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정면 교전만으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스페셜리스트는 그것을 위해 탄생한 용병들이다. 이들은 작전에 있어서 원래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들거나 은신 및 기습, 혹은 갖가지 묘한 트릭에 정통함을 보인다. 다른 포지션이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들은 기꺼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스페셜리스트의 그런 싸움을 육안으로 지켜본 혹자들은 신묘하다고도 비겁하다고도 말하지만, 다들 틀렸다. 이건 전투의 기본인 전술이다.」
"음... 무슨 말인진 잘 모르겠지만, 의미정도는 알거 같아. 미운정 고운정... 뭐 그런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서 용케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였다. 물론 타인의 기분을 느끼듯 실질적으로 와닿지만 않을 뿐, 그것이 어떤 뜻이며 어떤 개념인지는 감정적으로는 대강 알고 있었다. 맞지 않았기에 생길 수 있는 유대도 있을 법한 논제였다. 사람은 본래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자신과 다르거나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을 따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응.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파스타 한접시를 마저 비워나가며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그래도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그녀는 시선을 마주하다가도 으레 그래왔다는 것처럼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그거 어떤 느낌인지 알거 같아~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겠지 뭐... 하도 그렇게 불리다보면 나라도 본명을 까먹을지도 몰라."
그래서 더 잊지 않으려고 자신처럼 이름 그대로를 코드네임으로 부여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었다. 여기선 그리 많지 않아보이는데다 그녀랑 똑같은 이유일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몸이 한계치를 잘 정해두고 있다면 다행이네~ 그럼, 한접시 정도는 괜찮단 거지?"
아직은 들어갈 여유가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몫을 하나 더 입속으로 흘려넣고선 다시 새로운 접시를 가져와 담아내었다. 방금 전과는 다른 고기가 들어간걸 보아 그래도 피날레 정도는 화려하게 장식 하라는 의미가 섞인 플레이팅일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물어볼수도 없으니. 나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으나 풀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기에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나한테 그런 상대가 나타날거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넘어가면 되는 문제. 잠시 눈을 가늘게 떴을뿐, 별다른 반응없이 나는 그런 상대도 재밌긴 하겠다고 미소지었습니다.
"그렇게 될거야."
그래도 여기서, 나쁜 사람은 아직 못봤으니까. 아니 어쩌면 신경을 쓰지 않았을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뭐 적어도 눈앞의 그녀가 나빠보이진 않으니까 그런걸로 치자~ 가볍게 가볍게~
"그렇지~ 나도 이제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물론 난 애초에 이름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5년이나 됐으니 당연한걸지도. 아무튼 새로운 고기가 담긴 접시를 받아들고는 뭐야 뭐야 서비스야? 라며 웃으며 포크를 움직였다.
겉옷을 건넨 후 얼마 안 가서 도착했기에, 사블랴는 머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금방 도착하니 너무 과하게 신경 썼던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게 좋은 거니까. 더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는
" 정말 그렇게 생각한 거 맞지? "
내가 핀잔주니까 방금 생각해낸 칭찬이라는 기분이 드는데~? 라며 의심스럽다는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살풋 웃는다. 그나저나 너무 어질러놓은게 아닐까? 주변을 빙 둘러보던 사블랴는 자꾸 눈에 들어오는 어질러진 공간을 불편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널 초대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깨끗하게 치우는 건데." 라며 약간 후회섞인 말을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렇게 그녀가 놀러온 것도 오늘 급하게 만든 약속? 같은 거였으니 후회해도 소용 없기는 했지만.
" 한번쯤은 빈 손으로 와. 같이 만들어 먹게. "
느긋하게 맥주를 목 뒤로 넘기며 말했다. "너 요리 잘 할 것 같은데, 한번쯤은 그래보고 싶어서." 라며 싱긋 웃어보였을까. 그것 외에도 함께 만들어보고 싶은 디저트가 있긴 했지만 그건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 같은 이유니까. 손을 뻗어 과자를 하나 집어들고는 입에 물며 리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느낌이었을까?
" 별 일 없지. 아직 별 일 있을만한 시기도 아니고. "
"요새는 의뢰도 잘 없으니까." 라며 어깨를 으쓱인다. 사실 별 일이 있으면 더 큰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사블랴는 이번엔 친구로서의 별일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하다가, 역시나 특별할 일은 없었기에 고개를 설레 내저었다.
" 그러는 너는 별 일 없었어? 상담이 필요한 이야기라던가. "
안부 인사를 받았으니 되갚자는 의미로 리타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상담은... 최근에도 악몽 때문에 새벽에 리타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으니까, 그거에 보답하고 싶은 심정이었겠지.
오니는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그다지 많이 다치지 않은 임무에서 복귀하곤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멍하니 거리를 걷는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할 것을 찾지 못하면 분명 이대로 거리를 걷다가 저녁에 배를 채울 간단한 음식을 사서 돌아가는 것이 일정의 끝일 것이다.
오니의 새하얀 롱코트는 군데 군데 찢어지거나 낡아있는게 보였지만, 그다지 주인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주인이 워낙 험하게 구르니 그러지 않기도 힘든 탓이었다. 물론 주인이 패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한몫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정처없이 걷던 오니는 갑자기 걸음을 멈춰선다.
오니의 붉은 눈동자에 핑크빛 간판과 내부의 인테리어가 들어온다. 근래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디저트 가게로 보였다. 그 안에서는 각자 자신을 예쁘게 꾸민 여성들이 자리에 끼리끼리 앉아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을 지나쳐 그 너머에 있는 디저트를 발견한 오니는 자켓의 카라부분을 손으로 끌어모아 입가를 가리며 침을 꿀꺽 삼킨다.
" 맛있겠다... "
먹고 싶은 생각이 한껏 솟아오른 오니였지만 엉거주춤하게 멈춰선 체 들어가지 못했다. 저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자신의 옷차림이 너무 다르고, 분위기마저 달라서 선뜻 안으로 들어가질 못 하겠다는 생각인 듯 했다. 그래서인지, 가게의 입구에서 왔다갔다 하며 안을 들여다보다가도, 막상 문앞에 서면 한숨을 내쉬곤 다시 왔다갔다 하길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엔 돌아가야겠다는 듯 눈을 내리까는 오니였다.
리타가 가볍게 대꾸하며 후드 모자를 벗었다. 편의점만 나왔다가 들어갈 생각으로 정돈을 잘 하지 않았던 터라, 그녀의 머리칼은 다소 부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머리칼을 가볍게 빗어내린 뒤 리타가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한밤중의 맥주라, 나쁠 게 없지.
" 요리는… 엄청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
리타가 과자 하나를 우물이며 말끝을 흐렸다.
" 좋아. 그럼 공부 좀 해서 와야지. 같이 요리해서 먹으면 재밌겠다. "
제법 신난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보바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요리를 잘 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보면서. " 뭘 만들어보면 좋을까? " 리타가 다시 과자 하나를 입에 넣으며 중얼이듯 말했다. 벌써부터 계획을 떠올리다니, 사블랴의 제안이 퍽 마음에 든 눈치다.
이어진 사블랴의 대답에, 리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용병단에게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는 것일지, 요즘은 유난히 의뢰가 적었다. 의뢰가 적다는 것은 세상이 평화롭다는 뜻일까? 너무 비약인 것 같기도 하고…
" 나는… "
리타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후드티 소매에 반쯤 덮인 채로, 맥주캔을 쥐고 있던 리타의 손이 작게 꼼질였다. 별 일, 별 일이라…
" 요즘은…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났어. 보바의 조언이 많은 도움을 줬나봐. 친구도 많아졌거든. "
리타가 맥주를 마셨다. 별 일이라면 별 일이라 칠 수 있을 것이다. 근 일 년간 그리도 사람을 어려워하던 그녀가, 제법 여럿의 친구를 사귀었다는 소식은. 리타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평소보다 탄산이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이겠지. 그 뒤로 쓸려온 쌉쌀한 뒷맛은 그대로였다.
" 고마워. "
그 말을 건네는 것이 조금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리타는 그리 말하고 잠시 뒤 작게 웃는 것을 택했다.
소장님을 보는 건 들어오고 나서 많은 사례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아르고 에이전시는 쪼들리는 모양이니까요..는 아닌가? 맞나? 모르겠다면 모르는 채로 넘기는 게 좋아요. 당직을 혼자 설 정도의 짬이냐라는 것은 논외고, 훈령장이라던가. 로비등등을 좀 돌아보고 숙소로 올라가려다가 소장님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아. 소장님이다. 안녕이에요." 로브의 소메자락을 펄럭펄럭거리며 들어오는 소장님에게 인사하려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로브 후드 정도는 간혹 벗고 다닌다니 다행인 걸까..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요. 헬멧의 앞부분에 LED로 글자 띄워서도 의사소통 가능해요?" 정말 쓸데없는 물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