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정면 교전만으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스페셜리스트는 그것을 위해 탄생한 용병들이다. 이들은 작전에 있어서 원래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들거나 은신 및 기습, 혹은 갖가지 묘한 트릭에 정통함을 보인다. 다른 포지션이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들은 기꺼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스페셜리스트의 그런 싸움을 육안으로 지켜본 혹자들은 신묘하다고도 비겁하다고도 말하지만, 다들 틀렸다. 이건 전투의 기본인 전술이다.」
리타가 가볍게 대꾸하며 후드 모자를 벗었다. 편의점만 나왔다가 들어갈 생각으로 정돈을 잘 하지 않았던 터라, 그녀의 머리칼은 다소 부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머리칼을 가볍게 빗어내린 뒤 리타가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한밤중의 맥주라, 나쁠 게 없지.
" 요리는… 엄청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
리타가 과자 하나를 우물이며 말끝을 흐렸다.
" 좋아. 그럼 공부 좀 해서 와야지. 같이 요리해서 먹으면 재밌겠다. "
제법 신난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보바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요리를 잘 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보면서. " 뭘 만들어보면 좋을까? " 리타가 다시 과자 하나를 입에 넣으며 중얼이듯 말했다. 벌써부터 계획을 떠올리다니, 사블랴의 제안이 퍽 마음에 든 눈치다.
이어진 사블랴의 대답에, 리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용병단에게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는 것일지, 요즘은 유난히 의뢰가 적었다. 의뢰가 적다는 것은 세상이 평화롭다는 뜻일까? 너무 비약인 것 같기도 하고…
" 나는… "
리타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후드티 소매에 반쯤 덮인 채로, 맥주캔을 쥐고 있던 리타의 손이 작게 꼼질였다. 별 일, 별 일이라…
" 요즘은…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났어. 보바의 조언이 많은 도움을 줬나봐. 친구도 많아졌거든. "
리타가 맥주를 마셨다. 별 일이라면 별 일이라 칠 수 있을 것이다. 근 일 년간 그리도 사람을 어려워하던 그녀가, 제법 여럿의 친구를 사귀었다는 소식은. 리타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평소보다 탄산이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이겠지. 그 뒤로 쓸려온 쌉쌀한 뒷맛은 그대로였다.
" 고마워. "
그 말을 건네는 것이 조금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리타는 그리 말하고 잠시 뒤 작게 웃는 것을 택했다.
소장님을 보는 건 들어오고 나서 많은 사례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아르고 에이전시는 쪼들리는 모양이니까요..는 아닌가? 맞나? 모르겠다면 모르는 채로 넘기는 게 좋아요. 당직을 혼자 설 정도의 짬이냐라는 것은 논외고, 훈령장이라던가. 로비등등을 좀 돌아보고 숙소로 올라가려다가 소장님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아. 소장님이다. 안녕이에요." 로브의 소메자락을 펄럭펄럭거리며 들어오는 소장님에게 인사하려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로브 후드 정도는 간혹 벗고 다닌다니 다행인 걸까..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요. 헬멧의 앞부분에 LED로 글자 띄워서도 의사소통 가능해요?" 정말 쓸데없는 물음입니다.
수수한 사복 차림의 작은 피티아는 오늘 치 훈련을 열심히 수행한 댓가로 주어진 자유시간을 시내에서 보내고 있었다. 번화가는 이전에 소장님이나 다른 선배들과 동행해서 와보았던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여서, 저희 같은 대원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온갖 점포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 줄지어 늘어선 신기한 볼거리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전부 도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한 블록, 한 블록 지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도나의 시선을 잡아끈다. 몇 발짝 걷다가 멈춰 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저 앞에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 근처에서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선배~ ... 리아 선배~"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오니를 반갑게 부르며 잰걸음으로 달려간 도나는, 그녀의 팔을 와락 끌어안으려 한다.
오니는 그렇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이다, 갑작스레 자신의 팔을 감싸안아오는 감촉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하지만 이내 그 목소리가 자신을 잘 따르는 후배의 것이라는 걸, 자연스레 따라오는 도나 특유의 향기가 코에 느껴지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니는 자신의 팔을 안은 체 싱글벙글 웃는 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반대편 손을 뻗어 살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한다.
" 안녕.. 도나. "
차분한 목소리로 자그맣고 앵두빛을 띈 입을 연 오니는 임무에서의 복장 그대로인 자신과 다르게 수수하고 여성스러운 사복을 입은 도나를 바라본다. 자신과는 다르게 이대로 디저트 가게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도나를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하며, 아까까지 고민하던 것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다.
" ... 디저트 가게, 갈지 고민했어. 근데.. 역시 들어가긴 그래서.. "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눈을 내리깐 오니가 작게 중얼거리며 말하곤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다. 역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간단한 음식이나 사들고 방으로 가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