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적을 제압하라. 가드는 전장에서의 실질적인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 포지션이다. 근거리 공격이라는 원시적이고도 고전적인 방법은 오리지늄 아츠와 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시대에서도 아주 잘 들어먹히는 방법이며 그래서인지 통계적으로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포지션이기도하다. 이들은 주로 물리적 공방에 강하며 고작 칼 한 자루로 해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보여주고는 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장은 검이다.」
잠깐 쓰다듬다가 손을 뗐을 뿐이지만,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도 에덴은 눈을 감고 리아의 손길에 뺨을 기댔다. 리아와는 달리, 에덴은 그 정도 이상의 스킨쉽도 얼마든지 OK인 모양이다. 그러나 더 보채는 일은 없이, 리아가 손을 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히 고개를 되돌린다. 리아는 자신에서 에덴에게로 화제를 돌리려 했으나, 화제가 영 안 좋았다.
"응- 잘 모르겠네요. 학교 같은 데를 다녀볼 수 있었으면 알 수 있었겠지만, 뭐, 감염자 살카즈를 학생으로 받아줄 만한 학교는 없으니까?"
확실히 에덴의 얼굴은 삶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만한 수준이었지만, 그 얼굴 위에 달린 뿔과 왼팔에 돌출된 오리지늄들이 커도 너무 컸다. 인기 같은 것이 효과가 있는 평범한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그녀는 남들보다 몇 배는 많은 산을 넘어야 하는 처지였다.
"내 가치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아르고 에이전시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구... 언니도 그 좋은 사람들 중 하나에요."
하고, 에덴은 곱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로우 선배는 주당이라고 할까 알코올을 소모하는 능력이 인간 범주 외라고 들었어요... 뭐, 리아 언니한테 손을 대는 놈팡이가 있었어요? 가엾어라. 전치 4주는 나왔겠네."
기껏 곱게 눈웃음치던 눈이 리아의 염려대로 삼각꼴로 치떠지려다가, 에덴은 자기 멋대로 말 한 마디를 덧붙여서 스스로 그 분노를 삭이고 만다. 리아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에덴은 닭꼬치를 한 조각 크게 베어먹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더 얹고 말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거기에다 4주쯤 더 얹어줬겠지만."
하다가, 에덴은 리아가 튀김을 먹지도 않고 맛있다고 하자 푸후후 웃더니 자기 젓가락으로 튀김 하나를 집어서 리아의 입가로 건네주었다.
사실 그리 급하게 손을 뺄 필요가 없었지만, 에덴의 눈을 감은 모습이 왠지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묘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에덴이 손을 빼냈다고 하더라도 얌전히 고개를 되돌리는 것을 본 오니는 어쩌면 자신의 손이 닿는 것을 에덴은 그리 신경을 안 쓰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마는 오니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였으니까.
" 감염자라던지, 살카즈라던지.. 중요한 건 아니니까.. 학교를 가지 않아도.. 사무소 동료들은 에덴 좋아하니까. 그리고, 나도.. "
에덴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는 오니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사무소에 있으면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임무가 없는 날엔 얌전히 사무소에 있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는 에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분명, 에덴은 사무소의 동료로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길게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이야기였으니까.
" ... 에덴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하겠지. 다만 역시 나를 따라하는건... 좀... "
그 행복을 이어가려면 자신처럼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오니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따라해주는 건 기쁘긴 했지만 그로인해 다치거나 망가질 에덴을 생각하면 역시 자신의 소소한 기쁨을 포기하는 쪽이 좋았다. 멀쩡하고 건강한 에덴이야말로 오니의 행복 중 하나였으니까.
" 왠지 에덴이 화를 내주니까 좋네. 사실 난 별 생각은 없었는데.. 로우도 그렇게 해주더라. "
한마디를 더 얹는 에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니는 맥주를 홀짝이며 작게 중얼거린다. 물론 그 중얼거림엔 충분히 기쁨이 담겨있었지만.
" .. 아..? "
누군가 음식을 먹여주는 것은 익숙치 않았다. 지금도 에덴이 튀김 하나를 집어서 입가로 가져오는 것을 순간 긴장이 된 눈으로 바라보던 오니는 작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더니 자그맣게 입을 벌려 튀김을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기 시작한다. 튀김의 맛이 입안에 감돌자 한순간 눈이 반짝인 오니가 무덤덤한 얼굴로 엄지를 들어보인다.
" ...에덴, 맛있어. 이거, 맛있어. 에덴도 먹자. "
조금은 들떴을지도 모를 - 아니, 사실 그리 티가 나진 않았지만 - 목소리로 말한 오니는 손으로 살며시 튀김을 집어 에덴을 따라하듯 입가로 가져간다.
리타가 부끄러운 듯 제 목덜미를 문질렀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이 단순한 ‘오지랖’으로 일축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때문에 급하게 말이 앞섰고, 때문에…
“ 그게, 오지랖이라고 하시니까…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라샤씨가 해주신 말… ”
리타가 살며시 라샤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맞닿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커피잔을 정리하는 모습을 눈으로 뒤쫓으며, 리타가 그를 따라 느릿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에 가득 담긴 커피가 찰랑였다. 회사 비품 하나를 버린 듯한 느낌에 마음이 영 아쉽다.
“ 그, 그건 진짜로 잊어주세요… ”
다시 리타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아, 세상에. 앞으로 휴게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리타가 라샤를 따라 식은 커피를 쏟아붓고 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와 조금 거리를 둔 채, 정리를 끝낸 그녀가 조심스런 눈길로 다시금 그를 바라본다.
“ 쉬러 오신거셨을텐데, 방해만 된 거 같네요… 아무튼, 정말 감사했어요… ”
가장 중요한 목적어가 빠졌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그 의도는 어련히 잘 전해졌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