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느릿하지만 자신감이 깃든 말투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검에 익숙했다. 그 고통스러움에 익숙했다. 그 속삭임에 익숙했다. 그렇기에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했고, 그렇기에 나이젤이 생각하는 그런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그 도구에 휘둘리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 ...그 코스트는. "
나이젤이 말하며 자신에게 애찬을 보여주자 지훈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 때 마지막에 가서 느낀 것은 순수한 경의였다. 사랑에 자신의 몸을 태우며 결국 스러져버린 검사에 대한 경의. 허나 왜 그 뒷감정은 이렇게나 쓴 걸까. 입 안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쓴맛이 맴돌았다.
" 미리 단언해둘까. 난 그 코스트를 받지 않을 거야. "
꽤나 단호한 태도로, 나이젤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거부했다.
" 난 그 코스트를 부술 수 없으니, 그 코스트를 받을 수도 없어. "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검귀를 베며 그의 기억을 읽었고 그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인진 몰라도 저 인형에 대해서는 감정이 복잡했다. 저기에 담긴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기에, 그것을 끝내버린 자신이 차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까지 부술 수는 없었다.
...라는 것도 거짓말이지만! 그러니 지금까지의 거짓말 카운트는 총 2회다. 그 믿음에 보답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이럴 때 거짓말해서 걱정하게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봤다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가 하면 자신없긴 했지만.
"그런가요."
코스트를 부술 수도 없으니 받을 수도 없다. 역시 이런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 방금 전부터 꺼낸 이야기 중 답을 바라지 않고 꺼낸 이야기가 있었던가. 안심할 수 있는 건 그 대답이 나이젤이 듣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것과 같았던 것이었다. 솔직히 온천물... 때문에 가져가는 거 아닐지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 그럴 리가...
"그러면, 안 쓸 거라면 마음대로 써버려도 괜찮을까요?"
잠깐! 오해 살 말이잖아! 마치 부순다는 것 같잖아! 나이젤은 쇼핑백을 열어 안에 있던 물건 하나를 펼쳤다. 원색보다는 부드러운 색의 연두색이 물에 퍼지는 녹색 머리카락처럼 펄럭, 바람을 모으며 곡선을 그렸다. 요약해서 천이었다.
"인형옷이 만들고 싶어졌으니, 그냥 두게 된다면 만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몸이 낡았어도 날개까지 낡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덧붙이려 했겠지만... 저 쇼핑백은 다 이 인형 하나를 위한 거였다. 대답에 따라서 쓸모없어지냐 쓸 수 있어지냐가 정해진다는 건 부술 인형의 옷을 만들 순 없을 테니까. 확실히 과소비다!
"정리되기를 바라는 바이니까요." 에미리양의 것도 잘 정리되길 바랍니다. 라는 단정한 말을 하고는 조용하게 정리하는 동안에도 지워짐과 채워짐의 속도가 기에 슬쩍 들리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운을 떼는 것에 에미리를 바라보았나요?
"합석을 허락한 것은 제 의지였지만, 잘 어울려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그리 말하는 다림은 가방을 메고 빈 트레이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햇빛이 희미하게 새어들어와 눈을 살짝 부시게 했지만, 다림은 에미리의 인사에 에미리 양도 평안하시기를.이라고 말하며 떠나갔습니다. 간단한 행동에 불과할 것이었지요.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가. 라는 질문에 다림은 아무리 미소짓는다고 해도 차가워보이는 것만 같은 눈동자로 지훈을 잠깐 바라보았습니다. 눈을 들여다본다면 새하얀 눈동자는 테두리와 동공이 사람의 눈인 것을 증명해주는 걸까요. 감정을 읽기 힘들다면 힘들고, 쉽다면 쉬울까?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알아차린다 하여도, 내색은 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짓을 말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 당시를 안타까워하겠지만 그 뿐이겠지. 잘 이해가지 않는 표정을 짓는 지훈에게 말을 더 얹지는 않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도... 장갑을 끼는 이유를 묻자 다림의 표정에서 한순간 희미한 공허감을 눈치챌 수 있을까요? 아주 짧았기에 착각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죠.
"단적으로 말하자면.." 회피하기 위해서일까요. 라는 말만을 남겼습니다. 무언가 더 있지만, 진실을 덜 말한다는 건 이런 느낌인 걸까요? 수육이 조금 남은 쟁반을 들면 밑에 아구육수와 야채 조금이 든 냄비가 있을 겁니다. 거기 안에 발라놓은 것을 넣고 불을 올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