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혁은 잔상처가 많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몸에 난 상처들에 담긴 내력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고,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제대로 풀기만 한다면 아예 책 한권을 쓸 수 있겠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을 리가 없으니, 강찬혁은 간단하게 자신의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지표ㅡ "총"을 기준으로 설명하기로 했다. 미간 정중앙에 나 있는 희미한 둥근 흉터를 가리켰다.
"운이 좋았어요. 총 맞기 직전에 의념을 각성해서."
대신에, 발이 좀 굼뜨죠? 뭐, 평균은 되지만.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 정도로는 저 못 죽여요. 아예 건물이 내 쪽으로 무너지면 몰라. 걱정 마세요."
그제서야 후안은 찬혁의 몸에 난 상처가 지나간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흉터들이 이곳저곳 나있다.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냈던 흔적이다.
"... ...!" 후안에게는 그런 흉터가 많지 않기에 후안은 감탄스래 찬혁의 흉터들을 보았다.
총에 맞을 뻔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것도 머리에 총을 맞아본 사람은 정말 없을테니 후안은 참 진기한 사람을 만나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개한테 쫒기는 경험도 그리 흔치는 않을텐데 생각하다가 문득 왜 개 세마리 한테 쫒기고 있었나 후안은 궁금 해졌다.
건강을 유지하기위해선,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도 필요하지만, 또 하나는 하루 30분 이상 운동을 하는 것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타다는 지금 학원도의 도심구역을 가볍게 조깅을 하고 있다.] 어쩐지 지나가다가 세마리의 개들에게 쫒기는 듯한 사람을 본 것같기도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않았다.
유산소 운동은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숨이 찬다면 조금은 휴식을 가지는 것이 좋다. 슬슬 지칠 것 같은 타다는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가져온 물통을 열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수분 공급도, 운동중에는 필수적이다. 탈수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낭패니까.
강찬혁은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했다. 사정은 길게 설명하려면 길게 설명할 수도 있었고, 짧게 설명하려면 정말로 짧게 설명할 수도 있었다. 가령 길게 설명하려면...
오늘 학교에서 시험이 있었는데 쪽지시험을 치는데 이름을 "인생망친놈"으로 적고 "최초로 나타난 괴수는 어떻게 되었는지 서술하시오"라는 답에 "죽었다"라고 적는 등 차라리 백지로 내고 말지 싶은 짓을 해서 선생이 화가 끝까지 났다. 그래서 강찬혁에게만 이 쪽지시험의 오답노트를 한 문제당 10장씩 매우 자세하게 적으라는 과제를 내고 이 과제를 끝내기 전까지는 절대 집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찬혁은 하기 싫다며 뻗댔고, 결국 강찬혁의 나태함과 빨리 퇴근해서 집에서 놀고 싶은 공무원의 칼퇴본능이 선생으의 사명감을 합동 공격해 승리했다. 하지만 이미 밤 11시였고, 어차피 통금에 걸릴 것 같아 근처 PC방에 가서 밤새 게임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나오는데 졸려서 하품을 하면서 눈을 감고 나오는데 꼬리를 밟았고, 그것도 맹견 세 마리의 꼬리였어서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선생과 기싸움을 했다는 이야기 따위 상대는 궁금하지도 않을 테고 강찬혁 역시 궁금해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 짧게 설명했다.
"통금 시간 넘었는데 찬바닥에서 잘 수는 없어서 그냥 PC방 들어가서 밤새 겜 했거든요. 그런데 나오다가 실수로 개 꼬리를 밟았어요. 네."
지난번 손가락 튕기기 한번에 나가 떨어진건 근육 부족의 탓도 있었다. 근육이 부족하다. 조금 더 강해져야한다. 철우는 언제나처럼 도심구역을 달린다. 팔 다리의 모래주머니와 함께 그리고 언제나처럼 죽을 것같았다. 숨이 당장이라도 넘어갈 듯 달리고 그 상태에서 조금 더 달려서야 그는 쓰러지듯 멈춰섰다. 그리고 우연히 그의 옆에 타다가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숨을 가다듬는 게 먼져였다.
수분을 보충하고 있자, 누군가가 옆에 앉는 것을 타다는 신경쓰지않을래야 신경쓰지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모습을 확인하니, 아무래도 이 코스에서 똑같이 운동을 하고 있었던 사람인가 보다. 같은 자리에서 쉬다니 우연인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던 타다였지만 옆 사람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서야 얼굴을 확인하고 그가 누군지 기억해낸다.
"...우연이네."
밖에서 동기생을 만나는 것은 처음인 일이기도 했다. 그것도 이런 우연의 일치로 말이다. 세간에선 이런걸 운명이라고 한다지...아니, 크게 대수롭지않다. 체격과 머리스타일을 보고 유추해본다면 그가 평소에도 운동을 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조깅하기 좋은 장소를 찾았더니 똑같이 그도 우연히 좋은 조깅 장소를 찾았을 뿐이다 솔직한 성격의 타다는 생각했던 말을 그대로 입으로 내뱉는 경향이 있기때매, 나온 말이였다. 동기생을 만나 반가워서 말을 걸려고 했던건 아니였다. 정말, 혼잣말이였을 뿐.
강찬혁은 가라고 손짓했다. 완전 친한 사람도 아닌데 언제고 붙잡아놓을 수도 없지. 어쩌면 자신을 도와주는 것보다도 더 급한 일이 있는데 개가 쫓아온다는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와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이름이 후안이라고 했나? 나중에 사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도와줬으니 뭔가 보답은 해야겠지.
"나중에 보답할 일이 있으면 보답할게요. 약속하죠."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고, 그 자신도 가야 할 곳으로 갔다. 달콤한 수면이 기다리는, 기숙사 개인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