤이 먹고 있는 것 말고도 한 개 더 있다. 그냥 버리기엔 음식물이라서 음식물쓰레기 통에 넣어야 할 것 같은데, 길거리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한입 베어 문 찰떡 아이스크림을 꽂은 꼬치를 들고서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닐 뿐이었다. 이런 게 신상 한정품이라니, 왜 이런 걸 상품으로 내놓을 생각을 한 걸까. 신비한 자본주의의 세계.
그리고 나이젤은 문득 한 사람과 엇갈렸다. 뭔가 헤매는 듯한 느낌의 사람. 그거다, 다른 사람에게 주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저... 이거 드실래요?"
그래서 나이젤은 길 잃은 무림인에게 당당하게 찰떡 아이스크림 한 알을 내밀었다.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내걸고서.
잠시간 에미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하리가 그대로 굳었다. 분명 소리는 그대로 귓가에 똑똑히 틀어박혔으나,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몇 초뒤, 에미리의 말을 곱씹어보고 그제야 무슨 이야기였는지 이해한 하리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오늘 아침 나오기 전에 애써 꾹꾹 눌러 가라앉혀둔 잔머리 한 가닥도 디용 하고 비져나오고 말았다.
"...팔...다리를 잃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인력으로 어찌 붙이겠소?"
태연히 잔을 채우는 에미리를 그저 멍청히 보고만 있던 하리가 꿍얼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다 도로 불쑥 고개를 들어 에미리를 보는 얼굴이, 설마, 아니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라고 외치는 듯 간절해 보였다.
"아아, 그랬구려. 내 소저께서 마도일본 출신이라시기에, 혹시나 하였소. 이것의 이름이 막가롱이라 하였소? 맛은 봐야 알겠지만, 빛깔은 참 곱소이다. 이것도 그 영길리-번역기가 이상한 곳에서 일했다-라 하는 곳의 다과요?"
난백을 사용해 만드는 것이라면, 난황은 그대로 내버리는 것인가? 저런 규수들이 즐기는 다과답게 과연 사치스럽구나! 생각하며, 멋대로 해석해낸 하리는 에미리의 권유에 따라 마카롱을 집어들었다. 어떤 맛이 나도 놀라지 않으리라. 그리 굳게 다짐하며 한입 베어무니, 그 특유의 단맛과 필링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고, 굳은 다짐이 무색히도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맛이 괜, 괜찮군..."
먹어본 단 것이래봐야 꿀이나 물엿, 정제되지 않아 영 맹맹한 사탕수수 즙 정도가 전부인 중세인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감미! 이리 달고 귀한 음식이라면 그 값 또한 비쌀텐테! 이거 이러다 내가 갚아야 할 몫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리는 저도 몰래 목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