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란 대한 모든 사람이 가지고있는 적성이지만 한편으론 재능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그 분야와 자신에게 맞는 아츠는 제각각이며 아츠를 제대로 다루기기 위해선 재능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인 노력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오리지늄과 아츠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며, 지팡이나 완드와 같은 오리지늄제 마법 도구를 사용해 아츠의 효율을 더더욱 끌어낼 수 있다. 마법 적성은 감염 여부와 크게 관계가 없지만, 광석병에 감염되면 촉매를 몸에 달고 사는 격이 되기 때문에 같은 마법사용자라도 감염자 쪽이 더 강력한 마법을 보인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칙칙한 회색의 철판이다. 그는 잠시 눈을 끔뻑거리며 무겁게 가라앉은 기억을 더듬어 방금까지 자신이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책상 앞에서, 방금까지 한쪽 손으로 머리를 괸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정신이 들었던 것도 잠시, 치렁치렁하게 내려온 머리카락 더미가 단단한 철제 책상에 다시 한 번 쿵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또다시 잠시 졸음. 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그 무거운 몸을 제대로 일으켜 걸음을 비척비척 걸어 자리를 떠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향하는 장소는 휴게소다. 이왕 깨버린 것, 어차피 오늘은 시간이 남으니 자리를 옮겨 편하게 누워 자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걷던 중에도 중간중간 벽에 머리를 기대 게으름을 부리며 느릿느릿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라 있었다. 바깥으로 들리는 소음이 없는 걸 봐선 오늘은 안에 사람이 없거나 있더라도 조용히 쉬기만 하는 모양이지. 하품을 하며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는데.
졸음에 절여진 금빛 눈이 천천히 앞을 향하고, 동공이 확장되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선명하게 눈에 담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은은하게 분홍빛을 띄는 매끄러운 하얀 머리칼. 그 다음은 뜨거운 김을 풀풀 쏟아내는 갈빛 액체.
아, 하고 깨닫는 것과 동시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반사적으로 문을 닫아 흘러넘치는 액체를 반 정도는 막긴 했지만, 나머지는 고스란히 몸에 튀었다.
"그래, 뜨겁구만……."
미미한 통증에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반사성이다. 그는 천천히 방패막이 삼았던 문을 열어젖히고, 젖어서 몸에 달라붙은 옷을 떼어내었다. 분명히 놀랐으며 어느 정도는 화끈거리는 감각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말하는 투는 느긋하다 못해 느적거리는 느낌이다. 별달리 화가 나지는 않은 듯한데, 그러면서도 길게 한숨부터 내쉬는 폼을 봐서는 기분이 좋은 상태일 가능성은 당연하게도 만무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그는 머리를 쓸며 퉁명스럽지만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은 왜 항상 실수만 저지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커피를 잔뜩 엎지른 리타는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안그래도 약한 두통이 지끈이던 상태였는데, 거하게 실수를 하고 나니 머리가 더 욱씬인다. 당황스레 남자의 웃옷을 보던 리타가,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휴게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균형감각이 반쯤 비뚤어진 것일지 그와중에도 헛발질을 해 벽에 머리를 박을 뻔했지만, 역시나 이는 대수가 아니었다.
리타는 빠르게 간이냉장고를 열어 작은 생수병 하나를 찾았다. 수돗물을 받아올 수도 있었지만 머그컵 하나를 겨우 채우는 양으로는 데인 부위를 식힐 수 없었다. 리타의 눈이 불안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어째, 제대로 하는 일 하나 없는건지. 리타는 다시 다시 비척이는 걸음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리곤 남자를 향해 생수병을 들이밀곤, 다시 안절부절한 얼굴로,
" 그, 얼음팩이라도 구해올까요? 정말 죄송해요… 정말… "
기가 잔뜩 죽은 얼굴로,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화끈어야할 것은 그녀가 아닌데도 귓바퀴가 분수도 모른채 달구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늘 그랬다. 자그마한 실수에 항상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마음이 쫓겼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지. 메딕을 부르던가? 병원을 가던가? 갑작스러운 사고에, 꼭 잘만 굴러가던 머리가 먹통이 된 것만 같다.
" 혹시 화상이라도 입으시면 어떡해요… "
리타가 천천히 말꼬리를 흐리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당장 망가진 저 옷은 또 어찌한담. 리타가 잠시 제 미간을 짚었다. 온갖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사고가 꽉꽉 채워들어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