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치않게 방해를 드린 것 치곤 예상외로 크게....화가 나시진 않은 것 같다....? 저기, 저 조금 무례하지 않았사와요? 그쪽 아가씨의 예배를 방해드렸사와요? 수녀라기엔 너무 앳된 얼굴이고 해서 추측컨대 이곳의 학생이겠거니 싶다. 아마 선배님이시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잘 말린 옆머리를 비비 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맞답니다~ 신입생도 맞고, 길을 잃은 것도 맞사와요. 학교 구조를 조금 알아보려던 중에 그만 폐를 끼치고 말았지요... "
기도를 드리기엔 지금 이 복장은 너무 사이한 복장이다. 사탄이 고상하게 차려입고 예배당에 갈때 딱 이런 복장일 것이다! 하여튼간에 너무 시커먼지라 그냥 적당히 구경만 하고 가자~ 했는데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괜찮으시다면 잠시, 여자기숙사까지 가는 길을 여쭤보아도 될까요? 이쪽 길은 처음인지라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
" 그리 부끄러워 하거나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답니다. 의외로 후배님과 같은 실수를 하는 분들은 언제나 있거든요. 부끄럽지만 저도 입학을 했을 땐 그랬으니까요. "
옆머리를 비비 꼬던 에미리가 꺼낸 말에 후후 하는 맑은 웃음소리를 낸 하루가 천천히 분홍빛 입술을 열고는, 잔잔한 파도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준다. 괜히 미안함을 품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그것이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을 수 있게 해주려는 듯 묻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를 슬쩍 풀어내어 에미리의 무안함을 덮어주려는 모양이었다.
" 그러고 보니 시간이.. 마침 저도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으니, 후배님만 괜찮다면 같이 돌아가면서 알려주도록 해도 될까요? "
백만번의 말보다 한번의 행동이 더욱 알기 쉬우니까요, 하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곤 몇걸음 더 나아가 에미리 앞에 선다. 새하앤 하루의 머리카락과 피부가 햇볕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다.
" 제 이름은 이하루, 성학교 2년생이랍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후배님 "
가볍게 성호를 그으며 통성명을 하려는 하루였다. 그래야 에미리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생각할 것이라 판단한 것 같았다.
친구가 내민 담배를 사양하고, 담배 연기를 피해 몇보 옆으로 걸음을 물렸다. 옥상 난간에 기대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텅 빈 학교 운동장의 모래바닥이 지평선으로 점점 누우며 붉어지는 태양빛과 맞물려 붉게 보였다. 이렇게 끝났다. 험난했던 3년이, 고통을 주고받았던 3년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누구는 한번도 안 가는 전학을 그는 짧은 3년동안 5번이나 갔다. 정학 처분은 10번 당했고, 경찰서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며 언제는 소년부 판사 얼굴을 보기도 했다. 두들겨맞은 횟수, 기합을 받은 횟수는, 이미 1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3달이 되지 않아 세는 걸 포기했으니까.
물론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럴 만한 짓을 했기에, 그럴 만한 처분을 받았다는 것을. 그나마 "그래도 학교 나와서 쳐 자기만 하는게 어디냐."며 딱히 그를 혼내지 않은 이 마지막 학교가, 그에게 중학교 졸업장을 줬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하지만 몇몇은, 강찬혁 자신이 보기에는 좀 억울했다.
'반장. 숙제는 너한테 제출하면 되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그거 받을 시간 되는거 같냐?'
'너가 받는 거 아니면 안 받는다고 얘기하면 되잖아. 좋게 말했는데 왜 그래?'
강찬혁은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은연중에 무시를 받았다. 위로한답시고 다가와서는, 화내는 놈이 예민해지는 애매한 말로 그를 무시했고, 집안이 잘 사는 애들은 강찬혁 앞에서 가난한 집 애들은... 하면서 들으라는 듯 했다. 거기까지는 참았다. 하지만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을 물어봤을 뿐인데도 틱틱대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났다.
'어, 안 받아. 됐냐? 짜증나게. 빨리 꺼져.'
'너 진짜... 아니, 아니다.'
뒤돌아선 순간 반장이 작은 목소리로 '거지 새끼가...'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뒤에서 몰래, 또는 들릴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면전에서 무시하는 것까지 참을 수는 없었고, 참고 싶지도 않았다. 강찬혁은 뒤돌아서서, 반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사과해.'
'뭐?'
'나보고 거지 새끼라고 한 거, 사과하라고.'
'내가 한 적도 없는 말 가지고 지랄이야.'
'말 했잖아. 사과하라고.'
'거지 새끼가 이제는 사과도 구걸하...'
세 번까지는 좋게 말한다. 강찬혁의 철칙이 그랬다. 세 번 좋게 말해서 듣지 않았으니, 이제 주먹을 쓸 차례였다. 처음 세방까지는 담임에게 이르겠다며 윽박지르다, 그 다음부터는 미안하다며 뒤늦게 사과했다. 하지만 강찬혁은 참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현대인들은 무례하게 말해도 골통이 쪼개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야만인보다 무례하다고. 강찬혁은 골통을 쪼개는 것까지는 너무해도, 예의를 주입하기 위해 이빨 두 개 정도는 부러트릴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강찬혁은 전학을 가게 되었다. 반장의 어머니는 학부모회장이었고, 아버지는 지역 고용을 책임지는 자동차 공장의 총책이었으니. 강찬혁이 일방적으로 두들겨맞았어도 강찬혁 잘못이라고 몰아갈 판에, 강찬혁이 일방적으로 두들겨팼으니 결과는 당연했다. 물론 강찬혁을 거지라고 놀린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제재도 없었다.
그 과정을 보면서 깨달았다. 억울하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잘나야 한다고. 돈 많고 잘나면 무시를 당했겠는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화목한 세상도, 부모님이 역설한 이타적인 삶도, 모두 개소리로만 들렸다. 그렇게 강찬혁은 비행청소년이 되었다.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학교 담벼락을 날아서 넘었고, 교복 안감을 수선해서 안에 잡지 따위를 넣어 학생부장의 몽둥이를 견뎌냈다.
그렇게 개판 같은 학교생활을 보내며 얻은 건, 수많은 낙인과, 고통뿐이었으니까. 고등학교로 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거지라 놀리면, 강찬혁은 주먹을 날릴 테고. 전학을 밥먹듯이 할 테다. 그 짓을 또 3년을 한다라. 착잡한 마음이 눈빛으로 드러났다. 그때,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일 해볼 생각 없냐?"
"뭔 일?"
친구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삼봉시큐리티라는, 촌스러운 한국어와 나름대로 멋 내보려 한 외국어가 섞여 참 우스꽝스러운 이름이었다. 돈 챙겨준다. 싸움 잘하는 놈 찾는다더라. 어차피 할 짓 없잖아? 그런 말에 이끌려서, 졸업하고 나서 친구와 함께 그 경비업체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강찬혁은 어려운 집안에 돈을 보내는 장한 아들이 되었다. 물론 강찬혁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숨겼다...
자식새끼 취직했다는 경비업체가, 조직폭력배의 싸움에 동원하기 위한 사조직을 적당히 경비업체로 포장했을 뿐이라는 걸 알면, 평소에 하는 일이 마약 공장이나 불법 도박장 앞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서있는 어깨들을 고용하는 업체라는 진실을 알면 어떤 부모가 좋아하겠는가.
추측대로, 수녀복 아가씨는 이 학교의 선배님이 맞으셨다. 성학교는 진작에 교복을 버린지 꽤 되었다던데 추측커니 이 아가씨는 종교적으로 매우 신실하신 분이실 것이다. 아무리 신실할지라도 저렇게 제대로 수녀복을 갖춰입고 다니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되었더라....? 대체 얼마나 학교 건물을 돌아다닌건지, 벌써 시간이 꽤 늦은 시간이 되었다.
"어라~? 그러고보니 시간이... 저야말로 그래주신다면 감사하지요~ 혼자 가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기도 하구요! "
물론 그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선배님께서 몸소 같이 가셔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신다는데 어느 후배가 이걸 마다하겠냐 이 말이다. 아가씨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성호를 그으며 가볍게 통성명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