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적을 제압하라. 가드는 전장에서의 실질적인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 포지션이다. 근거리 공격이라는 원시적이고도 고전적인 방법은 오리지늄 아츠와 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시대에서도 아주 잘 들어먹히는 방법이며 그래서인지 통계적으로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포지션이기도하다. 이들은 주로 물리적 공방에 강하며 고작 칼 한 자루로 해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보여주고는 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장은 검이다.」
이럴 수 있을 때 이래두고 싶어서요. 하고 나직이 중얼거리며 에덴은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지금이라면 술 핑계를 댈 수 있지 않은가. 물러서고 싶다면 지금 놓아달라고 확실하게 말을 해야 한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에덴은 리아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옅은 미소만으로는, 물러서고 싶다는 의사표현이 될 수 없다. 양 팔을 뻗어 뒷목을 얼싸안고 놔주지 않을 수 있을 만한 거리에서, 에덴은 리아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사랑이라... 글쎄요, 그냥 리아를 보면, 전부 다 놓아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놓아버리고 그냥 죽을 때까지 앞만 보고 달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에덴은 리아를 놓아주지 않은 채로 눈을 꾹 감았다. 리아가 한 발 내딛자, 에덴은 한 발 뒤로 뺐다. 그렇지만 한 발 뒤로 빼면서, 무게감을 담은 직구를 날렸다. 리아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 담긴 한 마디. 스스로를 위험에 즐겨 내던지를 리아를 보며 에덴이 갖고 있던 생각은 그랬다. 술은 에덴의 생각을 흐리지 않았다. 오히려 에덴의 생각에 채워져 있던 족쇄를 풀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부탁이지만... 그러지 말아요. 응?"
감겨 있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에덴의 새빨간 눈동자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예기불안의 예기불안의 예기불안에 의해서 이 카우투스는 불행히도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불쌍한 라이레이, 일만 하다가 죽어버렸다네. 옷 품 안쪽에 있는 물병에는 위스키가 있는데 지금 차에 타서 마시고 방에 가서 자버릴까 고민이 들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프로정신, 누구 편인거야.
"무거워 꽉초야 무거워."
시간이 갈 수록 근육덩어리가 되어 가는 것 같은 곽초의 팔은, 손이 가볍게 머리에 얹어지는 것 만으로도 목에 강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술과 담배에 쩔어 살며 제대로된 숙면 없이 운동도 안 하는 라이레이의 몸이라면 조이스틱마냥 원하는 대로 꺾일 것이 분명하다.
확실히 에덴은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적었을 것이라는 걸 오니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말을 들은 후엔 이 팔을 풀어달라고 할 생각이었던 오니도 차마 입술을 뗄 수 없었다. 저 말을 듣고 몇이나 팔을 풀어낼 수 있을까. 아직 어렸다. 아직은 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 맞는것일까 싶을 정도인, 스무살을 앞두고 있는 아이의 말을 듣고 모지게 내칠 만큼 오니는 모질지 못 했다.
그래서 차마 오니는 에덴의 팔을 풀어내지 못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결국 에덴의 어리광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신호나 다름없었다.
" 에덴.. "
에덴이 눈을 꼭 감은 체 말하는 것을 들은 오니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분명, 자신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본능과 열기에 몸을 맡기고 싸워왔다. 그것은 어렸을 적 처음 창을 배웠을 때도, 아버지의 손에서 생명을 해하는 것을 배웠을때도 그다지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 어릴적부터 집에서 나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으니까. 괜히 삶에 매달리면 주저함이 생겨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 네 부탁.. 나는 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도 알다시피 언제나 너와 약속해왔지만 .. 늘 스위치가 켜지면 네 약속을 잊어버리게 돼. 그건 내가 오니여서도 그렇고, 여태껏 그런 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살아와서 그래. "
오랜만에 길게 말한 탓에 목이 익숙하지 않은지 말을 마치자 목이 아파왔지만, 나오려는 기침을 꾹 참고 무언가 담겨있는 듯한 눈을 마주하는 에덴을 피하지 않는다. 그저 솔직하게 말을 할 생각인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는 오니의 입술을 살며시 떨려왔다.
" 여기서 네게.. 아무 생각 없이 약속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분명 또다시 널 실망시킬거야. 분명, 분명 나는 또 약속을 어길테니까.. "
분명 피를 본다면, 아니 전장에 뛰어들어 오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선다면 지금 에덴이 약속해달라는 그것을 또다시 어기게 될 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워나갈테니까.
" ...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아, 에덴. 그래서 그 약속은 할 수가 없어. 난... "
어느샌가 살짝 눈물이 고인 눈으로 에덴을 내려다보며 자그맣게 속삭이는 오니였다. 오니의 눈물은 쉽게 보기 힘들지만, 분명 오니의 눈에 맺힌 것은 눈물이었다.
에덴은 리아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에덴의 삶도 리아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에덴에게는 살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한다, 라는 사실을 가르쳐줄 이도 없어서 에덴이 스스로 그것을 깨우치고, 싸우는 법을 깨우치고,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지탱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배웠을 뿐이라는 점뿐, 살기 위해서-살아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서 삶을 도외시한다는 처절한 압박감에 쫓겨 살아온 것은 다르지 않았다.
"죽고 싶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려 싸우는 것이라면, 살고 싶어서 싸우는 거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아요."
고압적인 집에서는 버려지다시피 내쫓겼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삶이었다.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잘 돌아가는 복잡한 시계에서 툭 튕겨져나온 톱니바퀴처럼 이리 부딪히고 저리 끼이면서 잡음을 만드는 삶을 살다가 연이 닿아 흘러들어온 것이 이 곳, 아르고 에이전시.
자신과 비슷하면서, 다른 부분을 머금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언니를 만난 것은 아르고 에이전시에서였다. 자신과 비슷하게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을 내던지면서도 그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차분하게 가라앉는 그녀와 함께하면서, 에덴의 마음속에 맺힌 동질감은 이내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유대감으로 변해갔다. 롱고미니아드와 엑스칼리버.
에덴에게 있어, 리아는 언니였고, 어머니였고, 친구였고-
"그것마저 어렵다면,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고만이라도 약속해 줘요. 언니가 내 옆으로 오지 않겠다면, 내가 언니 옆으로 가면 되니까... 리아가 나와 같이 살 수 없다면, 내가 리아와 함께 죽을 수 있으니까."
에덴은 리아의 목을 얼싸안은 채로 눈을 감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문득 리아의 뺨 한쪽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무언가가 톡, 하고 닿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