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에미리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거에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익힌대로만 한다면 헤맬 일은 없을테니까요. 제일 중요한 건 역시 환자를 살피는 일이구요. "
에미리의 물음에,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인 하루였다. 분명 에미리도 파견을 나간다면 자신이 했던 것보다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양이었다. 이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에 후한 하루의 성격도 영향이 있긴 했지만, 분명 에미리를 높게 봐주는 것은 분명했다. 오히려 하루는 그렇기에 자신이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는 타입이었으니까. '부담을 갖는 건 아니에요, 에미리양. 그저 에미리양이니까 조금 더 챙겨드리고 싶은거니까요. " 자신이 앉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눈치 챈 하루가 먼저 의자에 앉고는 에미리의 겸손한 말에 부드럽게 대답을 돌려준다.
하루가 누군가를 챙기는데 부담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뭐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하루의 호의에서 비롯된 말이었으니까.
" 저도 이 시기에 이 부분에서 고생을 했거든요. 에미리 양도 저처럼 여기를 보면서 끙끙 고민을 했을 생각을 하니까, 제가 이해한대로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해가 잘 되었다면 다행이네요. "
제 양손을 서로 포개어 감사를 표하는 에미리의 반응에 놀란 듯 눈이 커진 하루가 이내 새하얀 피부를 연한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수줍은 듯 두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곤 자그마한 두손 너머로, 방금전까지의 여유있는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 하루였다. 에미리에게 자연스레 두고 있던 시선 마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던 하루는 결국 귀까지 붉게 물든 체로 슬그머니 시선을 에미리에게 되돌렸다.
" 그, 하루 선배님이라고 깍듯이 부르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냥 편하게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에미리 양.. 그, 도움이 되었다면 저, 저도 엄청 기쁘니까요... 선배니까 이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하는거구... "
하루는 수줍게 말을 이어가곤, 왠지 나름대로 적극적인 어필(?)이었던 말을 뱉어내곤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지 다급하게 쿠키 하나를 집어선 입에 가져가 토끼처럼 오물거린다. 쿠키를 오물거릴 때마다 움찔거리는 어깨를 따라 하루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아까까지의 선배로서의 의젓한 모습은, 에미리의 진심어린 감사에 어쩔 줄 모르고 무너져 내렸다. 친절을 베푸는 것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감사를 받는 것은 역시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변장을 다 했다. 내 머리색은 나의 상징 같은 것이기에 바꾸진 못했지만, 마스크를 끼고, 모자도 야구모자로 바꿔 썼고, 옷도..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누가 보더라도 헉... 저 사람... 그거야? 싶은 디자인으로.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다 숨기라는 말을 그대로 따른 것... 후후후후! 하하하하!! 그리고 제일 중요한... '동전 주머니' 를 챙겨왔다. 뭐? 동전주머니? 이건 비어 있는 주머니지만, 이제 곧 가득 찰 것이다. 퓨어퓨어보이스 관람 선물로 퓨어플레인의 산탄총 총알을 나눠주기 때문에!!! 그걸로 가득 채워버리겠어!!! 지갑을!!
"우히히... 우히히... 히히..."
자! 이제 들어가볼까! 그 전에 팝콘~ 팝콘~ 팝콘을 먹기 위해 마스크를 내린다. 그리고 팝콘을 한 가득 집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비장한 각오란 각오는 다 했지만, 상영까지 아직 30분 남아 영화관 로비에서 팝콘이나 먹고 있다.
[거꾸로 물어볼게.]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그 사람에게 상처면, 그 사람은 널 왜 좋아하겠어? 그 상처마저도 이겨낼 자신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거잖아.] [그리고, 상처야 받으면 뭐 어때? 우리는 게이트 한 번 들어가면 팔다리는 그냥 날아가잖아? 재현형 게이트나 몬스터에 따라서 트라우마도 겪거나 생기거나 하잖아?] [그거보다 더 덜했으면 덜했지 심할거라고 생각해?]
팝콘을 우물우물.. 역시 팝콘은 오리지널...! 중간에 목이 마르면 사이다를 마시면서 머릿속에선 망상열중 이번.. 극장판은.. 어떤 내용일까... 퓨어퓨어보이스의 에피소드 제목은 대단히 직관적인 편이다. 예를들어, 1화의 제목은 [내가 가디언?! 순수한 의념과 그것을 노리는 존재] 라는 제목으로... 주인공인 프레이가 의념을 각성한다는 것과 그 의념을 노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설마.. 1화 제목부터 결말부를 스포할 줄은... 이런 식으로, 극장판도 순수하게 직관적일지도 모른다. 그래... 플레인이 순수 의념으로 핵미사일을 순수하게 강화시켜 게이트 내부로 때려박는다거나... 설마~ ...아니, 애니메이션이니까 그럴만하다. 현실 고증? 그런 걸 포기한지 오래인 애니메이션이니..
그렇게 망상속의 자신과 열띤 토론을 벌이던 중,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습관적으로 "아, 오랜만이에요~"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황급히 마스크를 올려쓰고 "누구세요." 라고 목소리까지 바꾸어 대답하고 시선을 피한다. ...힐끔... 신속S의 속도로 1분당 30번이나 힐끔힐끔 쳐다보는 건 덤
심심해서 아이쇼핑이나 할까- 하고 나와본 상점가는 사탕으로 가득했다. 단순히, 알록달록한 종이 위에 화이트데이라고 적고 큼지막한 사탕 스티커로 그 주변을 꾸민다거나, 일정 GP이상의 아이템을 사면 특별한 사탕을 증정한다는 작은 칠판이라던가. 그러보고니 곧 화이트데이라던가. 만들어진지 1세기쯤 지난 오래된 상술인데 참 질기게도 가는구나, 하고 중얼거리던 은후의 시선에 단기 알바 공고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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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곧 있으면 화이트데이! 달콤한 사탕과 함께, 선생님, 친구, 애인에게 사랑을 전하는게 어떠세요~? 본 가게에서는 다가오는 화이트데이를 기념하여 다양한 사은품을 증정하고 있답니다, 와서 한 번 둘러보세요~"
그리하여 은후는 상점가 화장품 가게 앞에서 열심히 자그마하고 핑크색인 바구니 하나를 들고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
음음, 정말 완벽한 코멘트야! 물 흐르듯 나오는 자신의 호객 멘트에 감탄하면서, 은후는 자신의 바구니에서 커다란 막대사탕을 꺼내들었다.
"가벼운 이벤트도 있습니다, 가위바위보 한 판 승부! 저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시면 막대사탕 하나!"
저어기 지나가는 익숙한 제노시아 교복을 입은 학생을 보면서, 은후는 손을 들어보였다. 선배인지 동급생인지 모르겠지만 저 가게 안으로 끌고가는 알바생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바구니 안의 사탕을 어느정도 비워야 제가 열심히 일을 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습니다. 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이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하루선배님께서는 정말 자상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저를 높게 평가해주시고 잘 모르는 교과서 내용도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분은 국제학교까지 통틀어봐도 몇 없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감동했다는 듯 선배님의 말씀을 듣다가 “좋은 말씀 감사드리와요 하루 선배님! 선배님은 정말 자상하신 것 같사와요🎵” 이란 말을 꺼내곤, 이해가 잘 되었다면 다행이란 말씀에 조용히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런데 잠깐, 조금 낯섭니다…? 선배님이 원래 이렇게 부끄럼을 잘 타시는 성격이셨는지요? 아니면 선배님께서 유난히 붉게 보이는 블러셔를 쓰고 나오신 걸까요? 뺨만 장밋빛으로 물들인 저와 다르게 귀까지 붉어지신 선배님을 보며 의아해하다, 수줍어하시며 말씀하시는 걸 듣고서야 뭔지 알겠다는듯 눈꼬리를 휘며 턱을 괴고 물었습니다.
“으음~? 하지만 선배님, 에미리는 아직 1학년인걸요? 선배님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편히 불러드리는건 실례이지 않을지 싶사와요…? “
완전 한참 연상인 카르마군한테도 가족이 아니기때문에 그냥 카르마군이라 불러드리는 패기를 보여드리는 저라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하루양이라 불러드리는 건 솔직히 조금 실례이지 않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차에 그냥 이참에 서로 나이 공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낫겠다 싶어서 살짝 양손을 깍지를 끼며 여쭤보기로 하였습니다.
“맞다🎵이참에 여쭤보면 되겠네요~! 소녀는 올해 신한국 나이로는 열일곱이 되었답니다~ 조금 일이 생겨서 또래보다 좀 늦게 입학하게 되었사와요! 하루 선배님께서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