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0세. 가슴께 위로 흘러내리는 사랑스러운 흑발은 달빛을 머금어 파리하게 잠긴 밤을 닮았다. 유순한 이목구비. 반듯한 이마 밑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콧날은 오똑한 버선 모양을 흉내냈고, 그 아래에 자리잡힌 작은 입술은 희미한 분홍빛을 띄었다. 턱선은 갸름했다. 훤히 드러나는 목덜미는 한 손에 잡힐 만큼 가늘었다. 둥그스름한 눈망울 위로 긴 속눈썹이 그윽한 그림자를 거느리며 드리웠고, 그 틈새로 머리카락과 같은 빛깔의 홍채가 투명하게 비쳤다. 아침보다는 밤, 밤보다는 새벽에 가까운 어슴푸레한 인상을 가졌다. 가냘픈 뼈대와 하얀 피부는 처연한 분위기를 두드러지게 했다. 옷차림은 때에 따라 양식이 달랐으나 저택 안에서는 주로 무채색으로 된 벨벳 원피스를 단벌로 입었다.
1. 아르데셰 백작가의 차녀. 위로는 오빠 둘과 언니 하나를 두었으며, 세 살 아래 동생은 인근 국가에서 공부하고 있다. 교수와 판사, 의사 등을 많이 배출한 학자 집안-기사 작위도 이 점을 황제에게 인정 받아 하사 받았다-이었던 까닭에 장남을 제외한 형제 전원이 학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그녀 자신만은 아직 스스로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녀의 미들 네임은 선대로부터 각기 물려받은 것이다. 고모할머니인 릴 아르데셰는 아직까지도 종종 저택에 며칠씩 머무르다 가고는 했었다. 루아레는 역병이 들어 일찍이 병사한 백작의 누이 동생의 이름. 2. 연극, 오페라 따위의 공연을 관람하기를 좋아했다. 작곡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때때로 배우들을 그럴듯하게 흉내내거나 직접 극을 써내기도 했는데 애석하게도 남들 앞에서 과시할 실력은 아니었다. 3. 빈말로도 썩 곱다고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자유분방하고 활발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억압 받거나 제 뜻대로 안 되면 곧바로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찬찬히 뜯어 살펴보면 늘상 어딘가에 기가 눌려 주눅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다만 본성 자체가 그릇된 건 아니라 실상은 다정하고 마음도 약했다.
* 에밀 아르데셰 Émile Anne Ardèche
만 48세. 심리학 박사. 짙은 고동빛이 감도는 새까만 머리카락은 포마드를 발라 단정하게 넘겼다. 살짝 기른 점잖은 콧수염과 원형 금테 안경. 끝까지 단추를 채운 정장 위에 채도 낮은 코트를 걸친 차림새를 준수하고 있다. 잘 다려 각이 잡힌 셔츠의 깃 언저리 겉감에는 우디 계열의 오드 뚜왈렛을 살짝 뿌려 굵은 목선을 따라 묵직한 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조각처럼 완벽한 실루엣과 꾹 다물린 입술, 날카롭고 짙은 눈썹 덕에 자칫 무뚝뚝한 인상을 남겼다. 그와는 대조되는 다정한 성격. 살갑지는 않아도 상냥했다. 대학의 심리학과 정교수로 재직 중이며, 늘 연구 프로젝트와 강의 자료 따위에 파묻혀 살았다. 연구비는 그의 맏형인 아르데셰 백작으로부터 지원 받았다. 전공 수업 외에 <정신분석학의 토대와 이해>라는 교양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성격 - 사람들이 헬리온을 부를 때 사용하는 수식어는 주로 완벽주의자. 매사에 철저하고 빈틈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 그럼에도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여유롭고 신사적인 편. 앵간히 친해지지 않고서야 반말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 평소엔 젠틀하지만 걸어오는 싸움은 절대로 피하는 성격이 아니다. - 세심하고 신중한 성격.
외모 - 헬리온의 키는 177cm, 몸무게는 67kg - 어깨가 넓고 비율이 괜찮아서 어지간한 옷을 입어도 대부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 평상시엔 갈색과 금색이 섞인 듯 한 연한 베이지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이마를 드러내고 다니는 편 - 파란 눈동자 - 일상복은 편한 복장이지만 아르데셰 가문의 저택에 방문하는 날엔 항상 정장이나 그에 가까운 단정한 옷을 입고 가는 편 - 자신감 넘치는 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특징.
특징 - 제국 내에서 가장 재능과 실력이 뛰어난 이들만 입학 할 수 있다는 황립대학의 대학생 신분이다. - 대학교 2학년을 마친 헬리온은 너무나 비싼 학비를 도무지 감당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자퇴를 결심했지만, 평소 그를 좋게 본 에밀 아르데셰 교수의 소개로 그의 가문에 가정교사로 일 할 수 있게 된다. 아르데셰 가문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수도의 식당과 공장 등지에서 일용직을 했다고. - 철저하고 세심한 그의 성격 탓에 다소 예민해지거나 민감한 부분에 표정이 굳는 일이 잦지만 에포닌의 앞에선 그저 한없이 천사가 되어버리는 헬리온. - 에포닌과 만나서 수업한 지는 올해로 5년째. - 가족으로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남동생이 있다.
텀은 나도 여유로운 게 좋아!! 나도 현생이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아서 심할때는 하루에 한 두레스만 올려도 벅찰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꼭 언질해줄 테니까 절대로 말 없이 잠수 타거나 그럴 일은 없도록 할게! 만약 며칠 못 들어올 일이 생긴다면 서로 말은 꼭 해주는걸로 하자!!
일상은 가볍게 수업날로 시작할까? 내가 지금 운전중이라 에포닌주가 선레 써줄래?ㅠㅠ 집에서 에포닌이 해리를 기다리는 시츄에이션이 좋을 거 같은데!
화장대 앞에 꼭 붙어앉아 거울에 투영되는 자신의 얼굴을 목이 빠져라 응시하던 에포닌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훽 돌려버렸다. 신경질스러운 움직임에 애꿎은 머리카락만이 약한 미풍을 일으키며 까맣게 흐트러졌다. 그녀는 어쩐지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대놓고 성깔을 부리거나 험악한 말을 쏟아낸 건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뾰로통해진 눈빛과 표정에서 언짢음이 드러났다. 뺨에 달라붙은 모발을 거추장스럽다는 듯 떼어낸 그녀가 손바닥으로 합판을 짚은 채 입술을 떼었다.
“이상해. 뭐가 문제지? 뭐가 잘못된 걸까? 네 눈에는 뭐가 문제일 걸로 보이니? 말해봐, 클라리스.” “저, 무슨 말씀인지 잘……. 뭔가 제가 실수한 게 있나요?”
당황한 하녀가 혹 거울에 미처 못 닦은 지문이라도 있나 급히 살피려 들자 에포닌이 곧바로 손으로 제지하고는, 손가락으로 거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봐 봐. 오늘따라 못생겼잖아. 내 얼굴이.” “네……?”
하녀가 황당한 듯 되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포닌의 관심은 거울에만 꽂혀있는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조잘조잘 말을 이어갔다.
“네가 봤을 때는 뭐가 문제인 것 같아? 너는 예쁘니까 말해줄 수 있잖아. 뭐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라든지, 오늘 입은 옷이 영 아니라든지……. 혹시 어제 잠을 이상한 자세로 자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원래 이 모양으로 생겨먹은 건데 그동안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아가씨, 그냥 평소랑 똑같으세요.” “그러니까 원래도 이렇게 내가 추했었어?!” - 그녀가 놀라서 넋나간 비명을 질렀다. “그게 아니라 평소랑 똑같이 아름다우세요!” “지금은 입 발린 소리를 들으려는 게 아니라 진짜 객관적인 평이 필요해! 클라리스, 어때?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글쎄, 제 눈에는 그냥 귀엽기만 하신데…….”
에포닌이 자리를 벅차고 일어났다.
“나 안 해. 오늘 수업 안 들어. 이 꼴로는 안 듣는 게 아니라 못 들어!” “안 돼요, 아가씨!”
깜짝 놀란 하녀가 새초롬해진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저도 모르게 에포닌을 막기 위해 순간적으로 팔을 잡으려 들었다, 감히 잡지는 못 한 채 쩔쩔맸다. 에포닌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방 한가운데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잔뜩 성난-척하는- 뒷모습은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의 꼴을 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어쩐지 그녀를 냉큼 말려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눈치 빠른 클라리스가 그녀를 달래는 투로 다시 한 번 살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아가씨, 치장은 나중에 하시고 지금은 곧 수업시간이니까 공부에 집중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난 번에 배웠던 걸 복습하신다거나. 아니면 오늘 배울 내용을 미리 봐둬도 좋고요.” “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얼굴이 영 못 봐줄 꼴이라 집중이 안 되는 걸 어떡해.” “정 그러시면 이틀 전에 받았던 새 목걸이를 오늘 걸어보시는 건 어떠세요? 공작가에서 보내오셨던.” - 클라리스가 나름의 묘안을 낸 듯 자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목걸이?”
다행히 그녀 또한 클라리스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 듯 두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클라리스가 조심스럽게 에포닌의 어깨를 잡고서 리본이 풀려진 채 탁상 위에 올려져있던 상자 쪽으로 에스코트했다.
“네, 가끔은 새로운 장신구를 하면 기분 전환도 되고, 어…… 또 평상시랑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잖아요? 분명히 아가씨 마음에도 쏙 드실 거예요.”
하녀가 에포닌을 능숙히 소파 위에 앉히며 긴 머리카락을 들어내 목덜미를 드러냈다. 에포닌은 연신 그럴까? 좀 달라질까? 하고 떠들어대며 목걸이가 담긴 상자 안의 벨벳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목에 고리를 마저 채운 클라리스는, 대외활동을 나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수업 따위를 들으면서-그것도 편안하게 제 방 서재에서 듣는다!- 도대체 왜 저렇게 외모 걱정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사춘기가 올 적도 훨씬 지난 나이인데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포닌은 얌전히 앉은 채 제 목에 걸린 하얀 진주 목걸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클라리스는 에포닌이 꼭 갓 사랑에 빠진 어설픈 소설의 여자 주인공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인지 에포닌의 얼굴이 들뜬 듯 살짝 상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묘하게 스크롤이 길어 보이는데 내용이 많은 건 아니고 그냥 대화가 많아서 공백이 대부분인 거야... ^_t 대충 해리가 오기 직전의 방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가?로 써왔는데, 집사 에스코트(?) 받으면서 방에 왔다는 내용으로 이어주면 될 것 같아!
거울 앞에 선 헬리온은 차분히 머리를 빗었다. 만족할 때 까지 머리를 만진 후 고개를 좌로 한 번, 그리고 우로 한 번 돌리어 혹시라도 묻어있을 티끌이 있는지 찾았다. 별 문제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개어져 있던 셔츠를 들어 걸치고는 목에 넥타이를 맸다. 능숙하게 넥타이를 맨 헬리온은 이어서 거울 앞에 있는 저급 향수를 목 뒤와 손목에 두드려 약간 묻힌다. 학교의 선배에게서 빌린 정장을 마저 차려 입고는 손가방을 들로 문을 열어 집을 나서는 순간, 뒤에서 늙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해리, 백작님께 누 되지 말고, 항상 감사하고..” “할머니, 염려 마시고 얼른 들어가세요. 저 가요. “
이런 잔소리는 익숙한 듯 할머니를 집 안으로 밀어넣다시피 들여보내고는 헬리온은 결국엔 집 밖으로 나선다. 헬리온의 집이 있는 거주민 거리를 지나 시가지로 나서자 여러 무리의 인파가 왁자지껄 거리에 한껏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악기를 불며 동냥을 하는 거리의 악사들과, 한껏 물건을 흥정하는 손님과 장사꾼, 나들이를 나왔는지 바구니를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연인 등. 그 많은 인파를 헤치고 도로로 나온 헬리온은 지나다니는 마차들 중 하나를 잡아 올라탄다.
“어디까지 가슈?” “아르데셰 가. 어딘지 아세요?” “알다마다. 20실버요.”
마부가 부른 값을 헬리온이 지불하자 곧 채찍소리와 함께 마차는 출발했고, 얼마 안 있어 마차는 아르데셰 가의 정문에 도착했다.
“살펴가슈, 공자님!”
문을 닫고 내리는 헬리온에게 마부가 지나가듯 던진 인사는 헬리온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잠시 가만히 있던 헬리온은 곧 고개를 들어 아르데셰 가의 웅장한 저택을 쳐다본다. 가끔가다 정장을 차려입고 백작가에 마차를 타고 방문하는 헬리온을 같은 귀족 자제로 보는 마부가 몇 있었기 때문에 종종 듣는 오해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나도 공자님이었으면 좋겠네요.”
멍하니 중얼거리던 헬리온은 피식 웃고는 발걸음을 떼어 정문을 넘는다. 대문 앞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아르데셰 가의 집사장이 칼같은 자세로 헬리온을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헬리온 님.” “안녕하세요, 집사장님.”
가벼이 목례하는 헬리온에게 집사장은 허허 웃는다. 형식적인 절차였지만 문 앞의 경비병들이 혹시나 숨겨놓은 무기가 있는지 헬리온의 몸을 수색했고, 아무런 문제가 없자 집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대문을 열고는 에포닌의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벌써 몇 년 째 아르데셰 가에 발을 들여 왔기에 그녀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보안과 안전상의 이유라고 하니 헬리온은 그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에포닌 양은 잘 있나요?” “글쎄요. 아까 봤을 땐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집사장과 이야기를 하며 어느 정도를 걷자 화려한 장식이 수놓인 에포닌의 방 문이 눈 앞에 들어왔다. 방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소 산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주 집 왔다.. 근데.. 진짜 쓰면서 에포닌 너무 귀여워가지고 ㅋㅋㅋㅋ 몇번을 반복해서 읽다가 다시쓰다가 해서 너무 늦어졌다. 미안해 ㅠㅠ 근데 에포닌이 너무 귀여운 잘못이야.. 난 잘못없엉..
새 목걸이를 걸치고 치마자락을 나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에포닌은 당연하다는 듯 성큼성큼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클라리스가 속으로 경기를 일으켰다. 또다시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질 언쟁을 차마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클라리스가 애써 성대를 다듬어 침착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아가씨, 아가씨! 이리로 오셔야죠. 이제 책 펼치고 그만 자리에 앉아계세요.” “응. 그래도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마지막으로 점검해봐야겠어!” “아니요, 안 돼요!” “왜? 설마 더 이상해진 거야? 진주가 별로 안 어울려?”
아뿔싸. 에포닌이 울상을 지으며 내뱉은 한 마디에 덩달아 클라리스도 울상이 되었다. 음절의 억양 하나까지도 심의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말했어야 했는데, 조급해진 나머지 침착함을 제대로 연기해내지 못한 터였다. 하녀는 입가에 억지로 미소를 드리웠지만 거의 반쯤은 우는 채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안 어울리는 게 아니라 곧 선생님께서 도착하실 텐데, 산만한 모습을 보이실 순 없잖아요.” “아참, 그렇지. 정숙하게 굴어야지. 정숙……!” “그렇죠. 아가씨께서 품위를 잃으시면 안 되죠.” “헬리온 씨도 얌전하게 구는 내 모습을 더 좋아하시겠지?” “그럼요. 물론이죠. 엄숙하고 차분하게 계셔야 좋아하세요. 원래 교사들은 다 그래요.” “정말 다 그래? 그렇구나.”
잘 알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열심히 주억거린 에포닌이 그제야 온순해진 태도로 순순히 서가로 걸어갔다. 드디어 한시름 덜게 된 클라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려는 찰나, 다시금 제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에 입을 벌린 채 하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데, 클라리스!” “네, 아가씨…….” “지금 내 모습 진짜로 괜찮아? 별로 안 이상해?” “네, 네! 정말로 안 이상해요! 예뻐요! 도시에서, 아니 제국에서 제일 아름다우세요! 아가씨 목에 걸린 진주도 부끄러워서 그만 빛을 잃을 지경이랍니다! 와! 우리 아가씨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울부짖듯 외치는 클라리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서, 에포닌은 여전히 제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팔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며 끙끙거리다 하녀의 입발림에 이내 그런가? 하고 조금 풀어진 얼굴을 했다. 남들 눈에는 그저 철 모르는 백작가 따님의 시덥잖은 떼 부림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녀 나름으로서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다. 에포닌은 평소에 그리 제 겉모습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사는 편이 아니었음에도-그렇기에 클라리스가 더더욱 의아해했다- 제 가정교사가 이를 시간 즈음만 되면 새삼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영 성에 차지 않다 못해 흉해 보이기까지 하고야 말곤 했다. 조물주처럼 뼈를 주물러서 몸의 형태를 바꿀 수만 있다면 아마 그녀는 스스럼없이 그를 자행했을 것이다. 문제는 에포닌은 조물주도 아닐 뿐더러, 뼈를 주물러봤자 부러지기밖에 더 하겠냐는 점이었지. 아,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꼭 하느님이 되어 태어날 텐데. 그보다는 그냥 공주님처럼 아름다운 외모로 태어나는 게 더 빠르겠지만. 에포닌이 기운 없이 흐릿한 몸짓으로 서가에 꽂혀있던 두꺼운 양장으로 된 책을 꺼내와 책상 위에 펼쳤다. 그러더니 펼쳐진 책 위로 털썩 고개를 파묻고는, 서러움에 잠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 왜 나는 예쁜 외모로 태어나지 않아서 좋아하는 사람 하나 매료하지 못하는 거지?” “네? 아가씨가 연모하는 분이 계세요? 어떤 분이신데요?” - 예상치 못한 발언에 클라리스가 화들짝 놀라서 반문했다. “그런 건 네가 알아서 뭐하게…….” “그래도 알려주시면,” “몰라! 너처럼 예쁜 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 마음 이해 못 해.”
여전히 얼굴을 묻은 채로 괜한 하녀에게 볼멘소리를 내뱉던 에포닌이 갑작스럽게 입을 다문 건 문 밖에서 정갈한 노크 소리가 들린 직후부터였다. 똑똑똑, 고급 목재로 이루어진 양문과 두드릴 때의 동작 하나마저 엄격히 교육된 손짓이 상승 효과를 이루어 성가처럼 엄숙하고 청명한 소리가 났다. - 아가씨, 정치외교학 수업을 받으실 시간이십니다. 이윽고 문 사이를 두고 막힌 점잖은 집사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이에 클라리스가 즉각 반응해 엎어진 에포닌을 급히 일으켜 세우려했으나, 언제 스스로 일어난 것인지 이미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멀끔한 모습을 한 그녀가 의자를 뒤로 빼며 자리에 섰다.
“응, 로버트. 안으로 모셔줄래? 아니다. 내가 문 열어드릴게.”
문을 직접 여신다고요? 잠깐만요! 클라리스가 놀라 만류하려 들었으나 에포닌은 이미 문 근처까지 걸어간 후였다. 당황한 클라리스가 그녀의 꽁무니를 빠른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뒤따랐다. 문 앞에 멈춰선 에포닌은 별 격한 동작을 취하지도 않았는데도 달음박질을 하고 난 뒤처럼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숨을 천천히 들이키며 양문을 잡고 부드럽게 연 그녀가 떨리는 웃음으로 반갑게 둘을 맞았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에포닌은 코끝으로 낯선 향수의 냄새가 물씬 아른거림을 알아챘다.
“고마워, 로버트! 모시고 오느라 수고했어. 그리고…… 어서와요, 헬리온 씨! 늘 먼 곳까지 걸음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집사의 눈을 자연스레 마주치고 눈웃음을 터뜨린 에포닌은, 이내 옆에 서있던 헬리온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따뜻한 청색 눈동자와 마주치자 찰나 동안 그대로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그러더니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누가 봐도 뚝딱거리는 몸짓으로- 방 안으로 그들을 안내하며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음, 그러니까 이제 곧 수업해야 하는데 클라리스랑 로버트는 나가줄래? 당장 다 나가. ……아, 아니 이게 아니고, 흠, 자리를 비켜주지 않겠니? 내가 종을 울리기 전까지는 방 근처에 얼씬도 안 해줬으면 좋겠어. 왔다가는 그냥 전부 다 혼나… 는 게 아니라 정말 정중하게 부탁하는 거야. 부탁해? 부탁합니다.”
에포닌은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꿈에도 모른 채 알딸딸하게 말했다. 클라리스가 황당한 나머지 얼굴에 물음표를 한가득 띄우고 로버트에게 고갯짓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로버트 또한 두 눈을 내리깔며 작게 도리질을 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에포닌은 헬리온이 시선을 잠깐 다른 곳에 뒀을 때를 놓치지 않고 눈을 한껏 부라리며 거친 손짓으로 나가라는 시그널을 사납게 보냈다. 그런 다음, 미묘한 걸음걸이로 해리를 서재로 안내하며 방 안쪽으로 삐그덕 삐그덕 걸어갔다. 문득 그녀가 다시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보며 곧 문을 닫으려 하는 집사와 하녀를 향해 급히 외쳤다.
“아참, 그렇지. 헬리온 씨, 오늘은 어떤 차로 하시겠어요? 아니다. 클라리스? 로버트! 지금 저택에 있는 찻잎 중에 최대한 아주 아주 제일 좋은 걸로 가져다 줄래? 부탁해! 그리고 들어오기 전엔 큰 소리로 또박또박 노크도 해줘. 놀랄 수도 있으니깐. 알았지?”
무사히 의자에 착석한 그녀가 후! 하고 큰 소리로 숨을 내뱉더니 두 눈을 꿈뻑거리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 책상 밑에 자리한 손가락을 괜히 꼼질거렸다. 긴장으로 경직된 에포닌이 찬찬히 말을 떼며 열없는 표정을 지었다.
“헬리온 씨! 음, 그러니까 그게, 반가워요. 떨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못 본 것만 같을까요? 그동안 정말 뵙고 싶었는데……. 잘 지내셨나요?”
아까 문을 열었을 때 은은하게 퍼졌던 향이 바로 근처에서 맴도는 것을 느끼자 에포닌은 저도 모르게 낯뜨거운 얼굴을 했다.
/드디어 둘이 대면했구나! ^____^ 엄청 많이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앞으로는 분량이 아마 무지 짧아질 것 같다는 점 남길게... 👉🏻👈🏻 에포닌 ㅋㅋㅋㅋㅋㅋㅋ 은 귀엽다기보다는 너무 응석받이에 떼쟁이인 거지... ㅠㅠㅋㅋ 처음 구상했을 때는 약간 히스테릭한 부분은 있어도 이 정도로 떽떽거리는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굴리다 보니 어느새...! ◐◐ 애꿎은 하녀 친구가 제일 고생이구나 ㅜ▽ㅜ 해리도 의연하고 어른스러운 차분함이 있어서 벌써부터 매력적이야! 이후의 상황이 벌써 기대된다 히히
집사장 로버트가 건넨 노크에 화답하듯이 에포닌의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로버트는 직접 문을 열려다가 이내 벌어질 일을 예감하듯 문고리에서 그의 손을 떼었다. 그러자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방 문이 열렸다.
“고마워, 로버트! 모시고 오느라 수고했어. 그리고…… 어서와요, 헬리온 씨! 늘 먼 곳까지 걸음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헬리온을 맞은 에포닌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매우 신경 쓴 모습이었다.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어떻게든 자연스러운 척 하며 자신을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에 굳어있던 헬리온의 표정이 마치 꽃이 만개하듯 풀어져 기분 좋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져갔다. 헬리온은 언제나 아르데셰 가에 올 때 마다 신중한, 어떻게 보면 긴장했다고 생각 될 수도 있을 정도로 무표정한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자신과 같은 평민 출신인 대학 선배나 아는 어른들이 조언해준 ‘평민이 귀족을 대할 때’의 매너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는 것이었지만, 올 때 마다 항상 웅장한 아르데셰 가의 저택에 주눅이 들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기도 했다. 아르데셰 가는 영지조차 없는 전형적인 작위귀족인데도 기거하는 자택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을 상기할 때 마다 헬리온은 그들과 자신은 아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헬리온은 차라리 아르데셰 가에 에포닌을 만나러 오는 이 날은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온다고 생각 하는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잘 지냈어요? ”
그래도 헬리온이 위화감없이, 그리고 그 무거운 부담감과 중압감을 최대한 해소하여 기분 좋게 아르데셰 가에 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의 눈 앞에 있는 백작가의 아가씨, 에포닌 덕분이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에포닌은 헬리온을 주인을 기다리는 아기 강아지처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물론 아기 강아지가 커 감에 따라 매번 리액션은 달라졌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반가워 하고 호의를 표하는 에포닌을 헬리온은 싫어할 수가 없었다. 늘 앉았던 책상에 자신의 손가방을 올려놓고는 별 생각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뭔가 바뀐게 있나 살펴보았다. 고개를 돌리는 헬리온의 시선을 따라 차례차례 횡설수설집사장과 하녀를 내쫓으려는 에포닌, 화려한 금실로 수놓인 장식장, 그녀의 방 거실에 놓인 고급 소파, 자신이 오기 전까지 만지고 있었나 싶은 안감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가 올라와 있는 탁자 등등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심한 듯 세심하게 돌아보며 손가방 안에서 노트와 펜, 교재등을 꺼내던 헬리온에게 에포닌이 무슨 차를 마실건지 물어보았다. 차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려고 했던 헬리온이었지만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의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하며 내보내는 에포닌의 모습에 헬리온은 목덜미를 짧게 긁적였다. 목 주변에 남아있는 향수의 잔향이 그의 손 끝에 살짝 배어들어갔다. 집사장 로버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쩔 줄 몰라하는 하녀 클라리스를 데리고는 이내 방을 나갔다. 헬리온은 그들을 향해 짧게 목례했으나 사실상 닫히는 문에 대고 고개를 주억거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헬리온의 인사를 봤을 지는 미지수였다. 그 한바탕의 작은 소동이 끝나고 이내 자리에 털썩, 하고 앉은 에포닌은 날숨을 한 번 크게 내뱉고는 강아지같은 커다란 눈으로 헬리온을 쳐다봤다.
“그러게요. 너무 오래 못봤네? 무려 이틀전에 봤었죠? 그 동안 세계가 바뀌었나요?”
얼마만이냐 하는 인사를 건네오는 에포닌에게 헬리온은 웃으며 대답했다. 세계가 바뀌었느냐 물어보는 것은 헬리온이 에포닌과의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밀고 있는 옛 군주의 별 거 아닌 격언이었다. ‘이틀이면 세계를 바꾸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물론 헬리온의 학교에서는 과제 제출 이틀 전에 이 격언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었다. 헬리온이 이 격언을 미는 이유는 별 다른 게 아니라 그저 에포닌과의 가정교습이 주로 이틀 텀을 두고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꺼낸 교재를 펼치며 헬리온이 말했다.
“오는 길에 보니까 날씨가 너무 좋더라고요. 나들이 가는 가족들도 보이고, 악사들이 악기연주도 하고 하길래 구경하다가 늦을 뻔 했어요. 에포닌은 오늘 밖에 나가봤어요?
헬리온은 에포닌과의 수업에서 그녀의 호칭을 편하게 하는 편이었다. 매번 아르데셰 백작 영애라고 부르기에도 힘들었고 그 편이 부르기도 쉽고, 친밀해지기 좋으니까.
“오늘 한 목걸이와 함께 광장에 나들이라도 나가면 수도 사람들 모두가 에포닌을 쳐다볼텐데. 군중들에겐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오늘 제국의 팜므파탈께서는 수업이 있어요~”
오늘은 무엇이 바뀌었나, 달라졌는가를 세세히 살피던 헬리온은 곧 에포닌의 목에 걸려 있는 예쁜 진주 목걸이가 이내 자신이 본 적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캐치하여 칭찬을 해준다. 마치 알아봐 달라는 듯 에포닌의 목 언저리에 고고히 ,하지만 은은하게 존재하는 목걸이는 그야말로 그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잘 어울렸다. 그녀의 화려한 모습에 대비되어, 빌린 정장과 저가의 향수로 어떻게든 자신을 가리고 나온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하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에포닌, 지난 시간에 뭘 배웠는지 말 해 볼 수 있어요?”
펼쳐진 책 위로 그여진 밑줄과 여기저기 필기한 흔적이 보여온다. 책상 위에 놓인 고급스러운 에포닌의 펜대 옆으로 자신의 만년필을 나란히 둔다. 에포닌의 왼쪽에 밀착해 앉은 헬리온은 그녀의 머릿결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에 잠깐 지긋이 눈을 감는다.
//// 하 진짜 미안해 에포닌주.. 어제 쓰다가 자버렸다 ㅠㅠㅠㅠㅠㅠ 에포닌주가 저렇게 정성스럽게 답레를 달아주니까 내가 어떻게든 거기에 수준을 맞추기 위해 계속 쓰고 지우고 하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오전 07시... ㅠㅠㅠㅠ에포닌 귀여워 죽겠다 진짜.. 참, 에포닌주! 혹시 에포닌은 무슨손잡이인지 알 수 있어?!
애포닌주 생존신고 할게! 글구 헉 답레는 무리해서 안 써줘도 됐는데...!! ㅠㅠ ^_t 초반부에 상황 설명하려고 억지로 전개를 욱여넣다 보니 좀 길어졌었는데 이제부터는 아마 해리랑 티키타카 하는 내용만 들어갈 것 같아서 오히려 내 레스가 무지막지하게 짧아지지 않을까 싶네... ㅇ)-( 아무튼 나야말로 예쁜 답레 남겨줘서 고마워! ㅠㅠ 그리고 에포닌은 오른손잡이야 📝📝 답레는 아마 오후 중으로 남길 수 있을 것 같아.
참, 워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스레라 관전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알았는데 봐주는 참치가 있었구나...! 어쩐지 민망하지만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 💓
‘이틀이면 세계를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누구에게도 구태여 피력한 적은 없었으나 에포닌은 이 짧은 어구를 퍽 마음에 들어했다. 제가 듣기에 제법 낭만적으로 들린다는 연유에서였다. 게다가 지금의 현대사와 과학사를 단숨에 일축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표현이지 않은가. 그녀는 더 먼 과거도, 미래도 아닌 하필 이 시기를 살아갈 수 있음에 꽤나 감사하고 있었다-이렇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좀 기만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자신은 언제나 유리한 위치에 서있었을 뿐더러 변화가 모두에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매 순간 급진적으로 격동하는 시대와 정세를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기회가 결코 흔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고리타분한 역사책 속에서나 간접적으로 느꼈을 테지. 혹은 평생 모르고 살았거나. 그렇게 생각하며 에포닌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깥에서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뭔가 하나쯤은 변하고 있을까요? 물론 제가 이틀 동안 겪은 변화라고는 기껏해야 태양의 고도밖에 없지만요. 그마저도 양상이 매일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말을 마친 에포닌은 두 눈을 초롱초롱 뜬 채로 책을 꺼내고 펼치는 헬리온의 손동작 하나마저 유심히 눈동자 속에 담아두는 데 열중했다. 이어지는 말소리에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한들 아무렴 무턱대고 기뻐할 것처럼, 내뱉는 한 마디에 달큰한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 황홀해했다. 그녀는 설령 헬리온이 이제 막 교수를 파묻고 오는 길이라는 섬짓한 말을 건넸어도 그저 두 손바닥을 마주치며 좋아했을 것처럼 보였다. 세 음절로 이루어진 별 볼 일 없는 짤막한 단어마저도 그의 혀 끝에서 굴려지면 부드러운 생명력을 얻는 듯 느껴졌다. 질리도록 듣고 불려왔던 제 이름이 이다지도 특별하게 피부로 와닿게 되다니! 에포닌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홀린 목소리로 말을 줄줄 읊어대고 있었다.
“저는 쭉 집 안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엄청 긴장되기도 하고, 또 자꾸 기다려지는 바람에 손에 아무것도 안 잡혀서…… 잠깐.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사실 과제를 완전 깜빡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너무 초조해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하루 종일 펜만 붙들고 있었지 뭐예요. 원래 과제라는 게 참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수업보다 더 중요하니까.”
이성을 되찾은 에포닌이 제 입술 속 살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며 급히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에포닌은 자신에게 치미는 짜증을 참지 못 하고 홧김에 손등을 꾹 꼬집었다가, 제가 꼬집어놓고도 아팠는지 화들짝 놀라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잽싸게 미소로 바꾸고는 애써 어색하게 웃는 척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핼리온이 제 목걸이에 대한 호평을 늘어놓자 언제 표정을 구겼을 새라 단순하게 두 뺨을 상기시키며 금세 얼굴을 활짝 폈다. 에포닌은 헬리온에게 목걸이의 출처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오늘 고르게 되었는지, 혹여 이상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그래도 칭찬을 듣게 돼서 지금 제 심정이 어찌나 기쁜지에 대해 금방이라도 실컷 털어놓을 뻔했으나, 다시 한 번 제 손등을 사납게 꼬집는 것으로 조용히 대신했다. 그러는 사이에 하마터면 핼리온의 질문을 흘려들어 놓칠 뻔한 그녀가 당황한 목소리로 짧게 되물었다가는, 곧 눈동자를 이마 쪽으로 데록 굴리며 찬찬히 답변했다.
“네? 음, 그게. 아! 인근 공화국의 구 체제에 대해 배웠었나요? 구 왕국의 특권적 지배 질서는 절대주의적 권력을 행사하는 왕정과 귀족이 결탁한 독점적 정치 체제였으며, 이는 한때 국가적 지위를 막강한 위치까지 올려다 놓기도 했으나 재정 위기와 민생고, 불평등 심화라는 현상을 고착화시켰고 끝내 레지스탕스를 조직하고 공화국이 세워지는 토대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권위까지 뿌리채 뽑히는 정치, 종교, 사상의 변혁을 불러와 자국은 물론 대륙에까지 선풍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물론 우리나라까지 포함해서도요.”
말을 이어가며 어느새 자신이 홍채에 별을 녹인 듯 눈을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포닌이 아! 하며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귀족주의를 전적으로 거스르는 공화국의 설립을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머쓱해진 에포닌이 별 거 아니라는 듯 괜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번에 배운 내용은 특히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흥미롭기도 했고. 뭣보다 지금 제 동생이 공화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엄밀히 따지면 전혀 상관없는 일은 아니잖아요?”
헬리온은 책상에 턱을 괴고는 에포닌을 바라보며 그녀가 재잘대는 필사적인 변명을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과제를 안 해서 초조했다는 건지, 뭔가를 기다렸기 때문에 초조했다는 건지 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만의 확실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리기에는 충분한 제스쳐였기 때문이었다.
“과제를 안 했는데 복습은 또 완벽하게 잘 했네요? 둘 다 해놨다면 저는 아마 기뻐서 죽어버렸을 테니까 에포닌이 절 살린 걸로 해요.”
그 와중에 헬리온의 질문엔 또 완벽하게 대답을 하는 예쁜 짓을 선보이니 그 어느 가정교사가 과연 그녀를 안 예뻐 할 수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질 정도로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그딴 짓을 했다가는 귀족 모욕죄로 심할 경우 손목이 잘려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심대한 중죄였기 때문에 헬리온은 그런 일은 주로 조용히 상상속에 묻어 두었다.
“잘 요약해줬어요. 그럼 저번 시간의 내용을 마저 이어서 수업할게요? 그래서 결국 왕조가 몰락한 데니온(인근 공화국)에는 지금 왕족과 귀족이 ‘공식적으로는’ 없는 상태에요. 그래서 근래의 대륙의 각종 사교 모임이나 정치적 모임에 데니온 왕국 출신으로 참석하는 인원들은 자신을 귀족이 아닌 인민이라고 소개를 한다고 해요.”
헬리온은 에포닌의 앞에 펼쳐진 교재에 열심히 밑줄을 쳐 가며, 어떨 때는 중요한 단어에 동그라미와 별표를 쳐 가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 갔다. 과연 학자와 교육자를 배출해온 명문가의 유전자 덕분인지 에포닌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넘어서 그 다음 수업시간엔 열 다섯을 물어올 때도 있었다.
“에포닌은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해요? 만약 나중에 사교계나 정치계에 진출하게 되면 분명히 이 쪽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 때 누구누구 공작이니, 백작이니 하고 말이라도 붙였다가는 큰 결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 왜 주의를 해야 하냐면, 지금 데니온의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얼탱이 없게도 구 귀족중에 스스로 작위를 버리고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걱정 할 필요도 없이 똑똑한 에포닌은 잘 하겠지만.”
헬리온은 설명을 하면서 훗날 사교계나 정치계의 거물이 되어 있는 거만한 에포닌을 어렵사리 한 번 상상해보지만 쉽지 않다. 특히 옆에서 자신을 똘망똘망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오니 더더욱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 이때 난립했던 수많은 사상과 정립되지 않은 사회이론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학계를 흔들고 있는 거에요. 민본주의와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집단주의등등 우리가 한 번씩 짚어봤던 이론들이 대부분 옛날 사장되었다가 이 때를 기점으로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저도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고….”
-똑똑 “수업중에 죄송합니다만,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한창 수업에 열을 올리던 도중, 기품있는 노크 소리와 함께 문 밖에서 로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헬리온은 잠시 숨을 고른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클라리스가 쟁반에 약간의 다과와 함께 최고급의 찻잎을 우려낸 찻주전자와 한 쌍의 찻잔을 들고 와서 쟁반 째로 책상 위에 올린다.
“수업도 좋지만 잠깐씩 여유를 가지며 휴식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물론 헬리온님께서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만.” “늘 감사합니다.” “저의 일인 것을.”
헬리온이 가볍게 목례하자 로버트가 당연하다는 듯 마주 목례하고는 클라리스를 데리고 에포닌의 방을 나선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찻주전자의 윗 부분으로 올라오는 따뜻한 찻김이 은은한 향과 함께 잠시 이지러졌다가 에포닌과 헬리온의 사이를 감싸며 주변으로 퍼졌다. 헬리온은 에포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은 잠시 노는시간. 잠깐 수다나 떨까요? 혹시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요?”
헬리온 자신도 학교의 수업시간중에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 무어냐 하면 강의 중간중간의 쉬는 시간을 꼽을 것이니, 에포닌은 오죽할까. 특히 원체 재잘대기 좋아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에포닌이 아직까지도 일부러 안 그런척 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니 헬리온은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잠시 고삐를 풀어주고 싶었다.
//// 에포닌주 안냥~ 에포닌이 설명한 나라를 찬찬히 생각해보니 근대 혁명이후의 프랑스와 러시아가 조금씩 섞여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대로 진행해봤어...! 마음에 들었을라나 ㅠㅠ 에포닌주도 굿이브닝이양 ㅎㅎ
해리주 어서와! ㅎㅁㅎ)99 왓 나 아까 답레 쓸 때 정확히 그 두 나라를 적당히 섞어서 참고했었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척하면 척이구나! bb 아무튼 지금은 평일이라 그런지 좀,,, 피곤해서... 새벽이나 아니면 내일 오후쯤? ㅠㅠ 정신이 맑을 때 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T 잡담 정도야 가능할 것 같지만 혹시나 답 기다릴까 봐 미리 말해놓을게 ㅇ)-(
자다 깬 해리주가 등장........... 에포닌주 안뇽!!!!!!! 답레는 너무 신경쓰지마ㅏㅏ 애초에 우리 여유롭게 즐기기루 해짜낭! 하루에 한레스, 아니!!! 이틀 삼일에 한 레스라도 좋으니까 우리 답레에 너무 부담갖는 빽빼기들이 되지 말자 오케????!! 그나저나 에포닌주, 텐션 높은 캐릭터 못굴린다고 양해구할 때는 언제고 어쩜 이리 귀요미를 데려와부린거야..... 나진짜 일할때도 계속 정주행하면서 에포닌한테 치여갖고 부둥부둥중이엇다그ㅡ.. 해리가 너무 특색 없어 보이진 않나 걱정되네...??? 고조 내래 해리 준비한 거이 많지만....시작부터 파멸적인 귀여움으로 내 심장에 8톤트럭 박아버린 에포닌을 보니 해리도 뭔가 해주고싶다!!!!
갱신할게! 텀은 이해해줘서 고마워 ^T 나도 충분히 여유롭게 굴리고 있으니까 해리주도 느긋하게 편할 때 이어줘! 헉 ㅠㅠ 에포닌 텐션이 썩 높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높은 텐션의 기준치(?)에 나름대로 부합했나 보구나 다행이야... ㅋㅋㅋㅋㅋㅋㅋ ㅠㅠ 이렇게 호들갑 떠는 캐릭터는 성별 불문 많이 안 굴려봐서 굴려봐서 혹 목석 같진 않을까 염려했는데 좋게 봐줘서 고마워 >< 엥 아니 우리 해리쌤이 얼마나 매력적인데 특색이 없다니‼️‼️ 😡 오히려 에포닌처럼 방방거리는 캐릭터 옆에는 해리 같이 초연하고 어른스러운 캐릭터가 있어야 밸런스가 맞지!! 에포닌도 해리의 그런 점을 좋아했을 거야. 텀이 길어져서 살짝 티미 놓고 가자면 에포닌은 해리한테 마음을 열기 전까지는 아마도 꽤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이었을 것 같아 ㅎㅁㅎ)9 이제 슬슬 답레 쓰러 갈 테니 미리 좋은 밤 보내!
에포닌주 메리크리스마스!!! 해리주는 어제 엄청난 술파티로 인한 지금 기상이야....... 참, 에포닌주ㅜㅜ 혹시라도 답레가 아주아주 늦더라도 괜찮으니까 한 번씩 생존신고만 해 줄 수 있으까??? 물론 어장에 들어오지도 못 할 정도로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면 오히려 내가 실례일 수도 있지만...!!
잘 지내고 계신가요? 갑작스러운 소포에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연히 시가지에 들렀다 향수 상점을 발견하게 되어서 별 대단치는 않은 선물을 보냅니다. 보자마자 헬리온 씨께서 지난 번에 향수를 쓰고 오셨던 게 단박에 떠올랐지 뭐예요. 헬리온 씨께서 향수를 쓰시는 줄 미리 알았다면 어떤 선물을 해드릴까 고민을 더 안 해도 됐었을 텐데요. 실은 항상 헬리온 씨께 감사해서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이렇게라도 전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 최대한 어울릴 만한 향으로 고르긴 했는데 기호에 맞지 않으시다면 꼭 사용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향이란 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취향 중 하나니까. 그냥 책이나 종이 같은 데 살짝 뿌리셔도 되고요,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버리거나 다른 분께 드리셔도 괜찮아요. 편지라는 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마주보고 있지 않아도 상대를 떠올리면서 쓰는 것만으로도 꼭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만큼은 전혀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편지글이라도 남길 수 있어 감사하기까지 하네요. 해가 완연히 짧아져서 그런지 날이 확연히 매서워졌어요. 겉옷을 단단히 여미셔야 해요. 그럼 헬리온 씨,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이만 총총, 에포닌으로부터.
//왁 너무 늦었지!! ㅠㅠㅠㅠㅠㅠㅠ 어제 오늘 스레 못 다녀가서 정말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크리스마스 끝나기 전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ㅜ▽ㅜ 원래 주중에 이렇게 바쁘지는 않은데 연말에 크리스마스까지 겹쳐서 못 왔었어 석고대죄 합니다,,, (__) 아무튼 이제 주말이니까 한 시름 덜 수 있을 거야 ㅠ ㅠ 해리주는 크리스마스 잘 보냈을까? 그냥 사담만 올리고 가기 뭐해서 에포닌이 해리한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편지도 남기고 가! 답레도 아마 내일 중으로는 써올 수 있을 거야 ㅇ)-( 기다리게 해서 다시 한 번 미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