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왕 소꿉친구인 김에 주택에 창문 너머로 서로의 방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호랑주는 천재구나! 호랑주는 천재구나!! 호랑주는 천재구나!!!
작년쯤에는 방에 커튼이 쳐져 있는 날이 자주 있어서, 호랑이가 내심 섭섭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혼동을 피하기 위해 말해두자면 성빈이가 양아치 노릇을 그만둔 건 작년 11월(현실의 이맘때)쯤이야. 아마 11월 중순즈음부터 성빈이 방의 커튼이 호랑이가 기억하는 평소처럼 때 되면 열리기 시작했을 거고.
하긴 성빈이쯤 되는 신뢰도면(이것은 적폐해석입니다) 호랑이 아직 자고 있나요? 베란다로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 하면서(심지어 베란다로 안 불렀음) 호랑이 깨우러 오는 것도 가능하겠다. 그 반대도 가능하고... 호랑아 일어나, 하고 깨우기보단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모닝콜삼아 핸드폰으로 틀어줄 성빈이... 그러다 호랑이 일어나면 환하게 웃으면서 잘 잤어? 하고 인사해주고.
아니 애초에 얘네들 서로 베란다로 건너다닐 수 있게 어디서 건널판자 같은 거 구해다놨을지도 몰라
앗, 맞아. 그 부분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네. 성빈이네 아버지는 집안이 운영하는 대기업인 신일그룹 경영기획부의 높으신 분(아마 직함으로만 따지면 전무이사쯤)이고, 보통은 수도 중심가(아마 서초 쪽)의 사옥에서 출퇴근하다가 주말에 집에 오시니까... (((그래서 보통 성빈이는 주말에 어딘가로 놀러나가거나, 호랑이네 집에 놀러옴))) 아마 자연스레 수도권 위성도시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벚꽃이 쭉 펴고, 새 학기의 설레임과 두려움이 한결 사라지는 시기. 좋아하는, 쭉 좋아해오던 사람과 같이 등교를 할 수 있는 나날이 이어지자 가슴도 간질간질하니 괜시리 가방의 어깨끈을 손으로 꾹 쥐면서 긴장하게 된다. 언제나 함께 하던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게 말이 되는 일일까 하면서도 자기 전에 같이 있던 일이 떠오르고, 또 내일 얼굴을 볼 생각에 침대를 뒤척인다면 틀림 없이 사랑이겠지. 사랑의 열병은 불길 보다는 잔불처럼 언제나 호랑의 가슴 한 켠에 불을 지르기를 선호했다. 너무 뜨거워서 들통나 버리거나, 너무 차가워서 그것을 알지도 못 할 만큼 작지도 않을 정도로. 보기 드물게 일찍 일어나고, "조.. 좋은아침!" 하고 인사를 하고, 교복을 입고 집 앞에서 보자는 약속을 한 체로 발꿈치를 달싹이며 성빈이를 기다렸다. 아주 드물게, 호랑이가 성빈이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변 잡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상대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몇 분 안 되지만 너무 긴 시간.
달칵, 하고 성빈의 집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나오자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또 늦잠 자는 거나 아닐지 모르겠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렇기에, 달캉, 하고 대문이 열렸을 때 당신의 눈과 마주친 짙은 초록색 눈동자가 담긴 눈이 조금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제법 선명하게 비쳐들기 시작한 초봄의 햇살을 얼굴로 맞으면서, 아직 졸음을 못다 떨친 건지 주먹으로 눈가를 부비려다 어정쩡하게 멈춰선 손이 멋적다. 그러나 이내, 성빈은 그 멈춰선 손을 펼쳐서는 당신에게 흔들어보였다. 성빈은 "일어났네, 호랑아." 하고는, 참 이름과는 다르게 토끼같은 당신의 정수리로 자연스레 손을 옮긴다.
성빈은 대문을 열고 나올 때만 해도, 또다시 늦잠에 빠진 당신을 깨우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등교길인 왼쪽이 아니라 당신의 집이 있는 오른쪽으로 꺾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상이 빗나갔다고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이런 사소한 변화가 기분좋았다. 오늘도, 안정적인 하루. 평소만큼이나 안정감 있으면서, 평소와는 다른 하루.
비몽사몽한 체 베개를 끌어안은 잠옷 차림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장호랑이 일찍 일어나서 아침 인사를 했고, 성빈이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는 부분이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 이 시간에 방에서 음악소리와 함께, 누워서 자신에게 손을 뻗고 있는 성빈이를 봤을 테니까.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흐아음~ 재밌는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는게 억울했어."
언제나 아무런 의도 없이 머리에 손을 올리는 성빈이 얄미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손길을 받는것이 기뻐서 베시시 웃으며 말 했다. 일찍 일어났어도 잠기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점은 어디 가질 않아서 하품도 절로 나온다.
하고, 성빈은 빙긋이 웃는다. 그는 웃기를 참 잘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나,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것을 받아줄 때나 그는 늘상 웃는 얼굴이었다. 당신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적어도 성빈은 당신 이외의 다른 사람의 머리에는(벌레나 나뭇잎 같은 걸 떼어주는 게 아닌 바에야) 함부로 손을 올리지 않는다는 정도일까?
"꿈이 다 그렇지, 뭐."
성빈은 당신의 머릿결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한 번 더 쓸어준 다음에 손을 뗐다. -흐려져 가는 재밌는 꿈에 대한 기억들 사이에서 당신에게 문득 장난의 신이 속삭이는 것 같다. 오늘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성빈과 함께 등교할 준비를 마쳤으니, 언젠가 지금보다도 좀더 일찍 일어나서 성빈이 일어나는 모습을 당신이 한 번 지켜보라고. 그리고 다음번엔 당신이 한 번 그를 쓰다듬어 보라고.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진 않겠지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당신이 하품을 하자, 성빈도 따라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하품이 옮아간 모양이다. 칼같이 일어나도 졸릴 때는 졸린 법이기도 하고. 당신이 질문을 하자, 그는 하품을 마저 하고는 문득 짓궂게 씨익 웃었다.
눈을 얇게 하면서 성빈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30cm를 넘어가는 키의 장벽은 언제나 이렇게, 물리적으로 시선의 위치를 드러내게 하고야 만다. 이래서 키가 크고 싶었지만 노력은 배신하고 유전은 거짓말을 했다. 엄마 아빠는 다 키 큰데 나만 이렇게 작아. 억울해.. 발꿈치를 번쩍 번쩍 드는 버릇도 키차이가 부쩍 늘어나는 시절에 생긴 버릇이라는 걸, 결국 성빈이 탓에 생긴 버릇이라는 걸 알까.
"....절대 못 해...."
차라리 밤을 새고야 말지. 하지만 밤을 샐 수도 없다. 밤잠이 너무 많은 탓에 10시만 되도 피곤해지고 11시면 눈꺼플이 반쯤 감겨있는걸. 커피로 버티기에는 카페인이 들어가면 심장이 너무 벌렁거려서 무서워서 못 마시겠다. 때문에 친구들이랑 카페를 가도 언제나 에이드나 밀크티 핫초코 뿐이더라지.
"앗 그러고보니 아직 지각 한 번도 안 했다!"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장호랑. 고등학교 생활, 이대로 지각 없이 보낼 수 있을 것인가! 내년과 내후년이 걱정되지만 적어도 올해 일 년은 지각이 없을 것인가!
맨날 무얼? 하고 되묻듯이, 소년은 허리를 약간 숙여서는 당신과 눈높이를 맞춘다. 또록거리며 당신과 시선을 맞추려 하는 눈동자가 흡사 커다란 개를 불러세운 것 같다.
성빈은 자신에게 익숙한 이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좋았다. 언제나처럼 당신과 눈높이를 맞추거나,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베란다를 통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하루하루. 이런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나는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어, 하는 안정감이랄까. 고등학교로 가는 이 등교길은 당신에게도 슬슬 익숙해질 것 같다.
절대 못 해... 하는 청자가 불분명한 당신의 중얼거림을 성빈은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 아직 지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신이 새삼스레 놀랄 때는, 그때는 당신의 말소리를 들은 것인지 성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출석부가 깔끔하면 기분 좋잖아."
그리고 성빈은, 다시 허리를 숙여서는 당신의 눈높이에 가깝게 고개를 숙이고는 해사하게 웃는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미소다.
"그것보다도, 난 호랑이랑 이렇게 다시 같은 방향으로 등교하게 될 수 있게 된 게 더 좋지만. -그래서 반 애들은 좀 어때?"
허리를 숙여오며 얼굴이 가까워지면 헉 하고 반 걸음 발을 뒤로 했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제 작은 손으로 성빈의 얼굴을 밀어냈다. 가까워, 가까운게 싫지는 않은데 하여튼 가까워! 익숙함을 깨는 거리는 그것이 멀든 가깝든, 물적이든 심적이든 심정을 흔들기에 충분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언제나 익숙해지기는 힘들다. 특히 감정을 감추는 것이 서툴고, 동시에 감정을 들키는게 두려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러한 행동을 더 해주면 좋겠지만 또 해주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면서 몰라줬으면 하는, 짝사랑이란 불합리의 극치인 것이다.
"반, 반 애들 착하고 좋아. 중학교때 친구도 같이 올라왔고. 오빠는? 오빠 친구들 많이 반에 왔어?"
학교 쪽으로 짧은 보폭을 옮기며 물어본다. 호랑의 기억으로는 작년에 그닥 친구 얘기를 해 준 적은 없어서, 엄청 대단한 사람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만 걱정이 들기도 했다.
당신의 팔힘에도 성빈은 못 이기겠다는 듯이 밀려나곤 했다. 딴에는 안간힘을 쓰는 당신의 손길에 한쪽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도 성빈은 마냥 밝게 웃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도 같은 이 안락한 일상... 그래, 이거면 충분해. 하고 소년은 내심 생각했다. 그리고 이게 흔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법이니까. 이 이상을 욕심내고 싶지는 않다. 아니,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성빈은 그 욕심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꽤나 익숙했다.
"글쎄- 반이 아니라 내 학년 애들 중에도 딱히 얘랑은 같은 반 되기 싫다, 할 정도로 사이나쁜 애는 없으니까, 별 문제는 없어."
갑작스런 성빈의 접근에 잊고 있었던 점이 하나 있다. 이 인간이 핵인싸라는 점. 1학년 때도(몇몇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 않았고, 이상하게 그 때는 당신과 영 소원하긴 했지만) 대외적으로 그는 매사에 상냥하고 믿음직스럽고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친구였다. 그가 자기 이야기를 당신에게 딱히 풀어놓지 않더라도, 적어도 교내에서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칭찬일색이었다.
당신 이외에도 그를 좋아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많았다.
어느덧 저만치서 교문이 조금씩 가까워오는 것이 보인다. "랑이도 별탈없이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더... 잇고...싶으나... 성빈주 기력이 마이 딸려... 텀도 길어지고... 88 혹여나 호랑이의 다음 답레에 내가 유체이탈하거나 심쿵사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기력이 딸려서 리타이어해버렸다고 생각해줘 8-8 생각같아서는 랑이랑 같이 이 밤의 끝을 잡고 싶은데 그건 주말에 노려보는 걸로...
저렇게 귀여운 애랑 17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호감도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수준일 리가 없지0v0! 다만 내색을 안합니다. (한 200레스쯤 뒤에는 이 레스를 링크걸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같은 짤을 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답레... 다음 답레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레스를 볼 수는 있을 것 같아. 기왕 좋은 기분으로 아침 시작할 거면 기분좋은 꿈도 꾸고 싶거든(욕심) 그리고 호랑주한테 잘 자라는 인사도 해주고 싶고..
한 평생 같이 지내면서 빼빼로 데이나 화이트데이, 발렌타인 데이 처럼 자신의 인기를 자랑 할 수 있는 날에는 언제나 두 손 가득 선물을 이고 오던 성빈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러한 흐름은 깨지지 않고 이어졌나보다. 문득 이렇게 대외적은 성빈의 평판을 확인하게 되면 앗, 하고 주춤하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지금의 관계는 아주 아주 우연한 결과였고, 언제 급변할 지 모르는 위태로운 것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또 고백을 하고, 성빈이 그걸 받아주게 된다면, 지금의 호랑은 붕 뜬 체로 가식적인 축하를 하고 옅어지는 관계를 파탄내지 않고자 스스로 거리를 두어야 할 테니까. 그런게 싫었다. 확실하지 않은 행복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순간들이 싫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는 더 싫었다. 정확히는 무서움에 가까운 거겠지. 호랑이가 아는 성빈이는 상냥한 사람이니까 이런 두려움에 긍휼하게 대해줄 것이고, 그러면 이전처럼의 겉모습을 보여도 신경써줘서 이러는지 진심인지 의심을 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런 의심마저 들키고야 말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작은 싫음을 꾹 삼키고 있어야 했다.
"걱정은 오빠가 되거든요~ 맨날 커튼치고 집에도 늦게 등어왔던 사람이~"
베 하고 혀를 내밀었다가 저 멀리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 성빈을 올려다 보다가 다시 친구를 보았다. 그래도 신발 갈아 신는 것 까지는 같이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친구한테 가는게 좀 더 자연스럽겠지, 하는 순간의 계산. 아니, 사실은 신발도 같이 갈아신고, 계단도 같이 오르다가 1학년 반 앞에서 안녕 하고 손 흔들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저기, 저기 내 친구! 나 그럼 먼저 갈게! 오빠 나중에 봐!"
손가락으로 아까 봐 두었던 친구를 가리키며 방방 뛰다가 성빈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달려나갔다. 그래도, 하교할 때 볼 수 있으니까.